68.
“형의 정체가 도대체 뭐야? 왜 남들이 형을 허수아비라고 부르지?”
질문 끝에 이림범은 스스로 답을 찾았다. 기실 남들 눈에 비치는 하련솔이 어떤 인간이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제가 바라보는 하련솔이 어떤 인간이냐, 이림범에겐 그것만이 중요했다.
“내 눈에 보이는 형은, 내가 보기엔….”
두서없이 말을 흘리는 이림범의 손에 하련솔이 고개를 기대었다. 황제가 아니라 나무꾼이래도 믿을 만치 딱딱하고 거친 큰 손에 제 턱을 바짝 올리며, 하련솔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물었다.
“네가 보기엔 어떤데?”
그 순간 이림범의 마음에 찬 얄궂은 미움이 자취를 감췄다. 차분한 척 웃음 짓고, 뻔뻔하게 얼굴을 들이밀면서 하련솔은 떨고 있었다. 그를 채운 감정의 이름일랑 이림범은 몰랐다. 다만 추측할 따름이었다. 그를 보며 제가 떨리고 불안하고 무섭듯이, 하련솔도 저로 인해 그런가 보다… 하고.
그와 동시에 이림범은 확신했다. 제 눈앞의 이 남자는 귀신 따위가 아니다.
“형은 하련솔이야.”
그 이름을 시간에 새기는 양 이림범이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많이 아끼는 무화… 하련솔.”
그러면서도 그는 다시 언제, 어디에서 하련솔을 잊어버릴지 알 수 없었다. 목 끝까지 차오른 불안은 끓는 소리가 되어 입 밖으로 나왔다.
“형을 잊고 싶지 않아. 남들처럼 형을 모르고 지내서는, 난 못 버텨. 사는 것도 자신이 없어.”
“범아.”
극단적으로 내놓은 가정에 놀란 듯 하련솔이 끼어들었다. 그러나 이림범의 말을 막아내긴 역부족이었다.
“형을 위해서가 아니야. 날 위해서야.”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질 우울이 아니었다. 당장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서까래에 두 팔을 올리고 매달리지 않았던가. 저를 음해하려는 세력이 있다는 피해망상에 휩싸여 손날로 먼지를 쓸어대던 찰나에 그는 어머니를 생각했었다. 아주 짧은 순간 궁금했다, 겨울날 개구멍 처소에서 결국 목을 매는 것과 비행기 티켓을 움켜쥐고 심장마비로 죽는 것 중, 어머니가 그나마 바란 죽음은 뭐였을까 하고.
그러면서도 그는 오늘날 개구멍 처소에 묵고 있는 하련솔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 사실이 몸서리치게 끔찍했다.
“형이 없으면 숨이 막혀서… 힘이 들어서 내가 어떻게 살아? 어떻게 버티지?”
뺨과 귀, 머리칼과 둥그런 뒤통수, 마른 목을 연거푸 어루만지는 손길을 받으며 하련솔이 침묵했다. 희미한 두 눈 대신 그는 촉감으로 이림범의 감정을 읽었다. 저를 잊지 않으려, 잃어버리지 않으려 이토록 간절히 매달리는 손길은 처음 받아 보았다. 그 애절함이 하련솔의 마음을 움직였다. 꽉 막아 두었던 기억의 문을 마지못해 밀어 열며, 하련솔이 말했다.
“아빠가 내게 주려 했던 돈, 사망보험금…. 다 죄책감에 그랬던 거야.”
그제야 이림범은 어째서 지난날 하련솔이 복합문 너머에 숨었는지 알았다. ‘아빠’ 두 글자를 뱉는 하련솔의 얼굴은 쳐다보기 미안할 정도로 시무룩하고 슬퍼 보였다.
“나한테 너무 큰 잘못을 저질렀거든….”
하련솔은 제 아버지의 인생이 참 기구하다고 생각했다. 제 나이 열다섯 살 무렵 벌어진 일들을, 그는 제 과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사건 사고에 휘말리기야 아버지와 함께했다. 하지만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기란 오롯이 아버지의 몫이었다.
아버지의 상황을 살피자면 이랬다. 병세가 나빠져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장례식을 갈무리하기도 전에 집에 불이 났다. 화재의 원인은 가스 누출이었고 책임은 아버지 당신에게 있었다. 큰 재산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것으로도 모자라, 그는 피해를 받은 이웃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가세는 순식간에 기울었다.
그나마 소유하고 있던 동네 부지를 다 내놨는데 산다는 사람이 없었다. 구매자로 나설 만한 이들은 죄 그의 급한 사정을 알기 때문이었다. 현금이 급한 탓에 별수 없이 헐값에 팔아치워 임시 거처를 구했더니, 느닷없이 도둑이 들었다. 금고를 통째로 도둑맞아 신고했으나 범인은 잡히질 않았다.
그 무렵부터 아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하나뿐인 자식이 시름시름 앓기에 병원에 가 검사란 검사는 다 해 보았다. 없는 살림에 입원을 시키고 약을 먹이고 링거도 꽂게 했다. 아들은 밤새 고열에 시달리며 온몸이 다 아프다고 우는데, 병원에서는 병명도 알아내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는 믿고 지냈던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다. 지갑도 마음도 텅텅 비어버린 날, 그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아내를 따라 아들마저 세상을 떠나는 일이었다. 양의원이고 한의원이고 가리질 않고 쏘다닌 끝에 그는 무당을 찾았다.
그런데 용하다는 무당들이 하는 말이 모두 똑같았다. 누군가 그의 아들에게 아주 지독한 저주를 걸었다는 것이었다. 살을 날렸다, 굿을 했다, 닭 목을 꺾었다… 표현은 각기 달랐으나 의미는 같았다. 그 말을 믿지 못해, 그는 매번 화를 내며 당집을 박차고 나왔다. 제 아들은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다고, 누구에게 저주를 받을 만큼 못된 짓을 한 일이 없다고 말이었다.
그렇게 한 달 뒤, 그는 키우던 개를 다른 집으로 떠나보냈다. 텅 빈 개집 옆에 앉아 술을 마시는 밤, 박수무당이 그를 찾아왔다. 여태껏 다른 무당들이 했던 것과 같은 말을 하되,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자신만만한 박수의 태도에 아버지도 마음이 흔들렸다. 결국 그가 요구하는 복채를 내기 위해 빚까지 지고, 시키는 대로 굿을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제 손으로 허수아비 하나를 만들어 아들의 옷을 입히고, 아들의 머리카락 몇 올을 심고 아들의 자른 손톱 몇 개를 붙였다. 그렇게 만든 가짜 인형을 관에 넣고, 땅에 묻어 무덤을 만들었다. 겁에 질린 그를 시켜 박수무당은 조촐하게 장례식을 치르고 묘비까지 박게 했다. 그렇게 해야만 날아든 살이 속는다고, 대상이 죽은 줄로 착각하고 저주도 사라질 것이란 말과 함께였다.
그가 벌인 일을 알게 된 아들은 불같이 화를 냈다. 제 목숨을 빌미로 사기꾼이 아버지를 속인 거라며, 굿값을 다시 받아 내자고 길길이 날뛰었다. 그런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는 살던 동네를 떠났다. 사람 많은 서울에 숨어 지내야 한다면서, 그는 제 아들의 이름은 물론이고 성씨까지 바꾸었다. 처음부터 그랬다는 양 ‘한솔’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평화는 길지 않았다. 굿의 효과 덕분에 잘 지내는 듯하던 한솔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기껏 이사한 서울 집조차 치밀하게 계획된 전세 사기 매물이었다. 당황한 아버지가 박수를 찾았으나,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가짜 무덤을 짓는 굿을 해 주고 돌아가던 날, 계곡에 빠져 죽었다는 것이었다.
겁에 질린 아버지와 달리 한솔은 침착했다. 그는 그저 제 아버지가 강해지기만을 바랐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슬픔에서 벗어나, 이제는 현실 감각을 되찾길 원했다.
그런데 뜻밖의 문제가 불거졌다. 아버지의 정신이 건강해지기는커녕 한솔의 생각이 흔들리는 변화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가 많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정확히는 저를 보는 사람들의 태도가 더럭 돌변했다. 도통 친구도 생기지 않고 지인도 사귈 수가 없기에, 처음에는 자주 이사 다니는 게 문제라 생각했건만 착각이었다. 아버지를 제외하고 누구도 ‘한솔’을 알아보질 못했다.
긴 시간 빚더미에 시달리면서도 한솔은 열심히 살았다. 한 자리에 정착하여 돈을 벌기엔 학력도 모자라고 존재감도 너무 옅어, 별수 없이 자질구레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거들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아버지의 후회는 커지기만 했다. 매일 밤마다 그는 가짜 허수아비 대신 진짜 아들을 파묻는 악몽을 꿨다. 제가 애먼 짓을 벌인 바람에 제 아들이 죽은 사람 취급을 받는 거라며, 제 손으로 제 자식을 반 유령으로 만들었다고 울었다.
한솔에게 생긴 이상 증세를 풀어낼 방법을 찾으려 그는 전국 팔도를 가리지 않고 돌아다녔다.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그러는 족족 무당, 스님, 심지어는 목사에게 바치며 해결 방안을 갈구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별별 짓을 다 해 보았으나, 끝끝내 한솔은 저를 알아보는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아버지의 손에 잡혀 마지 못해 만난 무당조차 한솔의 이름을 까먹었다.
7년을 허탕으로 보낸 끝에 아버지는 한솔을 붙들어 앉히고 이렇게 말했다. 널 위해 무엇이든 해 주겠다, 잃어버린 네 인생을 보상해 주겠다… 아버지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 넌 걱정 말고 집에서 쉬어라. 그렇게 찾아낸 길이 사망보험금이었다.
사실 한솔은 괜찮았다. 아버지가 있어서, 아버지는 저를 알아보기에, 정말 괜찮았다. 스물두 살의 여름까지는 그랬었다. 보험 서류에 땀자국을 묻힌 밤, 제 발로 집을 떠나는 순간에야 그는 아버지를 처음으로 원망했다.
목이 쉬도록 긴 이야기 끝에,
“그 무덤, 어디에 있어?”
이림범이 물었다.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하련솔은 허탈한 듯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야. 너는 황제가 돼서 이런 바보 같은 이야기를 믿어?”
그에 이림범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는 미신 같은 건 믿지 않았다. 그러나 자식 입장에서, 그따위 것에 미친 부모가 어찌 보이는가는 아주 잘 알았다. 뼈가 저리고 등이 찢어지도록 잘 알았다.
그래서 이림범은 하련솔을 이해했다. 지난날 하련솔이 느꼈을 그 참담한 원망을 이해했다. 한때는 그도 제 아버지며 어머니를 향해 그러한, 성대가 터져라 외쳐 봐야 귓등으로도 들어 주질 않는 원망을 퍼부었었다.
“내가 도와줄게, 형.”
이림범이 말했다. 그러나 하련솔의 대답은 거절이었다.
“날 돕고 싶으면, 범아. 나를 잊지 마.”
그밖에, 자신을 도울 방법 따위는 없다고 그는 믿었다. 방법이 있었더라면 지난날, 제 아버지께서 찾아냈을 거였다.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별을 선택하게 된 거였다.
“…계속 나를 알아보고, 형이라고 부르면서 쫄래쫄래 따라다니면서, 날 귀찮게 해줘. 그게 날 돕는 거야.”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주저앉은 하련솔을 향해,
“형.”
이림범은 기괴하리만큼 커다란 기시감을 느꼈다. 돌이켜보니 모든 것이 익숙했다. 하련솔이 전래동화 들려주듯 읊은 이야기의 수많은 요소가 이림범의 기억에도 실재했다. 지금과는 다른 이름, 아픈 어머니, 불이 난 집, 키우던 개와 사람 좋은 아버지, 어른이 빠져 죽을 수 있을 만큼 깊은 계곡… 그리고 무덤.
“그 무덤, 어디에 있어?”
얼빠진 얼굴로 이림범이 물었다. 제 손 안에 놓인, 창백하고 연약한 무화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의 이목구비에서 제 기억 속 영웅을 찾아내려 노력하면서.
충격받은 이림범의 표정을 모르기에, 하련솔은 쉽게 대답했다.
“그건 왜? 엄마 무덤 옆에 있는데….”
그 순간 이림범을 점령한 미친 생각 하나가 현실에 달라붙었다.
“형. 묘비에… 새긴 이름.”
숨 쉬는 법을 잊은 탓에 뜨문뜨문 말을 끊어가며,
“이은재였어?”
이림범이 물었다.
그러자 하련솔이 멀뚱멀뚱 두 눈을 끔벅거렸다. 몇 초간 침묵하는 듯하더니 그는 고개를 모로 갸웃거렸다. 그리고 웃었다.
“네가 날 어떻게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