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가지 잘린 나무
풀은 푸르고 나무는 따듯하고, 계곡물은 차가워서 기분 좋았다. 나무 그늘에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있다가 불쑥 땡볕 아래로 발을 뻗으면 온 사방이 새하얘졌다. 쨍한 땡볕이 하늘에도 있고 느리게 흐르는 계곡물에도 있었다. 위아래로 비치는 강렬한 여름빛에 눈을 질끈 감으며 이은재는 웃었다. 엄마가 입혀 준 린넨 셔츠를 훌러덩 벗어 던지고, 아빠가 채워 준 손목시계도 풀어다가 바위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곤 반바지 차림으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발도 닿지 않도록 깊은 물길 속을 은재는 물고기처럼 파고들었다. 첨벙첨벙 헤엄치며 나아갈 때마다 팔다리가 시원해 더위는 확 가시고, 심장은 쿵쿵 뛰며 열을 뿜어냈다. 찬물 속에 두 발을 휘휘 저으며 은재는 유영했다. 그의 몸이 위아래로 출렁출렁 흔들릴 때마다 팔뚝에 새겨진 살을 태운 자국이 절취선처럼 드러났다가 숨기를 반복했다.
허리를 뒤로 휙 젖히며 은재는 물결 위에 몸을 눕혔다. 두 팔을 주기적으로 휘적휘적 흔들며 제자리에 동동 뜬 채 하늘을 올려다볼 무렵, 그늘 저편에서 친구들이 소리를 와악 질렀다.
“야, 야! 자두 다 놓쳤잖아!”
외침을 따라 은재가 고개를 휙 위로 들었다. 소년의 고개는 제 머리꼭지에서 시작해 아래로 흐르는 자두를 따라 점차 내려갔다. ‘어어’ 하며 자세를 바꿔, 은재는 자두를 따라 헤엄치기 시작했다. 둥둥 떠내려가는 자두는 밖에서 볼 땐 느려도 물속에서 볼 땐 무척 빨랐다. 붙잡기가 쉽지 않았다. 계곡의 폭이 좁아짐에 따라 물살이 부쩍 빨라져, 이내 시야에서 보이지도 않게 됐다.
자두를 놓친 아이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 자두가 하필 동네 대장 이은재가 과수원에 가 직접 얻어온 자두인지라, 그에게 혼이 날까 봐 애태우기 바빴다. 정작 이은재는 아이들을 탓하는 데엔 관심이 없었다. 자두를 따라 그는 첨벙첨벙 계곡 밑으로 내려가 버렸다.
헤엄이 뜀박질이 되고 뜀박질이 힘 빠진 걸음이 될 무렵, 계곡물은 은재의 발등을 겨우 치도록 얕아졌다. 아름드리나무가 만들어 낸 그늘을 따라 걷다가 은재는 이마를 찡그렸다. 본래 이곳에는 ‘출입 금지’ 팻말이 박힌 별장이 있고 몇 년째 찾아오는 주인이 없었는데, 이제 와 보니 팻말도 사라졌고 별장 창문도 아주 깨끗하게 닦아 반질반질했다. 너른 정원도 아름답게 가꾸어낸 상태였다. 새로 심은 나무가 아직 완전히 자리 잡진 못했는지, 짙은 흙이 뿌리 초입마다 불룩하게 올라온 게 보였다.
휙 시선을 옮기자마자 은재는 낯선 소년을 발견했다. 별장 주인의 아들이 분명한, 그는 도시 출신 도련님 느낌을 한 몸에 풍겼다. 하얀 티셔츠에 밝은색 청바지를 입은 소년은 마침 흘러 내려온 자두를 줍고 있었다. 마른 배가 드러나도록 티셔츠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그 속에 자두 세 알을 품은 채였다.
“어어?”
그 소년의 입에 귀하디귀한 자두가 보란 듯 물려 있기에, 은재가 바락 외쳤다.
“그거 내 거야, 왜 네가 먹어. 내 건데….”
허둥지둥하며 은재는 소년에게로 가까이 다가섰다. 내 건데, 그거 네 거 아니고, 내 건데… 같은 말만 반복한 이유는 바보 같았다. 낯선 소년의 얼굴이 너무 예뻐서였다. 이마와 두 뺨이 동그랗고 눈매는 꼭 여우 같은 게, 원체 예쁘장해서 여자앤지 남자앤지 도통 분간이 되질 않았다. 예쁜 애를 보니 마음이 설레, 은재는 당혹감을 못 감췄다.
“그럼, 나 줘.”
그리고 낯선 소년이 말했다.
“네가 날 주면 이거 내 거지? 네 거, 나 줘.”
얼굴 반절이 그늘에 감춰진 소년이 볕을 향해 다가오는 순간, 은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가볍게 주먹 쥔 손으로 예쁜 소년의 정수리를 통, 소리 나게 두들겼다. 그리고 말했다.
“어딜! 남의 걸 욕심내면 혼나는 거야.”
그러자 소년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깜짝 놀라 자두를 쥔 손으로 맞은 머리를 만지작거리는가 싶더니, 은재를 올려다보는 눈이 왕방울만 했다. 여름빛을 그득 뭉친 눈동자가 그렁그렁했다. 눈물이 고일 만큼 세게 때렸나 싶어 멈칫하면서도 은재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게 허락도 안 받고 먹어, 왜.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 갖고 싶으면 갖고 싶다고 물어봐야지.”
그러자 소년이 시무룩한 얼굴로 제 티셔츠 옷자락을 앞으로 쭉 당겼다. 야무지게 모은 자두 네 알이 흰옷 위에 모여 있었다.
“내가 모은 건데….”
소년이 구시렁거렸고,
“그건 고마워.”
한 손에 두 알씩 덥석 자두를 집어 들며 은재가 인사했다. 이내 그는 하하, 소리 내며 웃음을 터뜨렸다. 의기소침해진 소년이 한입 문 자국 동그랗게 파인 자두까지 얌전히 내놓았는데, 그 모양새가 꽤 귀여워서였다.
“어때. 맛있었어?”
“응….”
“그럼 그건 너 해.”
자두 하나를 포기하고, 은재는 다시금 계곡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통통한 자두 한 알을 두 손으로 꼭 쥔 채 소년은 은재의 뒷모습을 올려다봤다. 어깨와 두 팔은 볕에 그을려 색이 짙었고, 늘씬한 허리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햇볕 아래 훤했다.
낯선 형이 어른보다 대단하게 느껴지기에, 소년은 머뭇거리면서 은재를 뒤따랐다. 그러면서 조르듯이 말했다.
“나 자두 하나 더 줘.”
“왜. 이게 그렇게 맛있냐?”
“울 엄마도 자두 좋아하는데…. 엄마 갖다 주게.”
그러자 은재가 활짝 웃으며 소년을 휙 돌아보았다. 은재가 소년의 예쁜 얼굴에 감탄했듯이, 소년도 낯선 형의 모습에 가슴이 설렜다. 계곡물에 젖은 새카만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넘긴 것도 멋있었고, 반듯한 눈썹과 코가 잘생긴 것도 어딘지 대단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속눈썹이 아주 길어 곱상했다. 참 까맣고, 진하고, 예쁜 형이었다. 게다가 웃음 걸린 입매가 시원하게 벌어지기까지 하니, 소년은 은재에게서 시선을 뗄 줄을 몰랐다.
제 얼굴을 뚫어버릴 것처럼 빤히 감상하는 소년을 향해, 은재가 고개를 내저었다.
“미안한데, 이건 안 돼. 나도 자두를 주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누군데요?”
“있어.”
호의로 두 눈을 가득 채운 소년 앞에서, 은재는 수풀 속을 턱짓했다.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였다.
“내 도깨비 친구.”
***
도깨비를 만난 것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여름날의 일이었다. 장마의 초입을 소나기로 착각하고 나섰다가, 은재는 계곡에 혼자 남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일은 꼭 도깨비를 찾으러 가자’라던 친구 놈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겁쟁이들 같으니라고….”
괜스레 혼잣말하며 은재는 첨벙첨벙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머리 꼭대기는 빗물로, 발가락은 계곡물로 적시기도 잠시, 그는 아주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숲속에 다친 개가 있어 깨앵깨앵 우는 듯한 소리였다.
제집에도 귀엽고 커다란 개, 덕순이가 있기에 은재는 얼른 소리의 근원지를 좇았다. 물 먹은 숲도 어두운 그늘도 그를 겁먹게 하지 못했다. 그는 미끄럼틀을 타듯 숲길을 누볐다. 질척질척 진흙이 쌓인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가던 중, 한참을 이어지던 우는 소리가 뚝 그쳤다. 계단 위를 올려다보자 조그마한 절의 초입이 보였다.
젖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은재는 석탑 앞으로 걸어갔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뒤적이자, 초콜릿 포장지와 동전이 만져졌다. 개중 50원 동전을 꺼내어 석탑 위에 던지려는데, 머리맡의 비가 뚝 그쳤다. 고개를 높이 들자 비닐우산의 반듯한 살이 보였다. 천천히 시선을 옮겨, 은재는 우산을 든 스님을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은재가 밝게 인사했다. 스님은 그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험한 날에 혼자 산길을 올라오다니, 부처님께서 걱정하십니다.”
“그런데 누구세요?”
열세 살, 호기심 왕성한 소년답게 은재는 딴소리했다.
“여기 절은 문 닫은 지 꽤 됐는데. 비구니 스님만 왔다 갔다 하시는데? 새로 온 스님이세요?”
“예, 그래요.”
스님은 은재의 손에 새 우산을 하나 들려주었다. 손잡이에 해태 문양이 그려진, 반듯한 접이식 우산이었다.
“자, 이거 들고 조심해서 내려가세요.”
은재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석탑 앞에서 걸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스님은 그런 은재의 등을 토닥이더니, 천천히 왔던 길을 돌아갔다. 그가 움직이자, 가까이 붙어섰을 때보다 더 진한 나무 향기가 났다.
스님이 건물 안으로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기다렸다가, 은재는 살금살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멍멍.”
입으로 가짜 개소리를 흉내 내며 그는 깽깽 우는 소리가 났던 방향을 찾았다. 귀를 쫑긋 세우고 절간 주위를 휘 둘러보는데, 우렁찬 빗소리 사이로 희미한 소음이 섞였다. 끙, 끙… 앓는 듯한 소리에 은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순간 쿵! 큰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하늘이 하얗게 번지도록 천둥이 쳤다. 은재의 눈에 들어온 것은 샛노랗고 기다란 부적이 엑스자를 그리는 창고 문이었다.
‘…뭐야, 이거?’
혹시 스님이 도깨비를 잡은 걸까? 은재는 생각했다. 며칠 전부터 숲속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리고 불빛이 일렁거려, 도깨비가 있다는 소문이 돌던 차였다. 그런데 마침 스님도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됐다고 하니, 정황상 도깨비 사냥꾼이 맞는 것도 같았다.
수상쩍은 창고 문을 향해 은재는 저벅저벅 다가갔다. 부적 붙은 문을 열어 볼 자신은 없어, 그는 판판한 돌을 디딤돌 삼아 창문 앞에 섰다. 판벽 위에 난 창문은 조그마한 데다 나무 창살이 빽빽했다. 그 틈으로 두 눈을 슬그머니 가져다 대자, 창고 안을 채운 암흑이 보였다. 어둠에 눈이 익기까지 기다리길 한참, 은재는 ‘헉’ 하고 헛숨을 삼켰다.
피부가 창백하고 몸매는 깡마른 아이 하나가 돌바닥 위에 있었다. 무릎을 세우고 몸을 웅크린 데다 완전히 알몸이었다. 작은 쌀가마니를 잘못 본 게 아닐까 하고 빤히 살피자 까만 머리, 흔들리는 어깨, 빨개진 옆구리가 얼핏 보였다.
“야….”
작은 소리로 속닥거리며 은재가 그를 불렀다. 그러자 반 나신의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실내에 있는데도 얼굴이 온통 젖은 아이를 향해, 은재는 속삭였다.
“네가 도깨비야?”
그러자 아이가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오만상을 구겼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도깨비란다. 하지만 뿔도 없고, 방망이도 없고, 팬티도 없었다. 울상이 된 얼굴은 귀여운 한편 안쓰러웠고, 벌거벗은 어깨가 위아래로 들썩들썩 움직이는 게 울음의 여운으로 딸꾹질하는 것 같았다.
“아닌데. 너는 그냥 사람이잖아.”
딸꾹질하는 도깨비가 있단 말은 듣도 보도 못했기에, 은재는 고개를 내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