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어둠 안에서 아이의 어깨와 무릎만이 선명하게 보였다. 핏기 없이 창백하게 질린 피부가 자아낸 대비 덕분이었다. 깡마른 무릎과 거의 직각이라 딱딱해 보이는 어깨를 연신 살피며, 은재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엄마의 요양을 위해 이곳, 경기도 주현시 고야읍으로 이사 온 게 은재의 나이 아홉 살 때 일이었다. 시골 출신의 아이들은 대체로 건강하고 튼튼했다. 남자고 여자고 간에 유별나게 뚱뚱한 아이도 없었고 깡마른 아이도 없었다. 오늘, 절간 귀퉁이 창고에 앉은 아이는 은재로서는 처음 보는 기아였다.
“야…, 왜 혼자 울고 있어. 응? 안 추워?”
친한 동생들의 머리를 꽁꽁 쥐어박고 어깨를 팔걸이 삼던 은재도 그 아이 앞에서는 부쩍 다정해졌다.
“옷은 어디 있어? 엄마나 아빠는 어디 갔어?”
스님이 들을까 봐 작은 소리로 연신 물어도,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혹시 말을 할 줄 모르나 싶어 은재는 창살을 쥔 손가락을 까닥까닥 움직였다. ‘왜 울어?’란 질문을 담아 위에서 아래로 눈물 흐르는 모양을 표시하려는데, 아이가 슬금슬금 앞으로 다가왔다. 은재의 손짓을 ‘이리 와’란 의미로 착각한 듯했다.
‘진짜 강아지 같네.’
창살 틈으로 비친 흐린 빛을 조명 삼아, 은재는 아이의 몸을 제대로 살필 수 있었다. 수치심을 느끼는지 앞으로 두 팔을 옹송그려 사타구니를 가리고 선 아이는 매우 말랐고 슬퍼 보였다. 하얀 얼굴이며 기다란 목, 어깨와 팔다리에는 별다른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것은 아이의 옆구리였다. 등 뒤에서 배 방향으로 흘러내린 핏줄기가 선명한 것이었다.
그 바람에 은재는 놀라 헛숨을 들이켰다. 발아래서 디딤돌이 좌우로 흔들거렸다. 애써 균형을 잡으며, 그는 급히 속삭였다.
“너, 피 나…!”
이제 아이는 창문 바로 아래까지 다가와 고개를 추켜들고 은재를 올려다봤다. 얼굴은 백짓장처럼 새하얀데 콕콕 박힌 두 눈동자는 새카만 것이, 도깨비가 아니라 차라리 백구 같았다.
나무 창살에 이마를 바짝 붙이고 은재가 말했다.
“내가, 이거 열어 줄게. 기다려.”
그러곤 돌 아래로 내려가 부적 붙은 문을 힘껏 밀었으나, 아주 미약하게 흔들리기만 할 따름이었다. 문짝에 어깨를 붙이고 체중을 실어보아도 꿈쩍도 하지 않았고, 문 틈새로 손끝을 밀어 넣고 암만 당기려 해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절망을 느끼며 은재는 다시금 납작한 돌 위에 올라섰다.
기우뚱기우뚱 몸을 흔들며, 은재가 초조하게 물었다.
“야, 이거 안에서 잠겨 있어? 걸쇠 같은 게 걸려 있어?”
그러자 아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은재가 헛웃음을 섞어 다시 물었다.
“그럼 네가 열고 나올 수 있는 거네?”
끄덕.
“그럼, 지금 열고 나올래?”
도리도리.
“아니…, 왜? 나오면 안 될 이유라도 있어?”
끄덕.
“너 이름이 뭐야.”
소리 없는 응답에 답답해진 마음을 토로하듯, 은재는 불퉁하게 질문했다. 그러자 뜻밖에, 백구 같은 아이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질겁한 사람처럼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내어 말했다.
“이름 없어….”
“뭐?”
난생처음 들어 보는 말에 제 귀를 의심하는 은재에게,
“이름 없어.”
아이가 연거푸 말했다.
“난…. 나는…. 나는 도깨비야. 나한테 악귀가 씌어 있어. 그래서 이름이 없어. 이름 있으면 안 된대. 아직…. 아무랑도 이야기하면 안 돼….”
허둥지둥, 두서없이 제 할 말만 쏟아내는 아이의 태도는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어조도 없고 감정도 실려 있질 않은 탓에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딱 그만큼, 아이는 타인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경험이 없는 듯 보였다.
창살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은재는 이마를 찌푸렸다.
“도깨비는 무슨 도깨비야, 네가…. 악귀는 또 뭔 소리야?”
황당한 마음에 구시렁거린 혼잣말을 타박으로 받아들인 듯, 아이는 쭈뼛쭈뼛 뒤로 물러났다. 좁은 창고 방의 구석으로 가더니 다시금 몸을 쪼그리고 앉았다. 아마도 은재의 존재가 낯설고, 또 창문 가까운 자리가 추운 듯했다. 그러니 그나마 바람이 들지 않는 곳으로 가 제 체온으로 몸을 데우려는 것이었다.
답답한 심정으로 은재는 창살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림자 속에 숨은 아이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려 노력하자니, 발을 디딘 돌이 지나치게 흔들거렸다. 결국 마지못해 내려서야 했다.
“하….”
좁은 처마에서 떨어진 빗물이 은재의 등줄기를 자꾸만 적셨다. 미지근한 빗물이 저를 약 올리는 듯 느껴져 은재는 제자리에서 한숨을 푹푹 쉬었다. 부적 붙은 문짝을 노려보길 한참, 그는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었다. 그러자 조금 전 던지려다 만 50원 동전 하나와 투명 포장지를 두른 사각형 초콜릿이 하나 나왔다. 개중 초콜릿을 집게손가락으로 잡고는 팔을 높이 들고, 창문의 나무 창살 틈으로 쏙 집어넣었다.
툭, 소리를 내며 초콜릿이 바닥으로 떨어진 기척을 냈다. 그에 은재가 말했다.
“이거 먹어. 먹어 보고 맛있으면, 너 도깨비 아니야. 도깨비는 초콜릿 안 좋아해.”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사실 도깨비가 초콜릿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이은재도 몰랐다. 헐벗은 남자애가 자신을 도깨비, 악귀라 소개하는 게 싫어서, 그 말을 그저 부정하고 싶어 아무렇게나 지어낸 소리였다.
“내 이름은 은재야. 이은재.”
“…….”
“내일 또 올게.”
판벽에 대고 혼잣말하듯 중얼거린 뒤, 은재는 숲길로 돌아갔다. 비에 젖어 미끌미끌한 나무 계단을 조심스레 밟고 내려가는 내내 그는 오만상을 찡그리며 얼굴에 구김을 만들었다. 저게 진짜 유령은 아니겠지, 악귀면 몹시 나쁜 놈이라는 뜻일 텐데 그럴 리가 없지. 아니겠지, 아닐 거야… 생각하면서.
***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은재는 도깨비 소년을 찾았다. 스님의 눈을 피해 슬금슬금 찾아갈 때마다 아이는 창고 방에 혼자였고, 동자승이 입을 법한 작은 법복 차림이었다. 옷이 주어졌어도 식사는 모자란 듯, 은재가 창살 틈으로 넣어 주는 과자며 사탕, 젤리를 받아먹는 태도가 조급해 보였다.
말수가 적고 표정도 거의 없는 아이였지만, 은재는 그가 제 방문을 좋아한다는 확신을 쉽게 가졌다. 장난감도, 텔레비전도, 만화책도 없는 창고에서 혼자 지내는데, 어떻게 친구를 기다리지 않을 수 있겠느냔 생각에서였다.
때문에 은재는 무척 떳떳했다.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여 창문 앞에 도착해, 돌을 받침대 삼아 창고 안을 들여다볼 때마다 그는 씩 웃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깨비깨비 도깨비야. 형아 왔다.”
그러기를 나흘째 되는 날에 아이는 제 이야기를 아주 조금 들려주었다. 태어날 때부터 저에게 몹시 나쁜 악귀가 붙어 있는데, 악귀한테는 이름을 지어 주면 안 되기 때문에 이름이 없다, 악귀를 없애려고 여기 절에 와서 스님과 살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마저도 경황없이 허둥지둥 쏟아낸 이야기라, 은재는 몇 번이고 말꼬리를 꼬집어 가며 이해해야 했다.
나름대로 긴 말을 쏟아내느라 아이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그러곤 불안한 듯 제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제 손끝을 물어뜯었다. 그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은재가 말했다.
“그러니까 엑소시즘을 하고 있단 거잖아. 스님이 엑소시스트고, 네가 귀신 들린 소녀 역할이고? 너 몸 뒤집고 계단에서 내려올 줄 알아?”
그러자 아이가 두 눈을 느릿느릿 끔벅거렸다. 몸을 뒤집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한참 고민한 끝에 아이는 당연한 답을 내놓았다.
“못 하는데….”
미적미적 머뭇거리는 아이에 비해 은재의 질문 세례는 막힘 없었다.
“그럼 성수로 맞아봤어? 물 맞으면 살이 막 타고, 녹고 그래?”
“아니….”
“모르는 언어로 말 잘해? 라틴어 할 줄 알아? 라틴어로 자기소개 해 봐.”
“…….”
질문의 의도를 전혀 모르기에 아이는 부끄러워 고개 숙였다. 그리고 용기 내어 말했다.
“영어로는 할 줄 아는데….”
“그게 뭐가 악귀냐?”
조그맣게 몸을 옹송그린 아이를 향해 은재가 하하하 웃음을 쏟아냈다. 그러더니 ‘흥’ 콧김을 내쉬며 대뜸 얼굴을 굳혔다. 가면 바꾸듯이 휙휙 변하는 소년의 얼굴을, 아이는 힐끔힐끔 눈치 보듯 연신 살폈다.
“야. 거짓말 좀 하지 마.”
은재가 말했다. 그러자 억울함에 속이 달아올라, 아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거짓말 아니야! 진짜야…. 스님도 그랬고, 폐…, 하, 아, 아버지도 그랬어.”
“그럼 스님이랑 너네 아빠가 거짓말하는 거야.”
창틀에 턱을 괸 은재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두 눈동자엔 흔들림이 없었고 입술 끝엔 아무런 장난기도 묻어 있지 않았다. 아이에게 더할 나위 없이 큰 확신을 안겨주는 얼굴로, 은재는 진실을 말했다.
“그거 다 뻥이라고. 알아들어? 내가 공포영화를 많이 봐서 잘 아는데, 악마에 씐 애들은 너처럼 귀엽지 않아.”
“…….”
“악귀 같은 건 아무 데도 없어.”
병상에 누워 지내느라 영화에 몰두하는 엄마를 위해, 은재는 주말마다 그녀 취향의 공포영화를 함께 관람했다. 그리고 그런 밤마다 아빠의 자리를 강탈하며 엄마와 함께 자야 했다. 수줍은 사실은 쏙 빼놓고, 은재는 강한 척 두 눈을 부릅떴다. 그대로 몇 초간 아이를 노려보았다.
그러면서도 은재는 제가 뱉은 소리가 상대에게 얼마나 큰 혼란을 주는지 알지 못했다. ‘어른들이 거짓말을 하는 거다’, ‘너에겐 아무 문제가 없다’… 제 말이 아이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 흔드는 줄은 전혀 몰랐다.
창살 너머에 선 은재를 올려다보며, 아이가 물었다.
“…그럼 나는 뭐야?”
서글픈 듯 축축한 목소리였다. 그에 은재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눈꼬리가 길어지도록 활짝 웃으며 그는 제 눈앞에 보이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
“너? 넌 초콜릿을 좋아하는, 평범한 어린애야.”
아이는 머리카락이 덥수룩하고 두 눈은 침울했다.
“강아지처럼 귀엽고 눈이 커다란 애지.”
핏줄이 비치도록 창백한 피부가 을씨년스럽고, 팔다리는 지나치게 깡말라 휘어 보였다.
“하얀 게 흰둥이 백구 같아. 다리 긴 백구!”
두 손으로 나무 창살을 힘껏 움켜쥐고, 이은재가 말했다.
“너, 귀여운 백구는 뭘 좋아하는지 알아?”
그의 자신만만한 목소리에 완전히 매료되어, 아이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동그랗고 새카만 두 눈동자에 창살 그림자가 고스란히 비쳤다. 그와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며, 은재가 속삭였다.
“산책. 우리 산책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