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랑이 목에 방울 달기-71화 (71/135)

71.

‘산책’ 두 글자에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이기도 잠시, 아이는 다시금 무표정해졌다. 보인 행동이라곤 자박자박 창문 앞으로 다가오더니 다 먹은 과자의 포장지를 건네는 게 전부였다. 몰래 과자를 먹은 일을 들키지 않게끔 쓰레기를 회수해 주며, 은재가 물었다.

“야아. 진짜 이거 안 열어줄래? 어차피 스님도 모를 거야. 그 스님, 내가 맨날 오는 지도 모르고, 지금도 여기 없는데.”

하루 한 번씩 아이를 찾아올 때마다 은재는 절간 곳곳을 꼼꼼히 살폈다. 작은 절의 본채에는 손님을 위한 공간과 따듯하고 볕 드는 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가장 크고 포근한 방은 스님의 몫이고, 작은 방은 주인 없이 비어 있었다. 그런데도 아이를 창고에 가둬놓는 걸 보면 그 스님은 순 나쁜 놈이었다.

아무래도 땡중 같다고, 은재는 내심 그를 욕했다. 계절마다 찾아오는 비구니 스님을 알기에 더욱 그랬다. 비구니 스님의 경우 불상을 깨끗하게 닦아놓고 며칠 내내 절하느라 바빴었다. 반면 ‘땡중’은 불공드리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절을 올리긴커녕 목탁 두드리는 소리도 낸 적 없었다. 은재가 이곳저곳을 뒤지며 찾아내기로, 그는 형형색색의 괴상한 리본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적, 괴상한 항아리를 많이 갖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답답하게 작은 케이지 안에 닭이나 토끼를 두세 마리씩 몰아넣고 키우기도 했다.

은재는 그 스님이 영 싫었다. 그렇다한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응?”

고작해야 창고에 갇힌 아이의 친구가 되는 일뿐이었다.

은재의 끈질긴 유혹에 아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더니 동작을 멈춰 버렸다. 작은 창을 통해, 방전된 로봇처럼 움직이지 않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은재는 인내심을 키워나갔다. 긴 침묵 끝에 답답해진 은재가 쓰러지기 직전에서야 메아리처럼 작고 흐린 목소리가 돌아왔다.

“내가 문 열어 주면… 뭐 하려고 그러는데?”

은재는 기가 막혔다. 아이의 질문에 의심이 한가득 실려 있어서였다. 초콜릿이며 과자며 맛난 것들을 죄다 가져다 먹였더니만, 조그만 꼬맹이가 저를 유괴범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 황당했다. 그 오해가 불쾌하기보단 재밌게 느껴져, 은재가 킥킥거렸다.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재차 말했다.

“글쎄. 계곡에 가서 나랑 놀래? 너 수영할 줄 알아?”

“못해.”

“못해도 돼. 내가 가르쳐 줄게.”

아이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도 물놀이 이야기에 마음이 크게 흔들리는 듯, 앉은 자세를 주춤주춤 고쳤다. 꼭 쥔 주먹을 바라보며 은재가 거듭 속삭였다.

“아니면 우리 집 가서 만화책이랑 텔레비전 보고 과자 먹을래? 친구 데려가면 아빠가 햄도 구워주는데.”

“안 돼…. 그럼 어른들한테 들키잖아….”

기껏 넘어오는가 싶던 아이가 다시금 홱 고개를 돌려버렸다. 은재도 그를 따라 시선을 움직였으나, 썰렁한 돌바닥과 낡은 진열장이 보일 따름이었다. 그 옆으로 쓸모를 알 수 없는 나무 작대기들이 줄을 지었고, 접힌 반상도 하나 있었다.

조금도 재밌어 보이지 않는 소품들을 훑으며 은재는 고민에 잠겼다. 작은 침묵 끝에 그가 말했다.

“그럼, 이거 열어주면 내가 너 꼭 안아줄게. 그것만 하게 해줘.”

그러자 아이가 고개를 휙 들었다. 아이의 까만 눈동자에 은재의 얼굴이 달덩이처럼 담겼다. 이번에,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아이는 상기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움직였다. 웃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기도 잠시, 은재가 급히 외쳤다.

“잠깐, 잠깐만!”

그러곤 디딤돌 밑으로 내려가, 창고 문을 가로막은 부적의 끄트머리를 살살 긁었다. 틱… 틱… 속 간지러운 소리가 날 정도로 신중하게, 아주 조심스럽게 풀 붙은 면을 떼어냈다. 왼쪽 문짝에 붙은 면만 떼어내어도 티 나지 않게 문을 열기엔 충분했다.

“됐어. 이제 열어 줘.”

그러자 끼이이익… 무거운 소리를 내며 나무 문이 느릿느릿 열렸다. 꽉 닫아놓고 부적으로 봉쇄한 지 한참이 된 듯 뻑뻑하기 짝이 없는 움직임이었다. 벌어진 문틈 새로 아이가 얼굴을 내밀어 보였다. 은재도 문틈 새에 제 얼굴을 가져다 댔다.

부적 없이 마주한 아이의 얼굴은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약간의 기대감에 볼이 발갛게 물들었을 따름이었다.

‘악귀는 무슨.’

바깥으로 선뜻 나서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아이를 대신해, 은재는 문틈 새로 제 몸을 밀어 넣었다. 아이가 창고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면 제가 그 곁으로 다가가면 될 일이었다. 어둡고 습한 방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은재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키 큰 은재의 품에 안기자 아이의 발뒤꿈치가 살짝 들렸다.

“…….”

입을 꾹 다물고 얌전히 안겨 있기도 잠시, 아이가 은재의 허리에 제 두 팔을 둘렀다. 표정도 없고 깡마른 녀석의 힘이 어찌나 강한지 은재는 제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당황해 고개를 떼어내고 들여다보려 해도, 아이가 은재의 어깨에 제 얼굴을 힘껏 파묻어 쉽지 않았다.

“야….”

당황해 속삭이기도 잠시, 은재는 콧김을 흥 내쉬었다. 그러곤 더욱 힘껏 아이를 안아주었다. 누가 더 세게 포옹하는지 대결이라도 하는 사람들처럼, 그들은 서로를 마주 안고 움직이지 않았다.

***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은재는 아이를 찾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스님은 아이에게 무관심했다. 때문에 아이는 배곯는 일이 잦았고, 대신에 은재는 손쉽게 아이 곁에 드나들 수 있었다.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곤 문을 열 때마다 부적 한 면을 살살 뜯어내고, 닫을 때마다 침을 묻혀 다시금 찰싹 붙이는 것뿐이었다.

아이에게 간식을 먹이고, 일방적으로 제 이야기를 들려주고, 해가 저물기 전에 돌아가는 일에 관성이 붙었다. 매일 한 시간에서 두 시간씩, 창고 방에 들어가는 게 아주 재밌냐면 그렇진 않았다. 솔직히 말해 은재는 계곡에서 수영하고, 수박을 부숴 먹고, 놀이터를 뛰어다니는 게 훨씬 더 재밌었다. 도깨비를 향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방문은 순전한 호의로 이어졌다.

그렇게 꼬박 열흘째 되던 날의 오후, 은재는 습관적으로 창고를 찾아 숨어 들어갔다. 그리고 위기가 닥쳐왔다. 아이와 어깨를 붙이고 나란히 앉아 수다를 늘어놓던 차, 낯선 발소리가 그의 귀를 사로잡았다.

선물 받은 크림빵을 두 개로 쪼개던 아이가 손을 멈췄다. 빵과 함께 든 스티커 포장지를 뜯던 은재도 고개를 번쩍 들었다. 발소리는 바깥으로 통하는 문이 아닌, 창고와 이어진 내부 복도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가 당황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 은재는 빵과 포장지, 스티커를 양손에 긁어 쥐고 재빨리 움직였다. 바닥에 납작 엎드리고는 구석 자리의 진열대 아래로 몸을 쑤셔 넣다시피 숨긴 것이었다.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 은재의 그림자를, 아이는 뒤늦게 쫓았다.

그때 덜컹, 큰소리와 함께 쪽문이 열렸다. 키가 크고 마른 스님이 터벅터벅 창고에 들어섰다.

“…….”

아이는 당혹감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의 흰 얼굴을 제 그림자로 덮으면서도 스님은 그 반응을 유별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앞에 마주 설 때마다 아이는 언제나 질겁했기 때문이었다.

흙바닥에 뺨을 붙이고 몸을 웅크린 채 은재는 숨을 죽였다. 창고 문을 미리 닫아놓아 안에서 봐선 열린 티가 나지 않을 터였다. 가져온 빵이며 포장지의 흔적도 다 감추어 제 배 밑에서 뭉개지고 있었다. 순발력 좋게 단숨에 몸을 숨긴 것도 좋았다. 그러나 단점이 하나 있었다. 진열장 아래 틈새가 너무 좁고 어두워서, 바깥에서 은재를 볼 수 없듯이 은재도 바깥을 살필 수 없는 것이었다.

스님은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도 침묵하긴 마찬가지였다. 무얼 준비하는 듯한 발소리, 내려놓는 듯 퉁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척척 몸을 움직이는 기척은 들리는데 도통 무얼 하는 중인지 알 수 없었다.

이내 스님이 중얼중얼 무어라 질문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 안에서 은재는 눈을 끔벅거렸다. 귀를 쫑긋 세우고 자세히 들어보아도, 도통 말의 뜻을 알 수 없었다. 한국어도 아니고 일본어도 아니고, 중국어도 아니었다. 세 언어를 한데 버무린 것 같기도 했고, 불경인지 주술을 외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기로는 아이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스님이 거듭 말끝을 올리며 무어라 질문하는데, 아이는 대답하지 않는 걸 보니 그랬다.

‘귀신은 저 스님이 씐 거 아냐?’

이마를 찡그리며 은재는 두 눈을 감았다. 청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보려 애쓴 것이었다. 다시금 중얼중얼… 뜻 모를 말이 이어지고, 홱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타악 두들기는 타격음이 들렸다. 같은 소리가 지겨울 때까지 반복됐다.

은재는 스님이 무언가를 세게 털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휘휘 휘두르는 소리, 탁탁 맞는 소리 모두 스님이 낼 뿐, 아이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고요하고 또 고요해서, 혹시 아이가 창고 밖으로 나가버린 건가 싶을 정도였다.

불쑥,

“얼른 나가지 못해!”

스님이 소리 질렀다. 그 바람에 은재는 화들짝 놀랐다. 잘 숨었다고 생각해 안도한 것이 무색하게도, 스님이 제 존재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은재는 숨을 참았다. 심장이 쿵쿵 뛰고 식은땀이 등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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