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긴장으로 손발이 차게 질린 은재가 머뭇거리는 동안, 스님은 같은 말을 반복하며 윽박질렀다.
“나가라, 어서 나가!”
그러면서도 스님의 발소리는 은재가 숨은 진열장 쪽으로는 가까이 오지 않았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꾹꾹 짓누르며 은재는 어두운 흙바닥만 바라보았다. 그제야 오가는 상황을 어느 정도 추리할 수 있었다.
“썩 꺼지래도!”
외침은 은재가 아닌 아이에게 쏟아졌다. 아이에게 악귀가 씌었다고 믿는 스님이, 그 악귀더러 나가라고 화를 내는 모양이었다.
이내 뭔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스님의 헐떡임도 들렸다. 쯧쯧 혀를 차는 소리, 매정한 말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아직 남았구나. 아직도 남았어. 기도가 부족하고 반성이 부족한 게지.”
박박 이를 갈며 탄식한 끝에 스님은 건조한 음성으로 ‘아’하고 외쳤다. 그 의미를 몰라 은재는 어리둥절했다.
“맛이 느껴지지 않거든 그때 뱉거라. 네가 고약한 만큼 맛도 쓴 거다. 입 다물고 견뎌.”
마침내 어른의 인기척이 멀어져 갔다. 쪽문이 퉁, 닫히는 소리도 연이어 들려 왔다. 그러고도 한참을 더 침묵하며 은재는 기다렸다. 스님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그는 진열장 밑에서 엉금엉금 밖으로 기어나갔다. 그리고 화들짝 놀랐다.
자리를 비운 줄 알았던 아이는 창고 한가운데에 있었다. 상의를 벗고 반상 위에 무릎 꿇은 채였다. 부러진 화살나무 가지가 바닥에 나뒹굴었고, 나뭇가지 절반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이의 마른 등도 마찬가지였다.
“…….”
은재는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스님이 거듭 내리치던 것의 정체가 아이였단 걸 깨닫자마자 뜨거운 눈물이 비죽 샘솟더니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훌쩍훌쩍 울음을 터뜨리며 은재는 아이의 등 가까이 느릿느릿 다가갔다.
이곳, 고야읍은 다른 시골 동네에 비해 아이들이 많은 마을이었다. 개중에는 남의 집 바가지를 부수거나 병아리를 훔치는 악동들도 있었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이 회초리로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맞는 일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이렇게 피가 나도록 맞진 않았었다. 아이의 등에 남은 흔적은 ‘아빠한테 혼났다’며 훈장처럼 내보일 자국도 아니었고, ‘호’ 해 준다고 나을 만한 상처는 더더욱 아니었다.
젖은 숨을 몰아쉬며 은재는 아이의 얼굴 앞으로 다가갔다. 아픈 아이를 달래주려, 뺨을 잡고 저를 바라보게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양 볼이 빵빵해지도록 입안 가득 무얼 물고 있을 뿐, 아이는 무표정했다. 엉엉 울지도 않았고 인상을 찡그리지도 않았다. 감각을 느낄 줄 모르는 사람처럼 두 눈을 연신 끔벅끔벅 움직일 따름이었다. 스님이 시킨 말을 지키느라 꾹 다문 입가로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멍하니 그 표정을 바라보기도 잠시, 은재는 아이의 턱을 콱 움켜쥐었다. 그리고 이상한 씨름을 시작했다. 아이는 입에 든 것을 뱉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고, 은재는 뭔지 모를 것을 뱉어내게 하려 그 잇새로 억지로 손가락을 집어넣는 식이었다. 승리는 은재의 몫이었다. 은재의 손가락을 깨물지 못해, 아이가 자진해서 입을 벌린 덕분이었다.
은재는 아이의 작은 입 안을 빼곡히 채운 것들을 제 손바닥에 뱉어 내게 했다. 잇새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긁어내자 우수수, 쏟아져 나온 것의 정체는 생 팥알과 소금이었다. 소금 알갱이가 어찌나 굵고 큰지, 침에 닿고도 녹지 않았다.
이 상황의 모든 것이 이해되질 않아, 은재는 혼란스러웠다. 그의 순한 가슴 안에 치미는 감정이 너무 많았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눈물을 펑펑 쏟으며 화를 내는 것뿐이었다.
“왜 안 울어?”
은재가 외쳤다. 두 손바닥 가득 팥과 소금을 움켜쥐고 그렇게 물어도, 아이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커다란 두 눈동자는 그저 멍했고, 벌어진 입가로 침 거품이 연신 흘렀다. 무감각한 아이를 바라보며 은재는 저 혼자 이마까지 붉으락푸르락했다.
“왜…, 왜 안 울어? 왜?”
연신 화를 내는 은재를 향해, 아이가 중얼거렸다.
“내일은 계곡에 갈 수 있어.”
“뭐?”
“오늘 화살나무 가지를… 하나… 부러뜨렸으니까…, 내일은 문을 열어 주실 거야. 그러니까 내일부터는 나도 나갈 수 있어. 형이랑 놀러 나갈 수 있어.”
그러더니 ‘히’ 소리를 내며 웃었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형편없는 미소였다.
그 모습에 은재는 더욱 화가 났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리고, 머릿속은 어지럽고 속에서 열이 들끓었다. 그러나 그도 어린 소년일 뿐이었다. 그 순간에는 무얼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제 감정을 소화하는 것조차 힘겨웠다.
은재는 충동적으로, 한데 모은 제 손바닥 위에 얼굴을 처박았다. 그러곤 팥알과 소금을 어적어적 제 입에 처넣었다. 아이의 입에 들어갔다 나온 것이래도 상관없었다. 도리어 그렇기에 제가 대신 먹으려 했다. 씹고, 맛보고, 견디려 했다. 두 볼이 꽉 차도록 딱딱한 팥과 소금을 입에 담고, 은재는 우물우물 억지로 입을 움직였다.
그제야 아이가 표정다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채 은재를 올려다보는 얼굴이 마침내 놀란 듯, 충격받은 듯했다. 그 앞에서 은재는 두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울었다. 눈물을 줄줄 흘리고 팥알을 짓씹으며, 떫고 쓴 맛을 수 초간 참았다. 입가로 침이 흐르고 목덜미에 핏대가 불거졌다.
“웩!”
이내 은재가 소리를 꽥 질렀다. 고개를 푹 숙이고서 그는 덜 씹힌 팥알과 소금을 땅에 대고 퉤퉤 뱉었다.
“써…!”
눈물방울이 운동화 발등에 뚝 떨어졌다. 꽉 쥔 주먹으로 제 입가를 훔쳐내며 은재는 붉어진 얼굴을 들어 보였다. 바닥에 뱉어낸 팥 알갱이를 신발 바닥으로 짓뭉개며, 그가 말했다.
“쓰다고.”
놀란 얼굴의 아이는 왼뺨이 반지르르했다. 뒤늦게 삐져나온 눈물 한 방울이 아이의 뺨에 반짝이는 길을 만들었다. 아이의 두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은재는 거듭 말했다.
“소금을 처먹으면 당연히 쓴 거라고. 알겠어?”
“아, 알아….”
“그럼 됐어.”
두 손이 다 젖도록, 은재는 제 얼굴을 흠뻑 적신 눈물을 닦아냈다. 그러자 아이가 헐떡헐떡 숨을 몰아쉬었다.
“너한테 악귀 같은 건 씌어있지 않아….”
콩닥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이를 향해 은재는 말하고,
“소금을 먹으면 당연히 쓴 거야. 네가 고약해서가 아니야.”
또 말했다.
“넌 나쁘지 않아.”
그리고 속삭였다.
“나… 이제 갈게….”
은재의 어깨가 사선으로 내려갔다. 감정을 콸콸 쏟아낸 탓에 진이 빠져버려, 붉어졌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팔다리는 축 늘어졌다. 힘없는 모습으로 그는 천천히 돌아섰다.
왔던 것처럼 조용히, 남모르게 사라지려는 은재를 향해 아이가 말했다.
“형.”
그에 은재가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
“스티커… 뭐 나왔어?”
소극적인 질문 한 번에 은재는 다시금 힘을 얻었다. 언제 시무룩했었냐는 듯 그는 재빨리 움직였다. 조금 전 제 몸을 숨겼던 진열대 밑으로 가, 더러워진 빵과 포장지를 모았다. 다행히 스티커는 멀쩡했다. 포장지에 흙이 조금 묻었을 뿐, 내용물은 망가지지 않았다. 터덜터덜 아이의 곁으로 가, 은재는 포장지를 뜯었다. 그리고 속에 든 스티커를 꺼내어 아이의 손등에 찰싹 붙여주었다.
컴컴한 창고 안에서 야광 별똥별이 빛을 발했다. 작은 스티커를 내려다보는 아이의 두 눈이 반짝반짝했다.
“내일.”
콧김 소리가 세게 날 정도로 힘주어, 은재가 말했다.
“내일 또 올게.”
그러자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
‘이은재’는 아이의 시간을 쏜살처럼 빠르게 만드는 이름이었다. 길고 무겁고 숨 막히던 ‘하루’가, 이은재의 존재에 힘입어 순식간에 사라졌다.
계곡물에 다리를 담그고 선 채 아이는 은재를 바라봤다. 은재는 사선으로 흐르는 물살을 따라 저 멀리, 저무는 노을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이는 은재의 머리칼과 기다란 목, 반듯한 어깨와 날씬한 허리, 물에 젖은 바지의 윤곽, 그리고 팔뚝에 비해 색이 하얀 허벅지를 물끄러미 눈에 담았다. 어린 마음에 그는 오늘, 지금의 이 순간을 평생 기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 은재는 아이를 제 비밀기지에 데려갔다. 이은재의 비밀기지는 가파른 계곡이 만들어낸 폭포수 속에 숨어 있었다. 쏟아지는 물을 정수리로 맞으며 파고들면, 돌벽 중앙에 작은 동굴이 하나 파여 있는 것이었다. 은재는 아이를 처음이자 마지막 손님이라 말했고, 아이는 저를 특별 취급해 주는 그 말에 마음이 몹시 들떴다.
점심에는 삼삼오오 동네 아이들이 물가에 모여들었다. 자진해서 멀리 떨어져 숨으려는 아이를 은재가 붙잡았다. 그 경험은 아이에겐 무척 특이한 일이었다. 누군가 저를 ‘친구’라 소개하며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일도 그러했고, 낯선 아이들과 한데 엉켜 물을 튀기고 헤엄을 치며 노는 일도 그러했다. 은재는 아이에게 수영을 알려주었다. 칼 대신 앞니로 껍질을 벗긴 참외도 나누어 먹였다. 물에 젖은 머리칼이 다 마르고, 다시 젖고, 또 마를 때까지 정신없이 함께 놀았다.
석양이 지고, 절간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자 은재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놀이 끝에 어떻게 헤어져야 하는지를 몰라, 아이는 은재가 이끄는 대로 그저 따라 걷기만 했다. 은재는 아이를 이끌고 어두컴컴한 산길을 올랐다. 나무 계단 위, 불 켜진 절이 보이자 그 앞에서야 ‘안녕’ 하고 인사했다.
“안녕.”
아이가 그 말을 따라 중얼거리자 은재가 킥킥 웃었다. 그는 오늘 있었던 우스운 일에 대해 복기하듯 말하더니, 또 한 번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아이는 무표정했다. 우두커니 선 아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은재가 돌아섰다.
“내일 또 봐.”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그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아이는 멈춰 있었다. 무한하게 느껴지는 친절과 다정에 취해, 아이는 아무도 저를 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웃었다. 마비된 듯 멍하니, 어떤 고통에도 무감각하던 아이의 가슴에 한 줌 설렘이 생겼다.
태어나 처음 가져 본 행복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