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화살나무 가지를 오른손에 움켜쥐고, 손목에는 염주를 둘둘 만 채 스님이 눈썹을 찌푸렸다. 아이가 저를 향해 질문을 건넨다는 사실 자체에 그는 놀랐다. 잠시간 침묵하며 뜸을 들이다가, 그는 목소리를 낮게 내리깔며 되물었다.
“뭐라고 했니?”
무거워진 분위기가 아이의 숨통을 조였다. 심장이 너무 세게 뛰어서 머릿속까지 쿵쿵 울렸다. 두려운 만큼 더욱 힘주어, 아이는 바싹 마른 입을 열었다. 그리고 긴 시간 들여 한 장 두 장, 차곡차곡 쌓아 올린 용기를 냈다.
“나, 나한테 악귀 같은 건 안 씌었어요! 난 안 나빠! 난 잘못한 거도 없는데…. 내가 왜 맞아야 해요?”
그러니까 더는 퇴마를 할 필요가 없다고, 이런 짓은 이상하고 못된 일이라고 아이는 말하고자 했다. 가피 스님이 보란 듯 허공에 대고 팔을 휘두르지만 않았더라면 그랬을 것이었다. 붕, 소리를 내며 공기를 찢어놓는 회초리를 보자마자 아이는 흠칫 어깨를 움츠렸다. 애써 움직이던 혀가 돌처럼 굳어버렸다.
숨죽인 아이의 턱 아래를 화살나무 가지 끝이 툭 건드렸다. 마른 고개를 바짝 들게 하며, 가피 스님은 아이의 이목구비를 물끄러미 살폈다.
악귀를 타고났다는 이유로 날 때부터 회피의 대상이었던 아이는 수치심을 먹고 자랐다. 가피 스님을 ‘회주’라 부르며 그를 신봉하는 황제는 황후에게도 제 아이를 안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풍요로운 궁궐 안에 방치된 아이는 굶어 죽진 않았으나, 소극적이고 덜떨어진 소년으로 자랐다. 가피 스님은 그 아이에게 이름조차 붙이지 못하게 해, 혹여라도 정을 붙일 일이 없게끔 완벽하게 따돌렸다.
그리고 적절한 때가 되어, 목적에 따라 아이를 고야읍의 산골짜기 절간에 데려왔다. 이곳에서 아이를 더욱 납작하고 또 얌전하게 기를 꺾고자, 완전히 망가뜨려 의지를 빼앗고자 했다. 한데 시골뜨기 생활이 몸에 맞는지 아이는 뜻밖에 건강해졌다. 열 살 무렵에는 예닐곱 살 외형이던 놈이 열두 살을 맞이하며 제 또래의 소년만큼 키가 자랐다.
이제 와 보니 아이는 황후를 많이 닮았다. 이목구비가 세심하게 예쁘고 까만 눈동자가 반짝반짝한 것이, 황제 없이 황후 혼자 낳았대도 믿을 만치 쏙 빼닮았다. 황후는 으뜸이 될 팔자를 타고난 여자다. 그녀 인생에 존재하는 가장 큰 복, 그녀의 아들 역시 첫째이자 근본, 일류의 운명을 타고났다.
하늬안이 무화가 되고, 그녀를 통해 황실에 영향력을 뻗치기 시작한 이래 가피 스님은 여러 차례 황후의 사주팔자를 점쳤다. 무속 판에도 계통이란 게 있어, 같은 일도 보기에 따라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지만 사주팔자는 그렇지 않았다. 길한 사주는 누가 봐도 길하고 흉한 사주는 누가 봐도 흉한 식이었다. 황후의 사주팔자는 길 중의 길이라, 한 번 차지한 자리에서 낙오되는 법이 없었다. 그녀를 망신시킬 방도는 제자리에서 말려 죽이는 것뿐이었다. 때문에 하늬안도 황후 자리를 빼앗을 꿈은 버린 지 오래였다. 대신에 하늬안은 제 아들을 황제 자리에 앉히기를 바랐다.
문제는 황후와 같은 팔자를 타고난 사내아이에게 있었다. 황후가 그 아이를 어찌나 잘 낳았는지, 말라 죽으라고 두들겨 기를 눌러 놓아도 눈동자의 빛깔이 상서로웠다. 이치에 따라 아이는 황제가 되어야 했다. 황제가 되기 위해 태어난 존재였다. 반면 하늬안이 낳은 아들은 겉보기에 곱고 팔자도 편안하였으나, 보위에 앉을 기백이 없고 누구의 도움닫기가 되어줄 운명이었다. 하늬안은 그에 열등감을 느껴 발작했다.
‘쯧….’
어떻게든 해달라며 간청하던 하늬안을 떠올리며 가피 스님은 내심 혀를 찼다. 그녀의 치마폭에 감싸 안긴 둘째 황자가 황제가 되길 그 또한 바랐다. 하늬안이 제 입김에 놀아나며 벌어다 준 부귀가 어마어마했다. 새 황제를 제 손으로 빚어 올리는 날엔 대단한 명성이 그를 기다릴 터였다.
황후의 자식을 내려다보며, 가피 스님은 입맛을 다셨다. 끈적한 침으로 입천장을 적시는 소리가 쩝 하고 울렸다. 까만 눈동자를 이채로 빛내는, 이 아이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날에는 무엇으로도 그를 누를 수 없게 될 것이었다. 봉작할 나이가 되기 전에, 아주 바싹 말리고 기를 죽여 꺾어놓아야만 한다.
단호하게 얼굴을 굳히며 그는 힘주어 말했다.
“네가 여태껏 내 말을 오해한 모양이구나.”
그러자 아이의 두 눈동자가 좌우로 빠르게 흔들렸다. 잠시 용기를 짜내 봐야 그뿐이었다. 아이는 저를 쓰레기 보듯, 오물 보듯 하는 어른의 시선을 차마 똑바로 마주치지 못했다.
“너한테 악귀가 씌었다는 게 아니다. 악귀가 씐 건 그 몸이지.”
기다란 검지를 뻗어, 스님은 아이의 어깨를 쿡 쑤셨다. 거친 손길에 아이의 상체가 앞뒤로 흔들렸다. 한 자 한 자 새겨들으라는 듯, 스님이 큰소리로 외쳤다.
“네가 그 몸에 씐 악귀라는 말이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미처 덜 자란 몸과 정신으로 받아들이기엔 지나치게 큰 혼란이 아이의 생각을 마비시켰다. 마른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뻘뻘 흐르고 손발이 단숨에 차가워졌다.
회주, 가피… 겉으로 내세우는 영광스러운 명칭과 달리 그는 어린아이를 누에 치듯 태우길 잘했다. 당황한 아이의 외투를 벗기는 행위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어린아이가 가까스로 낸 조그마한 용기를 처참하게 짓밟으며, 그는 저주와 다름없는 말을 퍼부어댔다.
…그러니 누구와 함부로 친해지지 마라. 악귀와 친해지면 그 사람도 나쁜 기운에 물들어버려. 너는 내가 치료를 해 준다지만, 네 친구는 누가 고쳐 주겠니? 너 때문에 네 친구까지 불행해진다. 그 애가 크게 다칠까 봐 무섭지 않아? 그 애가 죽고 나서야 후회를 할 거냐?
딱.
큰소리를 내며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긴긴 악담 끝에 아이는 반상 위에 상체를 고꾸라뜨렸다. 다 쓴 매를 바닥에 던져놓고 스님은 쪽문을 통해 혼자 빠져나갔다. 어두운 방에 아이를 남겨놓고는 불도 주지 않고 밥도 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혀를 쯧쯧 찼다. 이제 그에게 필요한 건 오직 기다림뿐이었다. 공포와 어둠에 질려 아이가 다시금 얌전해지길, 적당히 기가 죽고 무감각해져 다루기 수월해지길, 그리하여 쓸모있는 제물이 되기를, 그는 편안하게 기다렸다.
***
이은재는 영웅의 이름이었다. 그는 지치지 않는 천하무적이었고, 꺾이지 않는 나무였고, 악몽을 무찌르는 용사였다. 아이에게 있어 은재는 딱 그만큼 비현실적이었다. 빛 한 줄기 스미지 않는 창고 바닥에 몸을 옹송그리고 누운 밤, 은재의 존재는 그야말로 꿈결이었다.
“애기야. 도깨비야. 일어나 봐….”
창문 너머에서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친숙한 이의 절박한 목소리를 듣고도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일어날 기운도 없었고, 그러고픈 마음도 없었다. 아이에게 소원이 있다면 이대로 얼어 죽는 것이었다. 은재 형도 저를 찾아오길 그만두고, 그와 어울리는 포근한 집으로 돌아가 줬으면 싶었다. 제가 죽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평생 제 몸에 씐 악귀를 쫓아내는 날만 기다려온 아이였다. 저 자신이 악귀이자 사라져야 할 존재라는 독설은 그런 아이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애기야….”
작은 창을 통해 아이를 연신 부른 끝에 은재는 기척을 감췄다.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아이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달그락달그락 걸쇠를 긁는 소리가 아이를 깨웠다. 창고 문틈 새를 비집고 들어온 얇은 나무 작대기가 보였다. 약하디약한 작대기는 아래에서 위로 연신 움직이며, 안쪽에서 잠긴 걸쇠를 풀어내려 애썼다. 물끄러미 고개를 숙여 살펴보니 창고 바닥에 부러진 나뭇가지가 숱했다. 똑, 소리와 함께 새 나뭇가지가 부러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래도 은재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작은 발소리를 내며 멀어졌다가, 새 작대기를 찾아 쥐고 돌아왔다. 그러곤 같은 시도를 반복했다. 한참의 시간을 들인 끝에 은재는 기어코 걸쇠를 젖히는 데에 성공했다. 놀란 듯 헉 숨을 들이켜며, 그는 창고 문을 활짝 열었다.
기운 없이 늘어진 아이 곁에 달려와 은재는 제 외투를 벗었다. 그러곤 아이의 벌거벗은 상체를 얼른 덮어주었다. 더운 체온으로 데워진 외투는 서러울 만큼 따듯했다.
은재의 부축을 받아 아이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은재가 시키는 대로 외투에 제 두 팔을 꿰어 넣고 보니, 양쪽 주머니가 묵직했다. 은재는 외투 주머니에 넣어온 빵과 우유를 얼른 꺼냈다. 그러곤 포장지를 뜯어 아이의 입에 대주었다. 그래도 아이는 입을 다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우두커니 선 채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흘렸다.
이제 아이는 은재가 원망스러웠다. 은재를 만나기 전에는 아이의 삶에 좋고 싫고가 없었다. 싫은 것들 천지인지라 그것들을 비교하며 견주어 볼 겨를조차 없었다. 그런데 은재는 너무나 좋았다. 은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좋았고, 은재가 베푸는 모든 친절이 좋았고, 이은재가 좋았다.
삶을 포기한 아이 앞에서 은재는 끈질겼다. 그는 찬 바닥에 누우려는 아이를 연신 붙잡아 일으키고, 시들시들해진 감정이 다시 불거질 때까지 여러 말을 속삭였다.
“일어나, 얼른!”
아이는 그런 은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만큼이나 좋은 사람인 이은재가 왜 저 같은 악귀 새끼를 응원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종국에는 이은재라는 존재가 제가 만들어낸 환영은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여기서 나가자.”
제 손을 잡아 일으키는 이 다정이 실재일 리 없었다.
“우리 도망가자. 도망가서, 나랑 같이 달리자.”
예쁜 것 보듯 저를 담는 눈길이, 먼저 저를 안아주는 힘찬 손길이 진짜일 리 없었다.
“심장 터질 때까지,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뛰는 거야.”
은재를 따라 허둥지둥 아이는 다리를 움직였다. 눈물을 흘리느라 사방팔방 풍경이 흐려, 한 치 앞도 제대로 살필 수 없었다. 몇 번이고 제자리에서 고꾸라지려는 아이를 은재가 부축했다. 그를 쫓아, 그와 함께 무작정 내달리는 밤, 아이의 세상에 남은 것은 물음표뿐이었다. 제 존재에 대한 물음, 저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한 물음, 이은재에 대한 물음. 물음은 많으나 정답을 알려주는 이는 여태껏 없었다.
아무래도 이은재는 거짓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만일 그가 진짜라면, 왜 저를 둘러싼 어른 중에는 그와 같은 존재가 없는 건지 설명되지 않았다. 아이가 숨을 몰아쉬며 그 질문을 토해낸 밤, 은재는 내달리던 두 발을 우뚝 멈추었다.
높고 검은 밤하늘에 손톱달이 걸렸다.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밤길 한가운데에서, 은재는 아이의 가슴 위에 제 손바닥을 올렸다. 터질 것처럼 벌렁거리는 심장 박동을 감추지 못해 아이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이어서 은재는 아이의 오른손을 잡아 제 가슴에 마주 올려놓았다. 아이는 제 것과 같이 미친 듯이 뛰는 은재의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었다.
소리죽여 우는 아이의 얼굴을 마주 보며, 은재가 말했다.
“나, 지금 여기 있어. 너랑 같이 있잖아. 네 옆에 있잖아.”
간밤 은재의 아버지가 예고했던 싸라기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은재의 가슴 위에 오도카니 댄, 아이의 작은 손등 위에 눈송이가 뚝 떨어졌다.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아이는 눈의 결정을 바라보았다. 아이를 따라 은재도 고개 숙여, 창백한 손등 위에서 본연의 모양을 유지하는 눈송이를 구경했다.
이내 은재가 아이의 손을 애지중지하며 두 손으로 쥐었다. 그러곤 눈송이가 내려앉은 손등 위에 입술을 붙였다.
“그러니까 울지 마.”
차가운 첫눈을 한입에 꼴깍 삼킨 대신, 은재는 따듯한 눈물로 아이의 손등을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