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랑이 목에 방울 달기-75화 (75/135)

75.

이별은 깜찍한 얼굴을 달고 나타났다. 절간 앞뜰을 데워 놓는 새로운 여름, 아이는 빗자루 손잡이를 턱 끝에 괸 채 나무 계단 아래를 기웃거렸다. 아이의 기다림을 한 몸에 받는 소년, 이은재는 늘 그렇듯 맛난 간식을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매미 소리가 우렁찬 오후, 은재의 두 손에는 자두 네 알이 들려 있었다. 특이점이 하나 있다면 전에 없던 동행인이 함께한단 것이었다.

“형아!”

하얀 얼굴에 커다란 눈, 방긋방긋 웃음꽃이 핀 얼굴을 단 도련님이 아이를 향해 직진했다. 그러다가도 우뚝 멈추더니 못 본 새에 훌쩍 자란 모습에 놀란 듯 눈을 끔벅거렸다. 예쁘장한 얼굴로 함박웃음 짓는 소년의 정체는 궁궐에서 가장 귀한 보물, 하늬안의 아들, 둘째 황자님이었다.

아이는 오래간만에 마주한 동생을 기쁘게 반겼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덜컹 흔들렸다. 동생이 이곳에 홀로 왔을 리 없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을 따라 무화 하늬안도 고야읍에 온 게 틀림없었다. 그녀가 회주를 찾아 이곳까지 온 이상에야 어떠한 일이든 벌어질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해말간 둘째 황자는 제 어머니의 별장으로 향하는 지도를 종이에 그려 주었다. ‘초대장’이라 쓰인 종이가 각각 은재와 아이의 품에 안겼다. 그에 은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친형제끼리 서로의 거처로 향하는 데에 초대장이 필요한 건지 의아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아이에겐 제 복잡한 가정사를 설명해 줄 여유가 없었다. 마음이 온통 답답하고 불안해서였다.

어리고 순진해서 개화병이 무언지 잘 모르는 동생은 ‘여름 바캉스’라는 하늬안의 말을 믿는 듯했다. 그러나 아이는 달랐다. 황제의 곁을 떠나왔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무화의 몸이 아플 게 분명했다. 그때가 되면 자연히 궁궐로 돌아갈 텐데, 하늬안이 떠나는 날 그녀와 함께 가피 스님이 움직일까 봐 걱정이었다. 그에게 저는 딸린 짐짝이니, 자연스레 저 또한 이 절간을 떠나게 될 가능성이 컸다.

다른 한편으로 아이는 동생이 부러웠다. 정확히는 동생이 지닌 엄마가 부러웠다. 아이는 제 어머니를 궁궐 안에서나 볼 뿐, 함께 궐 밖으로 나서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하늬안은 제 아들과 함께 여행까지 선뜻 온 게 아닌가.

‘좋겠다….’

쾌활하고 자신만만한 태도의 둘째 황자와 은재는 잘 어울렸다. 하루 만에 ‘형’, ‘은재 형’하며 은재의 옆구리를 파고드는 동생을 보며, 아이는 어째선지 속이 탔다.

그해 여름의 시간은 어째선지 겨울보다 빨리 흘렀다. 아이의 걱정도 곧바로 현실로 다가왔다. 슬슬 떠날 채비를 해야 한다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소식이 귓전에 떨어진 것이었다. 그마저도 아이에게 직접 알려주는 어른이 없어, 동생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였다. 열흘 뒤 하늬안이 궁궐로 돌아가는 날, 아이 또한 가피 스님과 함께 고야읍을 떠나야 했다.

어른들이 제멋대로 정한 계획이 아이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그들 계획에 군소리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아직 이름도 못 받았는데….’

생각해 보면 이곳에 온 목적은 아이의 몸에 씐 악귀를 무찌르고 제대로 된 이름을 받는 데에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근래 들어 스님은 부쩍 바쁜 듯 보이긴 하였지만, 아이를 두들기며 ‘퇴마’하는 일은 더는 하지 않았다.

‘맨날 뭘 하시는 거지?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괜스레 속을 태우는 일은 오롯이 아이의 몫이었다. 황제 폐하나 황후 마마, 하나 못해 무화 하늬안처럼, 아이는 두 글자 성씨와 한 글자 이름을 갖고 싶었다. 그들 모두가 황실이라는 커다란 가족의 구성원인데, 저만 혼자 외톨이였다. 저에게만 이름이 없었다.

서러움을 토로할 곳은 결국 은재의 곁뿐이었다.

“형한테 내 이름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시무룩해진 아이가 슬프게 전한 이별 소식에, 은재는 간단한 답을 내놓았다.

“내가 다음에 널 보러 갈게. 너 있는 곳으로 내가 갈 테니까, 그때 네 이름을 말해줘.”

“…….”

그에 아이는 머뭇거렸다. 평생 친구를 사귀어 본 적 없는 아이는 친구를 초대하는 방법도 몰랐다. 우물쭈물하며 입을 다문 아이의 어깨를 다독이며, 은재는 밝게 말했다.

“네가 떠나는 날까지 매일매일, 우리 비밀기지에서 만나자.”

“…….”

“꼭이야. 꼭 나와야 해. 알겠지? 약속해.”

그러면서 새끼손가락을 걸고 흔들어주자, 아이가 배시시 웃어 보였다. 기분이 좋아진 듯 발긋발긋한 뺨을 들여다보며 은재도 마주 웃었다.

그러나 날씨는 아이들의 편이 아니었다. 이튿날엔 폭우가 하늘을 가득 메꿨다. 작년에 비해 일찍 시작된 장마였다.

장화를 신고 현관 밖으로 나서는 은재를 그의 아버지가 말렸다. 오늘처럼 비가 쏟아지는 날에 물가로 아이를 내보낼 부모는 없다는 말과 함께였다. 그래도 은재는 꼿꼿했다. 외출을 말려줄 부모가 없는 아이를 알기에, 그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우산 두 개를 챙겼다.

약속된 시간에 늦지 않게 은재는 계곡에 도착했다. 우산의 존재가 무색하게도 온몸이 비바람에 흠뻑 젖은 채였다. 시야를 가리는 빗물을 손바닥으로 닦아 내며 그는 계곡 근방을 살폈다. 반나절 사이 물이 부쩍 불어난 계곡은 언뜻 살펴도 위험해 보였다. 절벽 위에서 쏟아지는 폭포는 상대적으로 길이가 짧아진 채였다.

소년들의 약속 장소였던 비밀기지 동굴 또한 이미 잠겼을 성싶었다. 아이의 부재를 확인하고자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은재의 눈이 번쩍 커졌다. 동굴 앞으로 쏟아지는 폭포수가 깜빡, 깜빡… 눈꺼풀 움직이듯 걷혔다가 닫히길 반복하고 있었다.

길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은재는 계곡 물길 속으로 몸을 던졌다. 첨벙첨벙 소리를 내며 걷기도 잠시, 물이 꽉 찬 장화를 벗어버리고 발이 닿지 않도록 깊은 물 안을 헤엄쳤다. 급류에 자꾸만 몸이 뒤로 쏠려, 앞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미끌미끌한 바위를 딛어가며 열심히 물장구를 친 끝에, 가까스로 폭포수에 다다를 수 있었다.

“헉…, 헉…!”

다시금 깜빡… 폭포수 중앙에 구멍이 뚫렸다가 메워졌다. 아주 짧은 순간 은재는 동굴 안에서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온 손을 보았다. 작고 하얀, 아이의 손이었다.

“악! 애기야!”

은재의 외침을 쏟아지는 물소리가 삼켰다. 이를 악물고 나아가, 은재는 폭포수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그러자 은재의 어깨높이까지 물이 꽉 찬 동굴이 드러났다. 그 속에 발뒤꿈치를 들고 허우적허우적, 반쯤 의식 없이 창백하게 선 아이가 보였다.

은재가 손을 뻗자 아이는 얼른 그의 팔뚝에 매달렸다. 계곡물이 불어날 줄도 모르고서 동굴 안에 들어왔다가, 그대로 갇혀버린 것이었다. 공포에 질린 아이의 얼굴이 유령처럼 새하얬다. 체온은 얼음장 같았다. 허덕거리며 제 팔뚝에 매달리는 아이의 악력을 못 이겨, 은재는 그와 함께 물길 안에 파묻혔다.

“허억!”

코안으로 들어오는 물을 억지로 뱉어가며 그는 동굴 밖으로 몸을 빼냈다. 한데 엉킨 두 소년의 몸이 쑥, 급류를 타고 흘러내렸다. 미끄러운 바위가 은재의 정수리 위로 휙 스쳤다.

수 초 동안 은재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소년의 놀이터이던 계곡은 더는 상냥하지 않았다. 저에게 매달리는 아이가 너무 무거워, 은재는 물 밖으로 나가기는커녕 제대로 헤엄을 칠 수조차 없었다. 이대로 같이 죽나 보다… 아찔한 생각이 들 무렵, 그를 붙잡은 아이의 손아귀에서 힘이 빠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가 의식을 잃은 것이었다.

온몸에 힘이 빠진 아이를 끌어내는 일은 전보다 훨씬 수월했다. 은재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정신없이 계곡 밖으로 탈출했다. 어찌나 정신없이 흘러 내려왔는지, 폭포수는 보이지도 않았다. 비에 젖은 자갈밭 위에 아이를 눕혀놓고, 은재는 벌벌 떨며 아이의 가슴을 퉁퉁 두들겼다.

“애, 애기야….”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아이는 다행히 물 기침을 토해내며 호흡했다. 그래도 눈을 뜨거나 일어나진 못했다. 무의식중에 허공에 대고 손을 허우적허우적 움직이는 게 전부였다.

“콜록, 콜록….”

연신 물을 토해내며 은재는 아이 옆에 몸을 늘어뜨렸다. 정신을 차리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전에, 낯선 어른의 비명이 은재를 일깨웠다.

“아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여자의 모습에, 은재는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그녀를 귀신으로 착각한 탓이었다. 비에 젖은 새카만 머리가 기다랗게 얼굴과 어깨를 덮고, 걸친 옷은 온통 새하얘서 영화 속에서나 보던 여자 귀신과 똑같았다. 이목구비는 배우처럼 뚜렷한데 표정은 분노로 가득 차 있어 더욱 그러했다.

소년들을 향해 한달음에 달려온 여자는 기절한 아이를 대뜸 만졌다. 파랗게 질린 아이의 뺨을 두드리고, 축 늘어진 두 팔을 허둥지둥 주무르기 시작했다. 오만상으로 찌푸린 얼굴은 빗물로 흠뻑 젖었는데, 뺨을 가로지른 자국이 유독 눈물처럼 보였다.

은재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이 애가 누군지나 알아!”

이내 낯선 어른이 대뜸 윽박질렀다. 매우 화나고 슬퍼 보이는 얼굴로, 그녀는 의식 없는 아이를 두 팔로 허둥지둥 끌어안았다. 그러곤 은재의 어깨를 거칠게 쳐내며 꾸중했다.

“네가 뭔데 얠 불러내, 누구 사주를 받고 이런 짓을 해? 이러다 애가 죽으면 그땐 어떡하려고! 누굴 죽이려고 이런 짓을 해!”

두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빠끔거리는 것밖에 은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질 못했다. 생 날것인 감정을 막무가내로 쏟아내는 어른 앞에서 소년은 바짝 얼어붙었다. 심장이 광포하게 뛰는 소리가 귓전을 두들겼다.

자갈밭 위에 은재를 내버려 둔 채 여인은 아이를 부둥켜안고 일어섰다. 어린아이를 한 번도 안아본 적 없는 사람처럼 엉성하고 뻣뻣하기 짝이 없는 자세였다.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양 와락 아이를 끌어안고 비틀비틀 일어난 뒤에야, 여인은 정신이 돌아온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쏴아아… 멀리서 함성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무성한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빗방울을 떨구어 내는 소리였다. 소음이 스치는 짧은 순간 여인은 제 잘못을 깨달았다. 긴 시간 타인으로 인해 쌓인 분노를 애먼 소년에게 쏟아내고야 말았다는 죄책감, 그로 인한 번뇌가 그녀의 눈동자를 적셨다. 그러나 그녀는 낯선 소년을 달랠 방법을 몰랐다. 제 아들을 안는 자세조차 익히지 못해 엉성하기 짝이 없는, 그녀는 부족한 엄마였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은재를 내려다보기도 잠시, 여인은 그대로 돌아서 버렸다. 계곡 물살을 따라 뛰어오느라 구두 한 짝을 잃어버리고, 발목이 퉁퉁 부은 탓에 걸음걸이가 좌우로 뒤뚱뒤뚱했다. 쏴아아… 쏴아아… 소음을 내는 수풀 사이로 그들 모자는 사라지고야 말았다.

축축한 자갈밭에 혼자 남아 은재는 딸꾹질했다. 복부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른 기포가 목젖을 두들겨댔다. 끅끅 소리 내며 그는 뒤를 휙 돌아보았다. 잠깐 사이 더욱 불어난 계곡물이 시커먼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었다. 첨벙첨벙 흔들리는 물살이 은재의 두 발을 이리 오라고, 어서 들어오라고 끌어당기는 듯했다.

“헉….”

거친 숨을 토해내며 은재는 엉금엉금 수풀을 향해 기었다. 물가에서 완전히 벗어나, 놀란 숨을 헉헉거리며 내려다본 제 두 팔이 새빨갰다. 물길에 휩쓸린 아이가 살기 위해, 악착같이 붙잡으며 낸 손자국이 은재의 팔뚝에 선명했다.

벌건 자국을 바라보며 은재는 낯선 공포감에 휩쓸렸다.

‘괜히… 내가 괜히 나오라고 해서….’

저 때문에 아이가 죽을 뻔했다. 하마터면 아이를 못 살릴 뻔했다.

“흑….”

바닥에 상체를 고꾸라뜨린 채 은재는 울었다. 어린애처럼 엉엉 울면서, 그는 거친 자갈을 움켜쥐고, 흩뿌리듯 내던졌다. 그러곤 뒤늦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당신이 뭘 알아요!”

고개를 번쩍 들고 악을 써 봐야 은재의 말을 들어줄 어른은 남아 있지 않았다. 소년의 외침은 쏟아지는 빗소리에 파묻히고 무성한 나무 기둥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그래도 그는 혼자 외쳤다.

“무슨 어른들이 그래? 당신들이 뭘 알아…. 대체 아는 게 뭔데? 해 주는 게 뭔데?”

은재의 속에 신물이 찼다. 아이를 구한 건 이은재 자신이었다. 계절이 흐르고 햇수가 변하도록 고통받는 그 아이를 걱정한 것도 은재였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찾아다닌 것도 은재였다. 아이를 예뻐하고 좋아하고, 여느 친구보다 때론 가족보다 아낀 사람도 이 세상에 이은재, 저뿐이었다. 법복을 입고 아이를 때리는 못된 스님이 아니고, 여러 차례 진지하게 말해보아도 ‘남의 집 훈육이니 별수 없다’라던 아버지가 아니고, 대뜸 나타나 아이를 챙기는 척하며 저를 혼낸 여자가 아니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주먹으로 눈물을 벅벅 문지르며 은재는 몸을 떨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끅끅거리는 울음이 물가에 오래도록 울려 퍼졌다.

***

덥석, 커다란 손이 하련솔의 팔뚝을 움켜쥐었다. 창백하게 여린 아이의 손이 아니었다. 살려달라고 소년에게 매달리던 어리숙한 손길 또한 아니었다. 핏대가 울룩불룩 불거진 어른의 손이요, 축 늘어진 무화의 몸을 거뜬히 끌어올리는 황제의 손이요, 하련솔의 생을 송두리째 뽑아다가 새로운 자리에 옮겨놓을 사내의 손이었다.

“형.”

낮고 굵은 목소리에 두 귀를 사로잡힌 순간 하련솔은 들었다. 어린 날 제 울분을 집어삼키던 빗소리가, 쏴아아… 창문 밖이 아닌 기억 속에서 울려 퍼졌다.

“은재 형….”

두 눈동자를 좌우로 바삐 흔들며, 하련솔은 반사적으로 미소 지었다. 간만에 옛 이름으로 불리면서, 추억을 풀무질하는 손아귀에 흔들리면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