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랑이 목에 방울 달기-83화 (83/135)

83.

“뭐 하는 거야?”

황당하다는 듯 실소하며 하련솔이 물었다. 그러면서 작은 머리를 삐죽 뻗는데, 실없는 미소를 건 얼굴이 이림범의 굵은 팔뚝에 툭 기대어 붙었다. 그 바람에 이림범은 심장이 멎는 듯했다. 어여쁜 제 님의 얼굴을 감당하기 벅차, 가만히 숨을 죽이고 바라볼 밖이었다.

멀리서 보면 예쁘고, 가까이서 보면 더욱 어여쁜 하련솔이었다. 첫눈에 젊은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미모는 추억이 더해지자 더욱이 농익었다. 다정한 미소를 건 입매며 픽 새는 소리를 흘리는 코끝, 발긋한 두 뺨은 보면 볼수록 아름다웠다. 빛없이 탁한 눈동자가 주는 아쉬움마저 기대감으로 탈바꿈됐다. 미완성 작품 앞에 선 광팬처럼, 이림범은 마음이 달구어져 어쩔 줄을 몰랐다.

좋은 감정에 취해 입이 넓게 벌어지도록 웃으며, 이림범이 말했다.

“우리 솔이 곁이 아주 적적한 듯하구나. 내 직접 재워 주어야겠다.”

말투가 바뀌니 목소리의 톤도 한층 내려갔다. 가뜩이나 낮은 목소리를 더욱 낮게 내자, 하련솔은 귓바퀴가 간지러운 느낌에 어깨를 꽉 밀어 올렸다. 말투는 장난스러우나 묵직한 목소리가 지닌 힘은 워낙에 진지한지라, 어느 박자에 장단을 맞추어야 할지 애매했다. 종국에 하련솔은 한숨만 푹 내쉬었다.

“하….”

그러자 이림범이 그의 뺨에 대고 제 코끝을 새의 부리 삼아 콕 찍었다. 숨 들이켜는 소리를 ‘쓰읍’ 내며, 이어 말하는 목소리 또한 뻔뻔했다.

“어서 이리 오래도.”

그에 눈을 굴리며 실소하기도 잠시, 하련솔이 고개를 가볍게 내저었다. 그러곤 이림범의 가슴팍을 향해 좀 더 가까이 몸을 기대고, 그의 팔뚝을 베개 삼아 아주 푹 누워버렸다.

“네네. 알겠사옵니다, 폐하.”

그러곤 심드렁하니 대답하는데, 그마저도 젊은 황제에게는 무척 큰 감동이었다.

‘아, 귀여워….’

흐뭇한 미소를 못 감추며 그는 하련솔의 머리칼을 연신 살살 쓸어 만지고, 넘겨 주길 반복했다. 빛이 덜 스민 눈동자가 좌우로 일렁거리며 제 두 눈을 쫓는데, 시선을 맞추려 노력하는 작은 동작마저 사랑스럽기 짝이 없었다.

펄펄 끓는 애정을 참다못해, 이림범은 하련솔의 동그란 이마에 제 입술을 쪼오옥 가져다 붙였다. 입술이 뭉개지도록 진한 뽀뽀를 남기면서 그는 두 번째 주먹에 얻어맞을 것을 각오했다. 그러나 뜻밖에, 하련솔이 얌전했다.

“…….”

두 눈을 한 번 깜빡일 뿐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콧김이 닿도록 가까운 이림범의 얼굴을 읽어 보려는 듯 눈동자를 위아래로 움직이는 게 하는 일의 전부였다.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한데, 두 뺨 위엔 발그스레한 혈색이 무르익은 꽃잎처럼 활짝 피었다.

머뭇거리며 눈치를 살피기도 잠시, 이림범은 하련솔의 콧잔등 위에 두 번째 입맞춤을 남겼다. 쪽, 소리가 나도록 깊이 남긴 뽀뽀에도 하련솔은 고분고분했다. 가슴팍에 얹은 두 손을 가만히 모아쥔 게 전부였다. 조그만 반응을 허락으로 읽어, 이림범은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왼쪽에 대고 쪽, 오른쪽에 대고 쪽쪽 소리를 남기자 하련솔이 보시시 웃음 지었다. 눈썹달처럼 곱게 휜 입매는 곧 황제의 입술에 집어삼켜져 보이지 않게 됐다.

“하아….”

그러자 숨이 가쁜 듯, 하련솔이 입을 벌렸다. 그의 입술에 제 입술을 덮은 채, 이림범은 하련솔이 호흡을 정리하길 잠시간 기다렸다. 학… 한숨을 뱉고, 하아… 다시금 큰 숨을 들이쉬자마자 폭설처럼 키스를 들이부었다.

얇은 윗입술이며 도톰한 아랫입술을 마구잡이로 빨고, 잇새로 혀를 밀어 넣자 쪽쪽대는 소리에 물성이 생겼다. 이림범은 고개를 좌로, 우로 틀어가며 서툴고 열정적으로 첫사랑의 입안을 탐했다. 두어 차례 머뭇머뭇 혀를 피하는가 싶던 하련솔이 우물의 물 긷듯 혀끝을 내밀어 움직인 순간에는 머릿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얇은 침의가 단숨에 무거워지고, 온몸의 털이 쭈뼛 서며 흉곽 안은 대번에 여름이었다. 펄펄 끓는 열기를 못 감추어 이림범은 짐승처럼 헐떡거렸다.

달콤한 혀를 맛보려 연신 달려드는 그와 달리, 하련솔은 일찍 지쳤다. 입을 벌린 채 헉헉거리며 진땀을 흘릴 따름이었다.

“학, …헉, 흐으….”

숨이 벅차 흘리는 신음임을, 이림범도 이성으로는 알았다. 그러나 감정과 본능은 다른 말을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하련솔이 저를 받아주며, 함께 혀를 섞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머릿속에 불이 났다. 체온이 오르다 못해 등줄기에서 연기가 날 것 같았다. 아랫배가 묵직해지고 숨결이 거칠어졌다. 제멋대로 흥분을 해버렸는데, 그 모습을 감출 길이 없었다.

“형….”

어리광 부리듯 말끝을 흐리며 부르는 말에, 하련솔이 젖은 입술을 혀끝으로 핥았다. 더운 입안을 채운 침을 꼴깍 삼키며, 그가 목 울리는 소리를 냈다.

“응.”

혹시, 오늘 밤에…. 미처 꺼내지 못한 질문이 이림범의 입 안에서 맴맴 돌았다. 당장에 하련솔을 발가벗겨 그의 육신을 취하고는 싶은데,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안아도 되냐고 물어봐야 하나? 아냐. 그랬다가는 형 성격에 어색해서 거절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럼 그냥 막 해 버려야 하나? 근데 그렇게까지 하는 건 또 싫어할 수도 있잖아….’

깊은 갈등에 잠겨 이림범이 머뭇머뭇 손을 움직였다. 솥의 아가리를 푹 덮도록 큰 손으로 그는 갓 태어난 병아리 다루는 양 조심스럽게 하련솔의 침의 허리끈을 움켜쥐었다. 그대로 수 초간 고민하다, 상대의 반응을 읽어 보려 엄지만을 움직여 마른 허리선을 살살 어루만졌다. 간질간질한 접촉에 하련솔이 흐… 울음도 웃음도 아닌 숨소리를 흘렸다.

이내 날씬한 두 팔이 덥석, 이림범의 목에 매달리듯 감겼다. 저를 와락 끌어안는 약한 힘에 끌려 내려가, 이림범의 얼굴이 하련솔의 가슴에 푹 파묻혔다. 그와 동시에 크나큰 설렘이 황제의 심장을 울렸다. 물기 없이 보드라운 살 내음을 풍기는 하련솔을 취할 생각에, 그는 팔뚝 위에 소름이 다 오르도록 들떴다.

그러나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든 순간, 이림범은 보고야 말았다. 무척 예쁜 아이 본다는 양 웃음 짓는 하련솔의 얼굴을…. 아무런 흑심 없이 그저 흐뭇한 미소로 그는 이림범의 머리를 재차 안아주었다. 귀여운 동물, 아주 착한 어린애, 순전한 동생을 다루는 듯한 포옹이었다.

“…형.”

“응?”

“…….”

하련솔의 야트막한 가슴팍에 볼을 붙인 채, 이림범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실망스러우냐 하면 당연히 그랬다. 한데 싫으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저를 양껏 어여뻐 하는 유일한 이, 그게 이은재였고 하련솔이기 때문이었다.

“…아냐, 아무것도….”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이림범은 하련솔의 옷고름을 꼭 쥐기만 했다. 젊고 열의 넘치는 황제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련솔은 그를 연신 보듬어 주며 토닥거렸다.

“범아.”

“응….”

통통, 통통… 가볍게 달음박질하는 하련솔의 심장 박동을 듣고 있자니 이림범은 무진 수치스러웠다.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다 목줄을 잡힌 기분이었다. 한껏 무거워진 몸을 애써 옆으로 비키며, 그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곤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애써 쪽… 하련솔의 아래턱에 마무리 입맞춤을 남겼다.

아쉬운 열기를 천천히 식히며 이림범이 침묵하자, 하련솔도 딴생각에 잠긴 듯 입을 다물었다. 두 남자가 만들어 낸 정적 속에 초가을까지 살아남으며 장수한 풀벌레 우는 소리만이 간간이 존재했다.

친밀한 밤의 한가운데에서 하련솔이 물었다.

“오늘 내 생각 많이 났어?”

“응…. 물론이지.”

그에 이림범이 즉답했다.

“외근 나가서도 많이 보고 싶었어?”

“응. 엄청나게 보고 싶었지….”

“아침부터 밤까지 쭉 그랬어?”

“당연한 걸 왜 자꾸 물어.”

투정하듯 툭 대답을 뱉자마자 이림범은 제 입술을 깨물었다. 하련솔이 질문 안에 감추어 건넨 걱정이 무언지, 절 향한 관심을 검증받고자 하는 이유를 뒤늦게 떠올린 것이었다.

‘바보. 바보 같은 놈….’

마른침과 함께 자책을 꿀꺽 삼키고서, 이림범이 또박또박 말했다.

“아침에 눈 떴을 때부터 샤워할 때, 운동할 때, 밥 먹을 때, 조회할 때도 형을 생각했어.”

“…회의할 때 내 생각을 왜 해?”

“그…, 그런 게 있어. 그리고 오후 내내 형이 어쩌고 있나 궁금해서 소식을 전해 들었고, 형한테 더 줄 건 없나 계속 고민했고, 외근 나가서도 형이 생각나서 죽는 줄 알았어. 사교고 나발이고 형이 내 옆에 없으니까 얼마나 지루하고 심심했는지 몰라. 지금쯤 우리 솔이 형은 누구랑 있을까, 밥은 잘 먹었을까, 내가 보낸 선물은 다 좋아해 줬을까, 철없는 녀석들이 형을 괴롭히진 않을까….”

“하하.”

길어지는 수다에 민망해져, 하련솔이 괜스레 웃었다. 그래도 이림범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더욱 진중하고 심각해진 목소리로 제 애정을 증명했다.

“오늘 형을 한 번도 잊지 않았어. 1분, 아니 1초도.”

“…….”

“나는 이제 형을 못 잊어. 잊고 싶어도, 아니 그럴 일은 죽어도 없겠지만, 아무튼 잊으려고 한다고 쳐도 절대로 잊을 수가 없어. 왜인 줄 알아?”

“왜?”

“형이 이은재라는 걸 알았으니까….”

이제 하련솔은 웃음을 가장하지 않았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잠잠한 감정에 잠겨, 그는 이림범이 토로하는 열띤 고백을 귀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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