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차가운 물이 단숨에 하련솔의 정수리를 적셨다. 어떠한 대비도 없이 대뜸 물에 빠진 그는 계곡의 인어도, 물개도 아니었다. 불쑥 물에 부딪친 전신이 아팠고, 심장은 전기가 통한 듯 찌릿 울렸다. 묵직한 통증과 함께 어깨가 단번에 강직됐다. 사지의 근육이 쪼그라들고 코 안으로 물이 밀려 들어왔다. 수영할 줄 안다는 사실은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약한 몸으로, 그는 통증과 충격을 견디기도 벅찼다. 헤엄치는 시늉 한 번 해낼 수가 없었다.
“컥…!”
교태전의 못은 넓고 깊었다.
‘발이 안 닿아…!’
발끝까지 일렁일렁 물살이 소용돌이치는 감각은 하련솔을 겁먹게 했다. 일순 그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못 아래에서 작고 어리고, 맹렬한 아이의 손이 그의 팔다리를 붙잡아 쥐고 끌어당기는 듯했다. 머릿속으로는 허우적허우적 두 다리와 팔을 열심히 움직이며 헤엄치는데, 그의 몸은 빳빳하게 굳은 채 깊은 못 안으로 가라앉기만 했다.
재차 정수리 끝까지 물에 잠긴 순간 하련솔은 힘겹게 눈을 떴다. 밤의 못 안은 온전히 검었다. 시커먼 시야에 제 코와 입 밖으로 뿜어져 나온 공기 방울이 얼룩처럼 번졌다. 이를 꽉 악물며 그는 빳빳하게 굳은 두 발을 애써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가슴이 칼에 찔린 듯 아팠지만, 물 위로 고개를 뻗을 순 있었다.
“컥! 허억…!”
얼굴을 높이 쳐들고 숨 반, 물 반을 들이켜면서 그는 고통스러웠다. 불길하게 아픈 심장도, 얼어버린 듯 말을 듣지 않는 팔다리도, 죽음에 대한 공포도 외로움을 이기진 못했다. 저는 처절하게 발버둥을 치는데, 못 밖의 세상은 너무나 고요하고 평화로움에 하련솔은 괴로웠다. 저를 찾아오는 발소리도 없는 밤, 손 뻗어줄 이 하나 기대하지 못하는 순간이 그를 부숴놓았다. 물속에 대고 물을 뱉어내며, 하련솔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눈물이 삐죽 새어나갔다.
두어 차례 발장구를 친 끝에 그는 기진맥진했다. 더는 움직일 기운이 남질 않고 심장의 통증은 극심했다. 거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못 안으로 빨려 들어가며 하련솔은 자책했다. 전부 제 잘못이었다. 그간 납작 엎드려 지내느라 불운이 빗긴 것을, 만사 괜찮아진 듯 착각에 빠져 방심한 제 잘못이었다. 엄한 용기를 내어 함부로 밤 산책을 나선 제 잘못이었고, 커다란 교태전을 정말로 제집처럼 여기려 한 제 잘못이었고, 저를 기억해 주는 형제를 가까스로 만났건만 그들에게 새로이 상처를 남기게 된 제 잘못이었다.
‘범이는 어떡하지?’
공기 방울을 토해내며 하련솔은 생각했다.
‘내가 죽으면, 범이는 어떡하지…?’
두 번 다시는 형을 잊지 않겠다고 맹세하던 이림범인데, 제 어머니를 떠나보낸 교태전에 기꺼이 저를 들여놓은 황제인데, 기적처럼 다시 만난 그 옛날의 애기인데….
입을 벌리고 눈을 뜬 채 하련솔은 의식을 잃어버렸다. 그가 반항을 그치자 검은 못도 움직임을 멈췄다. 그의 콧잔등에 붙었던 공기 방울 하나가 보글, 소리를 내며 못 위로 밀려 올라갔다.
이내 하련솔의 몸이 위아래로 크게 흔들렸다. 못 중앙을 찢어놓는 듯 큰 충격이 만들어낸 급살 때문이었다.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뛰어든 사내가 불쑥, 하련솔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러곤 못 위로 힘껏 들어 올렸다. 기운 없이 축 늘어진 하련솔의 머리가 그의 어깨에 툭 기대어졌다. 먹먹해진 귓가에 대고 잘 들리지 않는 말을 연신 외치며, 그는 하련솔의 뺨을 두드리고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형!”
컥, 밭은기침을 토해내며 하련솔이 입을 벌렸다. 침과 물을 분간 없이 줄줄 흘리며 그는 헐떡헐떡 공기를 들이마셨다.
“힉…, 헉, 허억…!”
식도를 채운 물이 매워 콜록콜록 기침하면서, 하련솔은 정신없이 위로, 더 위로 올라가려 했다. 저를 건져 올린 이를 살필 새 따윈 없었다. 타인의 어깨를 디딤돌 삼아 짓누르면서 힉, 힉… 짐짓 우습게 들리는 숨소리와 울음을 연신 쏟아냈다. 안심이 되니 그제야 서러웠다.
어린아이처럼 울며 매달리는 하련솔과 못 밖으로 올라서기 위해, 사내는 몇 번이고 힘내어 사지를 움직였다. 그러나 공포에 질려 이성을 잃은 이를 감당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쉼 없이 허우적거리는 하련솔의 두 팔에 붙들려, 그는 엉겁결에 물속에 제 머리를 처박아야 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그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하련솔과 달리 패닉 상태에 빠지진 않았다. 그가 두려워하는 일은 다만 하련솔의 죽음, 그뿐이었다.
짧은 고민 끝에 사내는 자진하여 못 안으로 잠수했다. 당황한 하련솔의 손이 버둥버둥 물 위에서 의미 없이 움직였다. 사방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우는 얼굴에 불안감이 머물기도 잠시였다. 거센 힘이 곧바로 하련솔의 아랫배에 와닿았다. 깊이 잠수한 사내가 하련솔의 허리를 끌어안은 것이었다. 그대로 그는 하련솔의 상체를 어깨로 밀치다시피 하며 단번에 못 위로 건져 올렸다. 혼자서는 허우적허우적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몸이, 너무나 빨리 바위에 닿았다.
“흑… 흑, 흐윽….”
엉금엉금, 장식용 바위를 부둥켜안고 하련솔은 흙바닥을 향해 기었다. 그러곤 힘이 풀려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 전신이 차게 식어버려 손끝, 발끝 하나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벌벌 떨리는 얼굴로 그는 검은 못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저를 건져낸, 첨벙 소리를 내며 뒤늦게 바위 위로 몸을 내민 사내를 알아보았다.
“애, 애기야….”
추위와 겁에 질린 하련솔의 목소리에 따닥따닥 치아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섞였다. 귓바퀴 안까지 물로 흠뻑 젖은 채, 이림범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물에 젖어 이마를 덮은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그는 하련솔에게 다가왔다. 그러곤 딱딱하게 굳어버린 무화의 몸을 확인했다.
“…형.”
이림범의 손이 하련솔의 뺨에 닿았다. 하련솔은 재차 그를 향해 ‘애기야’ 하고 목소리를 냈다. 나 이제 괜찮아, 고마워…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희미해져 가는 의식 안에서만 맴돌 뿐, 이림범에게 가 닿지 않았다.
“형…?”
하련솔의 모습이 무척 이상했다. 두 눈을 뜬 채 그는 기절했다. 발긋하던 뺨은 파리해졌고 이마와 턱에 흙이 묻었다. 아무렇게나 쓰러진 전신은 관절 마디가 부러진 사람처럼 보였다.
이림범은 하련솔의 가슴 위에 손을 대고, 그의 코앞에 귀를 가져다 댔다. 손바닥을 두들기는 심장 박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숨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림범은 단숨에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는 하련솔의 심장이 정말로 멎은 것인지, 혹은 자신의 손이 너무 떨리고 숨결이 워낙 거칠어 착각했을 뿐인지 단순한 사실 하나 분간할 수 없었다.
“형…, 은재, 은재 형. 정…, 정신 차려.”
침착하게 이성적으로 대처하고 싶었으나 잘되지 않았다. 커다란 몸을 덜덜 떨기만 할 뿐 이림범은 수 초간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는 분명, 숨도 쉬었고 눈물도 보인 하련솔이었다. 안심한 끝에 탈진했거나, 기절했거나… 한 박자 늦게 심장마비가 왔는지도 몰랐다. 제 눈앞의 사람인데, 다른 누구도 아닌 이은재이고 하련솔인데, 상태를 똑바로 분간하기가 쉽지 않았다.
머릿속이 희게 질려 머뭇거린 끝에 이림범은 하련솔을 평지에 똑바로 눕혔다. 그러곤 그의 고개를 위로 젖혀 기도를 열고, 창백한 이의 두 팔을 힘주어 주무르며 자극했다. 그래도 하련솔은 미동이 없었다.
젖은 숨을 헐떡거리며 이림범은 하련솔의 흉골을 더듬더듬 매만졌다. 워낙 마른 탓에 가슴뼈 위치를 가늠하기가 무척 쉬웠다. 턱이 얼얼하도록 이를 악물고서 그는 하련솔의 흉골 밑에 두 손바닥을 겹쳐 대고, 헉, 헉… 제 숨소리로 박자를 맞추며 가슴을 압박했다. 맥없이 늘어진 하련솔의 몸이 그의 손짓에 따라 덜컹덜컹 흔들렸다.
제 숨이 다 벅차도록 심장을 압박하길 한창, 이림범은 하련솔의 코를 붙잡아 쥐었다. 그러곤 벌어진 입에 제 입을 가져다 붙이고 숨을 불어넣었다.
“…컥….”
그제야 하련솔이 물을 왈칵 토해냈다. 파랗게 질린 입술을 적시며 맑은 물이 줄줄 새어 나왔다. 뒤이어 콜록, 콜록… 산 사람만이 낼 수 있는 기침을 하며 그는 눈동자를 좌우로 미세하게 움직였다. 이림범은 울음도 한숨도 아닌 소리를 크게 내지르며 하련솔을 끌어안았다.
“형….”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계곡의 인어이자 물개이던 이은재가 왜 물을 무서워하게 되었는지. 전부 저 때문이었다. 기억 저편의 지난날, 억수 같은 비가 내리던 늦여름에, 이은재가 느낀 공포를 그는 오늘 맛보았다.
‘하마터면 형을…, 형을 잃을 뻔했어….’
뒤늦게, 이림범은 사지가 다 아팠다. 굵은 팔뚝이며 어깨, 목덜미에 빨간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살려달라고 허우적거리며 하련솔이 남긴 자국이었다. 이미 젖은 이림범의 얼굴을, 뜨거운 눈물이 재차 적셨다. 추위를 느끼는 듯 덜덜 떨리는 하련솔의 몸을 끌어안고, 제 손바닥의 마찰열로나마 데워주려 부지런히 문지르면서 그는 울었다.
“어쩐지 종일… 정말 운이 좋다 했어.”
그러면서 이림범은 믿지도 않는 신에게 감사했다. 정말이지 다행이었다. 싫은 일정이 상대방의 과실에 의해 취소되고, 이틀 밤을 새워야 할 문제가 뜻밖에 해결되고, 덕분에 저녁 비행기를 내일 아침으로 미룰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오늘 조회에서 충동적으로 성질을 부려 당장 설치를 시작한 무빙 워크 공사로 인해, 제 침전에서 교태전으로 오기 위해 지하통로를 이용할 수 없어 다행이었다. 응당 있어야 할 문지기가 보이질 않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찰을 돌고자 해서 다행이었다. 평소 외면하며 지나쳐 온 정원을, 아주 간만에 어머니를 추억하느라 상세히 둘러보아서, 그 모든 게 천만다행이었다.
갖은 불운이 겹쳐 죽을 위기에 빠진 하련솔을 제때 건져낼 수 있어서, 운 좋은 황제인 그의 궐 안에선 누구도 못에 빠져 죽을 수 없어서, 정말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