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하늬안은 아이의 오른팔을 잡아끌고는 그 손 위에 노리개를 하나 얹었다. 조금 전 제 아들에게 준 것과 모양은 흡사하나 내용은 완전히 다른 물건이었다.
“자….”
그리고 아이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여전히 허벅다리가 쓰리고 손가락은 잘려 나간 듯 아픈 하늬안에 비해, 아이는 노리개에 닿고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혹시 고통을 잘 참는 녀석이라 그런가 싶어 한참을 지켜보아도 눈만 끔벅거릴 뿐, 아픈 기색일랑 없었다.
‘제 물건인 줄 어찌 알고 괜찮은가 보다.’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져, 하늬안은 진심을 실어 하하 웃었다. 그리고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우리 아들이, 형아가 자주 아픈 게 마음 아프다지 뭐야. 그래서 이모도 너한테 줄 선물을 준비했지.”
“어….”
“이게 뭔 줄 아니?”
“…어….”
의미 없는 소리를 흘리며 고민하길 한참, 아이가 고개를 느리게 내저었다.
‘띨빵한 놈.’
멍청해 보일 정도로 둔한 모습에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하늬안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의 두 손을 제 손으로 감싸, 노리개를 꼭 쥐어 가슴에 품게끔 했다. 그리고 속삭였다.
“이게 뭐냐 하면, ‘만병통치약’이야. 너, 만병통치약이 뭔 줄은 아니?”
“…….”
아이가 소리 없이 도리질했다. 더는 ‘어’ 소리를 내지 않는 걸 보면, 상대가 제 목소리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눈치챈 듯했다. 그 점마저 하늬안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가 순하게 굴면 굴수록 그녀는 아이를 미워하고자 더 큰 노력을 쏟아야 했다.
첫째가 아닌 막내래도 믿을 만치 작고 마른 아이에게로, 하늬안은 몸을 바짝 숙였다. 그리고 귓속말로 속삭였다.
“이게 뭐냐 하면… 어떤 병이든 낫게 하고, 아무리 아픈 사람이라도 고쳐 주는 물건이거든. 얘, 너 이름 갖고 싶다고 했지? 악귀도 내쫓고 싶지 않아? 그런데 잘 안 고쳐져서 속상하지…. 그게 다 왜 그런 걸까?”
“…….”
“응?”
“…모르겠어요….”
“그래, 모르겠지. 그게 다 이, 만병통치약이 없기 때문이야.”
하늬안은 아이를 잘 다루는 엄마였다. 그녀는 제가 어떻게 훈육해야 아이가 잘 따를지, 어떤 말을 해야 아이가 매혹될지 아주 잘 알았다. 탄생부터 저주하며, 내심 폄하하고 미워해 온 첫째 황자라도 아이는 아이였다.
“이모 말 잘 들어. 앞으로 어딜 가든, 이걸 꼭 지니도록 해. 다른 누구한테도 보여 주지 말고, 꼭 너만 봐야 해. 함부로 만지게 하지도 말고, 꼭 너만 만져야 해. 그래야 효과가 있어. 얘…, 너 사람 취급을 받으며 살고 싶지. 폐하에게 인정받고 싶고, 엄마한테도 사랑받고 싶지? 그러니까… 내 말 이해는 하고 있니?”
“네.”
“정말? 정말 알겠어?”
“네….”
그대로 아이는 한참 침묵했다. 아이가 제 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고자, 하늬안은 몇 초간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피하기를 한참 만에 아이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용기 내어 건넨 인사였다. 어린 마음에 진심을 실어 건넨 감사였다. 그에 하늬안은 어깨를 움찔거렸다. 그녀의 의도대로, 그녀의 말에 매혹된 아이는 붉은 실 노리개를 소중하게 제 품에 안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죄이는 듯해, 하늬안은 입술 안쪽 살을 이로 물어뜯었다. 작은 갈등이 그녀의 심장을 바늘로 쑤셔 댔다.
한참 침묵한 끝에,
“얘.”
하늬안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아이가 깡마른 목을 길게 뻗으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이번에, 상대의 시선을 회피한 이는 하늬안이었다.
“…그거 네 엄마한테도 보여 주지 마. 복이 달아날지도 모르니까….”
마지막 경고를 아무렇게나 뱉은 뒤 하늬안은 도망치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거운 죄책감을 덜기 위해 그녀는 황후의 짐가방 앞주머니를 열었다. 그대로 스테로이드 흡입기를 챙겨 들고는 다급히 방을 떠났다.
하늬안이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아이는 홀로 남았다. 작은 손바닥을 열어 살펴본 노리개는 무척 어여뻤다. 제 생일이 몇 월 며칠인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있어, 그것은 난생처음 어른에게 받은 선물이었다.
하늬안이 건넨 말은 축복이 되고 찬사가 되어 아이의 마음에 남았다. 이것만 지니고 있으면 더는 악귀라 불리지 않아도 된다. 정식으로 이름을 받아, 평범하게 황자 노릇하며 지낼 수 있다. 매정한 폐하 곁에서 아들일 수 있고 무정한 황후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다. 더는 창고에 갇혀 소금과 팥알을 씹으며 울지 않아도 괜찮다. 화살나무 가지에 등이 터지도록 얻어맞으며 이를 악물지 않아도 된다.
아이는 제 입 안으로 검지를 집어넣었다. 지나간 봄은 아이에게 통증을 남겼다. 고통을 참아 내느라 이를 세게 악문 탓에 유치 두 개가 동시에 빠졌더랬다. 그 자리를 어느덧 새 이가 채우고 있었다. 아이는 말이 둔할지언정 멍청하진 않았다. 그렇기에 이 이마저 잃어버리고 나면 더는 새로운 이를 기대할 수 없음을 알았다.
“만병… 통치약….”
들은 말을 똑같이 따라 하며, 아이는 붉은 노리개를 제 가슴에 품었다.
“아무리 아픈 사람이라도 고쳐 주는… 약….”
소중한 보물을 얻은 기쁨에 아이는 웃었다. 안도의 한숨이 눈물이 되어 흘러나왔다. 그대로 이부자리에 풀썩 드러누워 행복감을 곱씹기도 잠시, 아이는 재차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곤 재차 제 손바닥 안을 내려다보았다.
만일 두 소년이 이전의 그들과 같이 조금도 성장하지 못했더라면, 그들은 저에게 주어진 선물을 제 것으로 간직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해 늦여름은 달랐다. 그해, 두 형제는 조금 더 자라 있었다.
빠르게 결단을 내린 이는 둘째 황자였다. 어머니와 함께 절간에서 내려와 별장에 도착한 직후, 그는 매일 안고 자던 인형, 개구리 포포를 찾았다. 그러곤 엄마가 해준 조언대로 인형 속에 새 보물을 감췄다. 그러고 나니 백색 진열장을 가득 채운 열댓 개의 인형이 각기 하나씩, 부적이며 보물을 품고 있게 되었다. 하늬안이 안겨준 선물은 딱 그만큼 많았다.
두 눈을 말똥말똥 뜬 채 아이는 배부른 포포를 내려다보았다. 그대로 고민하기도 잠시, 그는 방문을 조금 열고 거실 소파에 앉은 엄마를 확인했다. 휴대폰을 귀에 붙이고서 그녀는 아들을 위한 치킨을 주문하고 있었다. 스무 마리 값을 낼 테니 새 기름에 튀겨주시면 안 되겠냐고, 부탁하는 목소리가 꾀꼬리 같았다. 방긋 미소 지으며 그 모습을 구경하기도 잠시, 아이는 제 침실의 큰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짧은 가출을 나섰다.
정원을 가로질러 스무 발짝 달리면 금세 계곡이었다. 포포와 함께 팔짝팔짝 뛰며 도착한 계곡에는 이은재가 있었다. 멀찍이 바위 위에는 맨발이 된 채 엉엉 우는 여자아이가 있었고, 은재의 손에는 그 아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구두 한 짝이 들려 있었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남은 구두를 찾는 은재를 향해, 소년이 외쳤다.
“형! 은재 형아!”
그리고 난생처음, 그는 제 물건을 남에게 양보했다. 개구리 포포를 냉큼 안겨주며, ‘형이 좋아하는 포포’하고 만화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었다.
“이게 뭐야?”
“형아 선물이야.”
아이가 보인 애교에 이은재가 피식 웃었다. 사실 그는 개구리 포포를 좋아하지 않았다. 개구리 포포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 어리숙한 도련님이 제멋대로, 제가 포포를 몹시도 좋아하니 남들도 포포를 좋아할 거라 믿었을 뿐이었다.
그런 아이에 비해 이은재는 어른스러웠다. 상대가 실망할까 봐 그는 활짝 웃었고, 선물 고맙다며 연신 인사했다.
“헤헤…, 은재 형….”
발긋한 두 뺨을 내놓고서 아이는 좌로, 우로 제 몸을 괜스레 흔들었다. 그러곤 두 팔 뻗어 은재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대로 수 초간 움직이지 않던 아이는 제멋대로 포옹을 마치며 후다닥 떠났다. 급하게 별장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은재는 허탈하게 웃음 지었다.
손바닥을 꽉 채운 연두색 인형을 내려다보기도 잠시, 은재는 ‘흠’ 소리 내며 그것을 품에 안았다. 그러곤 도련님이 사라진 별장 방향이 아닌 계곡 위, 산 중턱을 올려다보았다. 쏟아지던 빗속에서 기절한 채 헤어진 아이가, 비가 그친 뒤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신경 쓰였다.
‘오늘은 안 올 건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던 차, 그의 눈에 노랑 구두 한 짝이 들어왔다.
“어…, 찾았다.”
구두 두 짝을 돌려주어 동네 친구를 달랜 뒤, 은재는 포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면서도 몇 번이고 계곡 위를 올려다보며 절간에서부터 달려 내려오는 이가 없나 확인했다.
그날 저녁은 갈비구이와 미역국이었다. 푸짐한 식사로 배를 채우고, 후식으론 참외를 깎아 먹으며 소년은 즐거웠다.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드라마 한 편을 본 뒤에는 졸음이 쏟아졌다. 제 방으로 돌아와 누운 뒤에야, 은재는 포포의 이상함을 알아챘다. 작은 솜인형치고 은근히 묵직한 데다 등줄기에 수상한 지퍼를 달고 있는 것이었다.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보니, 지퍼 밖으로 빨간 실이 삐죽 빠져 나와 있었다.
“어….”
지퍼를 찍 열어 은재는 포포 속의 장신구를 확인했다. 전통 장식에는 문외한이라 그 이름이 노리개인 줄은 몰랐지만, 절편보다 더 큰 옥이 값비싼 보물임은 알아볼 수 있었다.
“이거, 너무 비싼 물건 같은데….”
붉은 실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황금 나비를 바라보길 한참, 은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무래도 서울 도련님께서 제 어머니의 보물을 훔쳐온 게 아닐까 싶어서였다. 그런 거라면 어른이 찾기 전에 빨리 돌려주어야 할 터였다. 또 그러자면, 우선은 계곡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면 운 좋게 아이를 만날 수도 있을 거였다. 정 나오질 않는다면 제가 절까지 찾아가도, 그럴 만한 명분이 생겼으니 괜찮을 것이었다.
‘그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은재는 방 밖으로 살금살금 걸어 나갔다. 침실 안의 어머니는 잠든 듯했고, 아버지는 부엌에서 설거지하느라 바빴다. 발소리를 죽이며 소년은 빠르게 집을 나섰다. 개구리 포포와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