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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목에 방울 달기-97화 (97/135)

98.

넘어지다시피 몸을 던지며, 그 누군가는 기어코 이림범을 붙잡았다. 두 팔 뻗어 이림범의 목을 끌어안고 온 체중을 실어 매달렸다.

“허억…!”

제 기척을 느낀 ‘아이’가 또 한 번 달아날까 봐, 이를 악물고 억눌러 온 숨이 비로소 터져 나왔다.

“헉…, 윽, 허억…!”

신음 섞인 숨을 토해내며 그는 기침했다. 두 눈을 크게 뜬 채 땅을 노려볼 뿐, 이림범은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범, 아…. 콜록!”

하련솔이 말했다.

“범아….”

거친 호흡 끝에 그는 작게 구역질했다. 윽, 우욱… 입 안에 감도는 피 섞인 침을 삼키면서 그는 이림범을 더욱 세게, 꽉 끌어안았다. 상체는 체중을 실어 매달리기 바빴고, 하체는 힘이 풀려 비탈길을 따라 늘어진 채였다.

뒤를 돌아볼 용기가 나질 않아, 이림범은 이를 갈았다.

“놔… 줘.”

무거운 음성으로 가까스로 그렇게 말할 따름이었다.

하련솔의 포옹은 더욱 강해지기만 했다. 힘이 빠지고 숨이 가빠 헉헉거리면서, 상대를 일으켜 세우기는커녕 저까지 콰당 넘어진 주제에, 후들거리는 두 팔로 매달리는 게 고작인 몸으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이림범을 안았다.

그런 하련솔을 거부하는 방법을 이림범은 몰랐다. 차마 매정하게 떼어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마주 안자니 그럴 면목 또한 서질 않았다. 손가락등이 다 찢어진 주먹을 바닥에 대고서 침묵하는 게 고작이었다. 소리 없이 떨어뜨린 눈물로 인해 얼룩진 흙바닥을 노려보면서, 그는 이를 악물고 뺨을 떨었다.

상냥한 손길이 그런 황제의 등을 어루만졌다.

“도망가지 마, 범아.”

더운 숨을 가라앉히며 하련솔은 눈을 감았다. 그러곤 부모의 등에 업힌 아이처럼, 이림범의 너른 어깨에 뺨을 붙였다. 이림범이 흐느낄 때마다 하련솔의 고개도 함께 위아래로 들썩거렸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그는 말하고 또 말했다.

“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기실 젊은 황제는 관대하지도, 여유롭지도 않았다. 유일한 혈육인 그의 동생조차도 그 사실을 몰랐다. 회주와 전대 무화 앞에서 이림범은 관대하기는커녕 무기력했다. 여유롭기는커녕 학습된 대로 따를 따름이었다.

제 상처를 묻어놓고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는 것. 외면은 이림범이 익힌 유일한 대처 방법이었다.

“그러니까 참지 마.”

그러나 하련솔은 다른 말을 했다.

“아파해도 돼. 울어도 돼.”

그는 황제더러 감내하라고, 용서하라고, 모르는 척 눈 감고 넘어가라고 청하지 않았다. 그 앞에서 이림범은 젊고 화려한 황제가 아니기에, 이름 없는 아이이기에 그러했다.

“내 옆에선 그래도 돼.”

하련솔은 그 아이를 안다. 차가운 창고 방에 쓰러지듯 누워, 옷 대신 상처를 덮고서 옴짝달싹하지 않던 아이가 있었다. 텅 빈 눈을 하고, 허기도 갈증도 느끼지 못하는 목석처럼 가만히 죽음을 기다리던 아이가 있었다. 아플수록 무표정해지고 슬픈 만큼 무기력해지던 아이가, 있었다.

“너는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어.”

이은재는 그 아이를 알았다. 하련솔은 그런 그를 사랑했다.

“애기야….”

속삭임 끝에 하련솔은 기절했다. 이림범의 등에 힘겹게 매달렸던 몸이 왼편으로 주르륵 맥없이 흘러내렸다. 흙바닥을 향해 고꾸라지는 그의 상체를, 이림범은 반사적으로 빠르게 붙들었다. 입을 벌린 채 기절한 하련솔의 몸은 황제의 품 안으로 손쉽게 빨려 들어갔다. 상처투성이 큰 손이 그의 얼굴을 황급히 살폈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푹 고꾸라진 마른 몸에는 기운이 전혀 없었다. 흰 목덜미 위로 통통 뛰는 맥박만이 이림범을 안심시켰다.

“…….”

눈을 질끈 감고 이림범은 이를 갈았다. 이대로 하련솔을 끌어안을 수도, 놓을 수도 없었다. 당장에 그 자신이 더럽고 추악하게 느껴져 미칠 것만 같은데, 그래도 괜찮다는 하련솔이 좋았다. 가슴 찢어지게 좋아서 차마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이림범은 울었다. 기절한 이를 품에 안고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볼썽사납게 눈물만 줄줄 흘렸다.

작은 기침과 함께 하련솔은 금세 의식을 되찾았다. 그와 두 눈이 마주치자마자 이림범은 흠칫 손을 떨었다. 그대로 조심스럽게, 저를 내려놓으려는 이림범을 향해 하련솔이 두 팔을 힘껏 뻗었다. 그대로 이림범의 목을 꼭 끌어안고, 움직이지 않았다.

이림범이 팔을 풀어도 하련솔은 떨어지지 않았다. 황제의 꿇린 무릎에 반쯤 드러누운 채, 그는 이림범을 안고 또 안았다. 통, 통… 약하게 뛰는 하련솔의 심장이 맞붙은 흉통을 통해 느껴지기에, 이림범은 두 눈을 질끈 내리감았다. 그리고 부탁했다.

“이거 놔 줘…, 형.”

“싫어.”

하련솔이 즉답했다.

“…형.”

재차 저를 놓아달라, 잠시라도 버려 달라, 쉽게 용서하지 말아 달라 부탁하고자 이림범이 입을 열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하련솔은 엉뚱한 소리로 이림범의 정신을 빼놓았다.

“범아. 나 발목이 부러진 거 같아.”

“뭐?”

그칠 줄 모르고 줄줄 흐르던 눈물이 뚝 그쳤다. 울음의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이림범은 재빨리 하련솔을 살폈다. 예쁘장한 연보라색 철릭은 반쯤 벗겨진 채 엉망진창이었다. 나뭇가지에 긁히고 찢어진 옷자락은 솜씨 나쁜 이가 마구잡이로 뜯어 만든 갈래 치마 같았다. 더러워진 옷자락을 전부 걷어 내니 버선발이 드러났다.

“신발 어디 갔어?”

새카매진 버선을 살피며 이림범이 소리쳤다. 피로감에 하얗게 질린 입술로 하련솔이 실실 웃었다.

“안 신었는데….”

“…….”

자세히 살펴보니 양쪽 버선 모두 발목 끈을 잃어버린 채였다. 매듭이 지어져야 할 자리에 빨간 동그라미가 하나 찍혀 있었다. 오만상을 찡그리며 이림범이 손을 뻗었다.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버선을 벗겨내자, 쓸린 생채기와 피로 빨갛게 젖은 복숭아뼈가 드러났다.

“형. 미쳤어?”

이림범이 소리 질렀다.

“어떻게 이 꼴을 하고 여기까지 쫓아와? 이러다 다리라도 부러지면, 진짜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래? 내가 안 멈췄으면 어쩌려고, 혼자 산에서 굴러떨어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으응….”

“형이 아직도 이은재인 줄 알아!”

외침 끝에 이림범이 이를 악물었다. 큰 걱정에 자리를 잃었던 성화가 다시금 속을 채웠다. 목구멍 안이 끓는 느낌에 그는 침음성만 겨우 흘리건만, 그런 그의 품 안에서 하련솔은 웃는 낯이었다. 헤실헤실 싱거운 웃음을 지어 보이며 그가 속삭였다.

“그럼 네가 도와주겠지, 뭐.”

섭섭할 만큼 고민 없고 야속할 만큼 발랄한 소리였다.

“나 이은재 아니고 무화 하련솔이니까. 우리 폐하님이 날 찾아 주고 치료해줄 거야.”

기가 막혀 이림범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엉망진창으로 구겨진 얼굴에 황당하다는 눈빛을 실을 따름이었다. 그래도 하련솔은 태연했다. 염치 불고하고 그는 황제의 목에 재차 매달렸다. 어서 날 데려가서 치료해 주어라… 하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몸짓이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기분으로 이림범은 고개를 푹 숙였다. 멈추었던 두 팔을 움직여, 그는 제 황룡포를 벗어 하련솔에게 둘러주었다. 그리고 아주 단단히 받쳐 안아 들었다. 그리고 도망치듯 달려왔던 길을 둘이 되어 돌아갔다.

잠시간 실종되었던 젊은 황제가 궁으로 돌아오자, 상기된 얼굴의 호위 실장이 가장 먼저 그를 반겼다. 할 말이 많고 토로할 불만도 가득하나, 당장은 입을 다물고 곁으로 따라붙는 게 고작이었다. 가을볕이 다정한 오후에는 궐내를 오가는 무화며 직원들이 많았다. 웅 실장은 그들에게 뒤로 물러서라 손짓하며 착실하게 황제를 보좌했다.

문정궁을 가로지르는 내내 하련솔은 발가락 한 번 꼼짝하지 않았다. 젊은 황제의 목을 아주 단단히 껴안고,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채 색색거릴 따름이었다.

이림범의 말마따나 그는 더는 이은재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예전의 무화 하련솔 또한 아니었다. 남들 이목이라면 질색을 하고, 황제의 총애를 부담스러워하던 변두리 무화는 이제 없었다.

울음의 흔적일랑 보이지 않고, 오히려 성이 난 듯 무표정한 황제의 귀에 대고 그는 연신 속삭였다.

“오늘은 교태전에서 자고 가.”

“…….”

“대답은?”

황제의 귀를 꼬집어 당기며 하련솔이 답을 재촉했다.

“응? 나 아프잖아. 밤새 아파 죽을지도 모르니까, 내 옆에 꼭 붙어 있어. 알겠지.”

“…….”

거동조차 불편한 상대를 안아 들고 옮기는 이는 황제 이림범이건만, 오늘은 물론이고 내일의 할 일까지 제멋대로 정하고 밀어붙이는 이는 무화 하련솔이었다.

“그리고 내일은 은진전에 가자.”

하련솔은 늘 이런 식이었다. ‘산책 가자’하는 말로 이름 없는 아이의 감옥을 깨부수었듯이, 그는 다정한 말을 손쉽게 건네며 오늘의 젊은 황제를 잡아끌었다.

늘 그렇듯 이림범은 그를 거부하는 법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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