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랑이 목에 방울 달기-100화 (100/135)

101.

“언니….”

그림 속의 여인을 바라보며 하늬안은 풀썩 나자빠졌다. 그리고 넙죽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마른 몸으로 헐레벌떡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릴 때마다 미안하다는 말이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의 눈에 그 사과가 무척 약삭빨라 보였다. 상황을 파악하고 잇속을 챙기느라 뱀처럼 군다고밖엔 해석의 여지도, 동정의 여력도 없었다.

두 형제의 얼굴에 동시에 당혹감이 스몄다. 내가 잘못했어요… 그렇게 내지르는 소리를 들을 적엔, 이림범은 인상을 찌푸렸고 이차혁은 울상이 됐다. 목소리가 찢어지도록 사죄하는 하늬안의 어깨를 붙든 이는 이차혁이었다.

두 손으로 제 어머니의 상체를 부둥켜안으며, 그는 질색했다.

“제발, 그만 좀 해요.”

장성한 아들의 품에 안겨 하늬안은 환청을 들었다. 휘… 호흡기를 통해 약을 빨아들이는 숨소리가, 휘… 거칠게 울렸다. 고개를 추켜들고 올려다본 은진전은 볼썽사나운 모조품이었다. 벽면에 우두커니 기대어 선 황후 때문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는 은진전의 처마를 구경하고 있었다. 백색 처마에 새겨진 연분홍 꽃은 칠해낸 지 오래되지 않아 번들번들했다. 교태전의 백과 연홍을 흉내 내어 바른 색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빗물에 씻기고 바람에 다쳐가며 주인을 지킨 끝에 닳고 닳아 분홍이 된, 본판의 처마와는 차이가 자못 컸다. 황후의 초상 앞에서 은진전은 단번에 빛을 잃었다. 이곳의 주인이라 자부심을 품은 하늬안도 딱 그만큼 초라해졌다.

하늬안이 품은 공포와는 달리, 황후의 시선은 하늬안에겐 와닿지 않았다. 처마에서 느리게 떨어져 내린 그녀의 눈길은 회주에게 향했다. 하늬안도 그녀를 따라 노승을 살폈다.

그 또한 하늬안이 그러듯이 놀란 눈치이긴 했다. 그러나 두 눈을 크게 뜬 채 끔벅끔벅 그들 모자를 구경할 뿐, 남일 구경한다는 양 평화로웠다. 그 태도가 하늬안을 미치게 했다.

“스님…!”

절망에 몸서리치며 그녀는 새된 소리를 내질렀다.

“내 아들은요? 그럼 내 아들은, 우리 애는 왜 잘못된 거죠?”

남들 보기에 그 모습이 꽤 기이했다. 보통의 교인이 일반적인 스님에게 건넬 법한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는 중환자의 보호자가 담당 의사에게 따지는 것에 가까운 말투였다.

“내 불공이 모자라서 그런 거라면서요. 내 기도가 모자라고 헌금이 모자라서 그랬다면서요? 언젠가는 병이 나을 거라며, 기다리면 돌아올 거라며….”

말끝을 흐리기가 무섭게 그녀는 질문의 답을 스스로 깨달았다. 멍하니 넋이 빠진 얼굴로 하늬안은 저를 끌어안은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회주의 지시에 따라 여태껏 애써 외면해 온 청년이었다. 백 번 부정하고 만 번 무시해도 눈코입이 그녀를 쏙 빼닮아, 거울을 본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예쁜 아들이었다. 그 존재를 폄하할 이유가 더는 남지 않았다. 긴 시간 동안 가짜 스님의 거짓말에 속아 왔음을 깨달았기에 그러했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에는 아무런 책임도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 감정을 실행으로 옮기는 행위는 그렇지 않았다. 남을 저주하는 일은 때때로 제 살을 뜯어 먹는 짓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던가. 인과응보도 그와 같이 돌아왔다. 누굴 죽이고자 할 때는 제 죽음도 각오해야 마땅했다. 14년 전 여름, 하늬안은 죽음을 각오했다. 그러나 실패로 돌아온 저주는 그녀가 아닌 그녀의 아들을 망쳐 놓았다. 살을 잘못 날린 대가를, 응당 수혜자여야 했던 이차혁이 짊어진 것이다.

그녀가 첫째 황자를 두고 바란 것과 같이, 그녀의 아들은 황제가 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몸이 됐다. 제 부모에게 버림받았고, 끝내 이름을 잃어버렸고, 죽은 사람 취급을 받았다. 가장 환하게 피어올라야 할 순간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 모든 게 제 탓인 줄을 하늬안은 몰랐다. 긴 시간 그녀는 무지했다. 그 모든 사실을 짐작하고도 그녀에게 한마디 언질조차 해주지 않은, 회주가 원인이었다. 대신에 그는 절망한 여인을 이용했다. 헛된 제사를 올리게 하고 중노동에 가까운 일을 시키며 그녀의 자산을 제 것으로 만들었다. 주름이 자글자글해지고도 튼튼한 노인인 저보다는, 절망하고 상심한 전대 무화가 먼저 죽으리라 확신했기에 그리했다.

호구.

회주에게 하늬안의 가치는 딱 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에서야 낡은 분노가 하늬안을 움직였다. 그녀는 소리를 내지르며 가피 스님을 향해, 은진전의 대청마루 위로 새처럼 달려들었다. 그러나 정정한 노승은 약해빠진 무화를 손쉽게 피했다. 하늬안은 도리어 제힘을 못 이겨 나자빠졌다. 풀썩 주저앉은 마른 여인을 내려다보며 그는 혀를 쯧쯧 찼다.

“어허, 어딜!”

그리고 버럭 외쳤다.

“내 자네 부탁을 다 들어주지 않았어? 제 자식이 잘못하여 일을 망친 걸 감히 누구 탓을 해!”

그는 윽박으로 하늬안을 다스리려 했다. 그 말의 효과를 증명하는 듯, 하늬안이 멈칫했다. 미력한 제 처지가 불쑥 현실로 닥쳐옴에, 그녀는 두 손을 반사적으로 모아쥐었다. 그리고 비틀비틀 뒷걸음질을 쳤다.

노승은 그 모습을 보며 코웃음 쳤다. 하늬안이 어떤 신자인지 그는 알았다. 그녀는 제 인생을 모조리 그의 발아래에 가져다 바쳤다. 평생 그를 신처럼 모시며 그의 말대로 움직여 왔다. 물을 마시는 양도 저녁을 먹는 시간도, 잠을 잘 때 머리 두는 방향마저도 회주의 뜻대로 했다. 회주를 부정하는 것은 그녀의 인생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회주가 아는 하늬안은 그런 짓을 할 용기가 없는 사람이었다.

“신성한 자리에서 부끄럽지도 않아! 당장 반성하고 용서를 빌게.”

도리어 적반하장으로 회주가 일갈했다. 그 말에 하늬안이 더욱 어깨를 움츠리며 대청마루 깊숙이 뒤로, 더욱 뒤로 물러섰다.

끝내 그녀의 손끝에 찬 것이 닿았다. 여태껏 가피 스님이 모셔온, 거대한 불상의 등허리였다.

“네…. 스님 말이 맞아요. 전부 옳아요. 제가 부끄럽습니다.”

하늬안이 말했다. 그녀의 시선 끝에 두 형제가 있었다. 미울 만큼 잘 자란 이림범이 있었고, 황당하다는 듯 이마를 찡그린 이차혁이 있었다. 눈시울을 붉힌 그는 벌써 실망할 준비를 마친 듯 보였다.

그러나 노승이 모르는 사실 또한 있었다. 하늬안은 세상에서 가장 독한 어머니였다.

“이제라도 용서를 빌어야지요.”

하늬안은 부처의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있는 힘껏 황금 불상을 떠밀었다. 말라깽이 여인의 발악에 지나지 않는 그 몸짓에 거대한 불상이 더럭 움직였다. 쌀알처럼 가볍게 쏟아지며 회주의 몸을 덮었다.

“악!”

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했다. 자리에 선 이들 모두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누구 하나 이렇다 할 말 한마디 꺼내지 못했다. 외마디 비명은 왔던 것과 같이 사라졌다.

침묵.

오직 침묵만이 두 형제와, 정신 나간 여인과, 하련솔과 함께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두 형제는 동시에 하늬안에게로 향했다. 힘을 다한 꽃송이가 뚝 목을 떨구듯 그녀가 제기 위로 나동그라진 탓이었다. 헛숨을 들이켜며 살펴본 하늬안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이러다 타 죽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모시던 이를 죽으라고, 죽이려고 충동적으로 일을 벌여 놓고는 미약한 정신이 제 과실을 감당하지 못한 듯했다.

쓰러진 어머니를 다급하게 끌어안는 이차혁과 달리, 이림범의 눈길은 하련솔에게로 향했다. 낡은 싸움에 지치고 충격받은 두 형제에 비하자면 하련솔은 침착했다. 놀란 듯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휘청이긴 하였으나, 결코 주저앉거나 울지 않았다. 애초에 의금부에 신고하지 말고, 우리의 일이니 우리끼리 처리하자며 형제들의 기운을 북돋아온 그였다.

한 발, 은진전 앞뜰에 깁스를 찬 발을 딛으며 하련솔은 두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거대한 풍채의 불상은 은진전 밖으로 크게 굴러떨어지고도 그 위엄을 잃지 않았다. 희미한 미소를 짓는 불상 아래를 하련솔은 어렵사리 살폈다. 그리고 그토록 좋아하던 부처의 품에 안긴 노승을 확인했다.

“…….”

황금 불상이 워낙에 크고 너부데데한 탓에, 그 밑에 깔린 회주의 모습일랑 허연 정수리만 얼핏 보일 뿐이었다. 도리어 그의 무어가 으깨지는 소리가 더 선명할 지경이었다.

하련솔이 무어라 입을 열려 할 때, 회주의 정수리가 움직였다. 느릿느릿, 그는 흙바닥에 뭉개진 고개를 가까스로 들었다. 불상이 자아낸 검은 그림자 밑으로 그의 눈이 보였다. 목발에 기대며 하련솔은 그 앞에 아주 다리를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회주에게만 보이게끔 검지를 제 입술 앞에 가져다 댔다.

그에 가피 스님이 볼을 떨었다. 그 순간 그는 제 눈앞에 선 무화를 소년이라 착각했다. 팔다리가 길고 눈망울이 착한 시골 소년이, 그를 더러 살 방도를 알려주고 있었다. 소년이 보인 수신호에 따라 그는 침묵했다. 신자를 잃는 것은 포로를 잃는 것과 같았다. 무력해진 와중에 제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게 된다면 젊은 황제가 참아왔던 분개를 터뜨리리라 그는 확신했다. 제 목을 치고, 머리 없는 몸에 대고 백 번 육시를 하고도 남을 것이었다.

고통에 이를 악물며 숨죽이는 회주를 확인하고, 하련솔이 고개를 추켜들었다. 그리고 대청마루의 이림범을 올려다보았다. 놀란 듯 거친 숨을 헐떡이며 이림범은 하련솔에게로 다가오려 했다. 유독 슬픔 앞에 어리숙한 아이를 향해 하련솔은 크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미 죽었어.”

찰나에 가까운 순간 이림범이 지어 보인 표정은 하련솔만이 보았다.

몸을 돌려, 이림범은 제 동생을 살폈다. 기절한 어머니를 업고자 노력하나 잘 되질 않아 이를 악문 이차혁이 있었다. 무릎이 아리고 관절의 힘이 연신 풀려버려, 그는 제 몸까지도 하늬안과 함께 넘어뜨렸다. 머리칼이 죄 흐트러지고 얼굴을 식은땀으로 적신 채 그가 작게 흐느꼈다.

이림범은 별다른 망설임 없이 제 동생 곁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원수와도 같은 여인을 두 팔로 받쳐 들었다. 축 늘어진 어머니를 기꺼이 안아 드는 형을 올려다보며 이차혁이 울었다.

“미안해, 미안해. 형. 정말 미안해….”

그 앞에서 이림범은 평생 울지 않는 형이었다. 무감정한 얼굴로 그는 제 형제의 어깨를 무릎으로 툭 건드렸다.

“일어나, 어서.”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차혁은 자리에서 비틀비틀 일어났다. 그러면서 그는 못난 안심을 했다. 어찌 되었건 황제가 안아주었으니 어머니는 금세 나을 것이었다. 당장 의료원의 의사에게 보인다면 죽지 않고 의식을 차릴 터였다.

경황이 없고 마음은 조급해진 형제는 빠르게 은진전을 떠났다. 바쁜 와중에도 이림범은 하련솔을 돌아보며, ‘형’ 하고는 어서 가자고 눈짓했다. 하련솔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을 따라나섰다. 그러나 몇 발짝 은진전 밖으로 움직이는 시늉만 하다, 얼른 안뜰로 돌아갔다. 멀어지는 황제의 뒷모습을 연신 돌아보며 그는 불상 앞에 다시 섰다.

목발을 단단히 붙들어 쥐고서 하련솔은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천만다행이에요…. 아직 살아계신 걸 범이가 못 알아채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외는 말에 회주가 퉁퉁 부은 눈을 끔벅였다. 불상이 만들어 낸 시커먼 그늘 밖으로, 그는 느리게 손을 뻗었다. 팔이 부러졌는지 관절이 움직여주질 않아, 손가락을 기듯이 움직여 가까스로 뻗은 손이었다. 흙바닥을 딛고 구물구물 움직이는 손은 외따로 생명을 지닌 듯 보였다.

그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하련솔이 속삭였다.

“그랬더라면 당신을 살려줬을 테니까….”

툭. 목발에 채인 손이 다시금 불상 아래로 떠밀렸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