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찬 달
11월 25일. 황실 조회 기록. 서기 윤민하 작성.
황제가 회의의 시작을 알리다.
의금부에서 전일 은진전에서 발견된 남성 시신과 관련하여 조사한 내용을 보고하다. (사망보고서, 진술서, 조사보고서 별첨.)
의금부 팀장이 말하기를, “전일 밤 10시경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했고, 한 시간 뒤 용의자를 검거했습니다. 용의자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이 맞다며 혐의를 모두 인정했습니다. 다만 그 범인이 전대 무화 하늬안인지라, 폐하께서 처리를 명령해주셔야 합니다.” 하다.
황제가 말하기를, “흠. 살인 자백이 있었을지언정 이번 일은 사고로 보인다. 하늬안은 다 죽어 가는 환자가 아니더냐? 병 들고 나이 든 여인이 무슨 수로 그 무거운 불상을 떠밀었단 말이냐.” 하다. 그에 의금부 팀장이 진술서를 제출하자, “나더러 이 헛소리를 믿으라고? 당장 은진전으로 가, 그 불상을 직접 들고 와 보거라.” 하다.
의금부 팀장이 말하기를, “그러면 이 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집니까?” 하다.
황제가 말하기를, “부처가 지겠지.” 하다.
일제히 논의하다.
황제가 말하기를, “그럼 내가 지랴?” 하다.
일제히 논의하다.
황제가 말하기를, “운 나쁜 사고사일 뿐이다. 이번 일은 그렇게 정리하도록 하지.” 하다.
일제히 논의하다.
황제가 말하기를, “허나! 사고 현장에서 부적과 짐승의 피 따위의 주물이 발견된 바, 내 친히 검토하였더니 그 목적이 참 사사롭고 악하더군. 진작 명령을 내려 궁 내의 모든 주물을 파기하라 일렀건만 이에 따르지 않은 것은 분명한 죄다. 따라서 하늬안의 무화 자격과 이름을 박탈하고, 문정궁에 출입할 권한을 없앤다.” 하다.
승정원 팀장이 황명을 수렴하여 처리하기를 자처하다. 황제가 동의하다.
승정원 팀장이 말하기를, “무화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 요즘 홍문관에서는 영 새 소식이 없으십니다. 개화병 치료 연구는 어찌 되어가십니까?” 하다.
홍문관 부제학이 말하기를, “임상실험의 준비는 모두 마쳤으나 참여자가 없어 그렇습니다.” 하다.
승정원 팀장이 말하기를, “진작 예견된 결과가 아닙니까. 약의 효능을 확인하자면 폐하의 곁을 떠나야만 할 텐데요. 그마저도 원치 않는 것이 무화입니다. 병을 고쳐 문정궁에서 나가기를 원하는 이는 더더욱 없을 겁니다.” 하다.
의정부 사인이 말하기를, “승정원에서는 지금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죄를 지어 쫓겨나는 전대 무화를 실험에 쓰기라도 하잔 말씀입니까?” 하다.
일제히 논의하다.
황제가 말하기를, “거 참 이상한 일이군. 병을 고친 자라 해서 무작정 궐 밖으로 내쫓겠다고는 말한 적이 없다.” 하다. 그에 승정원 팀장이 황제의 뜻을 묻자, “솔이 형은 무화들 선택에 맡기자던데. 자긴 가족이 많은 것도 좋다면서 말이야.” 하다.
승정원 팀장이 말하기를, “폐하. 어찌 황제에게 결정권이 있는 일을 일개 무화에게 맡기신단 말씀입니까?” 하다.
황제가 말하기를, “왜 자꾸 무화 하련솔을 ‘일개 무화’라 칭하느냐? 일개 팀장이 되어서는 하는 말이 듣기에 참 거북하구나. 내 매번 이 자리에 앉아 그를 ‘솔이 형’, ‘무화 하련솔’, ‘교태전의 주인’이라 일컫거늘. 일개 팀장께서는 황제보다 권위가 높으신가 봐. 그러니 황제가 높여 말하는 자를 함부로 낮추는 것이지.” 하다.
일제히 논의하다.
황제가 말하기를, “‘폐하’, ‘폐하’! 듣기 싫다. ‘폐하, 그런 것이 아니오라’! 지겹다, 지겨워. 단체로 웅얼거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 보거라. 그런 것이 아니면 도대체 뭐란 말이냐? 일개 무화, 일개 무화. 아주 내 귀에 딱지가 앉겠어. 일개 팀장이 우리 솔이 형을 그 따위로 칭한 것이 오늘로 벌써 열두 번째다.” 하다.
양채림 상궁이 말하기를, “폐하. 물론 ‘일개’라는 명사에 비하의 의도가 없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화가 지닌 한정적인 자격을 일컬은 표현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말씀마따나 ‘일개 팀장’이 함부로 폐하의 사람인 그분의 이름을 입에 담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하다.
황제가 말하기를, “다들 죽이 척척 맞는군. 가만 보면 이 회의장에 왕따는 나뿐인 것 같아.” 하다.
일제히 논의하다.
황제가 말하기를, “농담이다.” 하다.
일제히 논의하다.
승정원 팀장이 실언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다. 그에 황제가 사헌부의 의견을 묻다. 사헌부에서는 이번 일의 잘잘못을 새로 따지기를 거부하다.
황제가 회의의 진행을 명령하다.
의정부 사인이 말하기를, “폐하. 올 연말에는 계동나례를 열 예정입니다. 한데 나례에는 액운을 막고 사귀를 떨친다는 의의가 있는데, 이는 폐하께서 바라시는 주물 타파와는 대치되는 내용입니다. 해서 폐하의 의견을 묻습니다.” 하다.
황제가 말하기를, “아, 짜증 나서 못 해 먹겠네.” 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다.
황제가 말하기를, “부적 쪼가리 좀 치우자고 했지, 누가 불꽃놀이도 하지 말재? 이딴 핀잔을 놓는 이유가 뭐야?” 하다.
양채림 상궁이 말하기를, “폐하. 대신이 출산 휴가로 자리를 비운 터라, 의정부가 다소 어수룩한 줄로 압니다. 사인이 어찌 감히 폐하께 핀잔을 놓겠습니까. 정말로 모르기에 여쭈었을 따름입니다.” 하다.
황제가 말하기를, “저 사인은 대신이 꽂아 놓은 놈이 아니더냐? 그럼 제 역할을 다해야지. 뭐? ‘불꽃놀이도 주술이니까 하지 말까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내가 홍문관에 부제학의 제자를 데려다 놓았을 때 너희들 뭐라고 했냐. 홍문관이 뭔 의과 대학이냐며 따져대지 않았어? 너희 의정부야말로 대학원이 따로 없구만.” 하다.
홍문관 부제학이 말하기를, “폐하. 그 이야기는 승정원 팀장이 했습니다.” 하다.
의정부 사인이 실언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다. 그에 황제가 사헌부의 의견을 묻다. 사헌부에서는 이번 일의 잘잘못을 새로 따지기를 거부하다.
황제가 착석하다. 그리고 회의의 진행을 명령하다.
의정부 사인이 말하기를, “태블릿 바탕화면에 행사 기획서를 뒀습니다. 다들 파일을 열어 봐 주십시오. 이번 계동나례의 규모와 내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다.
황제가 소리 내어 하하 웃고, 크게 한 번 한숨 쉬다. 그리고 말하기를, “어차피 다 정해둔 일을 나더러 할 거냐 말 거냐 왜 물은 거냐?” 하다.
일동 동의하에 회의의 쉬는 시간을 가지다.
황제가 회의의 재시작을 알리다.
의정부 사인이 12월 계동나례와 관련하여 기획을 보고하다. (행사 기획서 별첨.) 그리고 황제의 의견을 묻다.
양채림 상궁이 말하기를, “폐하?” 하다.
양채림 상궁이 말하기를, “폐하. 주무십니까?” 하다.
일제히 아주 작은 소리로 말하기를,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나도 모릅니다. 진짜 잠드셨나 본데요.”, “깨워야 합니까?” 하다. 이어 여러 마디 덧붙이나 화자가 분간되지 아니하고 제대로 들리지 아니하다.
홍문관 부제학이 말하기를, “잠시 기다려 보죠. 많이 피곤하셨나 봅니다.” 하다.
사헌부 실장이 말하기를, “그러게 승정원에서는 왜 자꾸 폐하의 심기를 건드립니까. 제 엉덩이에 가시방석으로도 모자라 불쏘시개를 붙이셔야 성에 차시겠습니까?” 하다.
승정원 팀장이 말하기를, “내가 일부러 그랬습니까? 다 서운해서 그러는 거 아닙니까. 매번 신경 써 조언을 드려도 귓등으로도 안 들어주시는 분이.”, 이어 무어라 말하나 제대로 들리지 아니하다, “갑자기 ‘솔이 형’, ‘솔이 형이’.”, 제대로 들리지 아니하다, “언제부터 일개 무화가 폐하의 형님이 됐답니까?” 하다.
의금부 팀장이 말하기를, “말씀 삼가십시오.” 하다.
일동 5분간 침묵하며 기다리나 황제가 말이 없다.
승정원 팀장이 말하기를, “저, 그런데 요즘은 왜 그, 황후 책봉이니 국혼이니 이야기를 안 하실까요? 당장 결혼하실 듯이 구시더니 어쩐 일이랍니까?” 하다. 이어 양채림 상궁의 의견을 물으나, 상궁이 대답하길 거부하다.
일제히 논의하다.
양채림 상궁이 말하기를, “저도 잘 모릅니다. 정확하지 않은 이야기를 함부로 드릴 순 없습니다.” 하다.
일제히 논의하다.
양채림 상궁이 말하기를, “그게.” 그리고 한숨 쉬며, “무화 하련솔의 몸이 여전히 성치 않습니다. 또한 그는 아주 욕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황후의 자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다.
승정원 팀장이 말하기를,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폐하께서는 결혼을 원하시는데 그자는 황후가 되긴 싫다? 그럼 그 작자가 우리 폐하를 깠단 소립니까?” 하다.
의정부 사인이 말하기를, “말 좀 가려 하십시오. 거기… 서기님, 잠시 멈춰보십시오.” 하다.
승정원 팀장이 말하기를, “양 상궁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이 참. 어디서 부치다 만 개떡 같은 소문을 물어와선 그따위 헛소리를 씨불입니까?” 하다.
의정부 사인이 말하기를, “아, 말 좀 가리시라고요.” 하다.
승정원 팀장이 말하기를, “씨불이다는 표준말이야, 이 개살구야.” 하다.
사헌부 실장이 말하기를, “근데 그분은 왜 계속 아픈 거랍니까? 거처를 교태전으로 옮겼는데 왜 자꾸 사고가 나고 다칩니까. 가뜩이나 약하다는 사람이 이번엔 발목까지 부러지지 않았습니까.” 하다.
의금부 팀장이 말하기를, “혹시 그게 원인은 아닐까요?” 하다.
일제히 논의하다.
의금부 팀장이 말하기를, “그분 입장에서도 뭐, 혹시 자기가 병에 들어 일찍 죽을까 봐 황후 자리를 거부하는 게 아니냐는 말입니다. 그게 아니고서야 우리 폐하의 어디가 모자라서 거절하겠습니까?” 하다.
일제히 논의하다.
홍문관 부제학이 말하기를, “요즘 폐하의 근심이 깊어 보이기는 합니다.” 하다.
승정원 팀장이 말하기를, “그럴 리 없습니다. 정말 그런 거라면 우리 폐하가 너무….” 이어 무어라 말하나 제대로 들리지 아니하다.
황제가 작게 기침하다. 그러나 여전히 말이 없다.
일동 동의하에 의정부 사인이 12월 계동나례에 대한 기획을 재차 보고하다. (행사 기획서 별첨.) 그리고 황제의 의견을 큰 소리로 묻다.
황제가 말하기를, “어.” 하다.
황제가 말하기를, “그래.” 그리고 기침하며, “보고 잘 들었다. 계동나례는 기획서대로 진행하도록 해라.” 하다.
홍문관 부제학이 작게 웃다.
황제가 이외의 의견을 묻다. 더는 발언이 없다.
황제가 회의의 종료를 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