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랑이 목에 방울 달기-105화 (105/135)

106.

멋쩍은 얼굴로 맞은편에 자리한, 형편없는 요리사를 올려다보며 하련솔이 웃었다.

“음…. 난 이게 제일 맛있어 보이네.”

그러면서 젓가락을 쭉 뻗어 달걀말이를 콕 집어다가 한입에 넣었다. 푹 익힌 달걀말이는 간이 덜 되어 밍밍했고, 식감은 달걀보다는 골판지에 가까웠다.

“으음!”

그래도 하련솔의 입맛에는 아주 딱이었다. 누군가 그를 위해서, 그와 함께 먹기 위해 아침을 요리해 주는 일이 무척 오랜만이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림범의 달걀말이는 아주 훌륭했다. 달걀말이가 아니라 컵라면에 물만 따라 주었다 한들 하련솔은 그에게 백 점을 선사했을 터였다.

큰 소리 내어 연신 감탄하면서, 하련솔은 망가진 달걀말이를 제 밥그릇 위로 전부 옮겼다. 그리고 볼이 빵빵해지도록 바삐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이림범은 더욱 쑥스러운 듯 귀를 붉혔다.

“억지로 먹지 마, 형….”

“아냐. 지짜 마시허. 마시허서 멍는 거하.”

“그러다 체하겠어. 국도 좀 같이 먹어. 물 따라줄까?”

국그릇과 물 한 잔을 하련솔에게 밀어준 뒤, 이림범은 테이블 한가운데에 놓인 갈치구이 살을 발라내기 시작했다. 제 숟가락 위로 척척 쌓이는 생선 흰 살을 바라보기도 잠시, 하련솔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음식의 상태가 질을 보아 일반 배달음식 같진 않은데, 이림범이 차린 게 아니라면 누가 요리를 해주었단 것인지 궁금했다.

그 생각을 읽어내린 듯, 이림범이 말했다.

“대령숙수가 해주고 갔어. 웅 실장이고 양 상궁이고 다 따라와서 대기 중이거든. 봐. 저기, 숙소 건물 보이지? 지금도 망원경으로 우리 감시 중일걸.”

이림범의 젓가락이 가리키는 창문을 향해 하련솔도 시선을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저 멀리, 둔덕 가운데에 놓인 건물이 있었다. 3층 높이의 펜션 마당을 채운 차가 서너 대인데, 모조리 검정 밴이었다. 그 특이한 모습이 이림범의 말에 신빙성을 더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네.’

한가로이 눈을 굴리며 하련솔은 식사를 마쳤다. 후식으로는 갓 구워낸 뜨거운 밤이 나왔다. 작은 칼을 쥔 이림범이 통통한 밤을 반으로 쪼개어 주면, 하련솔은 작은 숟가락으로 밤의 속을 아주 야무지게 파먹었다.

그러면서 하련솔은 이번 여행의 목적이 무얼까 추측했다. 부랴부랴 일을 마치자마자 낯선 곳으로 저를 데리고 나선 목적이, 이림범에겐 분명 있을 터였다. 직접 그 이유를 물으면 해결될 궁금증이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하련솔의 곁에서, 이림범은 금세 무표정해진 얼굴로 스무 개째 밤을 쪼개고 있었다.

‘아무리 나라도 그렇게 많이 먹진 못하는데….’

따끈한 밤 속을 재차 퍼내며 하련솔은 골똘해졌다. 그러면서 그는 새삼스럽게 이림범의 얼굴을 감상했다. 바삐 올 연락이라도 있는 듯, 휴대폰 화면을 연신 두드리는 손이 커다랬다. 화려한 황룡포며 철릭을 두른 그가 황제 폐하라면, 평상복 차림새로 휴대폰을 만지는 모습은 순 성인 남성이었다. 묘하게 다른 분위기에 하련솔은 내심 당황했다.

‘범이 진짜 다 큰 남자네….’

어찌 보면 문정궁을 통틀어 한국 안에, 그를 어린아이로 생각해 온 존재는 하련솔 저뿐인 듯했다.

그러고 보면 한 주 전에 교태전을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승정원 도승지라는 직급으로 자신을 소개한 그는 하련솔에게 보약 한 첩을 밀어 건넸다.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는 말과 달리, 약 상자를 감싼 보따리는 무척 고급이었고 아주 묵직했다. 비싼 만큼 귀한 약을 한가득 안겨 주며 그는 긴말은 하지 않았다.

‘건강 잘 챙기십시오.’

당부하듯 건넨 인사 끝에,

‘그래야 폐하의 근심도 덜지 않겠습니까.’

여담처럼 덧붙인 본론이 어딘지 은근했다.

선물을 받아들고 어리둥절하니 앉아, 하련솔은 들은 말을 곰곰이 곱씹었더랬다. 이림범이 지나가듯 건넨 말로 승정원은 ‘참견쟁이 동아리’라고 했다. 그만큼 황제인 그에게 잔소리를 많이 한단 의미였다. 황제의 행보 하나하나를 감시하고, 황제가 내세우는 계획마다 반대하기 일쑤라던가. 매번 지겨운 조언과 첨언을 덧붙인다던가…. 또 하련솔이 흘려듣기로, 이림범은 조회에서도 제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사랑 앞에 불같은 그 성격에, 모르긴 몰라도 하련솔을 황후로 맞이할 것이라고 웅변을 열 번은 더 하고도 남지 싶었다.

그렇다면 승정원 도승지라는 양반께서는 저에 대해서도 그다지 긍정적인 사람은 아닐 듯했다. 그런데 건강을 잘 챙기라니, 참 뜻밖의 이야기였다.

‘그렇다는 건 범이가 그 사람한테…, 아니면 조회에서… 미리 말한 계획이 있다는 뜻일까?’

긴긴 생각의 끝에 하련솔은 이번 여행의 목적을 확신했다.

‘나한테 프러포즈할 건가 보다.’

이미 여러 차례 결혼하자, 황후가 되어 달라 노래를 불러온 이림범이었다. 하련솔은 그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내놓은 적 없었다. 황제의 바쁜 일정이며 너무 이르고 성급하다는 지적을 내세우며 에둘러 미뤄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난 몇 주 사이 하련솔은 많이 변했다. 은진전에서의 사건 이후 이림범은 한 번도 그에게 결혼 이야기를 내놓지 않았다. 심경의 변화가 생긴 듯, 찌그러진 호빵처럼 엉엉 운 뒤에는 부쩍 어른스러운 모습만 보여 주던 황제였다. 그가 만든 침묵의 공백기는 하련솔에게 그들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하련솔은 고심했고, 결정했다. 이림범이 또 한 번 ‘결혼하자’는 고백을 내놓는 날에는, 그때는 저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해 주고자 했다. 과정이 어찌 되었건 하련솔은 이림범과 몸까지 섞은 사이였다. 서로 간에 사랑을 고백하고 관계까지 맺었으니, 이 순진하고 귀여운 애기를 제가 책임져야지 누가 책임지겠는가.

하련솔이 결심을 곱씹기 무섭게,

“형. 나랑 해야 할 일이 있어.”

이림범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연신 휴대폰을 들여다보더라니, 마침내 기다려온 연락을 받은 듯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를 따라나서기 위해 하련솔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미처 목발을 찾을 새도 없이 이림범은 그를 두 팔로 번쩍 안아 들었다. ‘준비를 다 마쳤다’ 하는 알 수 없는 말을 속삭이며 그는 하련솔과 함께 펜션을 나섰다.

점심을 앞둔 시각, 너른 정원의 볕은 따듯하고 바람은 시원했다. 겨울이 달려오기 전 마지막 가을의 향취였다.

하련솔을 안고 선 채 이림범은 잠시간 울타리 너머, 갈대밭이 흐드러진 길을 내려다보았다. 하련솔도 그를 따라 밖을 살폈으나 오가는 이는 없었다. 우두커니 선 두 남자에게로 작은 개가 따라붙을 따름이었다.

남의 두 팔에 덜렁 들려 옮겨지는 하련솔이 신기한 듯, 개는 제자리에서 펄쩍거리며 하련솔의 발 냄새를 맡으려 했다. 무어 작고 촉촉한 것이 발뒤꿈치에 닿는 느낌에 하련솔은 콧잔등을 구기며 웃었다.

“얜 이름이 뭐야?”

하련솔이 물었고,

“아직 안 지었는데.”

이림범이 대답했다. 그에 하련솔의 두 눈이 번쩍 커졌다.

“어? 네가 키우는 개야?”

“아니. 형 주려고 찾아온 개야. 마음에 들지?”

큰 확신을 품은 듯 이림범이 떳떳하게 말했다. 그에 하련솔이 실소했다. 대뜸 개를 주겠다니, 그 말이 참 이상했다. 만일 다른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구에게 무작정 개를 선물한다면 그건 생명 경시라고 욕을 먹어도 싼 일일 터였다. 그러나 무화의 소유주이자 보호자로서, 그들을 키우다시피 하는 황제 이림범이 자신의 궁에서 키울 개를 선물하는 것은 썩 괜찮은 일이었다. 특히나 동물을 좋아하는 하련솔에게 귀여운 개는 아주 기쁜 선사품이었다.

“뭐…, 마음에 들긴 하는데….”

이림범의 목을 두 팔로 끌어안으며, 하련솔은 조심스럽게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작은 개를 포장한 누런 털은 덥수룩하니 길어서 눈도 보이지 않을 정도인데, 신기하게도 귀의 털은 무척 짧았다. 그 모습이 북슬북슬한 샤워볼에 수제비 두 개를 척 붙인 것 같았다.

“갑자기 왜 개를 주겠다는 거야? 얘, 교태전에서 키워도 되는 거야?”

“키워도 되니까 주는 거지, 그럼.”

그러면서 이림범이 고개를 모로 돌렸다. 못내 쑥스러운 듯 시선을 회피하면서, 그는 저벅저벅 정원 뒤편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말했다.

“…사실 덕순이를 찾아주고 싶었어.”

들릴 듯 말 듯 아주 작은 속삭임이었다.

“‘덕순이’?”

그리운 이름에 하련솔의 두 뺨에 웃음이 번졌다. ‘덕순이’는 하련솔이 이은재이던 시절, 고야읍의 이층집에서 키웠던 백구의 이름이었다. 어머니를 잃고, 저마저 병을 앓기 시작해 병원에서 전전긍긍하던 무렵 아버지가 지인의 집으로 떠나보낸 개의 이름이기도 했다.

덕순이를 찾으려 했다니, 이림범의 그 생각이 하련솔은 참 안쓰러웠다. 당시 덕순이의 나이가 네 살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에 헤어졌으니, 그 개가 살아있을 가능성은 아주 낮았다.

저도 그 사실을 아는지, 이림범이 덧붙여 말했다.

“덕순이를 못 찾으면 덕순이 새끼라도 찾으려고 했었어.”

“하하, 덕순이 중성화했는데?”

“그래, 그랬다더라.”

그 말에 하련솔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중성화를 마쳤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는 건, 덕순이를 데려가 키운 이들을 만나보긴 했다는 뜻 같아서였다. 이림범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은 하련솔을 안심하게 했다. 저의 어린 날에 좋은 추억으로 남은 그 개가 다른 누군가의 집에서 잘 지내다가 떠났구나.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훈훈했다. 슬픔보다는 안도감이 더욱 컸다.

이림범의 어깨에 턱을 기대며, 하련솔은 괜스레 허공에 뜬 두 발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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