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06
예나 지금이나 하련솔은 정이 많았다. 그리고 상대가 누구이건 빨리 친해졌다. 교태전의 주인이 된 뒤 그의 친화력엔 날개가 달렸다. 모든 무화들이 그에게 잘 보이려 노력했고, 그 또한 여느 무화들을 동생처럼 살뜰히 챙겼다. 사내 무화는 남동생, 여인 무화는 누이처럼 말이다.
그의 다정다감한 성격과 꾸밈없이 솔직한 모습은 미성숙한 무화들의 호감을 쉬이 샀다. 오죽하면, 도승지를 비롯한 승정원 직원들마저 저들끼리 고개를 맞대며 ‘무화들이 예비 황후를 잘 따르니 그 모습이 참 보기 좋다’ 했다. 애초에 무화를 황실의 가족이라기보단 수단으로 보고, ‘일개’ 무화 하련솔이 교태전의 주인이 되길 반대하던 이들의 반응이 그러했다. 그러나 이림범은 달랐다.
‘형은 내 건데.’
나의 약혼자이자 연인이고, 나의 하련솔인데….
질투심이 그의 잘생긴 얼굴에 삐뚜름한 구김을 만들었다. 성큼성큼 다가가 하련솔과 무화 사이를 갈라놓으면서, 그는 긴 너울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검은 천으로 지은 머리덮개를 구해다가 하련솔에게 씌워 놓아, 아무도 그 예쁜 얼굴을 볼 수 없게 하고팠다. 세상에서 오직 저만이 그를 알고, 물고 빨고 잡아먹고 싶은 열망이 속에서 보글보글 끓었다. 만인에게 ‘하련솔’ 세 글자를 기억하게 하겠노라는 의욕으로 움직인 장본인이면서도 그랬다. 질투심의 창을 양심의 방패로 서로 찌르고 막아 가며, 애타는 황제의 마음일랑 속 편한 하련솔은 모를 것이었다.
그래서 알려 주었다.
“형 때문에 미치겠어. 형은 너무 다정해. 모두에게 과하게 친절하단 말이야.”
늦은 밤,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이림범의 침상 위에는 백색 침의에 보글보글한 인조 양털 재킷, 수면 양말을 신은 하련솔이 있었다. 무릎 위에는 손난로를 넣은 개구리 포포를, 옆구리에는 누런 강아지 더덕이를 둔 채였다.
젊은 황제가 느끼기엔 더울 만큼 뜨겁게 데워 놓은 방에서도 하련솔은 추위를 느끼는 듯 어깨를 움츠리며,
“으응?”
성의 없는 목울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침전의 침상에 엉덩이를 뭉개고 앉아 이불을 두른 이는 하련솔이고, 말단 신하나 찾을 법한 앉은뱅이 탁자 위에 탑처럼 쌓인 서류철을 훑기 바쁜 이는 이림범이었다.
“하아…. 아니야. 말을 말자.”
‘인간의 뇌는 다중 작업을 해낼 수 없다’, ‘멀티태스킹은 사실상 두 가지 일을 번갈아 하는 과중 작업에 불과하다’는 말에 따르면 이림범은 인간이 아닌 로봇이었다. 그는 눈으로는 빠르게 사료를 훑으면서 입으로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러게 왜 야외에 줄을 서 있고 그래?”
꼬집듯 물어온 말에 하련솔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말을 말자며. 왜 잔소리야?”
“자꾸 생각나서 그러지. 형은 집무실에 출입해도 된다고, 따듯한 실내에서 앉아서 기다리라고 시종들이 말 안 해 줬어?”
“안 해 줬어.”
“그럼 시종들을 혼내야겠네.”
“사실 말해 줬어….”
“그런데도 굳이 찬 바람을 맞아야 직성이 풀려?”
“으응.”
다시금, 하련솔은 건성으로 낸 소리로 대답을 미뤘다. 그러면서 그는 무표정한 이림범을 향해 느릿느릿 다가갔다. 이림범은 원하던 사료를 찾아 탁자 중앙에 펼치고, 열 번째 줄 위에 나무 문진을 댔다. 그러나 반듯하게 놓인 문진은 금세 크게 삐뚤어졌다. 하련솔이 그의 팔뚝 아래에 머리를 넣으며 안겨 온 탓이었다.
“…….”
입술을 꾹 다물고 침묵하는 이림범의 반응은 하련솔에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질 못했다. 애써 무뚝뚝하려 애쓰는 황제의 양반다리를 방석 삼으며, 하련솔은 그의 품 안에 쏙 들어가 안겼다. 이림범의 어깨에 관자놀이를 톡 기대고 두 팔 뻗어 굵은 팔뚝을 부둥켜안는 동작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애교 많은 강아지처럼, 나른한 고양이처럼 구는 연인을 향해 이림범은 콧김을 크게 쉬었다. 그러곤 제 패배를 시인했다. 참다못해 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는 하련솔의 정수리에 대고 쪽 입을 맞추었다.
“왜 그러는데…. 추워? 형.”
그러면서 그는 사료 더미 탁자에 발을 대고는 멀리 밀어 치웠다. 매력을 잃어버린 잔업 대신 훨씬 흥미롭고 귀여운 애인을 살필 시간이었다.
“조금…. 쌀쌀해.”
하련솔이 대꾸했고,
“‘쌀쌀해’?”
이림범이 크게 웃었다. 하련솔이 뱉는 ‘쌀쌀해’라는 말이 부쩍 귀엽게 느껴졌다.
“다음엔 실내에서 기다려. 응? 굳이 애들이랑 밖에 있지 말고. 그리고….”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며 이림범이 고개 숙였다. 그러곤 하련솔의 귓불에 연신 입을 맞추었다.
“…다른 사람 옷고름은 묶어 주지 마.”
쪽쪽 소리에 맞추어 고개를 흔들거리던 하련솔이 흐흐 웃었다. 젊은 황제의 질투란 참 터무니없고 재밌었다.
양채림 상궁은 하련솔더러, ‘내명부의 일이 곧 당신의 일이니 그리 생각하며 관리하라’는 조언을 남겼다. 승정원 도승지도 마찬가지였다. 그 ‘일’은 하련솔에게는, 조금 과장하여 육아처럼 느껴졌다. 해이해진 무화들을 다룰 때엔 회초리를 들고 기강을 잡기보단 책을 펴 놓고 훈육했다.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질러 저들끼리 소원해진 무화들 앞에서는 법도를 따져 형벌을 가하기보단 살살 달래고 타일러 화해를 시키곤 했다.
하련솔은 자신의 그러한 성격이 스스로를 나약하거나 여리게 만든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적절하니 좋다고만 여겼다. 큰 탈 없이 두루두루 잘 지내게 된 것을 보면 그랬다. 저에게도 좋고 여느 무화들에게도 잘 맞으니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한데 모든 무화의 주인이신 황제께서 질투를 하다니…. 그 터무니없는 시기가 어찌나 귀여운지 몰랐다.
그런 이림범 앞에서는,
“알겠어. 앞으로는 조심할게.”
헤실헤실 웃으며 져 주는 게 좋았다. 그것만으로도 이림범의 앙금을 녹이기엔 충분했다.
“으응….”
하련솔이 흘렸던 목울음을 따라 하며 이림범은 제 무릎 위의 연인을 번쩍 안아 들었다. 침상 자리로 옮겨 가 옷고름을 풀기 위해서였다.
만일 요즘의 방사까지 일일이 기록에 남겼더라면 이림범은 안마를 잘하는 황제라는 부제를 얻었을 터였다. 다행히도 그의 그러한, 사랑이 느껴질 만치 귀여운 면모는 하련솔만이 알았다.
따끈한 침상에 하련솔을 눕혀 두고 이림범은 안마를 시작했다. 하련솔의 팔뚝이며 어깨, 종아리를 오가던 손길은 점차 애무로 색을 바꿨다.
점차 녹진녹진해져 가는 손길이 지닌 의도를 모두 알면서 모르는 척, 하련솔은 시선을 내리깔고 얌전했다. 스스로 느끼기엔 볼품없는 몸이지만, 이림범이 충분히 즐기며 음미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었다. 구불구불 움직이던 손이 제 침의를 벗겨 오면 하련솔은 상체를 일으키고 앉았다. 그리고 황제의 침의 옷고름을 당겼다. 오가는 입맞춤 여러 번에 두 남자는 금세 알몸이 됐다. 그대로 크게 나뒹굴다시피 침상 위를 차지하면, 더덕이는 콧김을 크게 내쉬며 절 위해 뚫어 둔 작은 문을 통해 침실을 뛰쳐나갔다.
애정으로 두근거리던 가슴에 흥분이 들어차도 이림범은 쌀쌀하다던 하련솔의 속삭임을 잊지 않았다. 최대한 피부를 맞붙여 제 체온을 나누어 주려, 그는 하련솔의 허리를 붙들고는 휙 들다시피 하며 제 무릎에 다시 앉혔다. 오늘로 두 번째, 이림범의 양반다리를 방석으로 깔고 그와 얼굴을 마주하면서 하련솔의 반응은 전과는 사뭇 달랐다. 허벅다리 밑으로 황제의 양물이 느껴지는데, 큰 것이 곧게 선 탓에 둔부에 와 닿는 감각이 꼭 뱀 같았다.
“범… 아.”
“으응?”
“…천천히.”
“응.”
가슴팍을 맞붙이고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시작된 손장난은 지독할 만큼 길었다. 따끈하게 달아오른 욕망이 그들을 자꾸만 들썩이게 했다. 이림범의 양물에 성난 듯 핏발이 서고, 하련솔의 뒤는 민망할 만큼 부드럽게 풀렸다. 그러고 나면 두 남자를 들썩이게 하는 건 욕망이 아닌 삽입이었다.
연약한 애인을 안을 때마다 이림범은 무진 애를 썼는데, 넘치는 제 혈기를 짓누르고 억압하기 위해서였다. 굵은 팔뚝에 핏대가 울룩불룩 불거지고 아랫배가 단단하게 뭉치도록 열망에 휩싸인 채 그는 잠시간 숨을 골랐다. 그러곤 하련솔의 허리를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싸 쥐고, 제 귀두 끝만을 그의 뒤에 쑤셔 넣었다.
“아!”
“형, 힘.”
“아, 윽….”
“힘 빼.”
하련솔의 뒤는 여전히 작고 좁았고, 이림범의 성기는 귀두까지 굵고 굴곡이 거칠어 교합이 쉽진 않았다. 구비된 향유 한 병을 쏟아붓다시피 하며 정성 들여 풀어낸 끝에, 걸치다시피 쑤셔 넣는 게 고작이었다.
“흐으….”
그래도 하련솔은 가슴팍이 다 빨개지도록 끙끙 앓았다.
“하아…. 아파? 형….”
그의 왼쪽 가슴 위에 입술을 대고 이림범이 물었다. 질문 끝에 그는 조그만 유두에 대고 혀를 굴렸다. 황제의 두 손에 허리를 붙들려, 일어서지도 그렇다고 주저앉지도 못하는 채 하련솔은 더운 숨을 헐떡거렸다.
“아, 안 아파…. 윽, 안 아파.”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커다란 이물감이 그의 뒤를 꿰뚫으려는 양 쑤시고 들어왔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