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09
두 눈을 내리깔며 이림범은 하련솔의 뺨에 입술을 붙였다. 그러곤 앙 깨무는 시늉 하듯 그의 볼살을 빨았다.
“읏, 하아….”
수음을 받는 이는 이림범인데 신음하는 이는 하련솔이었다. 숨이 차도록 헐떡거리며 그는 열심히 팔을 움직였다. 굵고 커다란 살덩이를 움켜쥐고 어루만지는 손길마저, 노력은 가상하나 솜씨는 형편없었다. 이림범은 그런 하련솔의 귀를 기습하듯 콱 깨물었다.
“아!”
일순 깜짝 놀란 하련솔이 손아귀에 힘을 줬다. 세게 잡힌 양물 끝에서 울컥, 흰 정액이 빠져나왔다. 아랫배 근육을 꿈틀 수축시키며 이림범은 하련솔의 귓바퀴를 핥아 올리고, 또 한 번 귓불을 꽉 짓씹었다.
“앗, 앗…!”
바들바들 팔을 떨며 하련솔이 모아쥐었던 손을 풀었다. 두어 차례에 나뉘어 뿜어져 나온 흰 액체가 그의 팔과 가슴, 놀라 숙인 턱에 튀었다. 밤꽃 냄새가 훅 풍겼다.
“하아, 형. 하아….”
“아, 어….”
“또 해 줘.”
허공에 뜬 하련솔의 오른손을 덥석 움켜쥐고, 이림범은 다시금 제 것을 감싸 쥐게 했다. 그대로 그의 손등에 제 손을 겹쳐 쥐고선 위로, 아래로 빠르게 흔들기 시작했다. 두 뺨이 새빨개진 채 하련솔은 어깨를 움츠리고서 그 행위에 동참했다. 이림범은 연신 하련솔의 목덜미를 핥아 올리고 귀를 빨았다. 귓바퀴를 따라 지도를 그리듯 움직이던 혀끝이 귓구멍 부근을 쿡 쑤시자, 하련솔은 깜짝 놀라 앉은 자리에서 엉덩이를 들썩였다.
“아! 가, 간지러워….”
사실 하련솔이 느끼는 감각은 간지럼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를 채운 것은 배가 조이고 성기가 아리도록 야릇한 성감이었다. 이젠 이림범의 혀와 입술이 제 몸의 어느 부위에 닿을 때마다, 괜스레 엉덩이에 힘이 들어가고 뒷구멍을 꽉 조이게 됐다. 간지럽다는 말은 변태적인 충동을 숨기기 위한 변명에 불과했다.
정처 없이 흔들리던 하련솔의 시선이 이림범의 두 눈에 닿았다. 그와 시선을 마주친 순간 하련솔은 그 눈길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마주 볼 따름이었다. 맹렬한 눈빛에는 진솔한 애정과 성욕이 한데 엉켜 있었다. 찌걱찌걱, 가쁜 소리를 내며 이림범이 손을 빨리 움직였다. 그의 손에 붙들려 그의 성기를 움켜쥔 하련솔의 손바닥은 거의 뜨거울 지경이었다.
우물쭈물 입술을 움직이면서도 하련솔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림범 또한 그의 두 눈을 노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내 이림범이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추켜들었다. 하련솔은 제 손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더운 정액을 홀린 듯 내려다봤다.
“아, 기분 좋아…. 형.”
이림범이 중얼거렸다. 하련솔은 제 사타구니로 옮겨오는 그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힘이 풀린 두 눈을 내리깔며 제 몸을 탐닉하는 두 손을 고스란히 느낄 따름이었다.
“응…. 응, 기분 좋아. 범아….”
이림범의 흥분이 옮은 듯, 하련솔은 마치 제가 토정한 것 같다는 착각에 빠졌다. 취한 사람처럼 정신이 알딸딸했다. 두 팔 뻗어 그는 이림범의 굵은 팔뚝과 가슴, 목덜미를 쓰담쓰담 어루만졌다.
그러자 이림범이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곧바로 입을 열었으나,
“사랑해.”
고백은 그가 아닌 하련솔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
기쁜 말을 새치기 당한 탓에 이림범은 입을 다물고 행복을 만끽했다. 그러곤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도, 형…. 사랑해. 내가 많이 사랑해.”
“응….”
“많이, 많이 사랑해.”
“응.”
이림범은 이 감각을 사랑했다. 하련솔의 뺨이 제 어깨에 맞닿아 붙는 감각, 하련솔의 입김, 혹은 한숨이 제 솜털을 서게 하는 감각, 하련솔의 심장이 제 가슴 바로 앞에서 콩콩 뛰는 감각, 이따금은 제 귀가 아닌 심장에 대고 속닥거리는 비밀 대화들….
“근데 있잖아, 범아. 너 기다릴 때 나 혼자 있는 건 심심해서 별로야.”
“…….”
고양감에 취해 있던 이림범의 정신이 뚝 현실로 돌아왔다.
“…그 이야길 지금 한다고? …지금?”
당혹감에 머릿속이 띵해진 채 이림범이 되물어도,
“응….”
하련솔은 아주 뻔뻔했다.
“난 다른 애들이랑 밖에서 수다도 떨고, 장난도 치면서 기다리는 게 더 재밌고 좋아. 앞으로도 그러고 싶은데, 그래도 되지?”
종알종알, 또 또박또박 건네 온 말은 형식만 질문일 뿐이지 일방적인 통보였다. 성감의 여운에 취해 이토록 행복한 순간, 그토록 예쁜 얼굴에 젖은 입술을 벙긋거리며 청해 온 말을 어찌 거절하겠는가.
“형….”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며 이림범은 한숨 쉬었다.
“형은 베갯머리송사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하하.”
“누가 알려 준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조련을 잘하지?”
“그래도 돼, 안 돼?”
“돼…. 그래, 마음대로 해.”
그러면서 이림범은 하련솔을 괜히 꽉 끌어안았다. 그렇게 하면 하련솔의 웃음마저도 제 품 안에서 들썩이는 촉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랑스러운 애인의 보드라운 뺨에 수백 번째 키스하며, 이림범은 질투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흘렸다. 그러면서도 앞으로는 남의 옷고름을 만져 주지 말라는 잔소리를 또 한 번 덧붙였다. 하련솔은 또 다른 들썩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저를 채운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또 사랑스러운 이 밤, 이림범은 내심 하련솔을 걱정했다. 입 밖으로는 그의 모든 것을 칭찬하고 또 아끼면서도, 마음 안으로 그는 요즘 하련솔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점심이면 맥이 풀린 사람처럼 고단해 보였고, 저녁 식사 후에는 졸린 나비처럼 온몸에 힘이 없었다.
가장 큰 특징은 그가 아주 외로워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 외로움은 황제로서, 연인으로서, 부부로서 제가 채워 줄 수 있는 종류의 외로움이 아니었다. 그의 발치를 지키는 귀염둥이 더덕이가 채워 줄 수 있는 외로움이 아니었고, 산책로에 옹기종기 모여 선 어린 무화들이 채워 줄 수 있는 외로움 또한 아니었다. 오래된 가족이자 하나뿐인 혈육인 그의 아버지가 채워 주어야 할, 다른 빛깔의 외로움이었다.
지나간 날, 하련솔이 제 아버지와 재회한 직후 무척 피로해하고 지쳤더라는 소식은 이림범이 가장 먼저 들어 알았다. 애초에 새로운 손님을 문정궁에 초대하기에 앞서 승정원 도승지와 긴긴 의논을 거친 그였다.
하련솔 앞에서, 이림범은 그 일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척 연기했다. 하련솔이 다시 만난 제 아버지에 대해 그다지 말하고 싶어 하질 않는 듯 보여서였다. 기껏 재회한 아버지와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눠 보질 못하고, 설레어 준비한 선물조차 건네질 못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이림범을 답답하게 하는 건 그가 그런 종류의, 부모를 향한 그리움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내란 점이었다. 특히나 아버지를 향해서라면 그는 평생 긍정적인 감정을 느껴 본 일이 없었다. 때문에 하련솔의 마음을 추리만 할 뿐 진심으로 이해하긴 어려웠다.
그나마 승정원 도승지, 그 까칠한 양반이 하련솔을 좋아하게 되어 그 나름의 위로를 건넨 소식은 들어 알았다. 그에게 오래전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들이 있어, 만일 살아 있었을 경우 딱 하련솔의 나이라는 사실은 황제인 이림범을 제외하면 내로라하는 공신조차 모르는 일이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뭔가 어색했나?’
공백으로 채워진 시간이 그들 부자를 서먹하게 만든 걸까, 이림범은 홀로 추측했다.
‘…그럴 수가 있나. 나도 느낀 적이 없는 어색함을 부모가 느낄까?’
애초에 아버지와의 관계는 서먹함 그 자체인 이림범으로선 알 길이 없었다.
이림범이 할 수 있는 일은 도승지의 조언에 따르는 것뿐이었다. 그저 저만의 방식으로 하련솔을 위로하는 일.
“형. 밖에 눈 온다.”
하련솔의 정수리에 턱을 괴고서 이림범이 말했다. 그러자 하련솔이 ‘어’ 하고 고개를 휙 들었다. 그 바람에 혀끝을 살짝 씹어, 이림범은 끙 소리 내며 앓았다.
“아, 미안. 미안. 눈 와? 어디?”
이내 두 사내는 소년들처럼 무릎으로 기어 창문 앞에 다다랐다. 이림범의 말마따나 창의 빛깔이 밤답지 않게 새하얬다. 기대감에 찬 하련솔의 얼굴을 힐끔 확인한 뒤 이림범은 두꺼운 무렴자를 걷어 올리고 창을 열었다. 그러자 새하얗게 물든 침전의 정원이 눈부시게 환했다. 마침 달도 밝은 보름이었다.
“와…!”
하련솔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눈송이 날리는 허공에 대고 팔을 뻗었다. 이림범은 벌떡 일어나 바삐 옷을 찾아 들었다. 더러워진 침의 대신 두툼한 새 옷을 꺼내다가 하련솔의 몸에 덮어 주고, 입혀 주기 위해서였다.
“예쁘다….”
코끝이 발긋해진 채 하련솔이 웃었다. 이림범은 눈 내리는 풍경보다는 하련솔의 얼굴을 홀린 듯 감상했다.
그러곤 고민하기를 수 초,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제안을 했다.
“우리 당장 나갈까? 눈 구경하러?”
하련솔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두 눈이 초롱초롱해진 채 그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림범을 돌아봤다. 그 눈빛에 실린 확실한 대답이 있어, 이림범은 침의를 대충 걸치며 시종을 불렀다. 산책을 나설 테니 두꺼운 겨울옷을 가져오라고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