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2
저를 맞이한 시종의 반응에 대해선 아랑곳도 하질 않고, 사내는 병상에 누운 제 아들을 향해 비틀비틀 다가갔다. 그러곤 마련된 방석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허리를 한껏 숙이며 그는 눈을 감은 하련솔의 얼굴을 살폈다.
보름 전, 교태전에 처음 방문하여 제 아이를 만났을 때, 그는 크게 안도했었다. ‘하련솔’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목소리며 낯빛에서 건강한 기운이 묻어났기 때문이었다. 오늘, 난데없이 병상에 누워 원인도 모르고 아프다는 하련솔의 모습은 그로서는 오래된 악몽처럼 친근하고 또 마음 아팠다.
“솔아.”
작은 소리로 제 아이를 부르며 그는 면구스러운 사람처럼 고개 숙였다.
“은재야….”
그리고 낡았다는 느낌이 일 정도로 묵혀 온 이름을 말했다.
“네.”
그 순간 하련솔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러곤 제 이마를 향해 아련하게 뻗은 아버지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앉는 태도에는 탄력마저 있어, 앓아누운 병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갈색으로 반짝이는 눈동자엔 총기가 실렸고 두 뺨의 홍조 또한 열병이 아닌 혈기에 의해 발긋했다.
당황하여 뒤로 물러서려는 아버지를, 하련솔은 아주 단단히 붙잡아 만류했다. 열렬한 아귀힘에 손을 잡힌 아버지는 소리 없이 입을 벙긋거리는 듯하다가, 이내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았다. 수 초 뒤에는 제 아들이 저를 속인 이유 또한 유추해 냈다.
“…은재야.”
또 한 번, 그는 낡은 이름으로 제 아들을 불렀다. 그리고 고개 숙였다.
“미안하다.”
대뜸 떨어진 사과에 하련솔은 어째선지 맥이 빠졌다. 그는 꼭 쥐었던 제 아버지의 손을 천천히 놓았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불러들이고 또 붙들고 싶던 사람인데, 죄인처럼 고개 숙인 모습을 보니 차라리 놓아주고 싶어졌다.
잠시나마 어린 이은재가 되어 하련솔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그를 향해 아버지는 낯선 말을 했다.
“네가…. 네가 너무나 달라져 있어 마음이 아파 그랬다.”
“…….”
그 소리에 하련솔은 교태전의 풍경과 제 옷차림을 먼저 생각했다. 가난하고 박복하던 한솔 시절의 그 자신과는 확실히 달라지긴 했다고 말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가난뱅이 한솔과 총애받는 하련솔의 차이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하련솔의 얼굴에 가 꽂혔다.
“머리 색도, 눈 색도… 피부색까지 다 달라졌어. 너무 많이 변했어. 무화가 되어 잘 지낸다더니…, 내가 너무 오랜만에 너를 보아 그런 건지, 나는 전혀 모르겠다. 내 눈에 너는 전보다 더, 많이 말랐어.”
부모에게 있어 자식은 자라나야 마땅한 존재인데, 그의 아들은 희석되고 작아지기만 했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다. 뼈가 저리고 심장이 찢어졌다. 아버지를 위해, 자진하여 집을 떠난 ‘한솔’이 있었다. 그가 기억하기로는 한솔 역시 건강하진 못한 아들이었다. 그래도 이렇게나 색이 옅고 마른 청년은 아니었다. 부모 없이 홀로 살아온 세월 내내, 얼마나 자주 앓고 힘들었을까. 지나온 고생의 시간이 절실히 느껴졌다.
그래서 미안했다. 도저히 똑바로 바라보고 있을 수가, 맨정신으로 그 변화를 직시할 자신이 없었다.
“은재야. 아빠는….”
무당의 말에 의하면 저주를 받고 살을 받았다던 아들이 자진하여 떠난 뒤에 그는 행복해졌다. 마음으로는 피눈물을 흘렸고 ‘사람을 찾습니다’ 전단지를 수백 수천 장 돌려 가며 아들을 찾고자 노력했지만, 수색에 실패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의 삶은 점차 나아졌다. 본래부터 그는 수완이 좋은 사람이었다. 영문 모를 사고도 당하지 않고 자주 아픈 자식도 없고, 도둑맞은 물건들을 하나둘 돌려받게 되자 그는 반년 만에 가난에서 벗어나게 됐다. 대출금을 전부 갚고 통장에 돈이 쌓이기 시작하니 무척 얼떨떨했다. 그리고 슬펐다.
마음에 난 구멍을 메우기 위해 그는 기부와 봉사를 시작했다. 제가 낸 기부금이 흘러 흘러 한솔에게 닿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보육원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그의 직업이 됐다. 그렇게 살길을 찾았고, ‘한솔’을 찾기도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었다.
“…아빠는 혼자, 내 살길을 찾았어. 몇몇 아이들한테는 오래 정이 들기도 했고, 새 자식처럼… 생각하기도 했고.”
이제 와 돌이켜 보면 그는 늘 한솔을 찾아다녔다. 저를 위해 절 떠난 제 아들, 한솔을 만날 방도가 없음을 알고는 그를 대체할 존재라도 찾았던 것이었다. 그건 결코 순수하진 못한 봉사였다. 사실 보육원의 아이들로부터 진정한 위안을 받은 건 오히려 그였다.
“…네가 다시 날 찾을 줄은, 몰랐다. 솔아. 네가…, 네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의 말에는 거짓 한 점 없건만, 그는 제 말이 변명에 불과하다고 여기며 자책했다. 그만큼 부끄럽고 자신 없는 아빠였다. 아픈 아내와 귀여운 아들을 이끌고 고야읍에 새집을 짓던, 삶의 두 번째 서막 앞에서 들떠 하던 남자는 이제 없었다.
매달 1일마다 그는 서울에 존재하는 큰 병원에 전화를 돌렸다. 자그마치 7년간 그래 왔다. 신원 미상의 사망자 중에 혹시 이은재, 혹은 한솔이 있을까 봐 그랬다.
“내가 보고 싶었어요?”
긴긴 이야기 끝에, 하련솔은 단 한 가지 질문을 꺼냈다. 짧은 물음이 그의 아버지를 기어코 울게 했다.
“보고 싶었지…. 너무 보고 싶었어.”
그러면서 그는 하련솔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연신 어루만지고 또 쓰다듬으며 보듬었다.
“하지만… 은재야. 널 보고 싶어 하면서도 아빠는… 잘 지냈다. 너 없이 너무나 잘 지냈어. 그게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눈물 적셔 전해 온 소리에 ‘은재’는 애써 웃었다. 이가 보이도록 보란 듯, 일부러 크게 웃으면서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곤 오래전 어머니의 입버릇을 빌려 썼다.
“미안할 일도 참 많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가 코 먹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큭큭, 흑흑… 울음과 웃음이 뒤섞인 소음이 침실을 가득 울렸다.
잠시간 숨을 고른 끝에 하련솔은 무릎 위를 감싼 이불을 치웠다. 아버지를 바라보며 몸을 돌려 앉아, 양반다리를 하고 눈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크게 웃어 댄 탓인지 혹은 울음을 참아서인지 알게 모르게 입술이 떨렸다.
“그럼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해요…. 나한테서 도망치지 말고요.”
까치발로 실낱 위를 걷는 듯 떨면서 건넨 말끝에, 그는 제 아버지의 새하얀 정수리를 볼 수 있었다.
“은재야.”
고개를 깊이 숙이며 건넨 부름에,
“응, 아빠.”
이은재가 대꾸했다.
“은재야. 미안하다…. 아빠가 잘못했다.”
“괜찮아요.”
은재와의 화해는 참 쉽다. 예전부터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은재는 무슨 손해를 입건 오래도록 마음 안에 담아 두는 법이 없다. 그런 면은 참 제 엄마를 빼닮았다.
“이제 됐죠? 이제 우리 화해한 거예요.”
그런 은재의 장점조차 아버지에게는 한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부모가 되어서는 하는 일이라곤 용서를 받는 것밖에 없다. 그는 그게 두려웠다. 기껏 재회한, 애달프게 그리워해 온 아들을 기피했을 정도로, 그는 아무런 자격도 양심도 없이 용서받는 일이 무서웠다.
“아빠.”
그런 그를, 눈물범벅이 되어 어깨가 흔들리도록 엉엉 우는 아버지를 은재는 다음 페이지로 데려가고자 했다.
“나도 드릴 말씀이 있어요. 아빠한테 제일 먼저 말해 주고 싶었어요.”
이은재가 아닌 하련솔의 얼굴을 하고 앉아, 그는 아버지의 울음이 뚝 그치도록 커다란 말을 화살에 매달고 활을 당겼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활시위를 놓았다.
“아무래도 나 임신한 거 같거든요.”
양달
더덕이는 ‘마중 산책’과 ‘산책’의 차이를 확실히 알았다. ‘마중’이라는 단어를 이해한다기보단 하련솔의 복장에 따라 산책 경로를 구분하는 식이었다. 하련솔이 두툼한 외투에 목화를 신고 빠르게 나설 때면 교태전 안뜰에서 노는 간단한 산책 시간이었다. 반면 하련솔이 두툼한 외투에 목화, 볼끼 붙은 남바위, 토시에 장갑까지 끼고, 저에게도 성가신 강아지 옷과 산책용 하네스를 채워 나선다면 그때는 문정궁 정문까지 멀리 나서는 마중 산책이었다.
더덕이는 산책이라면 어디를 가건 좋아하는 건강한 강아지였는데, 마중 산책을 특히나 좋아했다. 물론 친근한 공간인 교태전 안뜰을 뛰노는 것도 아주 즐거웠다. 하지만 마중 산책을 나설 때는 그 외출에 목적지가 있고, 또 그곳엔 저를 예뻐해 주는 아청원이며 해은해가 있기에 더욱 신이 났다.
그러나 오늘, 더덕이는 마중 산책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네 발에 채워진 작은 신발이 어색한 탓이었다. 마음껏 나무 냄새를 맡으며 요리조리 뛰려다가도 자꾸만 우뚝 멈추었다가 뒤뚱뒤뚱 걷게 됐다.
“미안해, 더덕아.”
네발 동물의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하련솔이 속삭였다. 제 개에게만 들리도록 작은 소리였다. 그 속삭임을 훔쳐 듣는 일은 언제나 초롱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