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36)

(3) 

‘띠리리~’ 

"여보세요?“ 

주말이라 특별히 할 일도 없어 집에서 뒹굴고 있던 난 핸드폰이 울리기 무섭게 받았다. 

[나 태식이다.] 

허걱! 제수 털렸다. 발신자 확인도 안하고 받은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뭔일이냐, 택시?” 

[씨발. 내가 택시라고 하지 말랬지!] 

“내 맘이다.” 

암~ 그렇고 말고. 내 사소한 즐거움 중 하나를 그리 쉽게 포기할 순 없지. 물론 작은 후환이 뒤따른다는 것은 사소한 문제고.... 

[후~ 좋아... 맘 넓은 내가 참는다. 오늘 시간 있지? 너 집에서 팽팽 놀고 있는 거 아니까 8시까지 ‘바이올렛’으로 와. 안 오면 알아서 해라. 그럼.] 

‘탈칵’ 

“뭐? 야! 야! 빌어먹을 택시놈아~!”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버리는 놈을 급하게 불러봤지만 이미 끊긴 전화는 대답이 없다. 

핸드폰을 닫고 거칠게 머리를 뒤로 쓸었다. 

‘이 새끼가 또 무슨 일을 꾸미는 거야.’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분명 나한테 이득 될 것 하나 없는 일임이 뻔했다. 

‘하지만 나 모르는 곳에서 뒷 공작을 펼치는 것 보다야, 내 눈앞에서 펼치는 게 덜 찜찜하니 나가봐야겠지?’ 

‘피식’ 

이런 것도 이력이 생기는 것일까. 아니면 적응해 버린 것일까. 옛날에 비해 덤덤히 받아들이는 내 모습에 왠지 자조적인 웃음이 났다. 

어쨌든 오늘은 또 무슨 일을 벌일지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가볼까. 

내 단골 게이바 중 하나인 ‘바이올렛’에 들어가자 가증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나에게 손짓을 하는 태식이놈이 보였다. 

‘내가 왜 학교에서 네 면상 보는 것도 모자라 금쪽같은 주말에까지 봐야 되는 거냐고~~’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겨 테이블로 가니 그놈 옆에 웬 모델같이 잘생긴 남자 하나가 떡하니 앉아있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는 카탈로그에 막 뛰쳐나온 것 마냥 멋들어지게 옷을 입고 있었다. 

“어서와~ 지운아. 민규씨, 이쪽은 내 절친한 친구 지운이야. 지운아, 이쪽은 내 애인인 민규씨. 사귀자마자 너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어서 이렇게 불렀어.” 

‘절친한 친구가 아니라 절친한 왠수겠지!! 저 뻔뻔스런 면상에 주먹한방만 꽂을 수 있다면 정말 소원이 없겠다.’ 

“안녕하세요. 한 지운입니다.” 

떨떠름하게 인사를 한 후 대충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곧이어 여우같은 놈이 왜 날 불렀는지 알 수 있었다. 

“지운아~ 우리 민규씨는 벌써 △△회사에 실장 인거 있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능력을 인정받고... 정말 부러워~ 우리는 언제 졸업해서 성공하냐.” 

‘너만 없었으면 난 세계정복을 하고도 남았다.’ 

“후후~ 별 걱정을. 우리 태식이는 졸업하자마자 여기저기에서 데려가겠다고 난리일거야. 그리고 데려가는 곳 없어도 내가 평생 먹여 살릴 테니까 걱정마.” 

‘허거걱! 닭살!! 저 남자 생긴 거랑 다르게 열라 느끼해!!!’ 

팔을 북북 긁고 싶은 심정을 애써 누르며 난 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정말 맨 정신으로 들어주기 힘들었다. 

“아잉~ 몰라, 민규씨~ 지운이도 있는데 그런 말 하면 어떡해~” 

‘몇 년을 봐온 네 연기력은 정말 매번 봐도 질리지가 않는구나... 헐리우드 진출하면 오스카는 따 논 셈일 거다.’ 

“민규씨 주위에 괜찮은 사람 없어? 지운인 여태까지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해봤거든... 얘가 숫기가 없어서 사람을 잘 못 사겨. 

나만 이렇게 민규씨 만나서 행복하니까 미안한거 있지.” 

‘누구 때문인데 개놈아~! 그래그래~ 네가 오늘 내 염장을 지르려고 날 불렀구나.’ 

그 뒤에도 이 제수 없는 커플은 끊임없이 내 앞에서 닭털을 날렸고, 여우새끼의 잘난 애인 자랑은 계속되었다. 

“잠시 실례할게요.” 

“앗! 민규씨 어디가?” 

“화장실 좀 갔다 올께.” 

“잉~ 빨리 와야 돼~” 

“훗~ 그래.” 

화장실 가는 것까지도 닭털을 날리는 두 인간을 보며 난 그저 묵묵히 맥주만 들이켰다. 이상하게 술기운이 돌기는커녕 정신만 맑아진다. 

“우리 민규씨 어때?” 

민규씨가 자리를 비우자 태식이놈은 얼굴을 싹 바꾸며 본색을 드러냈다. 아마 이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겠지. 

“잘생겼지, 매너 있지, 능력 있지... 너 같은 건 평생가야 구경도 못해. 오늘 많이 봐두라고.” 

‘빠직’ 

“넌 허우대만 멀쩡하지 멋대가리는 드럽게 없잖아. 그러니까 매번 나한테 뺐기지. 킥킥.” 

‘빠지지직’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나한테 온 놈들이 하나 같이 그러더라. 멀대 같이 크면 귀여운 맛이라도 있어야 되는데 넌 전혀 없이 뻣뻣하기만 하다고. 

섹스 상대도 아닌 이야기 상대를 찾으러 왜 게이바에 오는지 모르겠다고. 다들 네 면상에만 속아서 접근했다가 지루한 네 이야기 들어주느라 죽는지 알았다더라. 

킥킥. 병신들. 그러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 다니까. 평생 그 꼴로 살아봐라. 누가 널 사랑해 주는지.” 

이런 건 생각지도 못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왔건만 그의 말이 하나같이 비수가 되어 여지없이 내 가슴을 난도질 했다. 

지금까지 더 심한 말을 들어왔어도 이처럼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가슴 아프지는 않았다. 

억울했다. 분했다. 내가 저놈에게 뭘 그리 잘못해서 이리도 내 인생을 잡고 뒤흔드는 것일까! 왠지 눈가가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지끈지끈’ 

불편한 자리에서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셨는지 머리가 아파왔다. 

“왜? 내가 틀린 말 했어?” 

잔인한 자식은 분노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날 끝까지 쏘아붙였다. 난 녀석을 힘껏 노려봤지만 그는 오히려 한쪽 입 꼬리를 끌어 올려 나에게 비웃음을 날렸다. 

“피식~ 억울해? 그럼 너도 잘난 애인 하나 보란 듯이 만들어서 증명해봐. 과연 가능할런 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은 못 참어!’ 

인정사정없이 내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태식 때문에 순간 난 이성이 ‘툭’하고 끊기는 걸 느꼈다. 

‘쾅!’ 

의자가 큰소리를 내며 거칠게 뒤로 밀리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지만 난 전혀 개의치 않았다. 

“네 잘난 애인보다 훨씬 잘난 애인 만들어 보여줄 테니 기다려라, 씨발새끼야.”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난 녀석에게 낮게 으르렁거린 후 몸을 돌렸다. 

물론 녀석이 눈 하나 깜빡 안한 체, 바를 나서는 나에게 비웃음을 날리고 있을 거라는 건 뒤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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