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요즘 들어 밖에서 돌아다닐 때 주위 남자들을 살피는 이상한 버릇이 생겨버렸다. 내가 얼마나 애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지금도 버스에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남자들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시선을 돌리고 한숨을 푹 쉬며 내 자신이 한심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나 참. 얼굴 반반한 남자를 봤다 치자. 나머지 두 조건은 어떻게 충족할 거고, 게이가 아니라는 건 어떻게 해결한다고.....’
하지만 그냥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기에... 어쩔 수 없으면서도 자꾸 시선이 가는 것이겠지.
태식이놈에게 난생 처음으로 큰소리 탕탕 친 만큼 이번 일만은 포기하고 싶어도 절대 포기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놈이라면 아마 이 일을 빌미로 날 평생 뼈째 씹어 먹고도 남을 인간이기에...
‘후우~’
그러니 답답한 마음에 늘어가는 건 한숨뿐이었다.
시간에 맞춰 호텔 앞에 도착했지만 형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안나온 듯 해 정문 양 옆에 있는 돌기둥 중 하나에 기대어 서 형을 기다렸다.
왠지 낙엽 냄새가 나는 듯한 시원한 가을바람에 잠시 눈을 감고 바람을 느꼈다. 며칠 째 시달린 내 마음을 달래주는 듯 했다.
‘음?’
다시 눈을 뜨니 정문 앞에 대기하고 있는 삐까번쩍한 외제차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고급호텔이다 보니 외제 차는 언제나 한두 대씩 서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지금껏 여기 올 때 마다 한번도 관심조차 두지 않던 차가 오늘따라 눈에 띈 이유는.....
최근 나에게 큰 영향을 키치고 있는 문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매끈하게 뻗은 검은색 차를 유심히 봤지만 창문이 모두 까맣게 썬틴 되 있어 안은 볼 수가 없었다.
‘저안에 잘생기고 성격 좋은 남자만 있으면 따~악 인데... 쩝...’
아쉬움과 함께 떠오른 생각에 내 스스로도 ‘헉!’ 하며 놀랐고 어이가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중증이다. 요즘 내 삶이 현제 고민을 중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하지만 아쉽게도 저 안에는 아마 배불뚝이 아저씨가 있겠지? 아니면 대머리 아저씨? 킥킥~’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체 혼자 웃고 있었는데... 너무 깊게 빠져 있었나보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우앗!”
멍하니 서있다 형이 다가오는 소리조차 듣지 못한 난 갑작스런 형의 목소리에 못된 짓 하다 들킨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버렸다.
“뭘 그렇게 놀라?”
“어? 아, 아냐.”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어 버렸다.
“흠~ 그래. 오래 기다렸지? 가자. 형이 맛있는 거 사줄게. 뭐 먹고 싶어?”
형이 이상하다는 듯이 날 쳐다봤지만 이내 가볍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 꼬리를 위로 부드럽게 말았다.
머리위로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면 나도 모르게 ‘헤~’ 웃어보였다.
큰형은 빼어나게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부드러운 얼굴선과 언제나 입가에 달고 있는 온화한 미소가 매력적이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간 푸근함을 느끼게 했다.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라는 형의 권유에 우린 함께 호텔로 돌아왔다.
은은한 커피냄새가 형의 사무실 안에 퍼져나갔다.
“우리 지운이 요즘 무슨 고민 있니?”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걱정을 담긴 듯한 큰형 특유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아니야...”
물론 애간장을 태우는 고민하나가 있지만... 동생이 게이라고 어떡케 자기 입으로 말하겠는가.
“그냥... 내년이면 나도 4학년이니까... 졸업하면 뭘 해야 하나 생각 좀 하느라고.”
생각나는 대로 대충 변명을 하자 형이 좀 안심한 듯한 얼굴이었다. 요즘 자주 멍했다, 인상 썼다,
울상이 됐다 한숨을 푹푹 쉬었다 하며 감정의 기복을 심하게 보였으니 아마 가족들이 적지 않게 걱정을 했을 것이다.
“지운 이는 성적도 좋은데다가 언제나 자기 맡은 일에 열심이니까 좋은 결과 있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마. 또 가족들이라는 든든한 빽도 있고.”
안심 시켜주려는 듯 형이 엷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지한이형은 장남이다 보니 언제나 책임감 강하고 믿음직스러워 막내인 날 언제나 잘 보살펴주고 아껴주었다.
“응. 고마워 형.”
물론 그런 고민을 했던 건 아니지만 날 믿고 격려해주는 형 덕분에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똑똑’
다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네, 들어와요.”
“어? 손님이 계셨네요.”
형의 말에 문을 열고 들어오던 호텔 유니폼 입은 남자가 날 발견하곤 말했다.
“아. 인사해요. 내 막냇동생인 강 지운이에요.”
자신의 아래 직원들에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게 왠지 큰형답다고 생각하며 가볍게 목례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야~ 지배인님에게 이렇게 이쁜 동생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반가워요. 최 현호라고 해요.”
현호란 남자가 나에게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면 싹싹하게 인사를 해왔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가 잘생겼다는 말보다는 남자답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듯 싶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온 거죠?”
“아! 주방에서 셰프(Chef)가 지배인님을 찾으시는데요.”
형의 말에 여기 온 용건이 생각난 듯 나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잽싸게 말했다.
“음... 뭔가 문제가 생겼나? 알겠어요. 가보도록 하죠.”
형이 나에게 미안한 얼굴을 지어보였다.
“미안 지운아. 형이 가봐야겠다. 천천히 커피 마시다가 가. 알았지?”
“응. 걱정 말고 가봐.”
“그래. 그럼 나중에 집에서 보자.”
“응.”
형과의 인사가 대충 마무리 되자 이번에는 현호씨가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를 해왔다.
“그럼 동생분 나중에 또 봐요~”
“아...네. 담에 뵈요.”
가볍게 경례 비스무리 한 것을 하는 그에게 어색한 인사를 되돌렸다.
그리고 그의 능글스러운 인사를 마지막으로 형과 현호씨는 사무실을 나갔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혼자 뻘쭘하게 있기도 뭐해서 나도 바로 잔을 비우고 대충 정리한 후 곧 사무실을 나왔다.
정문을 나서는데 검은색 자동차하나가 매끄럽게 굴러와 문 앞에 섰다.
‘어? 저차 아까...’
느낌에 내가 아까 형을 기다리는 동안 쳐다봤던 그 차 같았다. 아까 혼자 상상했던 것도 있고 해서 잠시 누가 내리는지 보기로 했다.
도어맨이 재빨리 차문을 열어주자 기다란 다리 하나가 쑤욱 빠져나왔다. 매끈하게 뻗은 다리는 내가 상상했던 아저씨의 다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몸이 긴장됐다. 공모전 같은 데서 대상발표를 기다리는 그런 긴장감.
곧이어 그 다리의 주인이 차에서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헉’ 하고 숨을 들이키는 동시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심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