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36)

(7) 

‘헉! 이게 아닌데!’ 

긴장한 나머지 너무 직설적으로 말이 나가버렸다. 

“아.. 저..그러니까.. 그게 아니고... 내 말은... 그러니까...” 

말해놓고 내가 더 당황해버려 어쩔 줄을 몰랐다. 

아까의 비장한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난 얼굴을 붉히고 할 말을 찾지 못한 체 말만 더듬었다.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쿡쿡~” 

욕이 날아오거나 하다못해 주먹이 날아오지 않을까라는 내 생각을 여지없이 깨고 그의 짧고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지만 언제 웃었냐는 듯이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어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런데... 

색소가 옅은 갈색 눈이 왠지 장난스럽게 빛나는 걸로 보이는 건 왜일까? 

“우선 따라오지.” 

“네????” 

비스듬히 기대던 몸을 일으키니 내 키가 상대적으로 훨씬 더 작아지는 걸 느껴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헉! 혹시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순간 떠오르는 상상에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는 걸 느꼈다. 

“아, 저. 그게... 아니에요.. 제가 사람을 잘못 봤네요, 저 이만 가볼께요오오오.....” 

말도 안 되는 핑계로 황급히 둘러대 자리를 빠져나오려 했지만.... 곧 그의 인상이 위협적으로 구겨지는 걸 보자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갔다. 

“저...왜요....?” 

“.........” 

나름대로 용기를 내어 의도를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건 묵묵한 침묵이었다. 

“따라와.” 

“......네....” 

그의 매서운 눈빛에 몸은 점점 위축되지... 심장은 점점 콩알 맹해지지... 차마 더 이상은 버틸 용기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목소리와 몸에서 왠지 모르게 거역할 수 없는 단호함과 절대적인 힘이 흘러나오는 걸 느껴 더욱 거부할 수 없었다. 

또한 다짜고짜 처음부터 내게 반말을 찍찍 날리는데도 뭐라 할 수 없는 그런 당당함 역시.... 

그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니 VIP 들만 머문다는 펜타하우스 꼭대기 층에서 내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생전 처음 보는 화려한 룸이 눈에 띄었지만.... 

난 감상 할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초긴장을 한 상태였다. 

‘어쩌자고 따라왔어!’ 

아무리 속으로 울부짖어봤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문 앞에서 어정쩡하게 서서 머리만 쥐어뜯고 있는데 어느새 그가 양복을 벗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왔다. 

‘평상복도 멋있구나.... 아이씨! 이게 아니잖아! 정신 차려, 강 지운!’ 

“앉지.”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푹신해 보이는 소파에 몸을 묻은 체 나에게 자리를 권했다. 

삐죽삐죽 다가가 만일에 경우 언제라도 도망갈 수 있도록 소파 끝에 엉덩이만 걸쳐 앉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난 시선을 어디다 뒤야 하는지 모른 체 무릎위에 손을 모아놓고 손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었고, 그는 내 몸을 꽤 뚤 것 같은 강렬한 시선으로 날 주시하고 있었다. 

“좋아. 우선 이름.” 

숨 막히는 침묵을 깨고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네?” 

앞뒤 모두 잘라먹은 뜬금없는 말에 잠시 뭔 소린가 생각하다... 곧 내 이름을 묻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 저... 강 지운입니다.” 

“강 지운. 나이는?” 

‘뭐, 뭐야? 마치 심문하는 거 같잖아.’ 

“....24살이요.” 

“아직 학생?” 

“네...” 

뭔가 기분이 점점 이상해졌다..... 

‘왜 이런 걸 묻는 거지? 경찰인가?...........헉! 혹시 명예훼손죄(?) 로 신고하려는 거 아냐? 우어엉~ 어떡해~’ 

“좋아. 두 가지 조건이 있다.” 

“네?” 

다시 들리는 목소리에 움찔하고 놀라며 나도 모르 게 새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기간은 내가 한국에 머무는 한 달 동안이며...” 

“에?” 

“그 전에도 내가 맘에 안 들면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다.” 

‘이게 도대체 뭔 소리야.......’ 

“이 두 조건에만 동의한다면 그쪽 애.인.이 돼주지.” 

“네에에에??”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나오자 애초의 원인 제공자였던 내가 되려 놀라 내 귀를 의심했다. 

‘헉! 지금 저 남자가 뭐라 하는 거야?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어?’ 

헛것을 들은 건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들은 게 맞는 듯싶었다. 

무엇보다도 아까의 긴장감 들게 하던 무거운 분위기와는 틀리 게 그가 나를 향해 장난스런 눈길을 보내고 있었으니.... 

결국 곧 상황 판단이 된 나는 내가 제대로 들었음과 동시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이판사판으로 눈 질끈 감고 무작정 달려들었는데 그게 지금 황당하고 감격스럽게도 성공했다는 소리라는 뜻이었다. 

아무 말도 못한 체 그저 이 뜻밖의 상황에 멍청히 입만 벌리고 있는 내 귀로 곧 그의 웃음기 담긴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싫으면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아뇨! 좋아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혹시라도 무른다고 말이 나올까봐 난 다급히 두 손을 저보인 후 바보같이 허리를 깊숙이 숙여 깍듯이 인사까지 해버렸다. 

그러자 곧 그의 바람 빠지는 듯한 짧은 웃음소리가 ‘쿡~’ 하고 들려왔다. 

‘제기랄... 내가 생각해도 왠지 바보 같다.’ 

민망한 마음에 다시 한번 얼굴이 빨개지는 걸 느껴 고개를 푸~욱 수그렸다. 

생각해보면 한 달 만이라는 그의 조건은 오히려 나에게도 잘됐다. 어쨌든 내 목적을 위해서 이 남자를 이용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한 준혁.” 

그런 내 생각을 방해하는 바리톤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이는 스물아홉. 현제 사업차 한국 방문 중. 그럼 앞으로 잘 해보자고, 애.인.씨.” 

마지막에 한쪽 입술을 ‘씨익~’ 하고 끌어올리는 모습에 황홀함, 불안감, 안도감이 모두 동시에 드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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