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36)

(8) 

그렇게 나 강 지운 24년 일생에 처음으로 애.인.이 생겼다. 

그런데 처음 그가 허락했을 때 간과한 두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하나는.... 

그는 내 앞뒤 사정을 듣지도 않고 애인이 돼준 것이라는 거다. 

그 뜻은 즉 그는 애.인,역.이 아닌 정말 애.인.이라는 소리고, 그 역시도 날 진짜 애인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럼 그도 호모였단 소린가? 아니면 바이?) 

물론 한달이라는 기간동안이기에 부담은 덜었지만 그래도 사귀는 건 사귀는 거다. 

하지만 솔직히 다른 사람들이 봐도 반할 정도로 그는 무척 멋있고 매력적이었다. 

그러니 탁 까놓고 말해서 그런 남자를 사귄다는 사실에 은근히 기대가 일었다는 건...... 

부정 않겠다. 

나쁘지 않은 경험이라는 생각에 이왕 이렇게 된 거 편하게 생각하고 즐기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마음은 주지 말고! 그야 말로 그냥 이 상황을 즐기자는 말이다. 

그는 어차피 한 달 후에 떠날 사람이니 괜히 마음을 줬다가는 분명 나만 다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애인이라면 부과 적으로 따르는 애정행각 이라든지 스킨십을 더불어 애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한다는 얘긴데.... 

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저런 고민이 무색하게 그는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정말 미치고 환장하게도 준혁이라는 남자는 애인은 곧 자신의 시종이라는 공식을 가지고 있는 듯싶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 모양이던지.... 

(아마도 둘 다 인 것 같다......) 

그를 처음 만난 날 그에게 내 핸드폰 번호를 알려준 후 얼떨떨한 기분으로 집에 왔을 때까지도 난 여전히 믿기지가 않았었다. 

그리도 찾아 헤매던 이상형을(물론 태식이놈을 기죽일 이상형).... 그것도 최상급으로 이리도 우연찮게 또한 황당하게 구하게 되었으니 어찌 뺨을 꼬집지 아니하겠는가. 

그.러.나. 

여기서 내가 간과한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성격이었다. 

그가 중요한 요건 중 외모와 능력을 갖췄기에 자연히 나는 그를 완벽한 이상형으로 단정해버린 것이 문제였다. 

만일 점수를 주자면.... 

외모 100점 

능력 100점 (아마도?) 

하.지.만. 

성격은 -200점으로 앞의 점수들을 모조리 깎아먹는다고 볼 수 있다. 

역시 3박자가 모두 맞는 완벽한 인간은 세상에 없다... 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 인간이었다. 

그를 만난 다음날... 그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나오라고 했을 때는 내가 꿈을 꾼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수업까지 재낀 체 나름대로 멋에 신경을 쓴 후 들뜬 마음을 달래며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깔끔한 세미케쥬얼로 옷을 입은 준혁씨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유유히 커피를 마시며 창 밖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또 얼마나 멋지던지.........)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해준 뒤 난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내 기척을 느꼈는지 그가 고개를 돌렸다 

“저... 오래 기다리셨어요?” 

솔직히 약속시간 10분전이었지만 예의상 물으며 자리에 앉으려고 몸을 반쯤 구.부.렸.는.데........ 

‘어, 그러니 빨리 가지’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유유적적 카운터로 가버리는 것이다!!! 

그 덕분에 난 앉으려다만 어정쩡한 자세로 그만 굳어버리고....... 

‘뭐, 뭐지?????’ 

당황스러운 마음에 빨리 정신을 수습하고 그의 모습을 찾았는데 어느새 계산을 하고 커피숍을 나가버리는 준혁씨를 발견하자 황급히 그를 따라 나갔다. 

그때는 약간 기가 차고 어이가 없었어도 그저 그가 날 정말 오래 기다려서 화가 났나보다 하고 넘어갔다 ..... 순진하게도................ 

하지만 그렇게 커피숍을 나온 후 그는 나를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쇼핑을 하기 시작했는데..... 

내게 선물하느라? 

천만에 말씀! 

그는 열 불나게도 날 짐꾼으로 쓰기 위해 부른 것 이었다!!!! 

그가 간곳은 명품숍들이 모여 있는 거리였는데 그가 한 가게 안으로 들어갔을 때만해도 별생각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저 부자들은 역시 틀리구나... 라는 생각정도? 

숍에 들어가자 여직원이 우리를 보고 얼굴에 꽃을 단체 옆에 붙어 아양을 떨며 이옷저옷을 건네기 시작했다. 

난 나에게 옷 한 벌을 권하는 여직원을 만류하고 그가 옷을 고르는 모습을 그저 구경만 하고 있었다. (내가 무슨 돈이 있어서..........) 

한참을 그렇게 있었는데 다 골랐는지 그가 나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보통사람이 그랬으면 손가락을 분질러버리고 싶었을 텐데........ 

왜 이 남자 앞에서는 기를 못 피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눈치를 슬쩍 보고 쭈뼛쭈뼛 거리며 다가갔는데....... 

‘들어’ 라고 명령조를 말하며 그가 가리킨 곳에는......... 

2개의 양복가방과 2개의 쇼핑백이었다. 

‘뭔 옷을 저렇게 많이 샀어!!!!!’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지만 돌아온 것은 예의 그 거역할 수 없는 기운을 풍기는 그의 묵묵한 눈빛이었으니.......... 

난 슬쩍 꼬리를 내리고 가방을 주섬주섬 들었다........ 

그 후로도 이 인간은 한국 올 때 달랑 몸만 왔는지 구두, 넥타이, 벨트 등등 완전 새살림을 차릴 기세였고 매번 모든 짐들은 나의 몫이었다는 건 두말할 필요 없다. 

지금까지 난 나름대로 힘 좀 꽤 쓴다고 여겨왔었다...... 그런데 두 팔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그는 나에게 많은 짐들을 얹혀주었으니 할말 다 한거지.... 

낑낑거리는 나를 도와줄 생각은 않고 그저 그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혼자 여유 있게 돌아다니는 그의 뒤통수를 얼마나 씹었는지는 말 않겠다........... 

그래도 첫 데이트라고 은근히 설레고 두근거렸는데.... 

그런 내 기대가 무참히! 처절히! 깨져버리고 말다니!!! 

그렇게 지옥 같던 쇼핑이 대충 끝난 듯하자 기운을 많이 써서 그런지 배가 고파왔다. 시계를 보니 6시가 약간 넘었다. 

2시전에 만나 지금까지 4시간 동안이나 짐꾼 노릇을 했으니 당연히 배고 고프지! 

억울한 마음에 저녁이라도 꼭 얻어먹어야겠다 싶었다. 

“저기요.... 저녁 안 먹어요?” 

난 낑낑거리고 짐을 든 체 그의 뒤를 쭐레쭐레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보았다. 

“음?” 

내 말에 그가 멈춰서더니 시계를 본 후 인상을 살짝 찡그린다. 

‘이번엔 또 뭐야~’ 라고 속으로 울부짖으며 내가 못할 말 했나 싶어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황당하게도 ‘이런... 늦었군...’ 하더니 갑자기 길가에서 택시를 잡는다. 

“저, 저기요....?......”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나는 당황스런 목소리로 그를 불러보았다. 

그러자 그가 택시 문을 열다가 왜 그러냐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그러더니 ‘아....!’ 하고 양복가방 하나를 받아든 후....... 

‘나머지 짐들은 내일 호텔로 가져와’ 라는 망발을 내뱉고는 택시에 올라타는 것이다. 

“뭐, 뭐??? 이봐욧!” 

어이가 없어 그를 다시 매섭게 불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택시 문을 닫으려다 내 앙칼진 목소리에 또 왜 그러냐는 듯이 짜증스런 눈길로 나를 다시 돌아보더니....... 

‘아...!’ 하며 깜빡 했다는 듯이 그가 지갑을 열고 십만 원짜리 수표 하나를 건넸다. 

“밥값.” 

그렇게 그 한마디 말을 마지막으로 그를 태운 택시가 출발했고, 난 얼떨결에 받은 수표 한 장 달랑 든 체 얼이 빠져 멀어져 가는 차의 꽁무니를 멍하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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