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36)

(11) 

본의 아니게 학교를 이틀이나 빠져버린 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학교에 갔다. 

태식이놈과는 과가 같다보니 아무리 틀린 시간대를 택한다 하여도 같은 수업이 학기마다 한두 개는 되기 마련이었다. 

불행하게도 지금 들으러 가는 강의도 태식이놈과 같은 수업이었고.... 언제나 참을 ‘忍’자를 머릿속에 미리 세 번 그리고 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명 벼르고 있는 시기에 이틀 빠졌다고 별 트집을 다 잡을 텐데...... 

‘에휴~ 내 팔자야~’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맞은편에서 오는 악마새끼가 날 발견하고는 얼굴에 웃음이 깔린다.... 물론 비웃음이.... 

“훗~ 웬일로 학교에 이틀이나 빠지셨대? 난 네가 큰소리 탕탕 치고 안 되니까 겁이라도 먹고 어디로 내뺀 줄 알았지~” 

꽈배기 마냥 비비꼬는 그의 말투에 갖잖다는 듯이 코웃음을 쳐주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온 거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고....” 

태식이 손에 턱을 괴고는 답을 찾아내겠다는 듯이 나를 날카롭게 살폈다. 

‘파지직~!’하고 우리 둘 사이에서 전기가 튀는 듯 했다. 

“흐응~ 설마 네 주제에 정말 애인이라도 생긴 건 아닐 테고.....” 

분명 내게 없을 것이라는 확신에 날 또 깔아뭉개려 말을 꺼냈겠지만...... 

“.. 맞아...........” 

이번에는 네 뜻대로 안되지~ 오늘은 나도 할말이 있다 이거야~ 

“뭐?” 

“애인 생긴 거 맞다고.” 

‘비록 싸가지 밥 말아먹은 놈이긴 하지만.....’ 

태식은 내 대답이 뜻밖이었는지 얼굴에 잠시 당혹감이 서렸지만 이내 원래의 비웃음 깔린 얼굴로 돌아왔다. 

“쿡~ 그래? 그럼 얼마나 대단한 애인을 물었나 구경시켜줘야지 않겠어?” 

‘애인이 물건이냐! 구경시키게! ......그래도 애초에 목적이 그거였으니 어쩔 수 없나.....’ 

“좋아.” 

어쨌든 빨리빨리 태식이놈 코를 납작하게 해준 뒤 하루빨리 싸가지와 얼굴 볼일 안 만드는 게 장땡이다.(그게 네 맘대로 될까..?) 

더 이상 시간만 끌어봤자 이리저리 치이는 나만 피곤하지.... 

“흐음~ 제법 자신만만한데.” 

‘언제까지 네가 그런 조소를 날릴 수 있나 보자...’ 

성격은 지랄 같아도 입만 안 열면 이 만한 남자 없다고 장담한다. 

“그럼 애인님하고 얘기해보고 약속 잡은 후 알려줘라~ 기대하고 있지.” 

“알았어.” 

그렇게 태식이는 마지막으로 날 비꼬고는 먼저 건물로 들어갔다. 

하지만 뒤에 남은 난........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내 떠오르는 문제점에 얼굴이 점점 창백해져갔다. 

꽤나 자신 있게 말해놓은 것과는 다르게 준혁이놈을 도대체 뭐라 불러 내냐는 문제에 닥치자 속으로 머리를 쥐어 싸매야했다!! 

혹시 자리에 나온다 쳐도 그 성질머리를 어떻게 보이냔 말이야~ 태식이놈 나 구박받는 거 보면 오히려 임자 만났다고 더 좋아할게 뻔하다. 

처음부터 애인역을 해달라고 했으면 이런 생고생은 안 해도 됐을 텐데.... 

이제 와서 땅을 치고 후회해봤자 소용없는 일. 지금은 어떻게 아무 탈 없이 이 만남을 성사 시키냐는 것이 시급하다. 

아무리 골똘히 생각해봐도 뚜렷한 수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어째 요즘은 고민만 달고 사는 기분이네....... 

결국 내가 언제 꼼수 부리는 거 봤냐. 그냥 최대한 비위 거슬리지 않게 조심스레 말을 꺼내보는 수밖에 없지. 

“......저......... ” 

그를 조심스레 부르자 서류를 읽고 있던 준혁이 고개를 들고 나를 본다. 

수업이 모두 끝난 후 혹시 그가 호텔에 없을지도 모를까봐 느지막이 준혁을 찾아가 보았다. 다행이도 스위트에 있었고 그는 내가 온 것이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하긴 이 일만 아니었으면 한동안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았었지..... 

왜 그러냐는 듯한 시선에 나는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체 애꿎은 바닥만 쳐다보며 나름대로 준비한 변명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친구한테 애인이 생겼다고 말했더니 한번 꼭 보고 싶다고 그러는데.... 시간 좀..... 내실 수 있으세요?” 

슬쩍 그의 눈치를 보고 혹시라도 그가 바로 거절할까봐 황급히 말을 이었다. 

“그게, 정말 친한 친구거든요! 그래서 거절하기 미안하더라고요.... 초등학교 때부터 사귄 친구라(이건 사실이다) 비밀 같은 게 없었어요. 

에... 또 걔도 동성연애자니까 부담 안가지셔도 되고..음.....안...되세요?”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횡설수설 늘어놓은 후 다시 한번 물어봤는데...... 

“흠~ 그럼 시간하고 장소는 내가 잡지.” 

‘헉~! 왠일이냐, 이 인간이!‘ 

뜻밖에도 준혁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쉽게 허락을 했다. 생각보다 일이 술술 풀리자 나도 모르게 입이 옆으로 벌어진다. 

“예? 아, 예! 그러세요! 학생인 우리야 남는 게 시간이죠~ 시간 빼면 시체에요. 하하~ 언제든지 편하신 때로 하세요. 뭐 필요하신 건 없으세요? 물 갖다드릴까요?” 

‘.......뭔 헛소리냐.................’ 

“쿡쿡~” 

내 바보 같은 행동에 그가 낮게 웃음을 흘리자 왠지 쪽팔린 마음에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래도 우선 1라운드는 통과했다! 아싸~ 

인제 2라운드가 문젠데..... 에휴~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저기요....” 

“이번엔 또 뭐냐?” 

팔에 살짝 괸 얼굴에는 짜증스럽다기보다 흥미롭다는 기색이 떠올라 있었기에 그에 용기를 입어 힘들게 입을 떼었다. 

“그러니까.... 저기.... 그... 친구 만날 때..... 그게.... 저.....” 

“답답하다... 그만 뜸들이고 언능 말해라.”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말만 더듬거리고 있는 내가 답답한지 그가 가볍게 재촉한다. 

“그게, 그러니까.... 아....! 친구가 걱정을 많이 하거든요. 제가 처음으로 누굴 사귄다니까 이상한 사람 만난 건 아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더라고요. 

그러니까.... 음.... 친구를 안심시켜주기 위해서....에.... 그날은....제게...... 좀더..... 그러니까...... ” 

차마 말을 잊지 못하고 점점 얼굴만 붉어지고 있었는데.... 

“쿡쿡쿡~~큭큭~” 

“저, 저기.” 

본론은 꺼내지도 않았는데 그가 못 참겠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리자 당황스러웠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만해라.” 

하지만 다행이 말이 전해졌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전에.... 

여전히 웃음기 담기 얼굴을 한 체 그의 눈동자가 묘하게 빛을 내며 나를 응시하자 본능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춘 체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긴장을 했다. 

“그러려면 우선 날 부르는 호칭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저기요, 이봐요 하면서 부를 거지?” 

“.....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날 불안케 할만 한 말은 아니지만 상당히 쑥스러운 일을 요구하는 말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동시에 맞는 말이기도 했다. 분명 태식이 앞에서 지금처럼 부르면 의심을 살 것이다. 

“친구를 안심시켜 줄려면 미리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 한 번 불러봐...” 

“에.... 음....... 주, 준....혁씨....” 

얼굴을 붉힌 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불러보았다. 왠지 입가가 간질간질하다. 

“쿡쿡, 그래 지운아~ 훗~” 

처음으로 그의 입에서 내 이름이 흘러나오자 왠지 기분이 묘했다. 

“음~ 네 친구를 확실하게 안심시킬 방법이 하나 있는데.....” 

“뭐, 뭔데요?” 

그가 제법 진지한 투로 말을 꺼내자 귀가 쫑긋했다. 

“키.스.” 

“네에에에에??????” 

한 발음씩 또박또박 내뱉는 그 때문에 아까의 불안감이 이제야 현실로 다가옴을 느꼈다. 

“왜 그렇게 놀라? 어차피 우리 애인사이 아냐?” 

그가 능청스러운 얼굴을 하며 묻는다. 

“그, 그건 그렇지만....” 

‘하지만 난 애인역만을 원한거란 말야~!!’ 

아무리 속으로 울부짖어봤자 그에게 들릴 리 없다. 

“자~ 친구 앞에서 첫 키스를 할 순 없잖아?”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그가 슬쩍 어깨와 허리에 팔을 둘러 자신의 몸쪽으로 당겨 거의 안기다 시피한 포즈가 되어버렸다. 

“저, 저기! 아직은...”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뺐지만 내 몸에 감긴 단단히 팔이 내 행동을 제지했다. 

“설마 첫 키스는 아니겠지?” 

“네? 아.. 무, 물론이죠!” 

짓궂게 묻는 그 때문에 약이 올라 나도 모르게 오기로 거짓말을 해버렸다. 

“흠~ 그래? 그럼 뭘 그렇게 망설여? 애인사이에 키스는 기본이라고.” 

점점 가까워지는 그의 얼굴에 피가 온통 얼굴로 몰렸고 빠르게 뛰는 심장은 마치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그, 그래도....!..........” 

‘헉~!’ 

끝까지 내빼는 내 입술 위로 뭔가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것이 깃털처럼 내려왔다 금세 떨어져 나갔다. 

“쉿~ 그냥 눈감고 나에게 맡겨....” 

내 입술과 2~3cm 떨어진 그의 입술에서 뜨거운 입김과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가 느껴지자 복잡하게 돌아가던 내 사고가 순간 정지됐다. 

‘스르륵~’ 

나도 모르게 그의 말대로 눈을 감아 버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의 따뜻한 입술이 내 입술 위로 살포시 내려앉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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