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드디어 준혁과 함께 태식이놈을 만나는 날이다.
태식이놈에게 마침내 본때를 보여줄 수 있다는 기대감과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뒤섞여 내 마음은 아침부터 도저히 진정이 되질 않았다.
하긴... 애초부터 준혁을 데리고 태식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불안 그 자체지......
비록 귀띔은 잘 해놨어도(......언제.....?) 준혁은 준혁대로 언제 이상한 쪽으로 튈지 몰랐고...... 태식은 태식이대로 언제 뭘 터트릴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안절부절못하던 난 결국 가만히 집에 앉아있을 수가 없어 약속시간보다 일찍 집을 나서버렸다.
일찌감치 xxx역에 도착한 난 특별히 할 일도 없어 그냥 근처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마음을 가라앉힐 겸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내 불안함의 시초를 불러일으킬 줄 알았다면 절.대. 일찍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익!! 이거 놔!”
“킥킥~ 거 씩씩한 꼬마네~”
“아가야~ 치료비만 내놓으면 고이 보내준다니까~”
“그래~ 여기 우리 형님 부은 거 안보여? 부잣집 도련님 같은데 우리도 소란 피우기 싫으니까 파뜩파뜩 치료비만 내놓고 가그라잉~”
제법 번잡한 거리에서 양아치 같아 보이는 남자 셋이 중3 정도 되 보이는 소년에게 껄렁거리며 시비를 걸고 있는 게 보였다.
주위의 사람들은 자신들도 쓸데없는 일에 휘말릴까 차마 나서서 소년을 도와주지 못하고 그저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며 그들을 비켜가고만 있었다.
뒷덜미를 잡힌 소년은 양아치의 손을 뿌리치기 위해 바동거렸지만 아직 덜 자란 소년이 성인남자의 힘을 감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웃기지마! 사기 치는 건지 모를 줄 알어, 이 양아치 새끼들!”
‘퍽!’
“흐어억!”
원래 겁이 없는 건지 소년은 양아치들에게 앙칼지게 대들더니 앞에 있는 양아치의 정강이를 발로 힘껏 차버렸다.
“우워~ 형님 괜찮습니꺼?”
똘마니인 다른 두 양아치가 소년의 양팔을 하나씩 잡고 마치 자신들이 맞은 마냥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허둥댔다.
형님이란 자가 정강이를 부여잡고 고통에 헐떡이더니 이내 시뻘게진 얼굴을 하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이 빌어먹을 새끼가 곱게 보내주려고 했더니....”
화가 잔뜩 났는지 남자는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며 한 쪽 손을 높이 치켜 올렸다. 소년도 그 순간만은 겁이 났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휘익~’
‘턱!’
“뭐야!”
“지금 얘에게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소년에게 내리쳐지려는 손을 보자 난 반사적으로 양야치의 손목을 움켜 잡아버렸다.
“넌 뭐야, 기집애같이 곱상하게 생겨가지고.... 신경 쓰지 말고 가던 길이나 가셔.”
“이 학생을 보내기 전까지는 그럴 수 없겠는데요.”
기집애 같다는 양아치의 말에 나도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죽으려고 환장했나!”
나에게 손목을 잡힌 남자가 다른 손으로 다짜고짜 내게 주먹을 날렸다.
몸을 비틀어 주먹을 가볍게 피한 나는 옆에서 급하게 주워가지고 온 나무 막대기로 소년을 잡고 있는 양아치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무방심한 상태에서 어깨를 맞은 양아치가 ‘윽’ 소리를 내며 소년을 놓았다.
그 뒤 난 재빨리 나머지 두 명에게도 몇 년을 갈고 닦은 검도실력으로 몇 대 내려쳐준 후 그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틈에 얼른 소년의
손을 잡고 그 자리에서 잽싸게 도망쳐 나왔다.
아무리 나라도 혼자 성인남자 세 명을 상대한다는 것은 상당히 벅찬 싸움이 아닐 수 없다.
그리 심하게 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 다시 쫓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뒤도 안돌아 보고 열심히 달렸다.
이젠 괜찮겠다 싶은 곳까지 뛰어온 우리는 발을 멈춘 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숨을 어느 정도 고르고 소년은 자세히 보니 치켜 올라간 새까만 눈이 매력적인 상당히 귀여운 소년이었다.
아까의 그 사나운 성깔과 외모가 묘하게 매치 되는 걸 왜일까........
“다친 곳은 없어?”
“아, 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헉! 형, 손이...!.”
“응?”
손바닥을 들어 바라보니 살이 찢어진 체 피가 흥건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더불어 나와 손을 잡고 뛰어온 소년의 손바닥까지 피로 범벅이 되 버렸고.
어쩐지 아까 손바닥이 따끔하면서 질퍽거린다 했다.
아마 아까 급해서 아무렇게 버려진 나무막대기 하나를 쥐어 들었는데 하필 그게 네모나게 각이 지고 표면이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나무였나 보다.
그런데............... 손바닥을 살피다 시계가 눈에 들어왔는데...........
“제길... 늦었잖아!!!”
“어...! 형!!!”
거칠게 말을 내뱉은 후 약속장소를 향해 또다시 달려가기 시작한 내 뒤로 소년이 다급히 날 불렀지만 이미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왜 쓸데없이 일찍 나와서 이런 일에 휘말리냐~~’
아무리 후회하며 속으로 울부짖어 봤자 시간이 거꾸로 돌아갈리 없다.
죽어라 달려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약속시간에서 30분이 지나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벽에 붙은 거울을 보니 기껏 신경 쓰고 나온 모습이.........
머리칼은 땀으로 흠뻑 젓은 얼굴에 철썩 달라붙어있었고, 옷은 매무새가 헝클어진 채 먼지가 여기저기 묻어있었다.
땀도 닦고 먼지도 털고 싶었지만 곧 손바닥의 피를 보자 어떻게 건드릴 수가 없었다.
괜히 건드렸다가 지저분한 몰골에서 공포스런 몰골까지 몰고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내 몰골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는 웨이터를 무시한 채 다급히 레스토랑 안을 살피자 이미 자리에 앉아있는 준혁과 태식이 보였다.
그런데.........
둘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얼굴에 웃음을 잔뜩 달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오지 않았다는 것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폼세였다........
그 모습을 보자 왜 그렇게 서럽고 분한 마음이 밀려오는 건지....... 쪽팔리게도 눈가가 붉어지려 했다. 부랴부랴 달려온 자신이 바보 같기도 하고.......
이렇게 된 거 화장실 가서 세수도 하고 옷매무새도 정리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돌리는데..........
이미 늦었는지 날 발견한 태식이 날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어색한 미소를 하며 안 떨어지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겨 테이블로 다가가니 태식이 놀란 얼굴을 하고 수선을 떤다.
“지운아, 무슨 일 있었어?”
준혁이 앞에 있다고 한껏 연기를 살리려는지 태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까지 털어주더니 걱정스런 얼굴을 해 보인다.
준혁은 놀란 건지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든 건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날 바라봤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우선 좀 앉아봐.”
수선을 떠는 태식이 내 팔을 잡고 은근슬쩍 자신 쪽으로 앉히려는데...
“이리 와봐.”
준혁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몸이 살짝 움찔거렸다.
늦었다고 화가 난건지 평소보다 더욱 무겁게 목소리를 깔았다.
그의 목소리에 약간 망설여졌지만 곧 지금 이게 무슨 자리인지 상기시킨 난 태식의 손을 살짝 뿌리치고 준혁의 옆자리에 조심스레 앉았다.
태식은 못마땅한 얼굴을 하며 마지못해 건너편 자리에 앉았다.
“얼굴이 땀에 젖었잖아.”
뜻밖에도 준혁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직접 내 얼굴의 땀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그 답지 않은 친절한 행동에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곧 눈앞의 태식을 의식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준혁은 그저 내가 부탁한대로 행동해주는 것이겠지만 지금은 이 부드러운 손길이 위안이 되어 따뜻하고 고맙기만 했다.
얼굴을 준혁에게 맡긴 체 잠시 눈을 감고 있자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 지는 걸 느낀다.
그러나.......... 거기 까진 좋았는데........
땀을 꼼꼼히 다 닦아낸 후 준혁이 내 앞머리를 쓸어 올리더니 이마에 ‘쪽’ 소리 나게 키스를 해버렸다!
태식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레스토랑 안이었기에 그의 뜬금없는 행동에 난 얼굴을 붉히며 당혹스러워 할 수밖에 없었다.
“주, 준혁씨!
“왜, 지운아?”
준혁이 얄밉게도 생글생글 웃으며 왜 그러냐는 듯이 능청스럽게 묻는다.
“사람들도 있는데....뭐하는 짓이에요!”
혹시라도 쳐다본 사람이 없나 주위를 살핀 후 나무라는 듯이 그를 살짝 흘기며 아주 작게 핀잔을 주었다.
“훗~ 우리 지운이는 부끄럼이 넘 많아.”
‘허거걱! 이사람 정말 한 준혁 맞아?’
귀엽다는 듯이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는 준혁의 모습에 드디어 난 여기 있는 준혁이 혹시 다른 사람이 아닐까라는 의심마저 들었다.
그런데 내 의혹어린 시선에 아랑곳 않고 그저 생글거리던 준혁이 갑자기 인상을 험하게 구기더니 내 손목을 잡아챈다.
“이거 왜이래.”
꽉 쥐고 있던 손에서는 어느새 피가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아, 별거 아니에요..... 으윽!”
뒤로 감추려는 손의 손목을 준혁이 꽉 쥐고 주먹을 피자 상처가 따끔거려 나도 모르게 고통에 억눌린 소리가 튀어 나왔다.
상처를 보자 준혁의 얼굴이 더욱 험상궂게 변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거야!”
낮게 으르렁거리는 준혁이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알 수가 없다.
“아....그게.... 그냥....”
“......혹시........ 싸웠어?”
뭐라 설명해야 하는지 말을 찾지 못하고 더듬거리고만 있는데.......
아까부터 준혁이 눈치 채지 못하게 틈틈이 날 노려보기만 할 뿐 얌전히 있던 태식이놈이 불쑥 끼어든다.
“어?”
“너 고등학교 때도 자주 싸웠잖아.”
빌어먹을 여우새끼..... 오버도 지랄같이 한다. 시비 걸어오는 녀석들 몇 명 상대해 준거 밖에 없거늘.....
하지만 준혁은 그 말을 듣자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바라본다.
“가자.”
“네? 어딜?”
준혁이 갑자기 내 손목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원에.”
“네에? 그 정도까지 아니에요.”
손바닥 까진 거 가지고 너무 수선떠는 것 같아 준혁을 말리려 했지만 그는 들은 척도 안하고 나를 끌고 레스토랑을 나섰다.
태식이놈도 당황해서 급히 우리 뒤를 따라 나온다. 내가 그 기분 잘 알지................
‘땡’
무거운 침묵 속에서 엘리베이터가 일층에 도착했다.
“앗! 형! 형!!”
준혁에게 이끌려 빌딩을 나서는데 누군가를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해서 잠시 뒤를 돌아보니 아까 내가 도와준 소년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뛰어오고 있었다.
“형! 아까 그렇게 그냥 가버리면 어떡해요. 손은 괜찮아요?”
소년이 나에게 꽤나 아는 척을 하자 준혁과 태식이 누구냐는 듯이 내게 설명을 요구하는 눈길을 보낸다.
뭐라 설명해야 하나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데 소년이 또다시 누군가를 부른다.
“할아버지! 여기에요!”
할아버지라고 불리기에는 아직 정정해 보이는 양복 입은 멋진 신사분을 소년이 부르자 그가 곧 소년을 발견하고는 이쪽으로 단아하고 기품 있는 발걸음을 옮겼다.
“도현아.”
“할아버지! 아까 나 불량배들한테 걸린 걸 이 형이 도와주셨어. 그런데 나 때문에 손을 다쳤는데 어떡하지?”
한쪽 손으로는 할아버지의 주름하나 없는 매끈한 양복을 잡아당기고 다른 쪽 손으로는 나를 가리키며 응석부리듯이 도현이 말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눈가의 주름이 펴지도록 눈을 크게 떴고 위엄 서려있던 그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몰려들었다.
“어이구~ 이거 도현이가 민폐를 끼쳤군요. 애비 애미 없이 이 할애비가 오냐오냐하고 키웠더니 버릇만 없어지고 아주 사고뭉치가 됐습니다.
손은 많이 다치셨나요? 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을까요?”
손자와 관련된 일이라 그랬을까...... 아까까지만 해도 위풍당당해 보이던 할아버지는 곧게 세우던 등에 힘을 풀고 손자를 걱정하는
평범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한 채 내게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상처를 걱정해 주었다.
난 이 할아버지가 얼마나 도현이라 불리는 이 소년을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 아니, 그 정도까지.......”
“그렇지 않아도 병원에 가려던 중이었습니다.”
별거 아니라고 하려던 내 말을 옆에 있던 준혁이 중간에서 끊어버렸다.
“어이구, 이거 많이 다치셨나보네요. 치료비는 제가 다 대겠습니다. 도현이 이놈. 어서 이분께 죄송하다고 못할까!”
나에게 안절부절 못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무섭게 호통을 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도현이가 몸을 움찔거린다.
“아, 아니에요. 어차피 제가 끼어든 일이었는데.”
“형... 죄송해요..... 저 때문에.....”
당황해서 둘을 말리려 했지만 도현이는 이미 고개를 푹 숙이고 내게 사과를 해왔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사과까지 받자 볼일 다 봤다는 듯이 준혁이 내 팔을 잡고 몸을 돌리는데 할아버지가 급히 우리를 불러 잡았다.
“아, 잠시 만요. 이 녀석도 데려가세요. 너 따라가서 저 청년 치료 잘 받나 확인하고 치료비도 네놈이 내고와!”
“.....네.........”
완전히 풀죽은 도현이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아, 아니. 안 그러셔도 되는데...”
“아니에요. 제가 잘못한 일인걸요. 그때 괜히 덤벼들지만 않았어도 형까지 말려들게 하지는 않았을 텐데....... 어서가요.”
치켜 올라가 있던 눈 꼬리를 축 늘어뜨린 채 먼저 앞장서 가버리는 도현이를 보고 어쩔 수 없이 어색한 미소와 함께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한 후 우리 셋 역시 빌딩을 나섰다.
일이 점점 이상하게 꼬여도 단단히 꼬여가고 있다는 생각에 한숨이 푹푹 나왔다.
결국 괜찮다는 나를 끝까지 끌고 병원에 가자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손바닥 상처가 심하다고 의사가 말했다.
나무가시들이 꽤 많이 손바닥에 박혀 그것들도 일일이 빼내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고 내가 아픔에 ‘아얏’ 소리를 낼 때마다 준혁과 도현이
치료하는 의사를 노려보는 바람에 난 소리도 못 내고 속으로 삼키며 참으로 불편한 공간 속에서 치료를 받았다.
준혁과 도현이는 꼼꼼히 치료한 뒤 하얀 붕대에 감긴 내 손을 보고서야 인상을 풀고 만족스런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 태식이는 뭐 씹은 얼굴을 하고 날 째려보고 있었고....
‘에휴~ 이게 아닌데.....’
병원에서 나온 후 배가 고프다는 태식의 말에 근처 한식당으로 들어갔다. 물론 그놈이 은근슬쩍 나 때문이라는 비난을 아주 살짝 깔았다는 건 아마 나만 눈치 챘을까?
계획에 없던 도현이가 끼는 바람에 상황은 원래의 목적에서 상당히 비껴가버렸다.
원래는 태식에게 준혁을 애인으로서 멋지게 소개시켜준 후 패배로 일그러지는 태식이놈의 얼굴을 보고 통쾌해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정신없이 떠들고 있는 도현이 때문에 분위기는 영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형이 짠! 하고 나타나서 절 구해준거에요. 얼마나 멋있었는지....”
도현은 신나게 아까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형. 그거 검도였죠. 그 양아치 놈들을 한번에 탁탁 보내버리는 모습은 정말~”
도현의 저 황홀하다는 표정은 심히 부담스러웠다. 괜한 녀석을 도와주고 주워왔기까지 했다는 후회가 들 정도다.
“후후~ 그래서 고등학교 때 지운이 건드리는 녀석들은 거의 없었어. 선생님들도 지운이에게는 한 수 물어줄 정도였는데.”
‘미친~ 아주 날 학교불량배로 몰아가느라 신이 나셨구만~’
“정말요? 아~ 멋있었겠다. 그 누구도 다가가지 못하는 교내의 외로운 늑대~”
‘아주 소설을 써라~’
부글부글 끊어 오르는 속을 다잡으며 물만 벌컥벌컥 마셔댔다. 준혁은 그저 조용히 그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어 내가 오히려 불안했다.
부담스런 둘의 대화를 끊을 식사가 드디어 나왔다. 그런데 여기서 곤란한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붕대를 칭칭 감은 손으로 숟가락질은 어떻게 하겠는데 도저히 젓가락질은 할 수가 없었다.
‘에휴~ 밥만 퍼먹어야 되나.......’
한숨을 푹~ 쉬면서 숟가락으로 밥 한술을 떴는데........
그때 준혁이 하얀 밥 위로 반찬을 올려주었다.
놀란 내 시선에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신의 밥을 먹기 시작한다.
그 후로도 내가 밥을 뜨면 꼬박꼬박 이 반찬 저 반찬을 올려주어 뜻밖의 세심한 배려를 보여주었다.
물론 따가운 태식이놈과 도현이의 시선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왠지 기분 좋은 식사였다.
“지운이형, 검도는 언제부터 배운거에요?”
“아....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먹느라 잠시 잠잠하던 도현의 수다가 다시 시작할 조짐을 보인다.
“와~ 진짜 오래됐네요.”
진심으로 감탄하는 도현의 모습에 왠지 쑥스러워졌다.
“쿡쿡~ 아무래도 도현이가 지운이한테 반한 거 같은데.”
‘지랄한다.’
“네! 지운이형한테 정말 반했어요!”
“켁켁!!”
생각지도 못한 도현의 갑작스런 선언에 난 그만 먹고 있던 밥에 사래가 걸려버렸다.
옆에 있던 준혁이 한숨을 쉬고는 내 등을 두들겨 주며 물을 건대 주었다.
“......그런데..... 둘은 무슨 사이에요?”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속을 진정 시키고 있는데.... 내 등을 쓸어주고 있는 준혁과 날 도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더니 의심스럽게 물어왔다.
아직 미성년자인 도현에게 뭐라 둘러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인사이.”
‘으아아악~ 저 남자는 왜 저렇게 직설적인거야~’
저번에도 혜린이누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소개를 해 사람 가슴 떨리게 하더니 오늘 또 그러네.
저 남자에게 민망이라던 지 쑥스러움이라는 감정이 있기는 한 걸까.......
역시나 도현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말도 안돼! 지운이형이 왜 당신 같은 사람하고! 형! 거짓말이죠! 지금 저 아저씨가 거짓말 하는 거죠!”
‘아, 아저씨? 푸훗~’
도현의 말보다는 준혁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호칭에 왠지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인상을 구기고 날 쳐다보는 준혁과 눈이 마주치자 순식간에 웃음이 쏘~옥 들어갔다.
“아...그게 그러니까....”
“똑바로 말해라.”
도현에게 얼렁뚱땅 둘러대고 넘어가려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준혁의 위협적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도대체 얘한테 이런 거 말해서 어쩌자고~’
“....응........사실이야.....”
속마음과는 다르게 내 입은 솔직히 털어놓았다. 괜히 준혁에게 대들었다 좋은 꼴 못 본다는 걸 이미 몸으로 체험했기에 내 몸은 정직했다.
“들었지, 꼬마야. 저 녀석은 내꺼다.”
‘누가 당신 꺼야! 내가 물건이냐!’
속으로 무슨 말인들 못하겠냐. 지금은 가만히 있는 게 좋다고 내 본능이 말하고 있기에 난 얌전히 둘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아니야! 말도 안돼! 저 아저씨가 형 협박하는 거죠! 그렇죠?”
“꼬마야. 재롱은 거기까지다. 한 마디만 더 하면 가만 안 둔다.”
준혁의 목소리가 위험스럽게 낮아지자 도현이도 약간은 쫄았는지 어깨가 잠시 움찔했지만..... 역시 아까 양아치들에게 보여주던 기세는 가짜가 아니었다.
“누, 누가 꼬마라는 거얏! 그리고 가만 안두면 어쩔 건대! 그리고 지운이형이 아저씨 꺼 라는 증거 있어?”
“훗~ 증거라. 지운아, 이 맹랑한 꼬맹이가 증거를 내놓으라는데......”
갑자기 내게 몰리는 시선을 느끼며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서, 설마......’
하지만 설마가 진짜인지 준혁이 한 팔을 내 허리에 감고는 날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주, 준혁씨.... 설마..... 여기서....??”
“응.”
제발 아니길 바라는 내 마음을 무참히 깨고 그는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그나마 방으로 들어왔다는 점이 다행이랄까....
힘으로 벗어나기가 힘들자 점점 가까워지는 그의 얼굴에 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이어오는 부드러운 키스에 누가 보고 있는지도 잊은 채 입안으로 침범해 오는 그의 혀를 받아들였다.
어느새 그의 목에 팔까지 두른 채 난 그의 키스에 열렬히 반응하고 있었다.
입안을 이리저리 휘집고 다니던 그의 혀가 천천히 내 턱을 타고 점점 목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뭔가 짜릿한 전류가 등골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는 느낌에 힘이 빠져 나도 모르게 고개가 살짝 뒤로 젖혀졌다.
준혁은 내 목덜미를 혀로 살살 쓸더니 이내 사탕을 빨듯이 내 살을 빨아 당기기 시작했다. 아찔한 기분에 몸이 점점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천천히 내 목덜미에서 떨어진 그가 멍하게 풀린 내 얼굴을 보고는 살짝 웃으며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떨어트렸다.
“훗~ 이제 확실한 증거가 보이지? 그러니 더 이상 까불지 마라 꼬맹아.”
새하얗게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는 도현이를 향해 그가 느긋하게 승리의 웃음을 날렸다.
‘맙소사..... 내가 미쳤지!’
그제야 방안에 같이 있던 도현이와 태식을 기억해낸 나는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결국 도망치듯 방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저 남자와 키스만 하면 제 정신이 아니게 되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화장실로 정신없이 도망쳐온 후 정신을 차리기 위해 찬물로 세수를 하려했지만.... 붕대를 맨 손을 보고 잠시 얼굴을 찌푸렸다.
결국 세수를 포기하고 다시 고개를 들어 앞에 거울을 봤는데........
‘허걱!!’
내 목덜미에는 방금 준혁이 만든 키스마크가 떠~억 하고 자리 잡고 있었다.
‘이게 증거라는 거야~?’
조심스럽게 키스마크를 손으로 쓸어보자 아까의 민망했던 일이 떠오르며 얼굴이 다시금 달아올랐다.
‘달칵’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에 허둥지둥 손으로 목덜미를 덮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화장실에 들어온 건 태식이 놈이었다.
태식은 벽에 몸을 살짝 기대어 목덜미를 가리고 있는 내 손을 보더니 나를 향해 조소를 지어 보였다.
“제법이야, 한 지운. 어디서 저런 대어를 낚았대?”
입술 한쪽 꼬리를 올려 비꼬는 태식이놈을 말없이 노려보았다.
“솔직히 놀랐어. 기껏해야 별 볼일 없는 놈이나 데리고 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야.”
내가 원했던 반응이니 만큼 기분이 좋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저놈의 말을 들으니 오히려 기분이 나빠진다.
“그런데...........”
말꼬리를 끄는 모습이 영 예감이 안 좋은데.......
“너한테 좀 과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네가 뭐 볼게 있다고 저런 남자 옆에 붙어있어.”
‘....씨발.....’
또다시 태식이놈의 야비한 인신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이미 한번 들었던 소리여서 그런가.... 처음만큼 가슴이 아프지는 않다.
오히려 내가 왜 저 자식에게 이딴 소리를 들어야하나..... 저놈이 뭔데 내게 이런 소리를 하나.... 라는 생각에 속에서 분노가 조금씩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생긴 게 귀엽기를 해, 애교스럽기를 해. 그것도 아니면 만족시켜 줄 수가 있어. 뭐하나 귀엽게 봐줄 구석 없는 네가 뭐 믿고 저런 남자 옆에 붙어있냐.
나 정도는 돼야지 저런 남자 옆에 붙어있을 자격이 되지 않을까?”
태식이놈이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챈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꽉 쥐고 분노를 담아 여우새끼를 힘껏 노려보았다.
물론 여우새끼는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오히려 콧방귀를 꼈지만.
“이봐~ 어차피 너한테 금세 질려서 떨어져 나갈게 뻔해. 그전에 내가 가지겠다는 건데 억울해?”
“.........지...마....”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악마새끼의 독설도 악행도.......
“뭐?”
“웃기지마!! 네놈에게 절대 안 뺏겨!!!”
난 태식이 놈의 눈을 도전적인 눈빛으로 똑바로 바라본 체 당당히 소리쳤다.
‘그래! 다른 놈에게 뺏겨도 네놈한테만은 절대 안 뺏긴다!’
하지만 여우새끼는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음만 칠뿐이었다.
“훗~ 웃겨~ 과연 나한테 오는지 안 오는지 내기할래?”
마치 내가 이길 수 없다는 걸 안다는 듯이 태식이놈이 한쪽 입술을 끌어올려 기분 나쁜 미소로 날 도발해왔다.
여기서 넘어가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서도 이제와 꼬리를 내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조, 좋아!! 만일 내가 이긴다면 다시는 내 눈에 띄지도 말고 내 인생에 껴들지도 마!”
“뭐, 좋아~ 그럴 리도 없겠지만. 하지만 내가 이긴다면..... 뭐가 좋을까.... 음... 그냥 그때 가서 정하지.”
이미 승부가 갈린 내기라는 듯 여유롭게 구는 태식이놈을 보니 더욱 오기가 생겼다.
“좋아!!”
결국 내기가 성립돼 버렸고 난 더 이상 저놈과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생각에 씩씩거리며 화장실을 나섰다. 그런 내 뒤로 태식이놈의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기사님 잘 지켜라~”
‘아악~ 내가 미쳤지! 어쩌자고 그런 내기를 해버린 거냐!!’
화장실을 나온 후 곧바로 이성을 되찾은 난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를 깨달고 머리를 쥐어 잡았다. 왜 매번 난 지키기 쉽지도 않은 배짱을 부리는 건지....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기회라는 생각도 든다. 악마새끼를 영원히 내 인생에서 쫒아 내버릴 수 있는 기회. 그런 기회인만큼 난 이번 내기에서 절대 이겨야만 한다.
혹시라도 악마새끼가 이기는 날에는........... 정말 상상도 하기 싫다.........
하지만 어떻게 준혁의 마음을 사로잡는단 말인가. 그래도 이미 나랑 사귀고 있는 상태니 내가 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는 건가?
그렇다 해도 무슨 수로 여우새끼로부터 지켜낸단 말인가.
‘에휴~’
어째 요즘 내 인생은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오는 듯싶다. 왜 이리 일이 꼬이는 건지..........
방으로 돌아오니 여기는 여기대로 준혁과 도현의 사이에 팽팽한 신경전이 오가고 있었다. 도대체 저 둘은 왜 저러는 건지....
내가 방에 들어서자 도현이 갑자기 고개를 확 돌려 날 바라봐 흠칫 놀라게 했다.
“형! 우리 주말에 강원도 가요!”
“에?”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이건.....
“강원도에 우리 할아버지 별장이 있어요! 우리 거기로 놀러가요!”
어이가 없었다.
“내가 왜 오늘 처음 보는 너랑 여행을 가야 되냐.”
“저 때문에 형 다쳤잖아요. 그러니까 휴양 차 간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형 뒷바라지 다 할게요!”
황당해서 웃음이 다 나오려고 했다.
“올~ 좋은 생각인데~ 우리 다 같이 가요.”
도현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려는 찰나 방에 들어오던 태식이놈이 불쑥 끼어들었다.
저 놈이 또 무슨 꿍꿍이 속인지....... 태식이놈을 노려봤지만 놈은 내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고 준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준혁씨~ 가요~ 지운이도 바람 쐬고 싶다고 요즘 노래를 불렀단 말에요~”
‘내가 언제!!!!’
난 아니라고 호소하는 눈빛을 담아 준혁을 바라봤지만 오히려 가고 싶다는 눈빛으로 이해를 했는지 한숨을 살짝 쉬고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점점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이 아주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왜 허건 날 자기 멋대로 굴다가 이럴 때는 안 그러냐고~~’
“당신은 안 와도돼!!”
준혁도 간다는 말에 도현이 앙칼지게 덤볐다.
“왜? 겁나냐, 꼬맹이?”
“이이익!!”
준혁의 도발에 도현이가 분한지 발을 동동 굴렀고, 준혁은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그런 도현을 바라봐 더욱 도현을 분하게 만들고 있었다.
또 태식이놈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눈을 반짝이며 이 둘을 바라고 있었고.
그리고 난 그런 셋 사이에 끼어 한숨만 푹푹 쉬며 내 인생을 한탄하고 있었다.
결국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이 여행은 내 바램을 깨고 끝내 가게 되었다.
내 마지막 희망이었던 도현의 할아버지는 불행하게도 손자의 부탁을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고 도현에게 날 잘 보살펴주라고 당부까지 하셨단다.
일도 바쁠 준혁은 어떻게 시간을 내었는지 (또 자신한테 일을 맡겨버렸다고 화를 내는 혜린이누나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우리는 토요일 날 출발해서 일요일 날 돌아오기로 했다.
차는 한대로 준혁이 운전을 해서 가기로 했다.
조수석에 누가 앉냐는 것 가지고도 얼마나 말이 많았는지.........
도현이 내게 자신과 같이 뒤에 앉자고 하자 태식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러라고 내 등을 떠밀었고,
난 절대 준혁과 태식을 같이 앞에 태울 수 없다는 일념 하에 끝까지 버팅 기며 셋이서 신경전을 펼치고 있었는데....
다행이 준혁의....‘지운이 앉아’ 라는 말에 간신히 상황은 종료 될 수 있었다.
가는 길도 그리 순탄치 못했다.
도현은 뒤 자석에서 궁시렁 거리다 내게 가끔씩 말을 걸기도 하고(저런 남자와 왜 사귀냐, 형이 아깝다 등등)
이기지도 못할 준혁에게 태클을 걸어 혼자 씩씩거리기도 했다.
또한 태식은 준혁에게 ‘운전 잘하네요’ ‘차가 좋네요’ ‘이것 좀 먹어보세요’ 등등 간사스런 아부를 떨어대 내 심기를 불편케 했다.
그나마 준혁이 별 대꾸 없이 태식이놈을 무시했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왠지 엄청 피곤한 여행이 될 것 같은 예감에 정말 지금이라도 차를 돌리고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도 도착한 강원도의 별장은 생각보다 멋있어서 기분이 좀 좋아졌달까....
생각해 보니 마지막으로 바다에 온지도 꽤 됐고 가족들 외에 누군가와 이렇게 여행을 와보긴 처음이었다.... 물론 태식이놈 때문에 지옥 같던 수학여행 빼고....
조금은 설래 이는 마음을 하고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는 그림처럼 멋있는 별장에 들어갔다.
별장안도 아늑하게 잘 꾸며져 있었고 특히 벽난로가 마음에 들었다.
커다란 창을 약간 열어 바다를 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시니 짭짤한 바다 냄새가 시원하게 내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선 근처 가서 점심 좀 먹고 바닷가 구경을 할까요?”
간만에 모두들 도현의 제안을 군말 없이 받아들이고 나갈 채비를 했다.
“바닷가는 아무래도 쌀쌀하니까 따뜻하게 입어. 괜히 칠칠맞게 감기나 걸리지 말고.”
준혁이 어디서 찾았는지 내 재킷 하나를 들고 와 내게 입혀주었다.
이왕 입혀주는 거 말 좀 곱게 하면 어디가 덧나서.........
그래도....... 쑥스러움과 고마움에 얼굴이 붉어질 것 같았다........
태식을 의식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준혁은 여전히 말은 싸가지 없이 할 때가 많았지만 비교적 내게 다정하게 굴어 적응이 잘 안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이 들다가도 그의 진심이 아니란 생각이 들면 왠지 입안이 씁쓸해지면서 가슴 한켠이 살짝 쑤셔 내 마음을 심란하게도 만들었다.
생각을 떨쳐버리 듯이 고개를 살짝 흔든 후 고개를 들으니 태식이놈이 매섭게 날 노려보고 있었다.
나또한 지지 않고 다짐을 굳게 하며 그의 눈길을 맞받아쳤다.
‘지금까지는 몰라도 이번만은 절대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