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19/36)

(21) 

몸이 안 좋은 나 때문에 느지막이 점심을 먹고 출발했다. 

그리고 지금 서울로 향하는 이 차안은 가지각색의 분위기로 묘하고 조용했다. 

도현이 같은 경우는 굉장히 후련해 보이는 얼굴로 약간 흥분을 한 듯 얼굴에 살짝 홍조를 띠고 있었고....... 

태식이 같은 경우는 오늘 아침 나를 보자마자 마치 잡아먹을 듯이 날 노려보더니 계속 저기압인 상태로 가끔씩 나를 무섭게 노려봐 살이 다 떨리게 만들었다. 

(내가 그렇게 쌔게 밀었나..??) 

준혁은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 아무 말 없이 운전에만 신경을 두고 있었고....... (내가 술주정을 그리 심하게 했나???) 

나는 나대로 준혁을 사랑한다는 충격적인 사실 앞에 무기력해져...... 인제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골머리를 앓으며 내내 침울해 있었다. 

내 마음을 깨달고 나자 준혁의 얼굴을 보기 왠지 껄끄러워 졌다. 혹시라도 그가 눈치 채면 어떡하나 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했고. 

강원도 내려 갈 때는 뿌듯함을 느끼며 차지했던 옆자리가 지금은 마치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모냥 불편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서울에 도착하고 적당한 곳에 태식과 도현을 내려주니 태식은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찬바람을 날리며 먼저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준혁이 있을 때는 가면을 쓰고 온갖 아양은 다 떨던 녀석이 하루아침에 돌변하니 어젯밤에 다른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 의심스러웠다. 

“형, 정말 즐거웠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덕분에 중요한 걸 깨달았어요.” 

태식이 가버리고 도현이 왠지 쑥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인사를 해왔다. 

“아니야.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바다도 보고 즐거웠어.” 

특별히 한 것도 없이 감사를 받자 나까지 덩달아 쑥스러워졌다. 

만난지는 며칠 안됐지만 나를 향한 순수한 호감이 잘 느껴졌을 뿐더러 내 마음을 깨닫는데도 한 몫 해준지라 난 왠지 도현이 동생처럼 귀엽고 정감이 갔다. 

“연락할게요, 형...... 그리고 당신!” 

나와 따뜻한 시선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누던 도현이 돌 연간 준혁을 향해 손가락을 세우며 앙칼지게 불렀다. 

준혁은 도현의 손가락질이 맘에 안 드는지 눈썹을 씰룩거렸다. 

“형한테 잘 안하면 내가 가만 안둘 꺼야! 형도 이 아저씨가 괴롭히면 언제든지 나한테 와요!” (어이 너 원준이가 있는 거 아니었냐?) 

“네 일이나 신경 써라, 꼬맹아.” 

가소롭다는 듯이 준혁이 팔짱을 끼고 코웃음 치며 대꾸했다. 

“흥! 그렇게 자신만만하다가 된통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이 둘은 어째 마지막까지 좋게 헤어지질 않는 건지......에휴~’ 

그렇게 도현은 내게 미소를 준혁에게는 째림을 보낸 후 ‘행복해야 돼요’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손을 흔들며 가버렸다.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 맴돌아 왠지 아려오는 가슴으로 도현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저...... 저도 이만 가볼게요.” 

아직 준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나로서는 준혁과 단 둘이 남겨지자 상당히 어색하고 불편했다. 

무엇보다도 그를 의식하는 내 심장이 고장 난 듯 미치게 뛰어대 진정을 할 수가 없었다. 

“타.”

“아, 아니에요!” 

짧게 명령조로 말하고 조수석 문을 여는 준혁을 보고 나는 당황해서 붕대감긴 두 손을 다급히 흔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서면 한 준혁이 아니지....... 

“어서 타라. 속도 아직 안 좋으면서.” 

“정말 괜찮은데.....” 

마지막으로 거부해 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단호한 그의 어투를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겪어봐서 알기에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마지못해 조수석에 앉자 

그가 차문을 닫아주고 운전석으로 돌아와 차를 출발시켰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그가 지나치게 의식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이 너무 숨이 막혔다. 특히 아까와는 다르게 둘만 차에 남겨지니 더더욱 긴장이 됐다. 

안전부절 못하는 나는 괜스레 운전을 하고 있는 준혁을 힐끔힐끔 쳐다보았고 그러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린 후 한심한 자신을 속으로 책망해가며.

그렇게 빨리 집에 도착하기만을 속으로 간절히 바랬다. 

“여기서 우회전해서 세워주시면 되요.” 

마침내 집 근처에 오자 나는 준혁에게 방향을 알려주었고 드디어 준혁에게서 벗어 날 수 있다는 사실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저... 태워다 줘서 고마워요.” 

“음...” 

준혁이 차를 세우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느긋이 점심을 먹고 출발했기에 하늘은 어느새 어두룩해져 자세히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들어가 볼게요. 조심해서 가세요.” 

특별히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어색하게 인사를 한 후 차에서 내리려고 차문을 열려는데....... 

‘휙’ 

“읍!” 

내가 문을 열기 직전 준혁이 갑자기 내 팔을 자신 쪽으로 잡아 당겼고 반동으로 몸이 그에게로 쏠리자 내 입술 위로 그의 입술이 쌔게 부딪쳐왔다. 

내 뒤통수와 등을 손으로 감싸고 망설임 없이 혀를 집어넣는 준혁을 난 차마 거부 할 수 없었고........ 

결국 나 역시 그의 등 뒤로 팔을 두른 후 눈을 감고 그의 키스에 열렬히 응했다. 

내 감정을 깨우쳐서 그런 걸까....... 그와의 키스가 전보다 더욱 뜨겁고 달콤했다. 

서로의 혀가 얽히는 음란한 소리와 열기가 차 안을 매웠고 난 흥분으로 머리로 피가 몰리고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점점 숨이 가파오르는 것을 느낄 때서야 준혁은 날 놓아주었다. 

‘쪽’ 

“푹 쉬어.” 

마지막으로 그가 내 이마에 입술을 찍고 흐릿하게 풀려있는 내 눈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두근두근’ 

그의 미소에 내 심장이 빠르게 박동하기 시작했고 혹시나 그가 들으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들었다. 

“네, 네. 준혁씨도요.” 

허둥거리며 그에게 인사를 하고 혹시나 내 빨개진 얼굴을 들킬까 황급히 차에서 내렸다. 

잠시 후 멀어져가는 검은색 차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난 지끈거리는 가슴을 움켜쥐고 어서 빨리 무슨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잡았다. 

여행을 갔다 온 후로 준혁은 일이 바쁜지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서운한 마음도 들어 내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며칠동안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특별한 해결책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의 마음이.... 그것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쉽게 생기는 것도 아닐뿐더러 쉽게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결국 내가 생각해낸 해결책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 진다’....라는 단순한 진리를 이용한 방법이었다. 

최대한 그를 피하자. 그를 안보면 이 마음도 조금은 사그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어떡해든 이젠 한달도 안남을 시간동안만 잘 피하면 되니까...... 

하지만 며칠 안 봤다고 그가 자꾸 생각나고 보고 싶은 거 보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를 만난지 일주일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이렇게 내 머릿속.....

내 가슴속 깊이 자리 잡은 걸 보면 대단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 더욱 사랑이 깊어진 후 헤어지는 것 보다....... 막 깨달은 지금 안 보고 덜 괴로운 게 낮지 않을까 싶어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자 내 의지를 시험하려는 듯 다음날 준혁에게서 드디어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전화도 아예 무시할까 했지만 그건 오히려 역효과만 살뿐이라는 생각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 

오랜만에 준혁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자 심장이 바로 반응을 해온다.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여기서 약해지면 안돼.’ 

마치 최면을 걸 듯 내 자신을 어르고 또 어르며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담담히 대답했다. 

“네.” 

[오늘 시간돼? 저녁이나 같이 먹을까 하는데.] 

“아뇨. 학교 과제가 많아서 요즘 바빠요.” 

‘거짓말인거 티 나지는 않았겠지?’ 

걱정스러운 마음과 긴장감에 핸드폰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 많이 바쁜가?] 

“네....” 

[흐음... 그럼 나중에 다시 전화하지.]

그렇게 준혁은 전화를 끊었고....... 난 통화가 끊기는 소리를 들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더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는데.... 라는 아쉬움이 돌았다. 

저번 주와는 너무도 다른 내 낯선 모습에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그 뒤로도 몇 번 그에게 전화가 왔지만 난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그와의 만남을 피했다. 

하지만 짜증담긴 목소리가 점점 차가와지는걸 느끼며 내가 자초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내 가슴은 무너져갔다. 

일주일 넘게 그를 못 본 것 같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내겐 몇 년처럼 느껴질 정도로 힘들고 외로운 시간이었다. 

또한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내 마음속에서 그가 지워지기는커녕 점점 뚜렷하게 떠오르는 그의 채취, 얼굴, 몸짓, 미소에....... 

그를 그리워하는 내 마음은 되려 커져가기만 했다. 

오늘도 그를 생각하며 우울한 마음으로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가려던 중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며 최근 유난히 더욱 독기를 내뿜는 태식과 단둘이 마주쳐 버렸다. 

지금은 놈을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쉰 뒤 그를 지나쳐 가려고 했는데........ 

“요즘 네 기사님은 안 만나나봐?” 

아니나 다를까..... 놈의 빈정대는 음성이 들려왔다. 놈이 나를 곱게 보내줄 리가 없지....... 

“네가 상관할 바 아니야.” 

놈의 비꼬는 놈의 음성에 차갑게 대꾸하고 몸을 돌렸다. 

“훗~ 웃겨. 얼굴에는 차였다고 써놓고 다니는구먼.” 

‘내가 그렇게 티 나게 굴었나?’ 

자조적인 웃음이 나왔다. 

“하긴, 얼굴 좀 잘생겼다고 좀 재수 없게 굴더라.” 

여우새끼가 준혁의 험담을 하는 순간 놈을 무시하고 옮기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태식이놈 쪽으로 되돌렸다. 

다른 건 몰라도 여우새끼의 입으로 준혁을 나쁘게 말한다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너 같은 새끼가 함부로 지껄여도 되는 사람 아니야. 말조심해.” 

조소를 띠우고 있는 여우새끼에게 낮게 으르렁거리며 경고했다. 

“훗~ 차인주제에 편드는 거냐? 지랄 떤다, 병신새끼.” 

여우새끼가 시니컬하게 코웃음 치더니 이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럼 내기는 내가 이긴 거나 마찬가진가?” 

잊고 있었다. 내 감정을 추스르기에 바빠 놈과의 내기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준혁을 놓고 내기 하는 것은 꺼려졌고 또한 내 마음이 진심인 이상 그를 붙잡을 수도 없다. 하지만 태식이놈이 준혁의 옆에 있는 것은 더욱 싫었다. 

내가 왜 그딴 내기를 했는지 후회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에 여우새끼를 매섭게 쏘아만 보고 있는데...... 

“이게 무슨 소리지?” 

순간 환청이 아닐까 하는 준혁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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