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2/36)

(24) 

“아야야야.....” 

허리를 타고 올라오는 격통에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하지만 내 소리에 자고 있던 준혁이 몸을 뒤척이며 내 허리에 올리고 있던 팔을 

당겨 더욱 자신의 몸으로 밀착시켰다. 

혹시 준혁이 깰라 잠시 숨을 죽였다. 

그가 다시 잠잠해지자 나는 낮게 숨을 내뱉고 그의 몸에 이마를 살짝 기대 어제의 일을 회상했다. 

어제 있었던 일은 마치 꿈만 같았다. 하지만 허리에 느껴지는 둔탁한 통증과 날 감싸고 있는 준혁의 단단한 팔은 꿈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두 번째 정사 후 준혁은 기진맥진한 날 욕실로 안고가 직접 내 몸을 씻겨주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고 저항할 기운도 없었기에 그냥 힘을 빼고 그에게 몸을 맡겼다. 

꼼꼼히 내 몸 안의 정액까지 깨끗이 빼내고 타월에 감싸 안아 침대에 다시 날 내려놨을 때쯤 난 이미 반쯤 의식이 잠든 상태였다.

 결국 그렇게 노곤한 몸과 정신으로 탈진한 날 준혁이 품에 꼭 껴안는 걸 마지막으로 난 잠이 든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온몸을 찌르는 통증에 잠이 깼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밤인 듯 깜깜했다. 

어제의 관계는 정말 뭐라 형용할 수가 없었다. 준혁과 하나가 됐다는 기분에 온 몸이 뜨겁고 꽉 찬 느낌...... 

온몸이 쾌락에 비명을 지르던 그 새로운 느낌........ 만족하고 좋았단 말로는 턱도 없이 부족했다. 

또한 어제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를 정도로 민망하고 낯설었다. 

하지만 행복함과 만족감이 교차하는 이 순간에도 마음 한켠에서는 내가 이래도 되는 불안감이 머리를 들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를 피해 다녔는데 그런 노력이 허무하게 그와 사랑까지 나누다니.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아니 오히려 준혁에게서 벗어나기가 더 힘들어져버린 건가....... 

아아~ 모르겠다. 지금은 준혁의 품에서 아무 생각 안하고 그의 심장박동소리와, 온기, 피부를 좀더 가까이 오래 느끼고 싶은 생각뿐이다. 

그런 마음으로 난 다시 눈을 감고 그의 가슴에 살짝 머리를 기대어 다시 잠을 청했다. 

“으으음......” 

자다가 뭔가 간질간질한 시선이 얼굴에 느껴져 살짝 몸을 뒤척이며 눈을 스르르 떴다. 

아침햇살 사이로 준혁의 부드러운 미소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팔에 머리를 괴고 날 내려보고 있는 준혁의 얼굴에 나도 모르게 베시시 웃음이 나온다. 

“훗~ 굿모닝~” 

준혁이 가볍게 웃으며 내 이마에 살짝 키스를 했다. 

따스한 행복감이 내 몸을 감쌌다. 잠에서 깨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제일 먼저 본다는 것이 이리도 행복한 일인지 몰랐다. 

난 대답대신 살짝 웃어보였다. 

그런데....... 

내 몸을 슬금슬금 더듬는 이 손은 뭐지........ 

“준혁씨!” 

놀라고 황당해서 그의 손을 막으며 앙탈지게 불렀다. 

“아침부터 뭐하는 거예요!” 

하지만 준혁은 내 저항을 가볍게 무시하며 내 목덜미에 입을 묻고 중얼거렸다. 

“아침인사...” 

어이가 없어서 그를 밀어내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는데....... 순간 온몸을 강타하는 격통에 신음을 흘리며 다시 침대로 풀썩 쓰러져 버렸다. 

“으윽!” 

“괜찮아?” 

준혁도 놀랐는지 허둥거리며 내 몸을 살폈다. 

“허리가.....뿌러진 것 같아요....” 

“........” 

고통에 울먹거리며 대답하자 준혁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저거 웃음 참는 거 아니지? 

“흐음!.... 뒤로 돌아봐.” 

그가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풀고 허리를 받쳐 내 몸을 조심스럽게 뒤집었다. 

그리고 잠시 화장실로 가더니 타월을 뜨거운 물에 적셔 가져와 내 허리위에 덮은 뒤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다. 

저번에 준혁과 처음으로 같은 침대에서 잤을 때도 내가 열이 나는 바람에 수건을 올려줬었는데..... 

저번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허리를 수건으로 찜질 해주는 준혁을 보니 아이러니하기도해 왠지 웃음이 나왔다. 

준혁의 허리를 주무르는 손길에 살짝 아픔이 느껴졌지만 그건 고통스런 아픔보다는 시원한 아픔이었다. 

그렇게 준혁에게 직접 마사지 까지 받는 사치스런 시간을 만끽하고 있자 허리의 통증이 상당히 가라앉았다는 걸 느꼈다. 

“이제 그만해도 되요. 좀 괜찮아 졌어요.” 

“음... 그럼 뭐 좀 먹을래?”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도 못 먹고 준혁과 두 번이나 정사를 나눈 것이다. 뇌가 그 사실을 인식하자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잠잠한 배에서 밥을 달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난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몸을 바로 뉘었다. 그리고 아직도 내가 나체로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인식한 난 얼굴을 붉히며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겼다. 

“쿡쿡~” 

준혁을 보자 그는 언제 입었는지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준혁은 부끄러워하는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은 후 방을 나섰다. 

준혁이 나간 걸 확인한 후 나는 아직 조금 욱신거리는 허리를 부여잡고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내팽겨 쳐져있는 옷가지를 주워 입었다. 

(그때 허리를 숙였을 때의 고통이란~!) 

힘겹게 옷을 입은 뒤 나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방을 나왔다. 

‘딩동’ 

‘달칵’ 

그때 누군가 왔는지 초인종 소리가 들렸고 곧 준혁이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하하~ 좋은 아침입니다. 편안하게 주무셨습니까?” 

‘응? 저 목소리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활기찬 목소리가 문 여는 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아.... 식탁에 차려주세요.” 

“손님이 계시나 보죠? 오늘은 2인분이네요.” 

준혁의 무뚝뚝한 말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는 쾌활하게 대화를 건넸다. 

아침을 갖다 주러 룸서비스가 왔나보다. 그런데 유난히 힘 넘치는 저 목소리를 아무래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가물가물한 기억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식당 쪽으로 가자 식탁에 음식을 셋업하는 남자가 한명 보였다. 

그런데 저 남자는.... 

“헉!” 

나도 모르게 헛바람을 크게 들이마셨다. 빌어먹게도 내 소리가 너무 컸는지 남자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당황한 나는 허둥지둥 벽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제발 남자가 날 못 알아봤기만을 바랬다. 

저 남자는 분명 그 때 형에게 소개받은 최 현호란 남자다. 남자다운 시원한 이목구비보다는 그의 사교적이고 활기찬 태도가 인상에 남았기에 기억 할 수 있었다. 

언제나 호텔에 올 때는 조심스럽게 다녔는데.....하필이면 변명의 여지가 없는 호텔 룸 안에 있을 때 마주칠 뻔 하다니. 설마 날 본 건 아니겠지? 

침착하자고 자신을 어르며 고개를 살짝 내밀어 동정을 살폈다. 현호는 아직 음식을 셋업하고 있는 중이었다. 

순간 그가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그가 완전히 내 쪽을 바라보기 전에 난 재빨리 고개를 숨기고 벌렁거리는 심장을 다잡았다. 

그 후로도 현호는 틈틈이 내가 있는 쪽을 힐끔힐끔 바라봐 나는 최대한 벽에 몸을 밀착시키고 그가 빨리 가버리기만을 바랬다. 

“그럼 즐거운 식사시간 되십시오.” 

“여기.” 

“감사합니다.” 

드디어 볼일이 끝났고 준혁은 현호에게 팁을 건넸다. 하지만 현호는 카트를 끌고 스위트를 나서는 그 순간까지도 마지막으로 내 쪽을 바라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알아본 건 아니겠지. 그 때 잠깐 인사한 것뿐이고 지금도 빨리 숨었는데.......’ 

확실하지 않으면 쉽사리 형에게 말하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한숨을 크게 쉬고 벽에 힘없이 몸을 기대었다. 

그나저나 한번도 연락 없이 외박 한 적이 없었기에 집에서 상당히 걱정을 하고 있겠는데....... 

“어? 일어났네?” 

“으아아악~”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순간 느껴진 기척과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그만 소리를 질러버렸다. 

“왜 그렇게 놀라?” 

준혁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 아니에요. 갑자기 나타나서...” 

가슴에 손을 대자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훗~ 겁 많기는. 아침 먹자.” 

“...네....” 

“그런데.....” 

준혁이 팔짱을 끼고 내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네?” 

“옷 입었네.” 

어이...그 아쉽다는 표정은 뭐지..... 

식탁에는 간단한 아침이 깨끗하게 차려져 있었다. 또한 다행이도 식탁의자는 푹신한 쿠션으로 처리되어 있어 앉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허기감에 뭐든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현호 때문에 놀라서 그런지 밥맛이 없었다. 

그래도 먹어야 힘을 채운다는 생각에 준혁이 챙겨주는 음식들을 모두 먹었다. 

역시 어느 정도 배가 차자 몸도 훨씬 좋아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머리도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애초의 준혁을 내 마음에서 지우는 계획은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나 버렸다. 오히려 몸에 더욱 깊이 새겨 버렸다고 해야 하나. 

준혁에게 솔직히 얘기해 볼까? 나 당신 사랑한다고..... 

하지만 말 한다 쳐도 어쩌자고. 그가 날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여기 있을 사람도 아닌 걸. 

결국 멀리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가슴이 무거워지면서 따끔거렸다. 

그와의 뜨거웠던 정사의 통증을 느끼며 이런 고민을 하고 있어야 하다니.... 그래도 어제와 오늘 행복했던 시간을 위안 삼아 잘 참아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더 힘들 려나........ 

어쨌든 이런 식으로 계속 피할 수만은 없으니 준혁에게 이제 그만 만나자고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나 당신 사랑하니 여기에 나랑 같이 있어달라고는 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어차피 한달을 조금 앞당기는 것뿐이니 특히 거절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저...준혁씨....” 

“음?” 

준혁은 뭐가 그리 좋은지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달고 고개를 들었다. 막상 그런 그의 얼굴을 보자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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