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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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신거릴 정도로 억세게 내 손목을 잡고 있는 손의 주인을 쳐다보자 표독한 얼굴을 한 태식이놈이 보였다. 

“놔!!” 

준혁을 쫒아가기 위해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작은 녀석 어디에 그런 힘이 있었는지 더욱 아프게 손목을 움켜 잡아올 뿐이었다. 

“어째서....” 

이빨 사이로 갈아 내뱉듯 말하는 태식이 때문에 절로 몸이 흠칫거렸다. 

“그렇게 모든 걸 쉽게 얻는 건데......어째서!!” 

“??!!!” 

이게 무슨 소리야? 지금 나한테 하는 말 인거야? 누가 뭘 쉽게 얻는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어차피 있으나 없으나 상관도 안하는데!! 왜 넌 모든 걸 쉽게 가지고 있는 거냐고!!!!!” 

설마 했지만 분에 겨워 악을 쓰며 내뱉는 말이 곧 나를 향한 말이라는 걸 깨닫자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피어올랐다. 

지금 누가 누구한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너 같은 거 세상에서 제일 재수 없어!!” 

결국 그 동안 꾹꾹 눌러왔던 무언가가 가슴 안에서 폭발하는 걸 느꼈고 내 주먹은 나도 모르는 새 태식이놈을 향해 뻗어나갔다. 

‘퍽!’ 

‘우당탕탕!’ 

둔탁한 마찰소리와 함께 태식이 옆에 있던 툴과 함께 큰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갔다. 

언제나 저 자식 면상을 시원하게 한 대만 날리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한번 터지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솟아 나오는 분노에 속 시원하다는 마음조차 느끼지 못했다. 

저 새끼 하나로 내 인생이 얼마나 뒤틀어졌는데!! 지금 누가 누구를 비난하는 거란 말인가!! 

초등학교부터 시작한 악연으로 인해 난 얻은 것 하나 없이 모든 걸 잃기만 했다. 평범한 학교생활....... 친구들....... 평범한 연애....... 

남들은 하나씩 가지고 있는 소중한 추억....... 

저 자식 때문에 난 한 번도 학교 가는 것이 즐거웠던 적이 없었을 뿐더러 저 악마새끼가 기다리고 있는 학교는 언제나 괴롭고 힘든 일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게 뭐라고??!! 

결국 참을 수 없는 억울함과 분함이 북받쳐 오른 난 한쪽 뺨이 벌겋게 부어오르고 입가에는 살짝 피가 맺힌 태식이놈을 향해 내 분노를 터트렸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내가 네게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아마 이걸 제일 먼저 물어봤어야 했다. 원초적인 문제를 제쳐두고 언제나 녀석의 공격에 방어하기에만 급급해, 

잘못 꼬여버린 우리 악연의 문제점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풀어 볼 생각 같은 건 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10년이 다 되가는 지금에서야 풀기에는........ 

어쩌면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게 싫어!” 

내 고함에 태식이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입가의 피를 손등으로 거칠게 훑으며 날 향해 지지 않고 소리를 쳤다. 

“뭐?” 

“넌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모든 걸 얻어! 그리고 무관심하지!!” 

하!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오려 했다. 도대체 내가 얻은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갖기 힘든 것들인데 넌 모든 걸 너무 쉽게 가지고 있어. 그런데도 넌 거기에 아무런 관심도 흥미도 보이지 않아. 

내가 빼앗아도 오히려 기를 쓰고 가지려 하는 내가 마치 가소롭다는 듯이 무시하며 상관도 하지 않지. 그런 오만하고 건방진 네가 정말 싫어! 재수 없어!!” 

“난 그런 적 없어!” 

“웃기지마!” 

말도 안 되는 비난에 격분하며 부정해 봤지만 태식이놈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하! 내가 뭐든 걸 얻는다고? 내가 아무렇지도 않다고? 관심도 없다고? 널 무시한다고? 웃기지도 않는군. 

도대체 내가 뭘 얻었는데? 네 덕분에 남들은 당연히 가지고 있는 친구조차 사귀지 못한 채 평범한 학교생활마저 박탈당했다. 

네가 내게서 모든 걸 빼앗아 가놓고 내가 뭘 가지고 있다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게 도대체 뭔데? 내게 더 이상 뭐가 남았는데?” 

점점 격해지는 감정이 더 이상 통제되지가 않았다. 한 번도 누구에게 털어놓지 못한......... 한 번도 저 자식에게 따져보지 못한...........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꾹꾹 눌러둔 상처, 고통, 원망....... 한 번도 끄집어 내지 못했던 많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지금껏 한 번도 내게 맞서지 않았어? 어째서 내가 네 걸 빼앗아 가는데도 관심도 없다는 듯이 가만히만 있었던 거지? 

분했을 거 아냐! 억울했을 거 아냐! 결국 넌 날 우습게보고 날 무시한 거야!” 

하아...... 여우새끼를 무시했다면 무시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건 절대 저 자식이 우스워서 그런 게 아니었다. 반대로 저놈이 두려워서 피해왔다고 할 수 있지. 

저 자식은 처음부터 날 잘못 봐도 한참을 잘못본거 같다. 아니......... 혹시 날 그렇게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이 내게 이래야 할 이유를 정당화시킨다던지 정의를 내리기 위해 날 자신이 생각한 모습의 틀에 끼어 마쳐 날 보고 있던 게 아닐까......... 

내 생각이 맞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넌 나를 잘못 알고 있어. 날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 거야.” 

“무슨 소리야.” 

흥분으로 씩씩거리던 태식이놈이 착 가라앉은 내 단호한 목소리에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난 한 낮 아이였을 뿐이야. 나에게서 등 돌리는 친구들을 다시 돌려놓을 힘이나 능력 같은 건 없는 그저 평범한 아이. 

날 향한 더러운 시선과 말에 상처받고 겁먹는 나약한 인간. 날 이렇게 괴롭히는 널 원망하면서....... 지금껏 네게 한 번도 제대로 맞서지도 못한 겁쟁이....... 

그게 바로 나야.” 

“.........” 

“넌 내가 아무런 감정도 없는 인간이로 보이냐? 때리면 아프고 기쁘면 웃을지도 모르는 인간으로 보였냐 말이다.” 

“.........” 

“네가 석훈 선배를 뺐어갔을 때 내가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를 거다. 넌 내 첫사랑을 빼앗아 간 것 이었으니까.” 

“.........” 

“난 처음으로 느낀 사랑을 지킬 용기조차 없는 겁쟁이였어.... 하지만....... 그걸 바꿔준 것이 준혁이지.” 

준혁을 생각하자 소용돌이치던 감정이 조금씩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기 때문에 그리 필사적이었던 것일 수도 있어. 하지만 결론은 난 준혁을 사랑하고 진심으로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었지. 

너한테 바보같이 빼앗기는 실수는 한번이면 족해.” 

가슴속에 담아두던 말들은 모두 끄집어낼수록 내 의지는 점점 결연해졌다. 더 이상 태식이놈에게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고......... 

더 이상 내 소중한 것들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태식이놈은 입술을 꾹 다문 채 눈을 아래로 깔고 있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까의 흥분이 점차 차갑게 가라앉는 걸 느끼고 있는데 누군가의 묵직한 손이 내 어깨에 내려 앉았다. 

“이제 그만해라.” 

석훈선배였다. 그리고 그의 중재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난 이곳이 바(bar)였다는 걸 깨달았다. 

나와 태식이가 일으킨 소란 때문인지 주위는 많이 가라앉아있었다. 

아까의 활기차고 와작지글한 분위기 대신 혼란스런 웅성거림이 자리 잡고 있었고 많은 시선이 우리를 향해 꽂혀있었다. 

하지만 그걸 신경 쓸 만큼 내 마음은 여유롭지 못했다. 

선배를 바라보니 뭔가 복잡한 얼굴을 한 채 뭔가 말하고 싶은 듯 머뭇거린다는 것이 보였다. 솔직히 선배가 태식이와 짜고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아닐까.... 

라고 의심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그건 아주 잠깐뿐이었고 곧 선배에 대한 의혹을 곧 지워버렸다. 

아까 들려준 선배의 조언은 진심이었고........ 무엇보다도 그의 눈이 이 상황을 진심으로 안타까워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선배......... 저 이제 선배 말대로 후회를 만들지 않기 위해 가요.” 

아까에 비해 마음의 여유를 조금 되찾아 가늘게 미소 지어보이자 선배의 얼굴이 살짝 풀어지는 것이 보였다. 

선배가 응원을 담아 내 머리를 부드럽게 흐트러트리자 마음이 훨씬 가벼워지는 걸 느끼며 마지막으로 아직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태식이놈을 보았다. 

여전히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그의 꽉 쥔 주먹이 가늘게 떨리는 듯 했다. 

“더 이상 네게 뺐기 지도 않을 거고 당하고만 있지도 않을 거다. 앞으로는 아는 척도 하지 않을 거야. 내 인생에 김 태식 이라는 인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거야.” 

마지막으로 내 인생을 쥐어 잡고 흔든 저 여우새끼를 상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단호하게 선언을 내렸다.

그리고 더 이상 이곳에 계속 있을 필요를 못 느낀 나는 지금이라도 준혁을 따라가 봐야겠다는 생각에 태식에게서 냉정하게 몸을 돌려 바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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