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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두 번째 공략 인물 (4/17)

4. 두 번째 공략 인물

[오피스텔 하루 숙박권이 자동 사용되었습니다.]

서준의 얼굴을 가린 알림창을 해인이 보다가 그 너머의 서준을 쳐다봤다. 숙박권이 실패가 아니라 사용되었다고 떴다. 그런데 대체 왜 강서준이 여기에 있는 거지? 놀란 해인과 마찬가지로 서준도 꽤나 많이 놀란 듯 넋을 놓고 서 있었다.

잠깐 동안의 정적이 흐르다 먼저 운을 뗀 것은 서준이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세요.”

“아…. 네.”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해인이 안으로 들어섰다. 익숙한 오피스텔의 향기와 좋은 채광, 그리고 넓은 공간을 마주하는 순간 해인은 당황한 것도 그대로 잊어버리고 긴 소파로 달려가 그 위로 몸을 던졌다. 넓은 소파 위에 무사히 안착한 해인은 소파를 덮고 있는 부드러운 천에 얼굴을 비볐고 서준은 그 모습은 황당하게 쳐다봤다.

“도련님, 갑자기 어쩐 일이세요? 사모님한테 오늘 온다고 못 들었는데.”

“아….”

당연하게도 서준이 없을 거라 여겼기 때문에 해인은 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오피스텔 하루 숙박권을 얻어서 자러 왔어요, 라고 말할 수도 없고 대체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야 싶었다. 게다가 숙박권이라며! 그러면 당연히 아무런 방해물도 없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억울해 당장에라도 시스템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의심스럽게 자신을 쳐다보는 서준이 먼저였다.

모처럼 왔는데 쫓겨나고 싶지 않았다.

“아, 그게 말이죠. 그러니까 오랜만에… 와 보고 싶어서요….”

결국 변명거리를 찾지 못하고 해인은 우물쭈물 대답했다. 그러자 서준은 작게 웃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도련님이 웬일로 이렇게 오래 버티시나 했어요.”

저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해인은 서준을 흘끗 쳐다봤다가 눈이 마주치면 다시 고개를 획 돌렸다. 이르려나. 하지만 이미 숙박권은 사용된 상태이다. 아무리 그래도 쫓겨나지는 않겠지, 싶어 해인은 어색하게 웃으며 서준을 향해 고개를 흔들었다.

“뭐, 오늘 일은 사모님께 전달하지 않겠습니다.”

사모님 말을 절대적으로 따르는 강서준이 비밀로 해 준다니 해인은 놀라면서도, 내심 오피스텔 숙박권의 효과가 대단하구나 싶어 눈을 크게 떴다.

“정말요?”

“네, 정말요. 그보다 저녁은 드셨어요?”

“아니요!”

긴장감이 풀리자 해인은 헤실헤실 웃으며 서준에게 다가갔다. 그는 그런 해인이 웃긴지 픽 웃으며 싱크대에 걸린 앞치마를 둘렀다. 익숙한 풍경에 해인은 역시 어떻게 해서든 소원권을 얻고 반드시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리라 다짐했다.

* * *

원룸에 사는 동안 2주마다 음식 재료가 배달되긴 했지만 말 그대로 음식 재료였다. 음식 솜씨가 그리 좋지 못한 해인은 늘 먹을 만한 정도의 음식을 먹으며 살았다. 그나마 식재료가 좋아 학식보다는 맛있긴 해서 다행이었다.

“천천히 먹으세요.”

해인은 대답도 하지 않고 눈앞에 펼쳐진 갓 만들어진 반찬과 돼지고기 김치찌개와 찰기 가득한 밥을 퍼먹었다. 먹는 걸 좋아하는 것 같긴 했지만 그렇다고 많이 먹지 않았던 해인이 거지처럼 밥을 퍼먹으니 서준은 조금 심란해졌다.

“도련님…. 굶고 다녀요…?”

걱정스러운 물음에 해인의 숟가락질이 멈칫거렸다. 사람을 앞에 두고 너무 게걸스럽게 먹은 것 같아 속도를 늦췄지만 이미 늦었다.

“제가 매주 요리라도 해 갈까요?”

“정말요?”

예상치 못한 제안에 바비큐용 소시지 구이를 먹던 해인이 고개를 들고 서준을 감동받은 눈으로 쳐다봤다.

“네. 갑자기 이런 모습 보니까 조금 걱정되네요.”

“그러면 저야 좋죠.”

밥그릇을 순식간에 비우고 퍼준 찌개까지 전부 후루룩 해인이 마시자 서준은 어깨를 흠칫 떨었다. 예전부터 느끼기는 했지만,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변했는지 신기했다. 사모님 말대로 철이라도 든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하는 짓이 영 어리기 짝이 없다. 철이 들었다기보다는 성격이 바뀌었다는 게 맞는 말 같았다.

의뭉스럽게 쳐다보는 서준에 해인은 괜히 눈치가 보여 ‘잘 먹었어요.’라고 말하며 서둘러 일어섰다. 오랜만에 배부르게 먹은 탓에 기분이 나른해진 해인은 일단 잠을 자기로 했다. 지금 당장은 서준이 있어 게임기고 만화책이고 찾기가 힘들 것 같으니 이따 서준이 떠나거든 밤중에 몰래 찾자고.

그러니 지금은 잠을 비축해 둬야 했다.

* * *

눈을 뜨니 새벽 1시였다. 분명 소파에서 잠든 것 같았는데 정신을 차리니 제 침대 위였다. 원룸에 있는 침대와는 차원이 다른 크기에 해인은 몸을 몇 번 구르다가 욕실로 향했다. 밥 먹고 얼마 안 가 바로 잤더니 입 안이 텁텁했다. 익숙하게 찬장에서 양치 도구를 꺼내 양치를 하고 세수까지 한 뒤 거울을 쳐다봤다.

이곳이었다. 이 개 같은 게임이 시작된 곳. 해인은 짜증 서린 눈으로 거울을 노려봤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이 자신을 노려보는 것 같아 그만뒀다.

재빠르게 욕실을 나와 침실에서도 조심스럽게 나왔다. 새벽이라 당연히 아무도 없을 게 뻔했지만 해인은 혹시나 싶어 휴대폰 플래시를 제일 낮은 밝기로 켜고 숨도 죽였다.

제 집인데도 도둑처럼 살금살금 걸어 해인은 2층 제일 끝에 있는 창고 방으로 향했다. 해인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은 최상층으로 다른 층의 오피스텔처럼 좁은 복층이 딸린 게 아니라 넓은 복층이 딸려 있었다. 말만 오피스텔이지 실상 내부 구조는 펜트하우스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구조가 특별한 만큼 시세도 엄청나 아마 해인이 들으면 그날부터 해인은 모든 공간을 살금살금 걸으며 뭐라도 망가트릴까 조심스러워질 게 분명했다.

그곳에 제일 물건을 숨기기도 좋고 보관하기도 좋을 것 같다는 추측 때문이었다. 공간이 커서 그런지 밤에도 빛이 새어 들어오는 원룸과는 달리 오피스텔은 정말 깜깜했다. 이 복도가 이렇게까지 길었나 싶을 정도로 창고 방은 아직 보이지도 않아 해인은 어쩐지 입이 말랐다.

결국 플래시를 한 단계 더 높여 키우니 그나마 나은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몇 십 걸음을 더 걸어 도착한 창고 문은 오싹했다.

불안한 예감이 해인을 강타했다. 원래 살 때도 잘 가지 않던 곳이었고 워낙 구석진 곳에 있어 해인은 머뭇거리며 손잡이를 잡았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하다가 결국 문고리를 돌렸다. 부드럽게 열린 창고 방은 역시나 완벽하게 깜깜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창문에도 암막 커튼이 있어서 그런지 복도 보다 더 깜깜했다. 하필 전등 스위치도 안쪽에 있어 해인은 목울대를 울렁이고는 부러 발걸음을 당당하게 하며 걸어 들어갔다. 한두 걸음 들어가는 순간.

바스락-.

빨라지는 심장 박동에 밭았던 해인의 숨이 완전히 멎어 들어갔다. 지금 자신이 잘못 들은 걸까? 해인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주위를 휙휙 둘러봤지만 플래시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 담긴 책장들만 있을 뿐이었다.

오피스텔에 쥐가 있을 리는 없겠지만, 해인 분명 무언가 아슬아슬하게 세워져 있던 것이 때마침 쓰러지거나 아니면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분명 그런 거라고 여겼다.

그렇지 않으면, 해인은 지금 지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빨리, 빨리 불을 켜자. 해인은 다시 발걸음을 이었다. 이 다음 책꽂이만 지나면 전등 스위치가 있다. 그러니 서둘러 가자.

터벅터벅, 조심해서 걷는 것 같은데도 제 발걸음 소리가 어쩐지 크게 들리는 것 같아 마음이 초조했다.

“하아….”

온 몸의 털이 곤두섰다. 시, 시발….

이번에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한숨 소리였다. 그것도 사람의 한숨 소리.

아래턱이 조금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여름밤인데도 해인은 등 뒤가 잔뜩 오싹해지고 머리에는 온갖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예전에 흥행했던 큰 집에 사람이 숨어 살았던 영화부터, 1년 전에 근처 건물에서 사람이 살해당했던 일, SNS에서 봤던 온갖 괴담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녀 해인은 눈물이 조금 날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나갈까? 해인이 책꽂이 중간에서 갈팡질팡 창고를 나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앞으로도 나아가지도 못하던 때였다.

“…아….”

확실하다, 확실하다. 진짜다. 지금 이 창고 방에 무언가가 있다. 사람인지, 귀신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만 있어야 할 오피스텔에 누군가가 있다.

플래시가 덜덜덜 떨려 시야도 같이 흔들렸다. 게임이고 뭐고 해인은 당장 이 오피스텔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호흡하는 소리조차 들킬세라 해인은 숨을 죽이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정말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발걸음 하나 떼는 것도 천천히 걷던 순간이었다.

텁.

“아악!”

어깨 위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해인은 그대로 크게 소리를 지르며 휴대폰까지 떨어트리며 달리려고 했지만 너무 놀란 나머지 그대로 몸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그 탓에 바들바들 떨리던 다리가 꼬여 몸이 뒤로 기울어지던 때였다.

등 뒤에 무언가 단단한 것이 닿았다. 분명 이 뒤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데…? 이제는 아래턱이 미친 듯이 떨렸고 해인이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 뒤에는.

“도련님?”

서준이 서 있었다.

“아……. 이 미…친….”

익숙한 얼굴이 보이자 해인은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아래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다행히 바닥에 닿기 직전 서준이 해인을 안아 들어 다치지는 않았다.

“도련님이 여긴 왜 오셨어요?”

서준은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해인은 그 당당한 물음에 어이가 없어 그건 자신이 물어야 할 게 아니냐고 따지려는 순간이었다.

어, 정말 강서준이 지금 왜 여기 있지? 늘 칼같이 8시면 퇴근하는 그가, 왜 여기에.

다시금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와 입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도련님?”

낯빛이 점점 창백해지는 해인에 서준은 눈을 찌푸리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지 제 손에 든 것으로 해인의 얼굴을 비췄다. 환한 빛이 갑자기 쏟아져 눈을 찌푸리던 해인은 그대로 얼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강서준 씨….”

“네, 도련님. 왜 그래요? 어디 정말 아파요? 얼굴이 창백해요.”

“지금 손에 든 거 뭐야… 요…?”

서준의 손에는 해인의 게임기가 들려 있었다. 그제야 서준은 ‘아.’ 하는 작은 탄성과 함께 멋쩍게 웃었다. 푸른색 가득한 조명에 비춘 서준의 눈동자는 곤란한 듯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게임기 화면에는 해인이 제일 좋아하는 ‘짐승의 숲’의 주민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지금 제가 뭘 보고 있는 걸까요.”

해인이 물었다. 서준은 뚝뚝 끊기게 웃더니 여전히 제 품에 안겨 있는 해인을 일으켜 주고는 불까지 켜고 왔다.

“아…. 도련님. 그게 말이죠.”

이미 다 들켜 놓고 숨기려는 의도인지 게임기를 든 손을 등 뒤로는 숨기고는 서준은 곤란한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해인은 귀신이나 강도가 아니라 강서준이라는 안도감과 자기 게임기를 몰래 하고 있었다는 괘씸함에 서준을 쏘아봤다.

“죄송합니다. 전에 도련님이 하시는 거 봤는데 재밌어서 보여서 제가 그만 큰 실례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사직하라면 사직하겠습니다. 도련님.”

서준이 허리까지 숙이자 해인은 되레 무안해져 뭔 사직은 사직이냐며 서준을 일으켜 세웠다. 사람이 살다 보면 게임이 몰래 하고 싶을 수도 있는 거였고, 그 강서준이 밤중에 이 깜깜한 창고 방에서 몰래 할 정도면 얼마나 하고 싶었겠는가 싶어 해인은 금방 표정을 풀었다.

“근데 강서준 씨가 이런 거 좋아할 줄은 몰랐네요.”

“저도 몰랐는데 한번 시작하니까 왜 게임 중독이 되는지 알겠더라고요.”

여전히 민망한지 강서준은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어찌 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인 것 같은 서준의 행동에 해인이 머릿속에 좋은 비책이 떠올랐다.

“그렇죠? 정말 재밌죠?”

“네…. 그렇더라고요.”

“그럼 말이죠.”

해인이 서준의 팔에 팔짱을 스르르 끼며 장난기 가득하게 웃음을 머금었다.

“다른 게임기는 어디 있어요?”

“네?”

“그거 같이 하면 더 재밌거든요.”

들러붙어 오는 해인에 서준이 뒤로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한쪽 팔을 해인이 완전히 감싸 버렸다. 이미 빠져나갈 수 없음을 깨달은 서준이 낭패 어린 표정을 짓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자기가 몰래 게임을 한 게 발단이라 서준은 차마 해인에게 안 알려 줄 수 없었다.

“사모님께 비밀로 해 주셔야 해요.”

“네!”

해인이 밝게 대답했고 서준은 허탈하게 웃었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서준 옆에 해인은 들뜬 발걸음으로 따라붙었다.

* * *

“아, 제가 뒤쪽 맡으라고 했잖아요.”

“맡고 있는데 해인 씨가 앞에서 헛짓거리 하고 있으니까 그러죠.”

“뭐요?”

‘짐승의 숲’에는 숲을 탐험하며 몬스터를 무찌르는 콘텐츠도 있었다. 어느새 새벽 3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해인과 서준은 창고 바닥에 옹기종기 앉아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불편해하던 서준은 어느새 게임에 정신이 팔려 도련님이라는 호칭 대신 해인 씨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해인도 그에 딱히 지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매번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게 불편했을 지경이니까.

그래서 반년 전, 빙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부탁도 했지만, 그 당시 강서준은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만 하고 한 5분 뒤에 다시 도련님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포기했건만, 이렇게 쉽게 호칭을 바꿀 줄 알았으면 진작 게임을 같이할걸 그랬다고 해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탁탁, 버튼을 누르는 소리와 가끔 짜증 섞인 말소리만이 창고 안에 울리던 중 해인의 귀에만 작은 알림음이 들렸다.

띠링-.

[두 번째 공략 인물 등록 완료]

보상으로 2,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응? 이리저리 움직이던 해인의 손가락이 멈췄고 그 탓에 해인의 캐릭터는 기절하고 말았다.

“아, 해인 씨!”

옆에서 서준이 이제는 버럭 소리까지 질렀지만 해인은 멍하니 알림창을 쳐다봤다. 벌써 두 번째 겪는 상황에 해인은 그다음 뜰 시스템창이 무엇인지 예상이 갔다.

[두 번째 공략 인물 등록 완료]

공략 인물: 강서준

정보를 열람하시겠습니까? (현재, 기본적인 정보만 제공됩니다.)

“아, 일단 저 혼자 하고 있을 테니까 빨리 다시 오세요.”

“어…. 어…. 네.”

대답하는 해인의 목소리가 떨떠름했지만 이미 게임에 푹 빠진 서준은 그가 죽어서 그렇다고 여기며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쩌면 다행이었다. 만약 서준이 해인을 쳐다봤더라면 해인은 놀란 눈으로 허공을 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테니 말이다.

[공략 인물 정보]

이름: 강서준

나이: 26

키: 182cm

등록 조건

- 플레이어와 2시간 동안 같은 게임을 한다.

특이 사항

- 베타

플레이어와 관계(호감도:17)

고용주의 아들. 길 가다가 보면 반갑게 인사할 상대입니다.

공략 인물 정보를 다 확인하니 시스템창 하나가 더 떠올랐다.

[공략 인물 강서준은 스킬 “너 오타쿠니?”가 자동으로 작용합니다. 다른 인물보다 호감도가 1.8% 빠르게 올라갑니다.]

“어…?”

서준이 혼자 숲에서 한참을 헤매다 결국 캐릭터가 죽고 말았다. 그 탓에 볼멘 음성으로 외치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니, 해인 씨 왜 안 와…. 왜 그래요?”

해인은 여전히 시스템창을 보고 있었고 서준의 입장에서는 해인이 조금 일그러진 표정으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서준의 등 뒤로 갑자기 한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해인 씨….뭘 또 그리 보는 거예요?”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시선도 같이 떨렸다. 서준은 해인의 시선을 추적하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해인 씨…?”

아무것도 없는데 대체 뭘 보는 건데. 해인의 시선은 분명 어딘가에 꽂혀 있었다. 입도 살짝 벌어진 게 충격적인 무언가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해인이 고개를 돌렸다.

“와, 미쳤네.”

해인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서준은 허공을 노려보다 상황에 맞지 않는 소리까지 하는 해인에 약간 등골이 싸늘해졌다.

무엇이 미쳤다는 걸까.

서준의 표정이 굳어 갔지만 해인은 그걸 신경 쓰지 못했다. 서준의 머리 위에 백담호와 똑같이 둥둥 떠 있는 숫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호감도 17]

백담호와 똑같이 검정색으로 쓰인 글자였지만 앞에 ‘-’가 없다는 사실이 신기해 해인은 천천히 다가갔다.

“와.”

마이너스가 없는 숫자는 이런 느낌이구나. 같은 검은색 글자라도 더 따뜻해 보이기도 했고 허전해 보이기도 했다. 밑에 있는 막대에 약간 분홍빛 도는 색이 채워져 있어서 그런 걸까.

생각보다 서준이 자신에게 높은 호감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처음 보는 높은 호감도를 보다 해인은 이제야 서준의 굳은 얼굴을 살폈다.

“아, 별거 아니에요.”

기이해진 분위기에 해인이 살짝 웃으며 말했지만 서준의 얼굴은 더욱 굳어 갈 뿐이었다.

“게임이나 다시 할까요?”

“어…. 네.”

황급히 게임기로 시선을 옮기는 해인이 이상했지만 서준은 묻지 않았다. 아니,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안 그러더니 또 그러네….

* * *

뻑뻑한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눈을 뜨자마자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해인은 얼굴을 찌푸리며 몸을 돌리다 팔에 닿는 무언가에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의 팔이 곤히 자고 있는 강서준의 명치 위에 있었다. 순간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해인은 흔들리는 눈으로 서준을 쳐다보다 금방 지난 새벽이 생각나 작게 한숨을 쉬었다.

둘은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엉덩이가 아파서 창고를 나왔다. 소파가 있는 거실까지 내려가기가 귀찮은 둘은 자연스럽게 침실로 향해서 계속 게임을 했고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증거로 머리맡에 게임기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부스스해진 머리를 헤집으며 해인이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게임기 화면을 쳐다봤더니 눈이 뻑뻑해 몇 번 비비다 해인은 다시 서준을 쳐다봤다.

[호감도 19]

새벽 사이 호감도가 2나 올랐다. 마이너스도 아닌데 빨리 오르는 건 스킬 탓인가. 전혀 쓸모없을 거라 여긴 스킬이 이렇게 쓰이니 좋아해야 하는 건가 해인은 헷갈렸다. 애초에 강서준이 공략 인물로 등록되기를 바란 적도 없었고.

해인은 슬쩍 호감도로 얼굴을 들이댔다. 백담호 머리 위에 있는 호감도를 가까이 볼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해인은 손가락으로 건드는 시늉을 해 봤다.

예상대로라고 해야 할지, 손가락이 글자를 통과했다. 신기하네. 어떻게 이런 게 갑자기 보이는 거지. 해인이 몇 번이나 서준의 머리 위를 휘젓다가 부릅뜬 서준과 눈이 마주쳤다.

해인이 몸을 숙여 얼굴을 들이댄 탓에 둘은 무척이나 가까워 서준의 동공이 떨리는 것도 잘 보였다. 자던 사람한테 이상한 짓을 한 거 같아 해인은 뻘쭘하게 웃었다. 이상한 짓 안 했다고 말하려니까 그게 더 이상한 거 같아 해인은 적당한 말을 골랐다.

“서준 씨, 잘 잤어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신 다른 게 반응했다.

[호감도 20]

[호감도 달성]

공략 인물 강서준의 호감도[20]를 달성했습니다.

보상, 오피스텔 하루 숙박권 5장이 지급되었습니다.

보상, 호감도 2배 업 포션 1개가 지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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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네. 그런데 조금 가까운 것 같습니다…?”

“아.”

미안해요. 넋을 놓고 시스템창을 보던 해인이 서둘러 몸을 뒤로 물렸다. 해인의 몸이 뒤로 물러가자마자 서준은 벌떡 몸을 일으키고는 괜스레 큼큼거리며 뒷목을 매만졌다.

잠시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마치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 둘이 술 먹고 밤새 신나게 놀다가 다음 날 마주친 것 같은 그런 어색함이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서준이었다.

“해인 씨, 배 안 고파요?”

“아.”

배고픈 거 같아요. 역시 어색함을 깨는 데에는 밥만큼 편리한 게 없었다.

[오피스텔 하루 숙박권 이용 시간이 4시간 12분 38초 남았습니다.]

* * *

숙박 이용 시간이 끝나자 서준이 우연처럼 갑자기 일이 생겼다면서 가 봐야겠다며 해인도 같이 끌고 나갔다. 오랜만에 서준이 운전하는 차를 타서 편했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절대 우연이 아닐 텐데 마치 우연인 척 일어나는 상황이 말이다.

게임에 참여하고 나서부터 해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또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고민하는 일이 잦아졌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도 않는 고민들도 많았고 그사이 또 새로 생겨난 고민들도 많아 해인의 머릿속 한구석은 늘 복잡했다.

그중 가장 마음에 걸리는 고민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바로 이곳에 빙의한 것, 그 자체였다. 적어도 빙의라는 걸 했다면 전생의 마지막이 어땠는지도 기억이 나야 할 텐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전생에 대한 기억도 같이 흐려져 이제는 그게 원래의 자신이 맞나 싶기도 했다.

갑자기 눈을 뜨니 이곳이라는 말이 해인의 상황과 정말 딱 떨어졌다. 해인은 죽음을 경험한 것도 아니었고 전조 증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정말 이곳에 갑자기 뚝, 하고 떨어져 버렸다.

대체 왜 멀쩡히 잘 살고 있던 자신이 원래 세상과 급 이별하게 된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리고 원래의 방해인은 어떻게 된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빙의하고 일주일 정도는 갑작스러운 빙의에 어느 날 눈 뜨면 또 다른 곳에 있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커 잠도 잘 자지 못했었다.

그러다 한 이 주일째 되었을 때는 다른 곳에 빙의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음과 동시에 부족함 없는 재력에 적응해 잘 자긴 했지만 의문과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원래부터 적응력이 뛰어난 해인답게 이곳에 익숙해지면서 전생과 이곳의 삶의 경계가 허물어져 갔다.

두 번째 의문은 바로 시스템창이 떠오르고 나서부터 부피를 키워 갔다. 이곳은 정말 무엇일까. 해인의 상식상 평범한 세상에서 절대 시스템창이 허공에 둥실 떠오를 리도 없었고 아까 강서준처럼 게임 아이템 효과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활동할 리도 없었다.

숙박 이용권 시간이 끝났다는 알림과 동시에 제게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말을 건네 오는 강서준을 보는 순간 해인은 잠시간 큰 괴리감을 느꼈다. 백담호와 서해빛에 비해 강서준은 비중이 크지 않았다. 그래서 해인이 그나마 편하게 있을 수 있던 상대였지만 그 잠시간에는 강서준마저 자신과 다른 존재처럼 느껴졌다. 전에도 특별 상황이라며 자신에게 유리하게 짜졌을 때도 같은 기분을 느꼈다.

마치 홀로그램 세상 속에 들어온 유일한 인간 같은 기분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느껴져 썩 좋지 못했다.

여긴 대체 뭘까, 자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여긴 단순한 소설 속 세계가 맞는 걸까. 그렇다면 소설 속 세계라는 건 대체 어떤 존재인지 해인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같이 고민해 줄 사람도 답을 알려 줄 사람도 없었기에 해인의 고민은 늘 흐지부지 억지로 끝을 맺었다. 어차피 알 수 없는 고민을 계속해 봤자 자기만 스트레스 받았다. 알지 못할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면 그냥 받아들이는 편이 더 살기 나았다.

작은 원룸에 들어온 해인은 차를 타고 오는 내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고민들을 지워 버리고는 바로 인벤토리를 들어가 작은 물병 아이콘이 그려진 것을 클릭했다.

[호감도 2배 업 포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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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을 모두 읽은 해인의 눈이 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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