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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1. 러트 (15/17)

외전 1. 러트

기다란 소파 위에 해인이 고개를 TV 쪽으로 향한 채 엎어져 있다. 기억을 잃었던 동안 엉망으로 받아 온 성적을 어떻게든 복구하기 위해 해인은 겨울 방학의 시작과 함께 계절학기를 수강해야 했다.

마지막 계절학기 기말고사를 어제 막 끝마친 해인이 멍한 눈으로 TV 화면만 바라봤다. 벌써 방학의 절반이 사라졌다. 망할 게임이 그렇게 사라지고 나서 해인의 일상은 꽤나 평화로워졌다. 그렇게 고생한 것치고는 시스템은 해인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잊혀지는 듯했다. 다행이었다. 여러모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어제저녁부터 시작된 열감에 해인은 몸이 계속 늘어졌다. 어디가 특별하게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고 그저 미열과 약간의 피로감이 전신에 덕지덕지 붙은 기분이었다.

[…기술이 계속 발전만 한다면 언젠가는 현실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의 가상 세계를….]

*튜브를 틀어 놓은 TV는 어느새 알고리즘을 타고 타고 흘러가 ‘시뮬레이션 우주론’에 관한 것을 소개하는 영상까지 재생되고 있었다. 평소라면 해인이 흥미롭게 봤을 영상이지만 현재는 소리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제는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오는 숨까지 뜨거웠다. 결국 몸을 일으킨 해인이 싱크대로 향해 찬장을 열어 봤지만, 해열제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약을 사 와야 할 것 같아 해인은 침실로 비척비척 걸어갔다. 백담호를 딱히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제 몸 상태를 말하지 않았지만 약을 사러 나가는 이상은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담….”

이름을 부르려던 해인이 제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멈칫했다. 한 뼘쯤 열린 문틈 사이로 침대 위에 있는 백담호가 보였고 그는 몸을 엎드린 채 두식이의 하얀 배에다가 얼굴을 묻고 있었다. 작게 ‘푸푸푸’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인이 침실에서 나오기 전까지 읽고 있던 책은 침대 밑 러그에 떨어져 있었다.

흡, 해인이 터져 나오려는 웃음에 입을 막았다. 평소에 두식이를 쓰다듬고 안고 예뻐하는 건 자주 봤지만 저렇게까지 하는 건 처음이었다. 나 안 볼 때만 저랬다는 거지. 해인이 지켜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백담호는 이제 고개까지 도리질 치고 있었다.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쿡쿡 웃던 해인은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카메라를 켜고 버튼을 눌렀다.

찰칵.

생각보다 큰 셔터음에 백담호의 고개가 바로 벌떡 들렸다. 답지 않게 크게 떠진 눈동자가 당황스레 흔들리고 있었다.

“해…인아….”

얼빠진 듯한 목소리에 해인은 결국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한 번 더 사진을 찍었다. 동그랗게 놀란 눈이, 살짝 벌어진 입이 웃기고 귀여웠다. 백담호는 멋쩍은 듯이 흐트러진 제 머리칼을 매만지며 몸을 일으켰다.

“언제 왔어.”

“방금. 그것보다 나 안 볼 때마다 이랬어?”

내 앞에서도 하지. 웃음기 머금은 목소리가 즐겁게 퍼졌다. 해인은 방금까지 제 몸을 늘어트리는 피곤과 열감도 잊고 방금 찍은 사진을 백담호에게 장난스럽게 내밀어 보였다. 해인의 눈이 짓궂게 휘었다.

백담호는 침대에서 내려와 해인에게로 느리게 다가가며 조금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해인은 담호가 쑥스러워하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의 귀 끝이 붉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꼴사납게.”

가까이 온 백담호가 해인의 휴대폰을 가져가려 했지만, 해인은 손쉽게 피했다. 애초에 뺏으려던 담호의 손짓에도 강한 의지는 없었다.

“뭐가 꼴사나워.”

해인이 찍힌 백담호의 얼빠진 표정을 확대했다. 크게 보니까 더 마음에 든다. 백담호는 어느새 해인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해인의 정수리에 제 얼굴을 기대며 부루퉁하게 말했다.

“멍청이 같아. 지워.”

“아냐, 귀여운데.”

해인은 사진을 한참 들여다봤고 백담호는 가만히 있다가 입매를 기분 좋게 끌어 올렸다. 아주 눈을 못 떼네. 자신 눈에는 못난 제 사진을 다정하게 보고 있는 해인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 백담호가 해인의 허리를 양 팔로 감싸 안았다. 옷 안으로 스멀스멀 손을 넣어 판판한 해인의 뱃가죽을 문지르며 입을 귓가로 가까이 했다.

“해인이가 그렇게 나를 귀여워하는 줄 몰랐네.”

귀여운 짓 좀 더 해 봐? 야살스러운 목소리에 해인은 어깨를 움츠리며 황당하다는 듯이 웃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쑥스러워하던 게….

“됐어, 이러는 건 하나도 안 귀엽거든.”

“정말?”

백담호가 바둥거리는 해인을 뒤로 돌려 자신을 마주 보게 했다. 몸을 거의 밀접하게 끌어안은 백담호가 꾀어내려 작정을 했는지 눈웃음을 살랑거렸다.

정말 안 귀여워? 그만할까? 해인아, 응?

낮게 들려오는 음성이 귀를 간지럽혔다. 은근한 자극에 해인은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나올 것 같아 입을 꾹 다물었다. 원래도 귀가 예민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허리를 감싼 큰 손은 척추뼈를 재듯 뭉근하게 피부를 누르며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간질거리는 접촉에 해인은 입을 꾹 다물고 마른침을 삼켰다. 까맣게 빛나는 눈동자엔 벌써 정염이 가득했다. 그게 귀엽다기보다는….

해인은 배 아래에서 야릇하게 퍼지는 감각에 입술을 살짝 벌렸다가 백담호의 허리를 살포시 둘러 잡았다. 이건 신호였다. 부끄러움이 많은 해인만의.

곧바로 입술이 포개졌다. 부드럽게 입 새로 물컹한 혀가 파고들어 왔다.

두 사람의 호흡이 얽히고 열기는 빠르게 달아올랐다. 그동안 해인은 계절학기로, 백담호는 신청한 실습 교수 실험 방에 가느라 가벼운 스킨십만 하고 그 이상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매하게 쌓였던 성욕만큼 백담호의 기세는 강렬했다. 해인의 온 입술을 강하게 빨아들이고 뜨거운 입 안 곳곳을 헤집었다. 백담호가 녹진해져 흐물거리는 혀를 옭아매어 비빌 때마다 해인의 목 안에서 빈틈이 없어 나오지 못한 소리가 지잉지잉 울려 댔다.

정신이 아찔해진 해인이 뒷걸음질을 치면 백담호가 무섭게 따라붙었다. 얼굴을 기울여 깊숙하게 해인의 말랑한 입 안으로 파고든다. 질척한 타액 소리가 귀 안을 어지럽힌다.

백담호가 입을 떨어트리고 아랫입술을 쭙쭙 빨아들일 때가 돼서야 해인은 급하게 숨을 몰아쉬며 색색거렸다. 뇌까지 녹아 버릴 것처럼 몸속이 뜨거웠다.

“흐으…….”

물소리를 내며 입술이 완전히 떨어졌다. 그 짧은 사이 강하게 괴롭혀져 빨갛게 부어오른 해인의 입술은 침으로 번들거렸다. 촉촉하게 물기 젖은 속눈썹은 서로 엉겨 붙어 더욱 짙어 보였다. 음란하게 흐트러진 해인의 모습에 백담호가 낮게 숨을 내보냈다.

백담호는 해인의 허리를 한 손으로 감싸 조금 들어 올린 채 걸어가 침대 위에 눕혔다. 흥분해서 숨을 몰아쉬는 해인의 목덜미를 약하게 씹어 댔다. 매끄러운 살갗이 기분 좋게 백담호의 혀끝에 닿는다. 잘근 씹히는 얇은 살에서 약간의 고통과 함께 묘한 감각이 일었다.

이미 아래는 바짝 서 있었다. 해인 역시도 그동안 쌓였던 걸까. 평소보다 농도 짙은 흥분이었다. 허리가 살짝 들썩거리고 아래에 힘이 들어갔다 풀리기를 반복했다. 제 몸 위에 올라타 하얀 피부 위로 흔적을 담기는 백담호의 머리카락이 스치는 것마저도 자극으로 다가왔다. 뼈가 다 녹아 버릴 정도로 너무나 몸이 뜨거웠다. 참기 힘든 열감과 흥분에 해인은 시트에 제 뺨을 비비적거리며 중얼거렸다.

“흐…. 뭔가… 이상해….”

해인의 빗장뼈 위로 혀를 길게 빼어 침질을 하던 백담호가 흘긋 올려다봤다. 눈을 반쯤 감은 해인은 벌써부터 힘겹게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제야 백담호는 해인이 평소와는 사뭇 다르다는 걸 눈치챘다.

빨갛게 익은 얼굴이 아파 보이기도 했고 야해 보이기도 했다. 백담호는 물끄러미 바라보다 해인의 앞 머리카락을 치우고 이마에 손을 올려놓았다. 뜨거웠다. 흥분해서 착각한 줄 알았는데 해인은 실제로 뜨거웠다.

“해인아, 어디 아파?”

해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모르겠어, 그냥 몸이 너무 뜨거워.”라고 중얼거렸다. 달뜬 호흡과 흐트러진 얼굴이 꼭 발정이라도 난 것 같았다. 백담호의 코끝으로 미미하게 페로몬 향이 느껴지는 듯했다. 백담호는 해인을 찬찬히 살펴보다 물었다.

“러트 온 거 같은데.”

“러, 트…?”

해인이 느리게 눈꺼풀을 깜빡였다. 무언가를 생각하듯 잠시 말이 없던 해인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닐 거야. 얼마 전에 약 먹었거든.”

“억제제 먹어도 며칠 뒤에 오는 경우도 있잖아.”

해인은 생각하듯 말이 없었다. 열 때문인지 사고가 느려진 것 같았다. 그러다 이내 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난 열성이라 억제제 먹으면 바로 진정돼. 한 번도 그런 적 없어….”

백담호가 보기에는 확실한 러트 증세 같았지만, 해인은 고집스레 아니라고 했다.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며 답지 않게 빡빡 우기는 모습이 러트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지만 백담호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본인이 아니라는데 할 말이 없었다.

“그럼 어젯밤에 산책하다가 감기 왔나 보네.”

“으, 응…. 그런가 봐….”

이제야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해인에 백담호는 픽, 웃다가 그의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그럼 약 사 올 테니까. 가만히 누워 있어.”

백담호가 몸을 일으키자 해인은 본능적으로 그의 손목을 턱 잡았다.

“약 안 먹어도 되는데….”

목소리가 어딘가 애달프게 떨리고 있어 백담호가 웃음을 꾹 참았다. 이러는데도 러트가 아니라고.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괜한 객기 때문에 그러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백담호는 퍽 즐거워졌다.

“아픈데 얼른 약 먹어야지. 약 먹고 푹 쉬어야지. 해인아. 안 그래?”

해인은 무언가 억울하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지만 결국 백담호의 손목을 놓아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담호는 곧 등을 보이며 침실을 나섰고 그 등을 바라보는 해인의 눈에서는 미련이 뚝뚝 떨어졌다.

* * *

약을 먹고 낮잠까지 잤건만 몸 상태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신을 장악하는 들끓는 열감에 해인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이제는 더 이상 부정할 수가 없었다.

러트가 왔다. 그것도 아주 단단히.

해열제를 사 온 백담호가 억제제도 같이 들고 와서는 정말 안 먹어도 되냐고 물었을 때 먹었어야 했다. 왜 그렇게 안 먹겠다고 우겼는지 해인도 알 수가 없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제 몸 상태인데 자신 말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해인은 아릴 정도로 발기한 제 것을 망연자실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앞섶이 불룩하게 올라오다 못해 벌써 축축하게 젖어 들고 있었다.

한평생 이런 적이 없었다. 간혹 러트 기간 때 억제제를 바로 못 먹었을 적에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가쁜 호흡을 내쉬며 해인은 제 옆에 있는 백담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해인의 갈색 눈동자에 짙은 정염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백담호를 어떻게 하고 싶었다. 뭘 정확히 어떻게 하고 싶은지는 세세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그 행위들이 성적인 것임은 분명했다. 제대로 형태를 갖추지 못한 음욕이 이리저리 날뛰어 흥분을 참으려 꽉 잡은 손이 움찔거렸다.

진정한 러트는 이런 걸까. 해인은 이제 머리가 빙빙 돌기 직전이었다. 잘 자고 있는 사람을 덮칠 수도 없었고 억제제를 먹으려면 몸을 움직여야 했는데, 그럼 억제제가 아니라 백담호를 먹을 것 같았다. 심장이 가슴 위로 튀어나올 듯이 쿵쿵거렸다. 모든 감각이 곤두서기라도 한 건지 무드 등 조명이 그리 밝지도 않은데 백담호의 모습이 지나치게 잘 보였다.

얌전하게 감긴 눈꺼풀에 속눈썹은 길었고 입술은 다물려 있기만 했을 뿐인데 왠지 모양도 오늘따라 더 예쁜 것 같았고 한번 빨아 보고 싶게 생겼다. 무의식적으로 해인의 몸이 점점 백담호 쪽으로 옮겨 가기 시작했다. 살짝만 빠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흥분에 겨운 주제에 혹시라도 백담호가 깰까 봐 해인의 움직임은 조심스러웠다.

백담호의 입술과 제 입술이 닿을락 말락 할 정도까지 가까워졌다. 키스를 처음 하는 것도 아닌데 그가 잠든 사이 몰래 한다는 사실 때문인지 목이 탄 해인이 마른침을 삼켰다. 폭, 입술이 닿았다. 말캉한 살을 비비자 소름 돋게 기분이 좋았지만, 오히려 갈증은 더욱 심해졌다. 허리를 꾸물꾸물 움직인 해인이 담호의 허벅지에 제 아래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위에 해인은 자신이 변태라도 된 것 같은 자괴감이 들었지만, 욕정을 이길 수가 없었다.

후으, 턱 끝까지 차오르는 신음을 삼켜 냈다. 이 이상 하면 백담호가 깰 것 같다는 불안감과 차라리 그가 깼으면 하는 간절함이 뒤섞여 해인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충동 속에 해인의 행동은 더 과감해졌다. 입술을 살포시 비비는 걸로 모자라 주웁 빨아들이기도 했고 혀로 입술 사이를 콕콕 찌르기도 했다.

어느새 하반신은 백담호의 허벅지와 맞닿고 있었다. 해인은 발정 난 짐승처럼 허리를 미약하게 들썩였고 옷 안은 이미 눅눅하게 젖어 미끌거렸다. 허리를 비틀 때마다 옷감이 우그러지며 성기에 문질러졌다.

눈앞이 희끗거리는 강렬한 쾌감에 해인은 제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백담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머리 한구석에서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외쳐 대던 소리가 옷감에 성기가 쓸릴 때마다 작아졌다. 아랫배에 단단하게 힘이 들어가고 엉덩이 사이가 자꾸만 움칠거렸다.

더욱 백담호의 허벅지에 제 앞섶을 들이대니 자극이 더해졌다. 압박되어 성기가 뭉개질 듯이 짓눌리니 저절로 발가락이 곱아들었다.

아, 아아…. 조금만 더….

이제는 백담호가 깨든 말든 해인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오로지 쾌락만을 좇는 놈처럼 백담호의 어깨에 이마를 부비며 허리를 흔들었다. 일순간 허리 아래에서부터 저릿한 감각이 강렬하게 타고 올라왔다.

“흐으윽…….”

기어코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해인이 몸을 바르르 떨며 더운 숨을 헐떡였다. 그래도 사정을 한 번 하고 나니 약하게나마 정신이 맑아진 듯싶었다. 백담호의 어깨에 묻었던 얼굴을 해인이 슬며시 들어 올렸다. 곧바로 선명하고 새까만 눈과 마주쳤다.

이, 미친…!

해인이 혼자 빨고 핥아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백담호의 입술이 주욱 말려 올라감과 동시에 해인은 몸을 벌떡 일으키려 했다. 혼자 흥분해서 잠든 상대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걸 걸렸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너무 쪽팔려 도망가려 하자 허리가 강하게 옭아매졌다.

“아…! 잠시…. 흡….”

입술이 완전히 먹힐 정도로 겹쳐졌다. 입 안으로 곧장 침범한 혀는 길게 늘어나 입천장을 거칠게 훑고 당황해 굳어 있는 해인의 혀끝을 문질렀다. 자신이 깔짝깔짝 건드릴 때와는 격이 다른 자극에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아났다. 포갰던 입술이 살며시 떨어지기 무섭게 백담호가 해인의 윗입술을 물고 비죽 웃었다.

해인의 바지춤을 가르고 커다란 손이 속옷 안까지 들어섰다. 정액과 프리컴으로 젖어 있던 속옷이 질척하게 백담호의 손등에 들러붙었다. 통통한 엉덩이 한쪽을 백담호가 콱 움켜잡자 해인은 바르르 허리를 떨었다.

“읏…!”

“얼마나 혼자서 물을 질질 흘린 거야, 해인아.”

백담호는 온갖 액으로 미끌거리는 둔부를 반죽하듯이 거칠게 주물러 댔다. 손아귀의 힘이 강한데도 해인은 아프기보단 찌릿한 성감이 느껴졌다. 다시 해인의 성기에 빳빳하게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허리가 움찔거리며 흔들렸다. 이제는 흥분한 기색을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발정이 아주 제대로 나서는….”

씨팔. 아까는 발정 안 났다며. 들끓는 열기에 목울대를 일렁인 백담호가 해인의 구멍에 손가락을 곧장 쑤셔 넣었다. 이미 녹진하게 풀린 구멍은 쉽게 벌어졌고 내벽은 녹아내릴 듯이 뜨거웠다. 손가락을 감싸 조여대는 녹녹한 살이 야했다.

“하으…. 아…. 담호야…!”

손가락 두 개가 구멍 곳곳을 무자비하게 쑤셔 댔다. 달아오른 내벽 이곳저곳을 쿡쿡 찔러 댈 때마다 속살이 꽈악 움츠러들었다. 배 안에서 지글거리는 성감에 해인은 저도 모르게 눈이 풀려서는 허리를 흔들었다. 해인의 페로몬 향이 점점 더 짙어졌다. 백담호는 야하기 그지없는 해인의 모습과 달뜬 향에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오랜만에 붙어먹으려니 벌써부터 사정감이 강하게 몰려온다.

존나… 돌겠네. 거친 목소리로 중얼거린 백담호는 바로 해인의 몸을 뒤집어 버리고 바지를 벗겨 냈다. 바깥으로 드러난 뽀얀 엉덩이에는 액들이 가득 묻어 음란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둔부를 주욱 옆으로 잡아당기니 몇 번 쑤셔 줬다고 구멍이 벌름거리며 붉은 속살을 보였다가 숨기기 바빴다.

하아…. 나직하게 숨을 내쉰 백담호가 몸을 수그려 해인의 귓가에 물었다.

“너 구멍 존나 벌름거려, 해인아.”

평소라면 하지 말라고 소리쳤을 음담패설에도 해인은 조용했다. 그저 색색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뭉그적거리며 발기한 제 것을 시트 위에 비빌 뿐이었다. 정신을 거의 놓아 버린 게 분명했다. 백담호는 붉게 달아오른 목덜미를 노려보다가 콱 씹었다. 러트가 오면 힘들다는 걸 누구보다 담호가 잘 알고 있지만, 아까 억제제를 계속 강요했더라면 서운할 뻔했다.

“아윽!”

아찔한 통증에 해인이 뒤를 돌아보려 했지만 백담호가 등허리를 눌러 압박했다. 골 사이에 뜨겁고 핏발 선 좆을 문지르던 백담호가 말했다.

“바로 넣는다.”

이미 쾌락에 젖은 해인은 백담호가 뭐라고 하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무조건 으응, 응 하고 대답했다. 어떻게든 이 달아오른 몸을 해결하고 싶었다. 퍼억, 굵은 성기가 지체 없이 구멍을 파고들었다.

“아흐윽…!”

전신에 찌릿한 감각이 퍼졌다. 성기에서 픽 허연 액이 흘러나와 시트 위를 적셨다. 들어선 것만으로도 부푼 귀두가 전립선을 짓눌러 해인의 몸은 간헐적으로 경련했다. 같이 조였다가 풀어지는 내벽에 백담호가 더운 숨을 뱉고 해인의 양 골반을 움켜잡았다.

퍼억, 퍽, 강한 소리가 날 정도로 백담호가 허리를 쳐올렸다. 핏줄이 불거진 성기가 아래를 들락날락하는 게 생경하게 느껴졌다. 마찰되는 살갗에 오싹한 쾌감이 일어 해인은 정신을 놓은 사람처럼 신음을 내질렀다.

“읏, 흐윽…. 담, 담호…. 좋아…. 아흑…!”

시야가 눈물로 얼룩졌고 참을 수 없는 쾌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백담호는 이제는 완전히 해인의 등 뒤로 몸을 겹치며 더욱 깊게, 안쪽까지 제 성기를 넣으려 허리를 밀어붙였다. 둔부가 백담호의 장골에 뭉개져 살이 떨어졌다 붙을 때마다 쩌억거리는 소리가 음란하게 퍼졌다.

“해인이가, 하아…. 아주 나를 돌아 버리게 하려고, 후, 작정을 했지.”

어? 해인의 귓바퀴를 잘근잘근 씹으며 백담호가 구멍에 성기를 박아 넣은 채 허리를 돌렸다. 내벽을 휘젓는 단단한 것이 마른 뱃가죽을 뚫을 듯이 굴었다. 쉬지 않고 전신에서 번뜩거리는 쾌감에 해인은 두려웠다. 온몸이 망가질 것 같은데도 동시에 이 쾌락에 평생 빠져들고 싶었다.

“하으…. 아…. 아아…. 너무…. 흐…. 너무….”

“너무 좋아서 뒤질 것 같다고?”

백담호가 해인의 가슴을 한 팔로 감싸 몸을 벌떡 일으켰다. 성기 주변으로 시트가 완전히 축축하게 젖어 들어 해인의 성기와 떨어지자 얇은 실이 주욱 늘어났다. 백담호가 해인의 몸을 제게 밀착하도록 꽉 당긴 채 허리를 퍽 쳐올리자 마른 뱃가죽이 불룩하게 튀어나왔다. 좆을 알맞게 조이는 내벽이, 이제는 자신의 페로몬과 맞먹을 정도로 뿜어져 나오는 해인의 향에 백담호 역시 뇌가 녹아내릴 지경이었다.

“하…. 너 열성이라는 거 거짓말이지.”

백담호가 해인의 목덜미를 잘근잘근 물어뜯으며 거칠게 추삽질을 해 댔다. 평소에는 아무리 진하게 내뿜어도 해인의 페로몬은 항상 제 것에 먹히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은 꽤나 짙게 제 존재를 알려 와 정신이 아찔했다. 옅은 피부 위에 잔뜩 잇자국을 내놓고 나서야 백담호가 입을 떨어트렸다. 그러고는 머리카락에 얼굴을 박고 문지르며 끈적한 호흡을 뱉었다.

“하, 씨발. 냄새.”

향이 옅을 때도 좋았는데 진해지니 머릿속이 전부 절여지는 것 같았다. 이대로 몇 날 며칠이고 좆을 박은 채 끌어안고 있고 싶을 정도였다. 해인의 허리를 잡고 있던 한 손을 아래로 쓸어내리자 딱딱하게 선 성기가 잡혔다. 조심스럽게 뿌리부터 선단까지 문지르자 내벽이 꽈악 조여들며 해인의 성기에선 유백색 액이 흘러나왔다. 작게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백담호는 번들거리는 미소를 지은 채 허리를 느리게 움직였다.

제 허벅지에 뭉개듯 비벼지던 해인의 앞섶과 달뜬 호흡이 아직도 생경하게 떠올랐다. 조금 더 모르는 척해 볼까, 어디까지 하나 두고 볼까 했지만, 기어코 혼자 사정까지 하는 꼴에 인내심이 완전히 바닥나고 말았다. 러트가 온 알파한테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은 건 처음이었다. 백담호가 눈을 번뜩였다.

“여기, 부푼 거 봐.”

백담호가 해인의 성기에서 조금 부풀어 오른 곳을 더듬었다. 기둥의 조금 아랫부분, 보통 러트 상태의 알파가 오메가에게 노팅을 할 때 부푸는 곳이었다. 장난을 치듯 그 부분을 손끝으로 문지르니 해인의 몸이 곱아들고 허벅지가 달달 떨려 왔다.

“아흑, 거기…… 만지지……. 흐, 으윽…!”

가장 예민한 부분이었다. 이렇게 손으로 건드리면 꽤 아프다는 걸 백담호도 알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아픈 만큼 더한 쾌감이 함께 느껴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까. 해인은 허리 아래가 감전된 것처럼 찌릿거려 자꾸만 튀어 올랐다. 자극을 당할 때마다 아픈데 동시에 무언가 터질 것 같은 쾌감이 아슬하게 드니 정신을 놓을 것 같았다.

입으로는 연신 아프다, 만지지 말라고 외치면서 해인은 어느새 백담호의 손에다가 성기를 비비기 시작했다. 아랫배에 힘을 주어 내벽에 가득 찬 성기를 조일 때마다 부어오른 극점도 함께 자극되어 성감은 배가 되었다.

하아, 하아.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해인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쾌감을 좇았다. 조금만 더. 해인이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자 백담호는 목울대가 긁히듯 신음을 흘리다 픽 웃었다.

“이러다가 허공에 노팅 하겠어, 해인아.”

그런데 어쩌나…. 해인이 좆질 할 데가 없는데. 짐짓 안쓰러운 듯한 목소리였지만 백담호의 표정은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백담호가 해인이 좆을 문지르고 있는 손을 떨어트리자 해인은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마치 왜 손을 빼내냐는 원망 같았다.

“어딜.”

그새 참지 못하고 해인이 스스로 제 것을 쥐려 하자 백담호가 찰싹, 손을 쳐 냈다. 직접 만져 주지도 않아, 그렇다고 혼자 만지게 하지도 않아 겹겹이 쌓인 성감이 몸을 더욱 달게 만들어 해인은 울상을 지으며 위를 올려다봤다. 눈물에 젖은 눈에 백담호는 더욱 치기가 어려 되레 느긋하게 모르는 척했다.

“왜, 아프다고 만지지 말라며.”

백담호의 말에 해인이 입술을 꾸욱 다물었다. 아까 강하게 물고 빨았던 입술이 통통하게 부어올라 백담호는 해인을 놀리는 것도 잊고 그대로 다시 입을 맞출 뻔했다. 아니, 실제로도 고개가 이미 내려앉고 있었다. 그러나 곧이어 들려오는 해인의 원망 어린 목소리에 백담호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네가, 네가 전에 너 손에다가 좆질 하라고 했잖아….”

순간 무슨 말인가 백담호는 미간을 찌푸렸다가 이내 아, 하고 깨달았다.

- 해인아, 좆질은 이따가 내 손에다가 실컷 하자…. 응? 그렇게 깔짝깔짝 움직이지 말고.

지난날 자신이 러트가 왔을 때 해인에게 한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결국 백담호만 실컷 박아 대다가 끝이 났던 것 같다. 그걸 아직까지 담아 두고 있던 거야? 백담호는 황당한 동시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더니 눈을 즐겁게 휘어 접곤 해인의 빳빳한 좆을 손으로 감쌌다.

“그랬네, 내가 그랬었네.”

“으, 응…. 아……!”

백담호가 해인의 성기를 앞뒤로 문지르며 느리게 움직이던 허리를 뒤로 주욱 빼냈다가 빠르게 앞으로 박았다. 콱콱, 백담호는 연속적으로 거칠게 좆을 쑤셔 넣었다. 그 강한 힘에 해인의 몸이 덩달아 앞으로 계속 튕겨 나가 마치 해인이 정말 백담호의 손에다가 추삽질을 하는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흐으, 아, 하윽…. 어, 어떡…. 백…!”

백담호가 부러 좁게 말아 쥔 손아귀에 해인의 성기가 짜내지듯 들락날락했고, 내장이 짓뭉개지듯 쑤셔지는 아래에 해인은 제대로 된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이 벌어져 뚝뚝 끊기는 소리만 나왔다.

“내가 잘못했네, 내가 못됐어.”

해인이 내 손에다가 좆질 하고 싶은 것도 모르고. 백담호가 허리짓에 더욱더 속도를 가했다. 장골에 연속적으로 부딪힌 엉덩이는 붉게 달아올라서는 백담호의 장골과 닿을 때마다 보기 좋게 흔들렸다. 끅끅, 숨이 막힐 것 같은 쾌감에 해인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눈물만 줄줄 흘렸다.

전신이 달아올라 핏줄이 불거진 성기가 빠져나가려 할 때마다 내벽은 탐욕스럽게 좆을 씹어 댔다. 백담호는 낮게 신음을 뱉고는 해인의 성기를 감싼 손으로 기둥 아래 부푼 곳을 꾸욱 조이고는 제 성기를 극점 위에 단번에 찔러 넣었다. 곧바로 해인이 눈을 크게 뜨며 몸을 파드득 떨기 시작했다. 입에서는 우는 것 같기도 하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기도 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으…. 흐으…. 하으윽…!”

백담호의 손아귀에 있던 성기 아래가 전보다 훨씬 부풀어 올랐고 요도구에서는 흰 액체가 쉼 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내벽이 강하게 수축하며 백담호의 좆을 조였다. 곧이어 해인은 제 뱃속으로도 꿀렁꿀렁 질척한 액으로 채워지는 게 느껴졌다.

“아…. 이상…. 흐…. 이거 왜….”

이거 왜 안 멈춰…. 몸이 계속 바르르 떨렸고 초점이 흐려졌다. 허리가 달달 떨리는 와중에도 성기에서는 계속 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처음 느껴 보는 낯선 느낌에 해인은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백담호는 해인의 성기를 잡았던 손을 떨어트리고 양팔로 그를 꽈악 끌어안았다.

노팅을 하는 알파의 내벽이 좆을 끊어 먹을 듯이 조여 댔기 때문이다. 백담호는 고통이 수반된 쾌감에 해인의 어깨를 씹었다. 다행히도 해인이 열성이라 그런지 부풀었던 기둥 아래는 생각보다 빠르게 수그러들었고 강하게 수축했던 내벽도 흐물흐물 풀어졌다.

해인에게 있어 가장 길었던 사정이라 순식간에 극심한 탈력감이 몰려왔다. 해인의 몸이 추욱 늘어지자 백담호는 조심스레 그를 다시 엎드려 눕히고는 천천히 성기를 빼내었다. 둔부를 잡고 옆으로 늘어트리니 즈윽, 하는 젖은 소리가 나며 빠지는 좆 기둥에 질척한 액이 늘어졌다.

완전히 빼내자 다 다물리지 않은 입구가 벌름거리며 정액이 새어 나왔다. 음란한 광경을 눈에 담던 백담호가 해인의 몸을 뒤집었다. 흐물거리는 몸은 맥없이 움직이며 간헐적으로 경련했다.

“해인이 나한테 좆질도 하고 노팅도 하고…….”

이제 나 책임져야겠다. 그치.

의도적으로 손바닥을 뺀 백담호가 애교 부리듯 해인의 눈물진 얼굴에 쪽쪽 입을 맞췄다. 그건 너도 나한테 그랬잖아…. 해인은 무력감에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이제는 욕정 대신 몸이 추욱 늘어진다. 더 이상 내보낼 것도 없을 것 같았고 러트고 뭐고 일단 자고 싶었다.

“…백담호, 나 이제 괜찮은 거 같아.”

“응.”

백담호가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해인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언제 아래로 내려간 건지 백담호가 해인의 한쪽 다리를 잡아 올리고 있었고 그 아래 우뚝 서 있는 좆이 보였다. 해인이 더듬거리며 고개를 가로젓자 백담호도 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해인이가 러트가 제대로 온 적이 처음이라 모르나 본데.”

“윽!”

해인의 고환을 백담호가 손으로 움켜잡았다.

“러트가 오면 여기가 평소보다 수십 배 빠르게 꽉 차.”

“나 러트 끝…….”

“아니, 아직도 냄새가 진동하는데.”

도와줄게, 해인아. 백담호는 짙게 웃으며 흐물흐물한 입구에 제 귀두를 맞췄다.

* * *

러트가 온 건 자신인데 왜 발정 난 건 백담호일까. 백담호는 가히 짐승처럼 계속 허리를 흔들었다. 침대 시트는 더 이상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젖어 축축해 기분이 나빴다.

해인이 망가진 인형처럼 백담호의 어깨에 몸을 늘어트리며 바람 빠지는 소리를 색색 내뱉었다. 눈두덩이는 다 부어올라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마찬가지로 핏줄이 터진 것처럼 빨갛게 부어오른 둔부는 허벅지와 부딪힐 때마다 철썩거리는 물소리가 울렸다. 골 사이로는 번들거리는 성기가 빠르게 왕복하고 있었다.

“흣……. 그만…….”

“아직.”

백담호는 해인의 목덜미에 자꾸만 코를 박으며 얼굴을 문질렀다. 아직도 냄새가 야해 빠졌다면서, 자기 멋대로 해인의 러트가 끝나지 않았다고 우겨 댔다. 하지만 정작 이제 이 방 안을 가득 채운 건 해인의 페로몬이 아니라 백담호의 페로몬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주입되는 백담호의 페로몬에 해인은 기력이 전부 빨린 와중에도 성감이 배 아래에서 들끓어 죽을 맛이었다. 발정제라도 먹은 것처럼 돌아 버릴 것 같았다.

하도 쓸려 이제는 아래가 아려 오고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눅진하게 풀어진 구멍 속으로 단단한 좆이 틀어박힐 때마다 해인의 성기에서는 말간 물이 직직 흘러나왔다. 하반신이 망가진 게 분명하다.

백담호, 개씨….

속으로 욕을 삼킨 해인이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백담호의 어깨를 퍽퍽 내리쳤다.

“이 개새끼야…. 으읏, 그만, 하라고…!”

나 약 먹을게, 억제제 먹을 테니까. 그만, 제발…. 아래가 쓰라려…. 울먹거리는 목소리에 백담호는 달래듯 해인의 뺨에 흐르는 물줄기를 쪽쪽거리며 빨아먹었다.

“아파? 많이 쓰라려?”

묻는 와중에도 추삽질은 멈추지 않아 해인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백담호도 죄책감이 들었는지 성기가 단번에 쑥 빠져나갔다. 안을 가득 채우던 살덩이가 빠져나가니 허전해진 구멍이 뻐끔거렸다. 해인을 들어 올린 백담호가 그를 제대로 눕혀 줬다.

드디어 끝났구나, 해인이 작게 흐느끼며 긴장을 푸는 순간 양 허벅지가 잡혀 벌떡 들어 올려졌다. 깜짝 놀란 해인이 잘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뜨니 백담호가 제 다리 사이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담호가 빠져나가고 잠시 잠잠해졌던 성감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뭐, 큼…. 뭐 해?”

“아래가 빨갛게 부어올랐네.”

뜬금없는 백담호의 말에 해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안 부었겠냐. 말할 힘도 나지 않아 해인은 말 대신 얼른 놓으라는 의미로 다리를 버둥거렸다. 그럼에도 백담호는 놓지 않고 제 가랑이 사이에서 시선을 떨어트리지 않았다. 해인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야….”

“미안해서 어쩌지.”

드디어 백담호가 고개를 들어 올렸지만, 해인은 큰일 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백담호의 눈과 표정이 모두 맛이 가 있었으니까. 벌겋게 번뜩이는 눈에서는 이성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해인이 다급하게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백담호의 얼굴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허벅지를 잡고 있던 손이 스르르 아래로 내려와 골반을 받쳐 들고는 손에 힘을 꽈악 주었다. 그 탓에 골 사이가 완전히 벌어졌다.

“아아…!”

예민하게 부어오른 입구 위로 뜨겁고 질척한 살덩이가 닿았다. 손가락보다 부드럽고 물컹한 것이 진득하게 입구를 쓸어올리니 오싹거리는 쾌감이 일었다. 백담호는 구멍에 질척하게 흐르는 제 정액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뒤를 빨았다.

“흐, 더럽게, 뭐 하는…. 아흑….”

백담호가 스르르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해인과 곧장 마주친 새까만 눈동자는 장난스럽게 접히며 말했다.

“진심 어린 사과?”

순간 해인은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저 변태 새끼…. 머릿속에 뭐가 든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어 해인이 넋을 놓고 있자 백담호는 더욱 뒤를 벌리고 게걸스럽게 혀를 쑤셔 넣었다. 뭉근하게 배 안으로 뱀이 기어들어 오는 것 같은 이상한 감각에 해인이 발끝을 곱으며 떨었다.

어느새 해인의 성기에서는 물이 흘러나와 배 위에 고이기 시작했다. 성기나 손가락보다는 훨씬 짧지만, 더욱 유연하고 물컹한 탓인지 다른 느낌으로 자극이 생경하게 전해졌다. 녹진한 내벽을 이리저리 건드리던 혀가 빠져나가고 백담호는 주변의 피부를 빨아들이다 회음부까지 길게 혀를 내어 핥아 올렸다.

간질거리는 쾌감에 해인이 몸을 비틀며 앓는 소리를 냈다. 회음부의 살갗을 백담호가 볼우물이 파일 정도로 주웁 빨아들이고 잘게 이로 씹었다. 따끔한 고통에 해인이 몸을 펄떡거리자 백담호는 사과하듯 회음부에 혀를 넓게 펴서 뭉근하게 비벼 댔다.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묻었던 백담호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입 주변이 누구의 것인지 모를 체액들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해인은 잘게 몸을 떨며 겨우 숨만 몰아쉬었다. 흡족스러운 낯을 한 백담호는 드디어 끝이 난 건지 옆에 드러누웠다. 슬금슬금 가슴팍으로 올라오는 손이 계속 물고 빨고 꼬집혀 퉁퉁 부은 돌기를 건드리자 해인은 몸을 획 돌렸다.

“더 하면, 더 하면….”

무언가 협박할 거리를 찾아야 하는데 둔해진 머리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웅얼거리듯 “나 죽을 거 같아….”라고 말하자 백담호는 아쉬움을 가득한 목소리로 “알았어, 해인아. 자자.”라고 말했다.

그제야 해인은 질척하게 젖은 시트 위에서 까무룩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 * *

해인이 눈을 떴을 때 담호는 없었고, 시트랑 몸은 깨끗해진 후였다. 뻑뻑한 눈을 비비며 멍하니 허공을 보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창한 하늘이 보였다.

꺼끌꺼끌한 목을 큼큼거리며 매만지던 해인이 침대 밖으로 발을 내려놓았다. 일어서려는 순간, 찌르르 척추를 타고 오는 격통과 둔부가 쪼개질 것 같은 고통에 해인은 비명도 못 지르고 다시 침대에 주저앉고 말았다.

“하아…. 미친.”

계속 벌려졌던 허벅지 안쪽, 허리는 알이 다 배겨 끔찍한 근육통이 느껴졌고 양 가슴과 엉덩이 골 사이 등 살갗 곳곳이 따끔거렸다.

영 좋지 못한 몸 상태에 해인은 제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며 몸을 수그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앞으로 러트인 거 같으면 억지 부리지 말고 약을 먹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러트가 심해졌지. 나중에 병원이라도 한번 가 봐야 하나.

고통에 조금 익숙해지자 해인이 몸을 일으켜 간단하게 품이 큰 백담호의 상의를 주워 입었다. 덩치가 꽤 차이나 적당하게 하반신이 가려졌다. 그대로 방 밖으로 나간 해인이 허겁지겁 물을 몇 컵 마시고 보니 냉장고 액정에 글이 남겨져 있었다.

[냉장고에 오므라이스 있으니까 데워서 먹어.] 오전 7:50

해인은 가만히 글을 보다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오므라이스가 보이지 않았다. 해인은 이리저리 살피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은색 보온 그릇을 꺼내 들었다. 불투명한 뚜껑을 보니 조금 찢긴 계란 지단과 그 속에 채소와 밥알이 보였다. 왜 보온 그릇에 담아 놓고 냉장고에 둔 거지. 백담호는 다 잘했는데 이상하게 요리에서만큼은 어딘가 어설펐다.

픽, 웃음을 해인이 흘린 케첩을 집어 들고 아일랜드 식탁 앞에 앉았다. 뚜껑을 열고 대충 케첩을 뿌린 다음 한 숟가락 퍼먹었다. 미지근한 온도가 오묘했지만 먹을 만했다. 아침부터 이것까지 만들고 나간 백담호를 생각하니 참 여러모로 대단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느릿하게 허공을 보면서 먹으니 금세 그릇이 깔끔하게 비워졌다. 어느 정도 배도 부르자 기분이 나른해졌다. 그릇은 이따 치우기로 하고 해인은 다시 침대 위로 기어들어 갔다. 핸드폰 화면을 켜니 메시지가 와있었다.

[백담호 : 오늘 좀 일찍 들어갈 거 같아.] 오전 11:45

[백담호 :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오전 11:45

해인은 잠시 고민하다가 전에 SNS에서 봤던 이곳과는 조금 멀리 떨어진 동네 카페에 맛있다고 소문난 디저트 사진을 찾아 보냈다. 백담호가 아무리 일찍 끝난다 한들 오후 2시가 되기도 전에 항상 조기 마감되고 예약도 안 받는다는 디저트를 사 오긴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해인은 지난밤의 백담호가 조금 괘씸해서 심술을 부렸다. 안 사 와도 상관없긴 했지만 잠깐 고뇌라도 해 보라고.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 놓고 보니 보내 놓고 보니 아빠에게 부재중 전화가 한 통 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빠가 웬일이지? 해인은 목을 최대한 가다듬고 꽤 멀쩡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확인한 뒤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얼마 울리지 않아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해인아, 우리 아들!

“네, 아빠. 왜 전화했어요?”

- 어어, 별건 아니고. 우리 아들 잘 지내나 걸어 봤지.

“나야 뭐, 잘 지내죠. 아빠는요?”

그러고 보니 부모님을 뵌 지가 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그래도 본가에 두 달에 한 번은 갔던 것 같은데.

- 아빠도 그럼 잘 지내지. 요즘 오피스텔에도 잘 안 들어간다면서.

“아….”

해인은 왠지 조금 민망해 눈을 도르르 굴렸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애매해 정적이 흐르자 아빠가 먼저 말을 꺼냈다.

- 그…… 백담호 그 녀석이랑 같이 지내는 거냐?

실상 백담호와 자신의 관계가 이미 전해졌다고는 하나 막상 부모님과 대화로 나누려니 어색해서 미칠 것 같았다. 해인은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 작게 “네. 그렇죠, 뭐.”라고 대답했다. 목소리에는 민망함이 가득했다. 해인의 아빠 역시도 상황이 어색한지 잠시 조용했다.

- 뭐 같이 지낼 만하냐?

“네, 괜찮아요….”

- 다행이구나.

또 정적이 흐르다가 허허,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거참 신기하네.” 하는 중얼거림이 들려와 해인은 얼굴이 달아올랐다. 집에서 백담호를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지난날의 자기 모습이 떠올라 빨리 전화를 끊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아빠 왜 전화하셨어요….”

- 녀석, 부자지간에 일이 있어야 전화를 해? 그냥 잘 지내나 궁금해서 전화했지. 집에는 언제 올 거야. 백담호 그놈하고도 같이 와라. 얼굴 좀 보자!

“…네.”

해인은 백담호를 데리고 갈 생각이 별로 없었지만 일단 대답했다. 전화를 빨리 끊고 싶었기 때문이다.

- 아, 그리고 강서준 씨 말인데.

“서준 씨요?”

- 그래그래, 강서준 씨 오피스텔 관리직 말고 좀 다른 부서로 옮길까 하는데 괜찮냐? 오피스텔 청소 정도는 그냥 업체 부르면 되니까. 어때.

“…서준 씨가 부서가 있었어요…?”

- 그래! 방해인 전담 부서지, 녀석아! 네가 예전에 사고를 좀 치고 다녔냐.

“아하하…. 그건 그렇죠….”

- 근데 네가 이제는 잠잠하게 잘 다니니까…. 원래라면 자르는 게 맞지만, 강서준 능력이 꽤 있어서 다른 쪽에다 옮겨 보려고 하지.

“아, 아직 서준 씨하고 얘기된 건 아니에요?”

- 그래, 너 괜찮다고 하면 말하려고 한다.

해인은 잠깐 고민했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오피스텔에 잘 들어가지도 않았고 서준도 딱히 할 일 없는 오피스텔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는 꽤 성실한 성격이었으므로.

“네, 괜찮아요.”

- 그래그래, 그럼 빠른 시일 내에 집에 좀 오고. 가끔 먼저 니네 엄마한테 전화도 해라! 엄마 서운해한다. 금이야, 옥이야 키웠는데 연애한다고 연락도 안 한다고.

“네네, 알겠어요. 이제 끊어요.”

드디어 전화가 끊겼다. 살짝 돌아왔던 체력이 모두 증발해 버렸다. 해인은 풀썩 베개에 얼굴을 박아 늘어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담 부서가 아예 따로 있었구나.

생각보다 큰 스케일에 해인이 놀랐다. 그러다 제 과거를 슬그머니 떠올렸다. 중고등학생 때도 여기저기 시비를 털고 다니기는 했지만, 막 20살이 되었을 때가 인생 최대 망나니 시절이었다. 술집에서 싸움 붙고…. 길거리에서도 싸움 붙고…. 클럽에서도…. 거의 쌈닭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때 난 왜 그렇게 항상 화가 났을까. 기억을 잃기 전의 해인은 조금만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났다. 아니, 어쩌면 그냥 항상 화를 품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의 자신의 마음을 현재의 해인도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정말로 시스템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평생 그러고 살았을까. 시스템의 유일한 순기능인가.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여전히 해인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미 다 끝난 일이기는 했지만서도 가끔씩 떠올랐고 조금 불안했다. 정말로 완전히 끝난 게 맞는 건가 해서. 스멀스멀 발밑에서 기어 올라오는 불안감을 해인은 억지로 떨쳐 내려 몸을 일으켰다.

뭐라도 하자. 해인은 거실 소파에 앉아 소파 테이블 위에 올해 안에 따려는 자격증 교재를 펼쳤다. 합격률이 상당히 낮은 편이라 열심히 해야 하는데 책을 펴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두식이가 해인의 책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두식아, 비켜. 형 공부해야 해.”

해인이 툭툭 쳤지만 두식이는 비킬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두식이를 쓰다듬던 해인은 점점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직 긴 관계로 회복하지 못한 몸이 잠을 요구로 했다.

아, 공부해야 하는데.

해인이 무의식적으로 손등을 꼬집으려다가 멈칫했다. 결국 해인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 * *

백담호가 손에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비닐봉지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조용한 집 안에 의아하게 두리번거리던 백담호가 소파 테이블에 엎드려 잠든 해인을 발견했다. 백담호는 곤히 잠든 모습에 묽게 미소를 짓다 소파 위에 봉지를 내려놓고 해인의 등을 토닥였다.

몇 번 두드리니 해인이 느리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아직 멍한 낯과 엎드려 자서 눌린 앞 머리카락이 귀여워 백담호는 짓궂게 머리칼을 헤집어 놓고는 이마에 입을 맞췄다.

“빨리 왔네….”

“응, 일찍 끝났어.”

해인이 기지개를 켜고 눈에 무겁게 달라붙은 졸음을 떼어 내려 꽈악 감았다가 번쩍 떴다.

“먹고 싶다는 거 사 왔어.”

“엥, 정말?”

“응, 뒤에 봐봐.”

해인이 곧바로 뒤를 돌아보자 소파 위에 해인이 말한 카페 이름이 적힌 봉지가 놓여 있었다. 꽤나 놀란 눈으로 그걸 보던 해인은 무릎을 세워 앉아 비닐봉지 안을 살폈다.

앉아 있을 땐 몰랐는데 일어서니 해인의 맨 허벅다리가 고스란히 백담호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옷도 제 옷이었다. 백담호는 잔잔하게 해인의 드러난 맨다리와 곳곳에 자신이 남긴 흔적들을 음흉하게 훑어봤다.

“와, 진짜 사 왔네. 어떻게 사 왔어? 이거 예약도 안….”

“뭐지, 꼬시는 건가.”

뜬금없는 백담호의 말에 해인이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백담호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기민하게 눈치챈 해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 진짜 안 돼. 너 진짜 양심 있으면 그러면 안 돼.”

“양심 없다고 하면…. 농담이야.”

살벌한 해인의 눈초리에 백담호는 너스레 떨듯 웃으며 해인의 허리를 감싸 안고 어깨에 턱을 내려놓았다. 해인이 의심스럽게 노려보자 백담호는 해인의 엉덩이를 어린애 달래듯이 토닥거렸다.

“정말 농담이야. 해인아. 화내지 말고 맛있는 거 먹자. 얼른.”

그제야 해인은 의심을 거두고 봉지에 넣어져 있는 종이 상자를 꺼내 열었다. 안에는 아기자기하게 생긴 초코 케이크와 포크 하나가 들어가 있었다. 해인이 크게 떠서 먼저 백담호의 입에 가져다 댔다. 백담호는 생글생글 웃으며 받아먹었다. 곧바로 한 입 먹은 해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개맛있어. 미친 거 아냐?”

빵 사이에 들어가 있는 부드러운 초콜릿 무스와 그 아래 깔린 라즈베리 잼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적당히 단 것도 해인의 입맛에 꼭 들어맞았다.

“맛있어?”

“응, 진짜. 대박. 그런데 진짜 어떻게 사 왔어? 여기 예약도 안 받는다는데.”

“네가 먹고 싶댔잖아. 어떻게든 사 와야지.”

백담호는 별거 아닌 투로 말했지만, 해인은 비죽비죽 말려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참을 수 없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린 해인이 백담호의 콧잔등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백담호는 잠시 놀란 듯한 표정을 짓다 이내 기분 좋게 눈을 휘었다. 이내 백담호도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췄고 해인의 몸이 옆으로 넘어갔다. 너무 진득하지 않게 입술을 겹치던 백담호가 나긋하게 물었다.

“다음 주 주말쯤에 어디 놀러 갈까?”

“다음 주 주말?”

“방학 끝나기 전에 어디 한번 가야지.”

해인의 얼굴 위로 다정한 시선이 내려앉았다. 해인은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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