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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342화 (342/530)

342화. 옷 한 벌 새로 장만하시지요

운현은 마차를 타고 관도를 달리고 있었다.

조관이 섬에 남은 터라 함께한 사람은 영호준과 담소하였다.

일아영은 조관과 함께 남았다. 조금 더 안정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영 소저에겐 다 말씀해 주셨습니까?”

영호준의 말에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강은요.”

섬을 떠나기 전, 일아영은 정신을 차렸다.

운현을 본 일아영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운현이 해 준 설명은 더더욱 이해하지 못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녀가 기억하기로 숙부 운현은 서기로 일하던 문사였는데, 갑자기 강호 무림의 일에 얽혔다니 말이다.

자신이 운현을 끌어내기 위한 인질이 된 것과, 납치범들이 죽었다는 것도 일아영을 놀라게 했다.

자세한 상황은 말하지 않았지만 섬에 가득한 관군들을 보고 일아영도 나름 납득을 한 듯했다.

따각, 따각.

“총군사님.”

운현이 문득 나지막이 물었다.

“아까 말씀하셨던 심마라는 게 무엇입니까?”

“네? 아…….”

영호준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올바른 깨달음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들을 도가나 불가에서는 심마라고 합니다. 불현듯 떠오르는 욕망이나 유혹이라든가, 혹은 마음속 깊은 곳의 어둠까지 아주 다양하지요.”

운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거라면 오히려 제 경우는…….”

“그래서 더 문제입니다.”

영호준은 한숨을 쉬었다.

“제게 말씀해 주신 대로라면 맹주님은 감정을 억제했고, 그래서 내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뜻하는 대로 검로를 펼쳐 낼 수 있었습니다.”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원인과 결과가 반대입니다.”

“반대라고요?”

“감정은 쉽게 억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호준은 눈을 빛냈다.

“특히 배신자나 원수를 눈앞에 두었다면 더더욱 힘들지요. 수십 년 도를 닦고 참선한 도사라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감정이란 것이 어디 뜻대로 다스려지는 것이던가?

“그럼…….”

“그래서 반대라는 것입니다. 감정을 억제했기에 검로를 펼쳐 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검로 때문에 감정이 사라지고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확실히 가능할 법한 이야기였다.

곰곰 생각해 보던 운현은 영호준에게 물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합니까?”

“모르겠습니다.”

영호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도를 닦다가 심마가 드는 것도 아니고, 검을 펼치면서 그런 상태가 되다니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물론 검법에 심취하다 보면 무아지경에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맹주님의 경우는 매우 특이하군요.”

운현은 문득 와불 선사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조차 말하기를 운현의 수련검은 하늘을 노니는 용 같아서 이해할 수조차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일단은 좀 더 속세에 푹 빠지시는 게 어떨까요? 마침 합비에는 아주 괜찮은 기루가 있습니다.”

지금 일행은 합비에 있는 남궁세가로 가는 중이었다.

아미파에 이은, 창룡맹 정식 가맹 문파의 방문이었다.

“기루요?”

담소하가 눈을 반짝였다.

“어허. 너무 일찍부터 밝히면 뼈가 삭네. 나중에 고생하기 싫으면 소형제는 자제하게.”

“나도 어엿한 성인이라고요!”

억울하다는 듯 담소하가 항변했다.

하지만 영호준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맹주님의 인척이나 지인들은 누가 있습니까?”

운현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광주 운가상단에 친척들이 있고 의형의 본가가 악양에 있습니다.”

“그리고요? 맘에 든 여자나, 아니면 이 사람만은 꼭 지키고 싶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까?”

운현은 어색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런 건 조금 개인적인…….”

“어허, 왜 이러십니까? 총군사로서 이는 반드시 알아야 할 심각한 문제입니다.”

영호준은 눈을 빛냈다.

“그래서 누굽니까? 마음에 두신 아가씨는요? 여럿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사람부터 차례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맹주님은 아는 아가씨가 많아요.”

담소하가 불쑥 말했다.

“황보선혜라는 아가씨는 오라버니라 부르겠다고 했고, 모용미 아가씨는 연회장에서 몰래 쪽지도 전했고요.”

“저기 그건…….”

“아, 그리고 보니 광주에서도 여자 문제였는데.”

운현의 표정이 일그러지는데 영호준이 너털웃음을 흘리며 감탄했다.

“어이쿠, 우리 맹주님이 검만 잘하시는 줄 알았더니 풍류에도 매우 능하시군요. 제가 오히려 한 수 배워야겠는데요? 하하하.”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래서야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듯했다.

하지만 영호준은 눈치가 빨랐다.

“그러고 보니 지금 가고 있는 남궁세가에서도 누가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닙니까?”

영호준의 말에 운현은 뜨끔했다.

확실히 남궁세가에는 남궁비연이 있다.

남궁세가 총감찰이자 운현이 후견인으로 있는 잠룡 말이다.

“비연 소저는 그런 게 아니고…….”

“진짜 있었습니까?”

영호준은 정말로 놀랐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물론 저는 이해합니다. 본래 향기로운 꽃에는 나비가 날아들기 마련이니까요.”

담소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비유가 바뀐 것 같은데요?”

“어허. 남자라고 꽃이 되지 말란 법 있나? 나만 해도 화산의 꽃, 매화검 아닌가?”

그런 의미의 꽃은 아니겠지만 영호준은 짐짓 근엄한 태도로 말했다.

담소하는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입술을 비쭉 내밀고, 운현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따각, 따각.

마차 밖으로 관도의 경치가 스쳐 지났다.

남궁세가가 자리잡은 대도시, 합비가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

합비는 여전히 크고 번화했다.

그러나 남궁세가로 향하는 큰길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사람과 마차는 여전히 많았지만 모두가 멈춰 선 채 쥐 죽은 듯 조용했던 것이다.

게다가 큰길의 한가운데를 완전히 비워 놔서, 인파 사이로 길이 열려 있는 듯했다.

따각.

운현 일행의 마차가 도착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그 압박감에 마부가 말도 안 했는데 마차를 세우고 물었다.

“어, 어떻게 할까요?”

운현과 영호준, 담소하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알아차렸다.

대로에 가득한 사람들은 호기심과 왠지 모를 기대가 담긴 눈빛으로 운현 일행의 마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호준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음, 뭐 가도 괜찮을 것 같긴 한데…….”

막는 사람도 없고 알려 주는 이도 없다.

결국 마차는 천천히 인파 사이로 열린 길을 따라갔다.

따각, 따각.

‘이거,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문득 운현은 제갈기호와 함께 제갈세가에 방문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제갈기호가 세가의 깃발을 올리자 이와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었다.

‘하지만 지금은…….’

딱히 남궁세가의 깃발을 올린 것도 아니고, 남궁세가의 사람이 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시선은 그때와 너무도 비슷했다.

마차가 지날 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는 것까지 말이다.

따각, 따각.

얼마 후 남궁세가 앞에 도착했을 때, 마부는 더욱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남궁세가의 무복을 입은 무인들이 정문 앞에 질서 정연하게 도열해 있었던 것이다.

언뜻 보아도 그 수가 족히 백여 명은 될 듯했다.

“……세가의 일대제자들이군요.”

영호준이 그들을 알아보았다.

“저 정도면 남궁세가의 핵심 정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 역시 남궁세가네요.”

그들의 모습에 영호준은 감탄했다.

운현이 봐도 그 기세나 눈빛이 사뭇 범상치 않았다.

그사이, 일행의 마차는 남궁세가 정문 앞에 도착했다.

대기하고 있던 세가의 총관이 공손하게 마차 문을 열었다.

달칵.

문이 열리고 제일 먼저 모습을 나타낸 사람은 바로 매화검 영호준이었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우와아아아!”

정적은 온데간데없이 깨어지고, 남궁세가가 떠나갈 듯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창룡검주! 창룡검주 만세!”

“창룡맹 만세!”

“남궁세가 만세!”

사람들은 창룡검주와 창룡맹, 그리고 남궁세가를 목이 터져라 연호했다.

영호준은 사람들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며 멋들어진 웃음을 머금었다.

그렇지 않아도 잘생긴 영호준이 미소까지 머금으니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 아닐 수 없었다.

“우와아아아!”

사람들은 미친 듯 소리 질렀다.

영호준은 몸을 돌려 지금 막 마차에서 내리는 운현을 정중하게 맞이했다.

운현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환호성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가운데 섞여 들리는 목소리를 운현은 놓치지 않았다.

“누구야?”

“몰라.”

“그래도 창룡검주님과 함께 왔으니 대단한 사람이겠지.”

“우와아아아!”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영호준은 다시 사람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웃음을 머금었다.

사람들의 환호가 하늘을 찌르는 사이, 담소하가 귀를 막으며 마차를 내렸다.

“아우. 시끄럽네요. 그런데 왜 대인이 아니라 총군사께 환호를 하는 거죠?”

영호준이 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내가 제일 화려한 옷을 입어서겠지. 키도 제일 크고.”

합비 사람들이 창룡검주의 얼굴을 알 리가 없다.

매화검 영호준 역시 마찬가지다.

무림맹이 있던 항주가 아니라면 그를 알아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니 가장 화려하고 멋진 데다 키까지 큰, 그리고 제일 먼저 내린 영호준을 창룡검주라 여기고 환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럼 앞으로 총군사님은 좀 수수한 옷을 입으셔야겠네요.”

“어허. 다 같이 잘나갈 생각을 해야지, 왜 앞서가고 있는 사람을 끌어내리려 하나?”

영호준은 담소하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운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 기회에 맹주님께서도 옷 한 벌 새로 장만하시지요. 가급적이면 반짝반짝하고 용 문양도 들어간 걸로요.”

“저는 괜찮습니다.”

운현은 사양했다.

“옷을 맞춰도 괜찮다는 뜻입니까?”

“아뇨. 이대로가 좋다는 뜻입니다.”

영호준은 미련이 남은 듯했지만 운현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사이, 사람들을 둘러보던 담소하가 문득 말했다.

“그런데 왜 이 사람들이 환호를 하는 거죠? 남궁세가 사람들도 아닌데.”

“남궁세가와 합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서 그렇네. 당장의 수입도 그렇지만, 이들에게 남궁세가는 자부심이거든.”

제갈기호 역시 비슷한 말을 했었다.

제갈세가가 있는 곳이 도시의 중심이 된다고.

남궁세가 역시 마찬가지다.

그간 봉문하다시피 했던 남궁세가인지라, 합비 사람들이 느끼는 감격은 더더욱 컸다.

영호준이 운현에게 말했다.

“들어가시지요. 사람들의 환호도 이 정도면 충분하니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상황을 가장 즐기는 사람은 영호준이었다.

운현과 영호준, 담소하 세 사람은 남궁세가의 정문으로 발을 옮겼다.

그사이에도 영호준은 연신 사람들을 향해 웃거나 손을 흔들어 보였다.

특히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있는 곳은 빼놓지 않았다.

그때였다.

“남궁세가의 제자들은!”

도열해 있던 남궁세가의 제자들 중 한 명이 크게 외쳤다.

“맹주님께 예를 표하라!”

그 말이 끝나자 백여 명의 남궁세가 제자들이 일제히 두 손을 앞으로 하며 고개를 숙였다.

척.

“맹주님께 예를 표합니다!”

검을 찬 백여 명의 제자들이 동시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우와아아아아!”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사람들은 또다시 환호를 내질렀다.

“남궁세가 만세! 만세!”

“창룡맹 만세!”

“창룡검주 만만세!”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한 환호성 속에서, 운현은 남궁세가의 제자들을 향해 정중하게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사락.

운현이 예를 표하고 고개를 들자 남궁세가의 제자들 역시 머리를 들었다.

가벼운 미소를 머금으며 운현은 제자들 사이로 걸어 남궁세가로 들어섰다.

저벅, 저벅.

“와아아아아!”

사람들은 손을 흔들며 운현 일행의 뒷모습을 향해 환호했다.

그들의 환호성은 운현 일행이 정문 안으로 사라지고 남궁세가의 제자들이 들어간 다음에도 한동안 이어졌다.

왜 가장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아니라 수수한 문사복을 입은 사람이 예를 받았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의문은 곧 축제 분위기 속에 묻혀 버렸다.

온 합비가 기대와 즐거움으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바로 오늘, 남궁세가라는 거인이 그 거대한 몸을 다시 일으키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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