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화. 격변(激變)
사천성 성도, 태평맹 총단.
딸랑.
대외 총괄군사 당설련은 종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들어와.”
사락.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수하가 들어왔다.
수하는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총괄군사님! 수군도독 진림이 죽었다고 합니다.”
“뭐?”
당설련은 눈살을 찌푸리며 수하를 올려다보았다.
“여기 자세한 내용이…….”
수하가 건네는 문서를 당설련은 채 가듯 받아 쥐었다.
바스락.
당설련의 표정이 굳었다.
그곳에는 수군도독 진림의 사망에 대한 소문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소문의 출처는 바로 영웅맹 각 지부였다.
“이게 사실이야? 영웅맹이 수군도독을 죽였다고?”
당설련이 수하를 노려보며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
수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장강에 소문이 파다합니다. 비록 겉으로는 쉬쉬하지만 영웅맹 각 지부들은 한껏 달아올라 있습니다. 영웅맹이 관에 본때를 보여 줬다면서 말입니다.”
“이런…….”
당설련은 말을 잇지 못했다.
감히 수군도독을 죽이다니, 말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이건 나가도 너무 나갔잖아!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따위 짓을 해!”
쾅.
당설련이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수적들에게는 영웅담인지도 모른다.
관원을 죽이고 관병을 해치웠다는 걸 자랑 삼아 말하는 자들이니 말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이 있는 자들이라면 알 것이다.
영웅맹이 엄청난 실수를 했다는 것을 말이다.
“대체 그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강호 무림이 전부 망하는 꼴이라도 보자는 거야!”
당설련이 소리를 지르는 것도 당연했다.
도독은 군의 최고위직이다.
그 수군도독을 죽였으니 황실이 절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당장 모든 문파가 감찰과 수색의 대상이 될 것이다.
영웅맹과 무관한 곳이라도, 아니 그저 칼을 찼다는 이유만으로도 체포, 구금은 물론 고신을 당할 것이 뻔했다.
강호에 혈풍이 몰아치는 것이다.
“아무래도 염중부가 단단히 작정을 한 모양입니다. 이번 무한 공략에도 맹주인 철혈사왕 염중부가 직접 나설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 탓에 마두들과 수적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아득.
당설련은 이를 악물었다.
염중부의 처지라면 그럴 만도 하다.
수군 훈련이 시작되면 영웅맹은 말라죽는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이건 그야말로 다 함께 죽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장 소문의 진위 여부를 확인해. 어서!”
“네!”
수군도독을 죽였다는 소문의 출처는 아직 영웅맹 지부뿐이다.
부디 이것이 와전이거나, 혹은 오해이기를 바라며 당설련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긴급한 연락이 하나 더 있습니다.”
당설련은 고개를 홱 돌려 수하를 바라보았다.
“뭔데?”
수하는 조심스럽게 서찰 하나를 꺼내들었다.
봉인된 그 서찰은 당설련 본인 외에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사락.
당설련은 서찰을 받았다.
“나가 봐.”
사뭇 매서운 어조로 당설련은 말했다.
수하는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는 급히 집무실을 나갔다.
탁.
문이 닫히고 당설련은 서찰을 열었다.
곧 그녀는 눈을 크게 부릅떴다.
아득.
당설련은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녀가 받은 충격은 길지 않았다.
“흥.”
사락.
서찰을 내려놓으며 그녀는 조소를 흘렸다.
“어차피 이럴 줄 알았어.”
어쩌면 그건 수군도독의 죽음에 대한 소문보다 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 서찰에는 제갈세가가 태평맹을 탈퇴하고 창룡맹에 가세했다는 내용이 짧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당문과 함께 태평맹의 중추로 불리던 제갈세가가 말이다.
“그래. 이젠 다 필요 없어.”
서늘한 눈빛으로 당설련은 중얼거렸다.
“갈 때까지 가는 거야. 염중부가 그런 것처럼.”
당설련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눈빛은 독기로 번득이고 있었다.
***
무한, 창룡맹 임시 총단.
총군사 집무실.
덜컥.
거칠게 문이 열리고 진예림이 뛰어 들어왔다.
서류와 씨름하던 영호준은 고개를 들었다.
“뭐요? 부총군사.”
“큰일 났어요!”
진예림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수군도독이 죽었대요. 영웅맹에 의해서요!”
영호준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게 정말이오?”
“네.”
진예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장강에 온통 그 소문이 가득…….”
“후우.”
영호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 왜요?”
진예림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영호준이 말했다.
“깜짝 놀랐잖소. 관에서 나온 소식인 줄 알고 말이오.”
“아, 아니 그건 아니지만 지금 다들 그 이야기를…….”
“부총군사.”
영호준은 진예림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고로 강호의 소문은 믿을 것이 못 되오. 남의 말만 듣다가는 이리저리 휘둘리게 마련이라오. 바로 지금처럼 말이오.”
진예림은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껌뻑였다.
“소문의 진위를 관에 확인해 봤소?”
“그렇지 않아도 지금 어사 대인께서 안찰사사로 급히 가셨어요. 내용을 확인하신다면서…….”
“바로 그것이 옳은 태도요.”
진지한 목소리로 영호준은 말을 이었다.
“수군도독이 영웅맹의 손에 죽으면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소?”
“음, 그게…….”
진예림은 곧 결과를 추론해 냈다.
“강호의 모든 문파들이 문을 닫아야겠지요. 어쩌면 도검 금지법이 생길지도 모르고요.”
“생길지도 모르는 게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되오. 칼만 차고 다녀도 잡혀가는 세상이 오는 거요. 정사파를 막론하고 수많은 무림인들이 죽는 건 당연하고. 그런 짓을 영웅맹이, 아니 염중부가 할 수 있을 것 같소?”
“하지만 모르는 일이잖아요.”
진예림이 반론했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심정으로 할 수도 있고, 딴에는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수도 있고요. 어쩌면 자기 혼자 살 자신이 있어서…….”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과 장강에 소문이 자자한 건 서로 모순이다.
어쨌든 전혀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영호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은 없소. 아니, 있어도 수군도독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오. 염중부가 직접 나서지 않는 한 말이오.”
“왜요?”
“왜냐하면 이미 동창의 고수들이 수군도독을 호위하고 있기 때문이오.”
그건 진예림조차 상상 못 하던 일이었다.
“네? 아니, 언제부터…….”
“처음부터요.”
담담한 목소리로 영호준은 말을 이었다.
“내가 바보인 줄 아오? 납치당하는 건 맹주님의 의질녀 한 명으로 족하오. 수군도독의 신변 안전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조치를 취해 놓고 있었소. 맹주님의 가족, 친지는 물론 의형의 유가족에 대해서도 말이오.”
진예림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아, 참고로 말하자면 소저의 가문도 호위 대상이오. 순위가 높지는 않아서 동창의 고수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현령이 뒤를 봐준다면 별일은 없지 않겠소?”
그 말은 진예림을 당혹케 하기에 충분했다.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영호준은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알았으면 어서 가서 일이나 하시오. 어사 대인도 괜한 고생을 하시겠군. 어차피 아무 일 없을 텐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영호준은 다시 서류로 눈을 돌렸다.
“그럼 소문은 그냥 와전된 거란 말인가요?”
“그럴 수도 있소만,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라 보오.”
“의도적요?”
영호준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결전을 앞두고 위기감을 고취시키는 것과 함께 사기를 올리려는 거요. 수군도독을 죽이고 염중부가 직접 전면에 나설 정도로 각오를 했다는 걸 보여 주려는 의도지. 당연히 영웅맹 수적들과 마두들의 사기도 올라갈 것이고.”
“하지만 정작 수군도독이 살아 있다는 게 알려지면…….”
사락.
영호준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그걸 사람들이 알아차리는 건 수군훈련이 시작된 후요. 그 전까지는 수군도독이 죽었다는 소문이 날개를 달고 퍼져 나가겠지. 영웅맹이 대놓고 떠들고 있는 데다가, 그쪽이 훨씬 자극적이니까.”
한번 소문이 나면 그 소문을 잠재우는 건 쉽지 않다.
영웅맹이 수군도독을 죽였다는 소문과, 실은 그게 아니더라는 말은 그 충격이 완전히 다르다.
사람들의 기억에는 수군도독과 영웅맹만 남게 될 것이다.
수군 훈련이 시작되고, 수군도독 진림이 멀쩡하다는 증언이 퍼져 나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보다 각 문파에 긴급 통지는 다 보냈소? 부총군사.”
“네. 이미 보냈어요.”
“흠, 제갈세가는 사절단과 제자들이 한꺼번에 오게 생겼군. 가맹하자마자 무력 동원이라…….”
영호준은 고개를 젓고는 다시 서류를 향해 눈을 돌렸다.
하지만 진예림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정도의 숫자만 요청해서 될까요? 영웅맹 전 지부에서 수적들이 몰려오는 데다가, 마두들도 엄청나게 많다잖아요. 게다가 철혈사왕 염중부까지 나선다면…….”
“충분하오.”
영호준은 망설임 없이 단언했다.
“문제는 태평맹이오. 그들이 이 기회에 우리 뒤통수라도 치면 심히 곤란하니까. 특히 난전 중에 당문의 독을 상대해야 한다면 더욱 난감하고.”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치며 영호준은 생각에 잠겼다.
“뭐, 지금으로선 그녀가 잘해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지만.”
진예림은 고개를 갸웃했다.
“누가 뭘 잘해야 한다는 거죠?”
영호준은 진예림을 쳐다 보며 빙긋 웃었다.
“나중에 알게 될 거요. 부총군사.”
진예림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영호준은 더 이상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다.
대신 앞에 쌓인 서류들 중 한 뭉치를 들어 올렸다.
바스락.
“그런 소문에 신경 쓸 여유가 있다면 내 일이라도 도와주시오.”
서류를 건네주려는 영호준의 모습에 진예림은 흠칫했다.
“아니요. 저도 바빠서.”
진예림은 횅 하니 돌아서서 나갔다.
영호준은 쓴웃음을 지었지만 곧 서류 더미와 다시 씨름을 시작했다.
그 모습에 긴장감이나 초조함은 전혀 없었다.
영웅맹 전 지부와 마두들, 그리고 철혈사왕 염중부까지.
말 그대로 영웅맹 전체가 무한을 향해 몰려오고 있다는 소문이 장강을 들썩이고 있는데도 말이다.
***
창룡맹 임시 총단, 맹주 집무실.
운현과 객옹, 영호준, 진예림, 담소하는 물론 감찰어사 조관까지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다행이군요.”
바스락.
운현은 서찰을 내리며 말했다.
감찰어사 조관이 안찰사를 통해 공식적으로 받은 서찰이었다.
“마차는 부서졌지만 수군도독께서는 무사하시다고 합니다. 다친 사람도 없고요.”
운현은 서찰을 영호준에게 건넸다.
영호준은 즉시 서찰을 읽어 내려갔다.
서찰에는 사건의 자세한 상황이 적혀 있었다.
두 대의 마차가 짓쳐 드는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동창의 고수들은 무난히 수군도독을 피신시켰다.
마차는 부서졌지만 다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혼란한 와중에 마부들이 사라져 배후나 동기를 밝힐 수는 없었다.
“처음부터 암살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나 보군요.”
영호준은 서찰을 살피며 말했다.
“염중부가 진심으로 수군도독을 죽이려 했다면 이렇게 허술히 할 리가 없으니까요.”
“당연하지요.”
운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염중부는 대단히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짓은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소문을 듣고 염중부의 대담함에 소름이 돋겠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은 아니다.
운현 일행은 오히려 이번 일로 인해 염중부의 한계를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영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맹주님의 예측대로 될 가능성이 높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운현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니 철저히 준비해 주십시오. 영웅맹의 수적들은 이번 일에 사활을 걸고 있을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영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한으로 모이는 이들은 각 지부의 수적들 만이 아니다.
그동안 영웅맹에 모여든 전대 마두들과 사파의 온갖 흉포한 자들이 무한을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게다가 철혈사왕 염중부가 직접 나서는 자리다.
그들은 이번 기회에 공을 세우고자 벼르고 있었다.
“수적이나 마두는 그렇다 치더라도…….”
영호준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맹주님이 고생이시겠군요. 염중부를 잡아야 할 테니까요.”
“고생은요.”
운현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한 번은 해야 할 일이니까요.”
말하는 운현의 눈빛은 담담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