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1화 (2/301)

1. 내가 저기에?

“흐음.”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침음을 흘리더니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렵겠군. 쯧쯧…….”

그는 진맥하느라 잡고 있던 손목을 가만히 내려두었다.

노인의 깊어진 눈이 병상에 몸져누운 청년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뼈마디가 다 드러날 정도로 깡마른 몸, 창백한 피부, 희미한 호흡.

아직 약관도 되지 않았을 청년의 안색은 완전히 시체나 다름없었다.

옆에서 숨죽인 채 지켜만 보던 막천수(莫擅帥)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렵겠다는 게 무슨 뜻이오?”

“떠나보낼 준비를 하시게.”

노인이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천수가 흠칫거리고는 돌아보았다.

“떠나보낼 준비를 하라니? 그럼 이 녀석이 죽을 거란 말이오?”

“가망이 없어. 한 시진을 넘기기 힘들 걸세.”

“말도 안 되는 소리! 이 녀석이 약골이긴 하지만 나름 무공을 익힌 몸이오! 한데 고작 고뿔 따위로 목숨을 잃는단 말이오?”

“고작 고뿔이라니. 평범한 사람은 언제든 저승으로 가도 이상하지 않은 병일세. 무인이라고 전부 무병장수하는가? 하물며 이런 하급 무사라면…….”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 억지를 부려도 소용없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으이.”

노인이 혀를 끌끌 차더니 그대로 방을 나갔다.

막천수는 노인을 배웅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허망한 눈길로 청년을 내려다보았다.

이 녀석이 이대로 죽는다고?

말도 안 된다.

그래, 아닐 거다.

저 돌팔이가 제대로 보지 못한 거다.

이 녀석은 이렇게 쉽게 가면 안 된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천애고아로 외롭게 자란 녀석이다.

거기다 심성은 또 어찌나 고왔던가?

이렇게 고생만 하다가 갈 녀석이 아니다.

‘제길……!’

막천수는 입술을 꾹 깨물다가 잔뜩 젖은 목소리로 주절거렸다.

“운재야. 넌 이렇게 죽으면 안 된다. 아니, 이렇게 죽지 않을 거다. 그래, 사흘만 버텨라. 그때 아상 어르신이 가주님의 병세를 살피러 직접 오신다. 내 엎드려 사정하면 그분이 네 몸도 돌봐주실 거다. 아무렴 무림맹 신의가 저 돌팔이보다야 훨씬 낫겠지. 그러니 지금 이렇게 가면…… 안 된다. 내 말 듣고 있는 거지? 남운재(南云在)!”

말을 하다 보니 어느새 굵은 눈물이 줄줄 흘러 턱 끝에서 뚝뚝 떨어졌다.

“너, 이놈아. 벽력가문의 수문무사로 추천해 주겠다고 했을 때 그리 좋아서 날뛰지 않았느냐? 그런데 이제 겨우 일 년을 채우고 이리 가면…… 안 되잖아. 내 밑에서 더 배워야지? 응? 나처럼 수문장이 되는 게 네 꿈이라며? 니미럴……!”

한 시진이라니.

사흘만 버틸 수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겠건만.

‘상제(上帝)도 무심하시지. 굳이 이 불쌍한 녀석을 데려가야겠소?’

막천수가 어금니를 꾹 깨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는 측은지심 가득한 눈길로 남운재를 바라보다가 이내 발길을 돌렸다.

그래도…… 장례 준비는 해야 하지 않겠나?

* * *

“끄음……!”

적비연은 여린 신음을 흘리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온몸이 찌뿌드드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기분이었다.

눈을 끔뻑이며 천장을 바라보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딘지 낯선 방.

‘여기가 어디지? 난 왜 이런 곳에 누워 있는 거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그가,

“헉!”

순간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생각났다.

그 지독했던 고통!

그렇다.

요상한 영약을 복용한 후 불사무적의 몸을 만들어준다는 그 내공심법을 연마하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지독한 고통에 짓눌려 죽어가던 자신이 떠올랐다.

한데…….

‘살아 있는 건가?’

깡마른 손을 들어 보았다.

어쨌든…… 죽진 않았다!

‘그나저나 여긴 비동이 아닌 것 같은데 어디지? 내 발로 걸어 나왔을 리는 없을 텐데. 얼마나 의식을 잃었던 거야?’

그렇다고 누군가 비동으로 들어왔을 리도 없다.

때마침 문이 열리더니 방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턱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의 사내.

‘저자는……?’

적비연은 곧 그를 알아보았다.

적가장의 정문을 지키는 수문장, 막천수.

한편 막천수는 무심코 방에 들어왔다가 병상에서 벌떡 일어나 앉은 남운재를 보고는 입을 척 벌렸다.

분명 한 시진 후면 죽을 거라고 했는데…….

차분한 표정, 생기가 도는 눈빛, 고른 숨결.

저 모습이 어딜 봐서 한 시진 내에 죽을 인간인가?

처음에는 놀라웠고, 그다음에는 반가웠다가, 이제는 화가 났다.

‘이 돌팔이 영감탱이! 뭐? 한 시진? 내 이 영감을 당장……!’

그때 툭 튀어나온 오만한 말투.

“뭘 그리 멀뚱멀뚱 서 있는 거냐?”

막천수가 흠칫거리고는 남운재를 보았다.

그는 잠깐 혼란스러웠다.

‘반말? 지금 운재가 나한테 장난을 치는 건가? 그게 아니면…….’

너무 심하게 앓아서 머리가 이상해진 것일까?

한편 적비연은 깡마른 몸에 옷자락을 주섬주섬 걸치며 물었다.

“막 조장이 내게 무슨 일이지?”

“뭐?”

“뭐?”

적비연이 흠칫거리고는 막천수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부터 어딘지 이상했다.

게다가 가주인 자신에게 하대를?

아서라, 잘못 들은 것이겠지.

막천수는 그럴 인간이 아니다.

“내가 어찌 이곳에 누워 있는 거냐?”

“허어.”

“어찌 대답은 하지 않고 그러고 있는가?”

“허참!”

“여긴 어디냐? 설마 자네가 비동으로 들어오진 않았을 테고.”

“야, 인마!”

“뭐, 인마?”

“저, 저……!”

막천수가 손가락을 들어 올리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못지않은 표정으로 적비연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막천수를 보았다.

‘인마? 막 조장이 미쳐 돌았나?’

막천수가 딱딱한 표정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적비연이 흠칫거리는데,

와락!

“이 녀석! 진짜 깨어났구나!”

“이, 이게 무슨……!”

“됐다. 이 녀석아! 장난이든,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든 잘 깨어났다. 살아 있으면 된 거다! 살아만 있으면!”

“이노옴!”

우당탕!

거칠게 떠밀린 막천수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운재를 보았다.

“운재야. 정말 왜 그러느냐? 날 모르겠냐?”

“뭐? 운재?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말을 뱉어내던 적비연은 순간 움찔 거리고는 이마를 짚었다.

“헛!”

다음 순간 그는 머릿속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무수한 기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이건……!’

그의 표정이 워낙 심각했기에 막천수조차도 선뜻 움직이지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적비연이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

‘이건…… 내 기억이 아니야!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가 막천수를 돌아보았다.

막천수도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마주 보았다.

“운재야……?”

“동경(銅鏡)!”

“뭐, 뭐?”

“동경을 가져와라!”

“갑자기 왜 동경을…….”

“어서!”

“잠, 잠깐만 기다려라.”

막천수는 자신이 왜 뛰는지도 모른 채 동경을 찾아 헐레벌떡 달려 나갔다.

적비연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얼굴을 더듬었다.

갑자기 밀려든 낯선 기억들.

왠지 어색한 신체.

설마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환생이라도 한 건가?

잠시 후 막천수가 동경을 들고 들어왔다.

“운재야, 도대체 왜 그러느냐? 뭐가 문제인지는 알아야…….”

적비연은 대답 대신 동경을 빼앗다시피 들고는 얼굴을 비춰 보았다.

‘이건…… 내가 아니잖아!’

얼굴이 완전히 다르다.

적비연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막천수를 돌아보았다.

“나를…… 아니, 가주님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지?”

“허어, 이놈아. 그건 왜…….”

“대답!”

“어, 어제 아침 출근길에 돌담 앞에서 뵈었다. 그나저나 너 자꾸 이렇게 까불면 혼난다? 내가 아무리 사람이 좋기로서니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막천수가 주절주절 떠들었지만 적비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겼다.

어제 아침이라면…….

생각났다.

어제 아침 가장 주변을 산책하다가 돌담 앞에서 출근하는 막천수를 보았다.

이내 적비연이 벌떡 일어났다.

‘뭐야? 그럼 내 육신이 아직 비동에 남아 있다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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