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2화 (3/301)

2. 내가 저기에?

다음 날 적비연은 팔짱을 낀 채 가주전이 있는 쪽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대략 이십여 년 전, 강호가 멸망할 거라는 소문이 돌 때도 이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다.

하긴. 그땐 너무 어리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대략의 상황 파악은 끝났다.

전후사정을 따져보았을 때 자신은 가주전 비동에서 의식을 잃자마자 수문무사인 남운재라는 아이의 몸을 빌려 환생했다.

꽤나 오래 의식을 잃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시간을 따져본다면 의식을 잃자마자 바로 남운재라는 아이의 몸에서 깨어난 셈이었다.

그 말은…….

‘여전히 내 몸이 저 비동에 남아 있다는 건데…….’

적비연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하필 비동이니 도무지 들어갈 방법이 없네.”

비동은 가주전에서만 통하는 데다 정교한 기관장치로 숨겨져 있기에 다른 사람은 접근할 수가 없다.

일단 이 몸으로는 가주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가주전을 지키는 사령검(四靈劍)만 해도 원래 자기보다 강한 고수들이다.

특히 그중 일령은 초절정의 경지를 바라본다.

가신들을 붙들고 ‘내가 바로 적비연이다’ 하고 말했다간?

그 자리에서 묵사발이 되고 말 거다.

그리고 사라진 가주를 찾아 헤매다가 자신을 용의자로 지목하겠지.

그럼 충직한 부하들에게 오히려 목숨을 위협받으며 평생 도망자로 살아야 하는…….

“어우, 생각도 하기 싫네.”

적비연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쪼그려 앉았다.

일단 상황을 정리해 보자.

‘먼저 비동에 남아 있을 내 몸은 어떻게 됐을까?’

경우의 수는 세 가지.

첫째, 육신이 싸늘한 시체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럼 나는 이제 평생 남운재라는 아이로 살아야겠지.’

둘째, 육신이 아직 살아 있을 경우다.

이 경우에는 어쩌면 원래의 육신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남운재라는 아이의 영혼이 자신의 몸에 들어갔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소위 영혼 바꿔치기?

이건 최악의 가능성이지만 가장 희박하다.

마교의 악랄한 대법이라도 빙의까지는 가능하지만, 영혼을 바꿔치기 할 수 있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좋아, 그럼 세 번째 가능성은 지우고.’

이제 남은 문제는 과연 자신의 본체에 생명력이 남아 있느냐다.

‘뭐, 그걸 확인한다고 해서 당장 뭔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없지만.’

그래도 일단 궁금하니까.

만약 비동에 남은 게 싸늘한 시체라면 벽력적가가 위태로워지기 전에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게다가 시체가 썩기라도 하면…….

어우, 생각하기도 싫은데.

그나저나…….

“조금 느리긴 해도 확실히 회복되고 있는 게 신기한걸?”

적비연은 자신의 팔다리를 내려다보았다.

근육이라고는 한 줌 없는 앙상한 신체.

오른쪽 가슴에 붉은 반점 세 개가 특이하다는 걸 빼면 아무런 특징도 없는 몸이다.

한데 놀라운 것은 적비연 본체의 능력을 차츰 회복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단전도 점점 커지고 있었고, 내공의 양도 한 시진이 다르게 늘어나더니, 이틀째인 오늘은 본체의 구 할에 가까운 내공을 회복한 상태였다.

원래 남운재의 나이는 열일곱 살.

수문장인 막천수와 인연이 있어 벽력적가의 수문무사가 되었는데, 무공 실력은 삼류에 겨우 들까 말까 한 수준.

한마디로 인맥 덕을 본 경우다.

남운재의 기억이 고스란히 적비연에게 들어와서 상황 파악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남운재의 몸으로 환생한 후 가장 좋은 점은 역시 공위증이 없다는 것.

늘 조금씩 소실되는 공력 탓에 항상 뭔가 무기력하고 피곤했는데, 지금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오히려 나날이 본체의 공력으로 채워지니 힘이 넘치는 기분이었다.

‘적어도 그 저주받은 체질은 벗어났어. 그리고 일단 십여 년이 젊어졌단 말이지. 이 정도면 새로운 인생을 살아볼 만도 한데…….’

새로 얻은 신체로 절정 초입부터 시작할 수 있으니, 죽기 전에는 초절정 이상을 보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으리라.

‘하지만 내 꿈과 아버지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가문을 부흥시킬 방법을 찾고 싶은데. 그동안 너무 무관심하기도 했으니.’

일단 그 요상한 영약과 비급을 이십만 냥에 판 년도 다시 찾고 싶고.

다만 그 여자의 행방을 알 방법이 없다는 게 아쉽다.

그때,

따악!

순간 뒤통수가 불에 댄 듯 화끈거렸다.

그대로 고꾸라질 뻔한 적비연이 눈을 부라리며 돌아섰다.

‘감히 어떤 놈이……!’

“어쭈? 인상 봐라? 한 대 치겠다?”

건들건들 웃으며 나무라는 사람은 바로 수문장 막천수였다.

그가 적비연의 귓불을 잡아당겼다.

“이 녀석이 빠져가지고. 수문무사가 지금 어딜 보고 있는 거야? 똑바로 번 안 서?”

“아야얏!”

적비연이 비명을 지르며 노려보자 막천수가 짐짓 눈을 부라렸다.

“노려보면? 어쩔 건데? 이놈이 잠깐 뒷간 다녀오는 사이에 한눈이나 팔고 말이야.”

“귀! 귀 아파요! 아프다고요!”

적비연은 당장에라도 일장을 날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눌러 참았다.

“내 오늘은 특별히 넘어가주는 줄 알아, 이 녀석아. 복무했으면 이제 환자 취급 안 한다. 알겠냐?”

“예.”

적비연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만약 자신에게 남운재의 기억이 없었다면 벌써 하극상을 벌이고도 남았으리라.

하지만 남운재의 기억이 있으니 이 어이없는 상황에도 어느 정도 수월하게 적응이 됐다.

“몸은 좀 어떠냐?”

“뭐, 나쁘지 않습니다.”

“그래. 그만한 게 천만다행이지. 난 정말 네가 어찌 되는 줄 알았다.”

‘어찌 되긴 했지.’

막천수가 벽에 등을 기대며 말을 이었다.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 곧 교대시간이니까. 오늘 내가 황가네 가서 국수 쏘마.”

황가네란 수문무사 중 부조장 황중기(黃中期)라는 자의 가족이 운영하는 조그마한 객점이었다.

물론 벽력적가가 관리해 주는 곳이었는데, 막천수와 남운재는 오래전부터 그곳 단골이었다.

‘거기 국수가 맛있긴 하지.’

적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한 번도 황가네 국수를 먹어본 적이 없지만, 그 맛에 대한 남운재의 기억이 있었다.

벌써부터 입에 침이 고였다.

마침 막천수가 기지개를 켰다.

“아이고, 찌뿌드드하다. 요즘 같은 시기에 이교대가 웬 말이냐? 만검세가는 삼교대 한다는데. 내가 실력만 좀 있었어도 만검세가에서 일자리를 구했을 텐데.”

적비연이 눈살을 슬쩍 구겼다.

“그래도…… 적가장에 몸을 담고 계시면서 그런 말씀은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니긴 개뿔. 솔직히 너도 나 말고 더 나은 인맥이 있었으면 이런 저물어가는 가문에 들어왔겠냐? 만검세가로 갔겠지.”

“저물어가는…… 가문이라고요?”

“내가 틀린 말 했어? 솔직히 가주님도 몸이 정상은 아닌 것 같고, 이제 이곳 장사(長沙)의 실세는 만검세가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어. 항간에는 가주님이 큰 병을 앓는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고.”

아무리 그래도 저물어가는 가문이라니!

가주였을 때 이런 소리를 들었다면 당장 오리걸음으로 연무장 삼백 바퀴는 돌렸을 거다.

적비연이 속생각을 삼키고는 말했다.

“저물다가도 떠오르는 게 세상 이치 아니겠습니까?”

“어쭈? 군자 나셨네. 그런데 그거 아냐? 한 번 저문 게 다시 떠오르려면 저물어가던 시간만큼이나 흘러야 한다. 그럼 사후 백 년 뒤에 다시 떠오르려나?”

‘아오……! 이걸 그냥……!’

적비연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 얄밉게 나불거리는 입에 당장에라도 주먹을 꽂고 싶었다.

뭐? 사후 백 년? 백 녀언?

‘아오, 우리 집 대문부터 적폐가 있었네.’

이 요상한 상황만 해결되면 내 살생부에 막 조장 이름부터 써야겠다.

“넌 아직 젊으니까 언제든 기회만 되면 만검세가로 떠날 준비를 해라. 자고로 사람은 대세라는 걸 읽을 줄 알아야 하거든. 내 짐작컨대 벽력적가는 이제 끝물이다.”

“말씀이 좀 지나치십니다!”

결국 적비연이 참지 못하고 쏘아붙였다.

너무 큰 소리를 쳤기 때문인지 막천수가 미간을 좁히고는 돌아보았다.

“이놈이 근데…… 언제부터 네가 충성심이 그리 강했어? 죽다 살아나더니 갑자기 욕망이라는 게 사라진 거냐? 아님 가주님 영혼이 빙의라도 한 거야?”

“헉……!”

“뭐냐? 그 반응은?”

“어떻게 안 거냐?”

“뭐?”

“내가 가주라는 걸 어떻게 안 것이냐고 물었다.”

“…….”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막천수가 또 한 번 적비연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따악!

“아얏!”

“웃길 생각이었다면 그 정성만 받겠다. 한 번만 더 반말 지껄이면 뒤통수로 안 넘어가.”

“아…….”

역시 농담이었던가?

풀 죽은 적비연에게 막천수가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짜식이 한마디 들었다고 기죽지 말고. 가자. 저기 교대할 놈들 오네. 국수나 한 젓가락 하자.”

* * *

막천수가 황가네 객점으로 들어서면서 주인 여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제수씨. 안녕하십니까?”

“어머, 어서 오세요. 막 조장님.”

“네, 요즘은 좀 어떠세요?”

“덕분에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답니다.”

“다행이네요. 오늘은 이 친구가 복무한 기념으로 제가 국수 좀 사주려고요.”

“호호, 그럼 국수로 되겠어요? 더 비싼 걸로 드셔야지. 우리 집에도 고기 팔아요.”

“에이, 제수씨가 제 주머니 사정 좀 봐주십시오.”

여인이 기분 좋게 웃어 보이고는 주방으로 걸어갔다.

그러는 사이 적비연은 객점을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훨씬 작군.’

기억 속의 객점은 더 큰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무척 좁았다.

아마 남운재에게는 적당한 넓이의 객점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호화로운 객잔만 다녔던 적비연에게는 객점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작은 규모였다.

자리에 앉은 적비연은 다시 가주전의 비동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안 돼. 도저히 방법이 없어. 정말 미치겠네.’

마침 주문한 국수와 함께 만두가 덤으로 나오고 두 사람은 젓가락을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객점 한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글쎄, 다음에 오면 주겠다니까! 우리 만검세가 사람들이야. 설마 돈 떼먹겠어?”

“만검세가든, 막검세가든 더 이상은 안 돼요. 벌써 세 번째잖아요? 규칙상 외상은 안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아니, 이 조그마한 가게에 무슨 규칙이 있어? 융통성 좀 부리면서 살자니까!”

“안 된다고요!”

여인은 단호했다.

하지만 만검세가 무인들도 쉽게 물러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저리 비켜! 맛도 더럽게 없는 음식을 갖다 바쳤으면서 말은 또 더럽게 많네! 우리가 정성을 봐서 다 먹어준 걸 고맙게 생각해.”

정말이지 듣는 사람이 절로 화가 나는 발언들이었다.

듣다 못한 적비연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 일어나려는데,

“아서라. 모른 척해라. 만검세가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더 나서야 할 것 아닙니까? 여긴 엄연히 우리 적가가 관리하는 곳이잖아요?”

적비연의 말에 막천수가 불안한 듯 뒤를 힐끔거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인마, 저것들이 그런 걸 신경 썼으면 여기 와서 행패를 부리겠냐? 이미 다 알고 있어. 알고도 일부러 저러는 거야.”

“알고도 그런다고요? 왜요?”

“여기도 자기들이 관리하려는 거지.”

“예?”

“황가한테 들어보니 하루 이틀이 아니라더라. 이렇게 계속 압박을 하면 마지못해 자기들에게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쾅!

“아니, 그게 무슨……!”

적비연이 화가 난 나머지 식탁을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만검세가 무인들이 힐끔 돌아보았지만 별로 신경 쓰진 않는 모양이었다.

막천수가 화들짝 놀라서 인상을 썼다.

“쉿. 가만히 좀 있어! 이놈이 앓고 나더니 눈에 뵈는 게 없나 보네.”

“죄송합니다.”

“네 심정은 이해한다만 어쩌겠냐? 지금의 적가는 예전의 그 가문이 아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난 솔직히 황가한테 이 기회에 문지기 노릇 때려치우고 객점 일이나 거들면서 만검세가 밑으로 들어가라고 조언했다.”

“이런, 막 조장!”

“……?”

“……님.”

“……뭐냐?”

“아,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까? 그래서 황 부조장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도 알잖냐? 그놈 고집불통인 거. 뭐, 편의를 위해 신의를 저버릴 수 없다나?”

적비연은 왠지 모를 안도를 느끼면서도 속으로 다짐했다.

‘내 반드시 황 부조장을 수문장으로 세워야겠다. 막 조장 너는 두고 보자. 아오……!’

막천수는 귀를 막은 사람처럼 국수만 들이켜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러니 신경 꺼라.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우리도 못 본 거다. 어서 먹고 가자.”

“…….”

“어서.”

“……네.”

그래, 참자.

당장 저 파락호 같은 놈들을 손봐준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뭔가?

저것들이 저렇게 안하무인한 것은 전부 적가의 힘이 약해서다.

그래, 근원부터 고쳐 나가야겠지.

적비연이 젓가락을 다시 들 때였다.

“꺄악!”

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여인이 객점 한쪽 구석에 나동그라졌다.

그녀 위로 그릇이며 남은 음식들이 마구 쏟아져 내렸다.

만검세가 무인 중 한 명이 킬킬거리며 여인에게 다가갔다.

“그러게 진작 비키라니까. 왜 길을 막고 그래. 아니면 오늘 밤 우리랑 뜨거운 시간 좀 보내고 싶은 거야? 우리 전부 다 상대할 수 있겠어?”

‘아니, 저런 개새……!’

결국 참지 못한 적비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니, 일어서려고 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막천수가 적비연의 어깨를 꾹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 조장님……?”

“가만있어. 몸도 성치 않은 녀석이…….”

말을 마친 막천수가 만검세가 무인들에게 굳은 표정으로 걸어갔다.

“무슨 일이오?”

만검세가 무인들이 막천수를 힐끔거리더니 고개를 우두둑 꺾으며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당신은 뭐야? 먹던 거나 마저 처먹지, 그래?”

“여긴 내 아우가 운영하는 객점이오. 보아하니 만검세가에서 오신 것 같은데 오늘은 이쯤하시는 게 어떻소?”

만검세가 무인들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어이, 우리가 만검세가라는 걸 알면서도 짖는단 말이지? 깡다구는 칭찬할 만한데?”

“그만합시다.”

“우린 진작 그만하고 싶었지. 그런데 저 여자가 자꾸 들러붙잖아. 아무래도 많이 외로운 모양이야.”

그의 말에 만검세가 무인들이 키들거리며 웃어댔다.

막천수는 이마에 핏대가 서는 걸 느끼면서도 차분히 일렀다.

“내가 잘 말해보겠소. 오늘은 그냥 돌아가 주시오.”

말을 마친 막천수가 여인을 부축해 일으켰다.

“제수씨, 오늘은 그만하지요.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여인은 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겁을 먹은 것인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막천수가 다시 무인들을 돌아보았다.

“그만 가셔도 좋소.”

무인들이 서로를 번갈아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가셔도 좋다라…… 네가 뭔데 우리한테 가라 마라야? 가겠다고 할 때는 붙들더니, 이젠 어서 꺼지라고? 만검세가가 그렇게 우습나?”

막천수는 어금니를 꾹 씹었다.

주먹이 바들바들 떨렸다.

하지만 척 보기에도 이들의 무공은 자신과 비슷하거나 좀 더 강해 보였다.

게다가 네 명이나 된다.

혼자서는 절대 감당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이제 막 병상에서 회복한 녀석을 믿을 수도 없다.

도통 만검세가를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

오히려 만검세가가 갖은 비열한 수단으로 빌미를 잡을 것이다.

막천수가 심호흡을 했다.

“정중히 부탁드리겠소. 그만 돌아가 주시오.”

“싫다면?”

“어찌하면 좋겠소?”

“저 여자가 무릎 꿇고 우리에게 절이라도 하면 생각해 보지.”

“그런……!”

막천수가 미간을 팍 구겼다.

아무리 그래도 부하의 아내에게 그런 굴욕을 겪게 할 수야.

‘이 개 같은 것들……!’

막천수가 분노로 부들부들 떠는데,

“자, 그럼 어디 한 번 해봐. 이왕이면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든 또 찾아와주세요’ 하고 인사까지 했으면 좋겠군. 진심이 팍팍 느껴지도록 말이야.”

무인들이 팔짱을 낀 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 여인의 안색은 새파랗다 못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자들을 건드리고 말았다는 것을.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늦은 일.

그때 막천수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부탁드리겠소! 이만 돌아가 주시오. 제수씨를 대신해 내가 사과하겠소.”

쿵!

누가 말릴 겨를도 없이 막천수가 바닥에 엎드리며 이마를 찧었다.

그야말로 굴욕적인 상황.

혹시나 이런 일이 생길까 염려해 신분을 완전히 밝히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비굴하고 처참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약육강식의 세계다.

순간 실내에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우두머리 무인이 서늘한 표정으로 씹어뱉듯이 중얼거렸다.

“아니. 별로 진심이 느껴지지 않아. 여전히 우리보고 빨리 꺼지라는 것 같단 말이지. 그리고 나는 분위기 파악 못 하고 갑자기 끼어드는 새끼를 정말 싫어해.”

그가 천천히 발을 들어 올려 막천수의 머리를 짓밟으려고 할 때였다.

쉬이이잇! 팍!

거짓말처럼 한 줄기 섬광이 발바닥 아래를 스치는가 싶더니 막천수 머리 앞에 박히는 게 아닌가?

우두머리를 비롯한 무인들이 깜짝 놀라며 그것을 보았다.

‘젓가락……?’

놀랍게도 바닥에 꽂힌 채 부르르 떠는 것은 나무젓가락이었다.

우두머리 무인이 발을 든 채로 굳어서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 우뚝 선 남자.

적비연이 한기를 풀풀 날리며 조용히 뇌까렸다.

“그 발 내리면 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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