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3화 (4/301)

3. 내가 저기에?

정적이 흘렀다.

만검세가 순찰조장인 우현(于顯)은 발을 들어 올린 채로 눈만 끔뻑였다.

지금 눈을 의심해야 하나? 귀를 의심해야 하나?

그는 다시 바닥에 꽂힌 젓가락을 확인하고는 깡마른 체구의 적비연을 보았다.

‘이걸 저 녀석이 던졌다고?’

그럴 리가.

얼른 기감을 펼쳐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긴 이 정도 고수가 작정하고 기척을 숨겼다면 자신이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우현과 함께 온 세 명의 무인들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한편 바닥에 이마를 대고 바짝 엎드린 막천수는 머리 앞에 박힌 젓가락을 보지 못한 채 적비연만 돌아보고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운, 운재야. 너 왜 그러냐?”

그만큼 나서지 말라고 타일렀건만.

평소에는 저렇게 대차지도 않던 녀석이 죽다 살아나면서 성격이 변하기라도 한 걸까?

도대체 어쩌자고 저런 막말을…….

한숨을 내쉬던 막천수는 그제야 머리 앞에 꽂힌 젓가락을 보고는 기겁했다.

“헉! 이, 이건 무슨……? 당, 당신들 내 머리에 구멍을 뚫으려고 했소?”

이러면 얘기가 달라진다.

엎드려 빌면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할 것 아닌가?

한데 그 틈을 이용해 젓가락을 내리꽂아?

단단히 오해한 막천수가 벌떡 일어나 검을 뽑아 들었다.

차앙!

“이, 이놈들! 네놈들이 아무리 만검세가라고는 하나 기본적인 무도(武道)라는 것도 모르는 것이냐? 이 비열한 것들! 내 뒤통수에 젓가락을 꽂으려고 하다니!”

그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지만 만검세가 무인들은 막천수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이야말로 이 젓가락을 누가 던진 것인지 알고 싶었다.

‘아무리 봐도 저 애송이는 아닐 테고.’

우현이 천천히 발을 내리고는 허공을 향해 소리쳐 물었다.

“어디에서 오신 고인이시오? 후배가 무례했다면 정중히 용서를 빌겠소이다. 모습을 드러내시지요.”

다른 세 명도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적비연이 천천히 걸어오더니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말했다.

“용서를 왜 나한테 빌어? 그리고 어딜 보고 소리치는 거야? 말을 할 땐 상대를 똑바로 봐야지.”

우현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정말로 이 녀석이……?’

적비연의 표정은 더 없이 차가웠다. 그는 지금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분노하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단 말이지. 내 병세를 생각해서 총관이 일일이 보고하지 않았던 모양이군.’

모르면 몰랐지, 알게 된 이상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라면 더더욱!

적비연이 남은 젓가락 하나를 들어 우현의 다리를 가리켰다.

“그리고 말했을 텐데. 그 발 내리면 뒈진다고.”

“……!”

우현이 뺨을 씰룩였다.

“정말 자네가 이걸 던진 건가?”

“그렇다면?”

“자네 정체가……?”

“적가장 수문무사.”

뭐? 수문무사?

우현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이 나왔다.

지금 적가장 수문무사 따위가 자신에게 짖는단 말인가?

이 세상물정 모르는 애송이에게 바짝 긴장한 자신이 우습기만 했다.

그 자조 섞인 웃음은 곧 분노로 이어졌다.

“너 이 새끼. 어디서 잔재주 하나 익혀온 모양인데. 한 번 더 실수하면 죽여 버린다.”

“죽인다라…… 만검세가 녀석들은 살인을 밥 먹듯 하나 보네. 아, 그래서 객점에서 살해 협박을 하는 건가?”

“이런 건방진 새……!”

쉬이이이잇, 푸욱!

“크아아악!”

막 걸음을 떼려던 우현이 그대로 주저앉으며 비명을 터뜨렸다.

어느새 적비연의 손에서 날아간 젓가락이 그의 발등을 뚫고 바닥에 꽂혀버린 것이다.

“뭐, 뭐야?”

“저, 쳐 죽일 놈이!”

차차차앙!

세 명의 무인들이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한편 상황이 이렇게까지 진행되는 동안 막천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입을 척 벌리고만 있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운재가 언제 저런 걸 익힌 거지?’

하지만 아무리 젓가락을 잘 던져도 칼부림하는 실전은 또 다르다.

젓가락을 비수처럼 잘 다루어도 저 세 명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리라.

“운재야! 뒤로 물러서라!”

결국 막천수가 성큼 나서며 적비연 앞을 막아섰다.

“내가 어떻게든 버텨볼 테니 너는 적가장으로 가서 사람 좀 불러라!”

“흥! 까불지 마라! 누가 보내준다더냐!”

만검세가 무인 한 명이 버럭 소리 지르며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헉!”

막천수가 헛바람을 삼키며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까아앙!

검이 서로 부딪치자 두 사람이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찰나,

쉬이이잇!

바람처럼 달려 나간 적비연이 그대로 일권을 내질렀다.

뻐억!

“크악!”

쿠당탕탕!

명치를 얻어맞은 만검세가 무인이 비명과 함께 날아갔다.

“아니, 이 새끼가……!”

“뒈져!”

이번엔 만검세가 무인 두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절정 초입 단계에 오른 적비연이었다.

이류 무사의 칼부림은 그에게 시시한 장난처럼 보일 뿐이었다.

가볍게 보법을 밟아 검을 피한 적비연이 수도로 상대의 뒷목을 쳤다.

뻑!

“커억!”

쉬잇, 펑!

“크아악!”

콰다앙!

일장을 얻어맞은 또 다른 무인이 그대로 문을 부수며 길거리까지 튕겨 나갔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우르르 몰려와 구경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래?”

“객점에서 싸움이 난 모양이야.”

“저들은 만검세가 무인이잖아?”

몇몇 사람들은 창문 너머 객점 안을 들여다보며 수군거렸다.

“끄으으……!”

실내에는 앓는 자들의 신음으로 가득 찼다.

우현과 막천수는 입을 딱 벌린 채 적비연을 쳐다보았다.

특히 우현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몸을 가늘게 떨었다.

젠장, 상대를 잘못 봤다.

그저 잔재주나 익힌 약골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어디서 저런 괴물 같은 놈이 나타난 거지?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게 팍팍 느껴진다.

마침 그의 시선이 적비연과 딱 마주쳤다.

흠칫!

‘저게 말단 수문무사의 눈빛이라고……?’

우현은 그 자리에서 얼음처럼 굳은 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두 눈을 마주 보고 있으니 그야말로 맹수 앞에 선 먹잇감이 된 기분이었다.

적비연이 다가오자,

“잘, 잘못했소!”

우현이 얼른 고개 숙이며 소리쳤다.

적비연이 팔짱을 끼고는 가만히 노려보았다.

이런 건 확실해 해놔야 한다.

마침 구경꾼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증인들을 만들어놓는 것도 하나의 방법.

그러지 않으면 만검세가에 괜한 빌미만 제공할 수 있으니까.

“네가 뭘 잘못했는지 큰 소리로 말해봐.”

“그, 그건…….”

“잘못이 뭔지도 모르고 용서를 구하는 건가?”

“우, 우리가 건방을 떨어서 기분이 상했다면 죄송…….”

“그게 아니잖아.”

적비연이 우현의 발등에 박힌 젓가락을 발끝으로 툭 건드렸다.

“크으읍!”

우현이 발등을 쥐고는 신음을 흘렸다.

적비연이 우현의 머리채를 잡고는 객점 주인 여인에게 향하도록 했다.

“용서를 빌어야 할 상대부터 잘못 됐어.”

“끄읍…… 죄, 죄송합니다.”

“계속.”

“소, 소란을 일으켜서…….”

“더 큰 소리로. 더 구체적으로.”

“앞, 앞으로는 무전취식하지 않고 꼬박꼬박 돈을 내겠습니다! 그 동안 수차례 돈도 내지 않고 행패를 부린 죄 용서해 주시오!”

“……라는군요.”

적비연이 말하자, 여인이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 알겠어요. 이제 그만…… 돌아가 주세요.”

우현은 여인의 축객령이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그가 슬쩍 적비연의 눈치를 살폈다.

적비연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성질 같아서는 당장 모가지를 따도 시원찮지만, 이 정도에서 정리해야겠지?

어차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실직고했으니, 이번 일로 만검세가가 먼저 따져오진 않을 것이다.

“꺼져.”

적비연이 손을 털고 물러나자, 우현이 절뚝거리면서 부하들과 함께 객점을 빠져나갔다.

잠시의 소란이 끝나자 막천수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운, 운재야.”

“괜찮으시죠? 조장님.”

“너…… 정말 남운재 맞냐?”

이런, 너무 심하게 나갔나?

적비연이 쓴웃음을 지으며 뒤통수를 긁적이는데, 막천수가 다가와 양어깨를 와락 잡았다.

“너 언제 이렇게 수련을 한 거냐? 맙소사. 혹시 고뿔에 걸렸던 것도 너무 심하게 수련하다가 몸이 상한 것이었더냐?”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알아서 오해를 해준다.

적비연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게 됐습니다.”

“허어, 이제 보니 네가 무공에 재능이 있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어찌 이리 하루아침에…… 아니지, 너 그동안 내게 실력을 숨기고 있었구나!”

“예, 뭐…….”

“이 녀석. 정말이지 대단하다. 내 보기에 너는 수문장으로 그칠 인물이 아니다. 내일이라도 출근하면 네 녀석을 정식 무사로 추천해야겠다.”

막천수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마구 떠드는 동안 적비연은 다시 처음의 고민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나저나 비동은 어떻게 들어가지?’

* * *

“이 병신 같은 것들!”

욕지거리와 함께 술잔이 날아가 우현의 이마에 부딪쳤다.

퍼억!

“큽!”

우현의 이마가 깨지면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가 그대로 바닥에 이마를 찧었다.

“죄송합니다! 이 공자님!”

“닥쳐라. 네놈 목소리만 들어도 짜증 나니까. 썩 꺼져라.”

만검세가 차남 하천웅(河天雄)이 차갑게 말을 뱉고는 술병을 나발 불었다.

“꺼억.”

한 차례 트림을 뱉은 그가 빈 술병을 아무렇게나 집어 던졌다.

안 풀린다, 안 풀린다 했지만 이렇게 안 풀릴 수가 있나?

세상 모두가 부러워하는 만검세가의 자제면 뭐 하나?

장남이 아니면 아무런 권한도 없는데!

어려서부터 칭찬은 오로지 잘난 형님 몫이었고, 자신은 늘 천덕꾸러기 취급이었다.

그래서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제대로 안 풀렸다.

급기야 아버지는 ‘제발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지내라’는 엄명까지 내렸다.

심지어 자신을 금안대주(禽眼隊主)로 강등시키고 밑바닥부터 닦으라 하셨다.

이름이야 그럴싸하지만 금안대주란 결국 순찰조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제길. 적가 녀석은 같은 나이에 벌써 가주 자리에 앉아 있는데, 자신은 차남이라는 이유로 순찰조나 관리하는 팔자라니.

아버지의 눈에 띄어 가주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뭔가 공을 세워야만 했다.

가령 눈엣가시 같은 적가 세력을 야금야금 갉아먹어서 흡수한다든지.

그래서 뭐라도 해보겠다고 애들을 보냈더니 오히려 눈탱이가 밤탱이가 돼서 돌아와?

“머저리 같은 놈들. 운귀(雲鬼).”

그의 부름에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이틀 후다. 아상 어르신 모실 준비는 잘 되고 있나?”

“차질 없이 진행 중입니다. 다만 그들이 요구한 금액이…….”

“상관없어. 어차피 돌아올 돈. 원하는 대로 맞춰라.”

“알겠습니다.”

“철검당주(鐵劍堂主)께서는?”

“함께하시겠답니다.”

“잘됐군.”

하천웅이 주먹을 꾹 말아 쥐고는 입매를 길게 찢어 올렸다.

그래, 이깟 사사로운 일은 넘어가자.

대신 이틀만 지나면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질 거다.

그땐 아버지도, 형님도 자신을 달리 보게 되겠지.

* * *

“자네가 남운재인가?”

눈이 유독 길게 찢어진 중년인이 서류를 훑어보며 물었다.

벽력적가의 총관 우벽산(于壁山).

그에게서는 어딘지 모를 기품이 느껴졌다.

물론 적비연으로서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지만.

‘우 총관이 아랫사람들에겐 이런 모습으로 보였군.’

늘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리던 우벽산이었다.

자신이 어디로 튈지 모를 불같은 성격이었기에 더욱 머리를 조아렸던 건지도 모른다.

한데 지금 눈앞의 우벽산에게서는 추상같은 위엄이 느껴진다.

적비연이 미처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막천수가 얼른 나섰다.

“예, 이 녀석이 황가네에서 그 파락호 놈들을 박살 낸…….”

“내가 자네한테 물었던가?”

우벽산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막천수가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자, 적비연이 대꾸했다.

“네, 접니다.”

우벽산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적비연을 아래위로 훑었다.

뭘 그리 훑어보나?

어서 포상이나 줄 것이지.

“자네가 싸움질 좀 한다고.”

어째 묻는 말투가 달갑지 않다.

“틈틈이 수련해서 제 한 몸 지킬 정도는 됩니다.”

우벽산이 피식 웃었다.

비웃어? 우 총관이 나를?

속이 바글바글 끓었지만 일단 모른 척했다.

그래, 이것도 수양이라고 생각하자.

그보다 지금쯤 자신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터다.

그럼에도 총관은 아무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내원의 분위기도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아마 한편으로는 사라진 자신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을 터다.

사흘간 휴가를 주었던 묵검도 이제 복귀했을 테니 본격적으로 자신을 찾아 나서리라.

가주가 실종된 상태에서 가문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일단은 가신들을 믿을 수밖에.

“앞으로는 조심하게.”

“감사합…… 응? 네?”

적비연은 물론 막천수도 당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당연히 칭찬을 받고 포상을 받으리라 생각했다.

한데 이건 경고가 아닌가?

“자네 귀가 잘 안 들리나? 조심하라 일렀다.”

“무슨 말씀이신지……?”

“말귀를 못 알아먹는군. 앞으로는 섣불리 나서서 일을 크게 벌이지 말란 말일세.”

순간 적비연은 부아가 치밀었다.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어?

본가를 위해 용감히 나선 수문무사에게 칭찬은 못할망정 뭐가 어쩌고 어째?

적비연이 뺨을 씰룩였다.

“그게…… 끝입니까?”

“그럼 잘못한 게 또 있나?”

“잘못…… 이라고요? 아니, 지금 잘못이라고 하셨습니까? 벽력적가를 개무시하는 것들에게 훈계를 했으면 응당 칭찬과 포상을…… 읍읍!”

막천수가 얼른 적비연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하! 이 녀석이 병치레를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정신이 오락가락합니다. 앞으로는 주의시키겠습니다. 총관님.”

“아니, 뭔 주의를……! 읍! 읍!”

우벽산은 혀를 끌끌 차고는 던지듯 말했다.

“알아들었으면 그만들 돌아가게.”

막천수가 적비연을 억지로 끌고 나가려고 할 때였다.

“아참.”

우벽산이 잊은 게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힘은 좀 쓰는 모양이니 이번에 아상 어르신을 마중 나갈 때 합류하도록 하게. 내일 마침 두 사람은 비번이더군. 특근수당은 넉넉하게 주지.”

“아,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막천수는 여전히 뭐라고 떠들려는 적비연을 필사적으로 막으며 방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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