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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적-24화 (25/301)

24. 진퇴양난(進退兩難)

“모두 정신 바짝 차려라! 철검대는 백검개화진(百劍開花陳)을 펼쳐라!”

“옛!”

과연 실전으로 닳고 닳은 무인답게 철검당주인 만대균은 대처가 빨랐다.

그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철검대가 부채꼴 모양으로 쫙 펼쳐지면서 대열을 갖췄다.

“운귀! 이 공자님을 호위하게!”

만대균의 목소리가 떨어지자마자 하천웅 곁으로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공자님, 조심하십시오.”

하천웅의 호신위 운귀였다.

그가 허리춤에서 시퍼런 검신을 뽑아 들고는 날카로운 눈으로 사방을 훑었다.

백호대주 사평주(司評朱)도 반대쪽 통로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백호대는 십명진천진(十鳴振天陳)을 펼치고 초 관주님을 호위하라!”

“존명!”

우렁차게 대답한 백호대 역시 부채꼴로 넓게 펼쳐지면서 초관응을 사이에 두었다.

초관응 역시 어느 정도 무공을 익히고 있었기에 검을 뽑아 들고는 주변을 훑었다.

마지막으로 단휘가 명했다.

“뇌검대, 적운풍뢰진(積雲風雷陳)으로 대응한다!”

“존명!”

사사사삭!

세 조직이 순식간에 대열을 갖추자 모든 방향으로 경계가 강화됐다.

고요.

땀방울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무거운 침묵이 공동을 짓눌렀다.

꿀꺽.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

무인들은 저마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각자가 맡은 방향을 주시했다.

‘어느 쪽이냐? 어디로 오는 것이냐?’

적비연 역시 그들 가운데에 서서 기감을 활짝 펼쳤다.

그가 옆에 선 곡양기에게 손을 내밀었다.

“단검.”

“예?”

멍하니 되묻던 곡양기가 적비연의 눈치를 살피다가 얼른 단검을 건네주었다.

“아, 네. 어르신. 여기.”

“또. 전부.”

“여기 있습니다.”

곡양기가 얼른 가지고 있던 단검 두 자루를 더 건네주었다.

총 세 자루의 단검을 양손에 쥔 적비연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주변을 훑었다.

‘어르신이 원래 무공을 익히고 계셨던가?’

곡양기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길게 생각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사각. 사각사각……!

어디선가 들려오는 미세한 소리.

순간 무인들의 기세도 더욱 날카롭게 변했다.

그들 모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온다……!’

그런데…….

차가차가차가……! 차가차가차각……!

‘한 놈이 아니야!’

적비연이 미간을 찡그렸다.

덩치는 더 작다.

기척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통상 전해지는 인면지주의 크기 정도 될 것 같다.

하지만 그 수가…….

“엇! 여기다!”

“여기도!”

“여기도 나타났어!”

무인들이 저마다 살기를 끌어올리며 소리쳤다.

적비연이 단도를 그러쥐었다.

‘많다! 그 녀석의 새끼들인가?’

각 통로마다 시커먼 인면지주가 나타났는데, 그 수가 족히 수십 마리는 됐다.

괴이하게 일그러진 사람의 얼굴을 가진 인면지주들!

순간,

-카아아악!

인면지주가 입을 쩌억 벌리면서 괴성을 내지르자,

촤아아아악!

하얀 거미줄이 그물처럼 퍼져 나왔다.

“쳐라!”

“죽여랏!”

“간다!”

만대균과 사평주, 단휘가 거의 동시에 외치자, 무인들이 일제히 몸을 날려갔다.

“우아아아앗!”

“죽어라, 이 괴물들아!”

쉬카앙! 쒸이이잉!

-퀴아아악!

-카아아악!

인면지주들과 무인들이 마구 뒤섞이면서 처절한 사투가 벌어졌다.

적비연도 곧장 몸을 날려 단검으로 인면지주들을 베어갔다.

겁에 질려 떨고 있던 초관응이 그런 적비연을 보고는 입을 딱 벌렸다.

‘저 영감…… 무공 수위가 상당하잖아?’

어지간한 무인들 뺨치는 수준이 아닌가?

아니, 대주급 그 이상이다.

도대체 언제 저만큼 무공을 익힌 건가?

‘저 정도 수위라면 절정 이상일 텐데.’

분명한 건 나이 먹고 남몰래 익힌 무공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무공을 익혔다는 게 아닌가?

그 오랜 세월 왜 실력을 숨긴 거지?

하지만 생각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마침 인면지주 한 마리가 허공을 펄쩍 뛰어오르더니,

-카아아악!

촤라라라랏!

하얀 거미줄을 그물처럼 내뿜는 것이 아닌가?

“으헉! 우아앗!”

깜짝 놀란 그가 몸을 돌려 달아났지만, 넓게 퍼져 날아드는 거미줄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치익, 치이익!

“크아악!”

살이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취리리릭!

하얀 실에 친친 감긴 초관응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살, 살려……!”

타앗!

순간 적비연이 바닥을 차더니 경공을 펼쳐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쒸아아앙!

그가 단검을 휘두르자 검기가 날카롭게 뻗어나가면서 거미줄을 단숨에 잘라냈다.

거미줄에 감겨 있던 초관응이 그대로 바닥에 추락했다.

콰당!

“커헉! 컥!”

적비연이 얼른 단검에 검기를 입혀 거미줄을 쳐내고는 초관응의 맥을 짚었다.

“괜찮소?”

“아 당주님…… 크윽……!”

“말을 삼가시오!”

상태가 좋지 않다.

즉각 응급 처치를 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적비연은 재빨리 품에서 침을 꺼내 거침없이 놓아갔다.

푹! 푹푹푹……!

마침내 초관응의 안색이 시퍼렇게 질리더니,

“우웁, 쿠웨에엑!”

그가 시커먼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됐소. 탁혈은 토해냈으니, 한결 나아졌을 거요. 일단 운기하면서 몸을 다스리시오.”

“고, 고맙소.”

적비연이 몸을 일으키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 명은 구했지만……!’

그사이 벌써 여러 명의 무인들이 목숨을 잃고 인면지주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문제는 새끼 인면지주가 아니다.

초절정고수인 만대균이 종횡무진하며 활약을 펼쳐주고 있으니 결국 새끼 인면지주는 처리할 수 있으리라.

다만…….

-퀴카아악!

-캬아아악!

-퀴아아악!

‘시작된 건가?’

갑자기 새끼 인면지주들이 괴성을 터뜨리면서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재빨리 나타났던 통로로 스르르 빠져나갔다.

죽어서 바닥에 널브러진 인면지주가 열두 마리.

대략 절반 정도다.

“헉, 헉, 헉……!”

“뭐, 뭐지? 전부 도망친 건가?”

사투를 벌이던 무인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던 하천웅이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 이놈들 결국 우리가 무서워서 꽁무니를 빼고 도망갔구나! 하하하!”

“이, 이긴 건가? 정말 우리가?”

“그, 그럼 이건 대박이잖아! 인면지주가 열두 마리! 거기에 특등품 야명주까지!”

“우와아아! 우리가 이겼다!”

들뜬 무인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 순간 적비연이 사자후를 터뜨렸다.

“다들 조용!”

무인들이 움찔거리고는 돌아보았다.

적비연이 혀를 차고는 날카롭게 일렀다.

“이대로 끝날 리가 없다! 새끼들이 감당이 안 되니 어미를 부르러 간 것일 터.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야!”

“설마…… 어미라면 우리를 쫓던 그 커다란 녀석……?”

“당연한 걸 뭘 묻고 있느냐!”

적비연이 다시 호통을 쳤다.

얼빠진 것들.

겨우 새끼 몇 마리 처치하고 좋아서 들뜬 꼴이라니.

그나마 만대균과 사평주, 단휘만큼은 아직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적비연과 같은 생각인 듯했다.

다시 이어지는 고요함.

모두가 기도를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어디냐? 어서 와라!’

만약 어미가 나타난다면 모든 무인이 한꺼번에 덤벼야 할 것이다.

지금쯤 어미도 당황했을 터다.

모처럼 먹이가 나타났는데, 하나같이 싸움질 좀 하는 무인들일 줄은 몰랐을 테니.

새끼들을 절반이나 잃고 꽤나 분노하고 있겠지.

하지만 녀석은 영물이다.

단순하게 본능대로 움직인다면 좋겠지만, 영물의 지능은 때론 인간을 뛰어넘기도 한다.

‘느슨해지기를 기다리는 건가?’

기척은 없다.

지루한 시간이 흐른다.

이렇게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성급한 인간은 긴장을 풀게 된다.

지금 저 녀석처럼.

“아무래도 어르신이 너무 긴장하신 것 같습니다.”

하천웅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쓰러진 인면지주의 머리통을 검으로 쿡쿡 쑤시며 말했다.

“보십시오. 이래도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분명히 녀석은 우리가 생각보다 강하니까 잔뜩 쫄아서…….”

“피하십시오!”

타앗!

운귀가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바닥을 박차고 쏜살같이 날아갔다.

팍!

“엇!”

거칠게 떠밀린 하천웅이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쓰러졌다.

찰나,

츄리리릿!

촤악! 촤촤악!

천장에서 떨어져 내린 거미줄을 운귀가 마구 쳐냈다.

하지만 모든 거미줄을 쳐내지 못한 그가 이윽고 몸이 휘어 감기면서 천장으로 솟구쳤다.

“헉!”

고개를 꺾어든 무인들이 경악하며 외쳤다.

“천장이다!”

“헉! 저놈……!”

“어미다! 어미가 나타났다!”

-키캬아아악!

천장에서 거미줄을 타고 내려와 허공에 매달린 어미 인면지주가 괴성을 터뜨렸다.

“크읏!”

“귀가……!”

녀석의 울음소리를 견디지 못한 몇몇 무인이 내상을 입고 울컥 피를 토해냈다.

새끼들과 달리 어미의 배에는 수백 개의 얼굴이 박혀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끔찍한지 쳐다보는 것만으로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천장 쪽에 다른 통로가 있었던 건가?’

적비연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워낙 높아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러지 않고서야 갑자기 저렇게 나타날 수는 없으리라.

한편 거미줄에 친친 감긴 운귀는 그대로 인면지주의 커다란 입으로 향했다.

‘맘 놓고 배불리게 할 순 없지!’

순간 적비연이 검기를 실은 단검을 있는 힘껏 집어 던졌다.

쒸에에에엑!

스칵!

거미줄이 툭 끊어지면서 누에고치처럼 휘어 감긴 운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찰나, 만대균이 경공을 펼치며 인면지주에게 날아갔다.

“뒈져라앗!”

쒸아아앙!

만대균이 일으킨 시뻘건 강기가 그대로 인면지주의 머리로 날아갔다.

그 순간 모두의 눈빛에 희망이 스며들었다.

‘끝났다!’

그런데…….

까가아앙!

요란한 금속성이 울리더니 인면지주와 부딪친 강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막혔…… 어? 강기가?’

무인들이 저마다 입을 쩍 벌렸다.

맙소사! 검강이 먹히지 않으면 어찌 이긴단 말인가?

한편 적비연은 얼른 운귀에게 달려가 누에고치처럼 굳어가는 거미줄을 잘라내고 운귀를 꺼냈다.

‘심각하군!’

이미 의식을 잃고 있었기에 구토를 해서 독을 빼내기는 어렵다.

일단은 응급처치를.

적비연이 거침없이 침을 놓는데, 하천웅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가왔다.

“어, 어르신……! 운귀는…… 살 수 있습니까?”

“정신이 돌아온다면. 하지만 이대로 의식이 돌아오지 않으면 어렵다.”

“그런……!”

“그러게 긴장을 풀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적비연이 버럭 소리치자 하천웅이 흠칫거리며 물러났다.

찰나,

“어르신! 피하십시오!”

단휘의 목소리에 적비연이 반사적으로 운귀를 걷어차고는 튕기듯 물러났다.

콰아아앙!

마침 그 자리에 집채만 한 인면지주가 떨어져 내렸다.

쿠드드드……!

그 진동으로 벽과 천장에서 돌 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렸다.

‘진짜 크긴 더럽게 크구나.’

바닥에 내려선 인면지주는 운귀가 굴러간 입구 쪽 통로를 등지고 있었다.

녀석이 몸을 일으키더니 수백 개의 얼굴로 포효를 터뜨렸다.

-키캬캬아아악!

그 기세만으로도 무인들의 혼백이 나갈 지경이었다.

적비연이 이맛살을 잔뜩 구기고 노려보았다.

‘우리가 들어온 입구를 막았다는 건…….’

달아날 길을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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