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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적-25화 (26/301)

25. 진퇴양난(進退兩難)

“다들 겁먹지 말고 침착하게 대응해라!”

무리 중 가장 강한 만대균이 기세를 끌어올리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적비연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틀렸다.

이미 무인들 상당수가 공포에 질려 손발을 제대로 놀리지 못하는 상황.

차라리 사파 무인들과 한 바탕 전쟁을 벌이는 것이라면 이 정도로 정신적 충격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데 지금 눈앞에 있는 녀석은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괴물.

흔히 떠올리는 영물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그 형체가 너무나 크고 흉측하다.

낯선 환경에 낯선 적, 익숙하지 않은 싸움 방식!

모든 것이 미지의 영역.

게다가…….

‘정작 본인부터 당황하고 있어.’

그랬다.

누구보다 강한 만대균이 지금 이 순간 제일 당황하고 있었다.

그는 조금 전 검기가 막혔을 때, 난생처음으로 깊은 절망을 느꼈다.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그였다.

다른 절정고수들이 펼치는 검기와는 그 강도가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도 통하지 않으니 내심 충격이 컸던 것이다.

수장의 마음가짐이 흔들리면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저절로 불안을 느끼게 된다.

때문에 무리를 이끄는 자는 누구보다도 침착하고 강단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무너졌군.’

적비연은 만대균을 힐끔 보았다.

이미 그의 눈동자에 공포가 가득하다.

초절정고수가 저러는데 절정이나 일류 고수는 오죽하랴.

이대로라면 패색이 짙다.

살아 돌아갈 확률이 없다.

아니, 나는 예외인가?

죽으면 누군가의 몸을 빌려 환생할 테니까.

적비연은 그날 은하란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환생에 관해 궁금한 게 있어.”

“뭔가요?”

“내가 죽으면 언제까지 환생이 가능한 거지? 무한 환생이 가능한가?”

“그렇게 생각하셔도 무리는 아니에요. 다만…… 본체로 돌아오면 환생이 불가능할 수 있어요.”

“당신이 말한 대로 본체가 완전히 빈 그릇이 되면 돌아올 수 있는 건가?”

“아마도요.”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고?”

“네.”

적비연은 한숨을 내쉬고는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본체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환생이 가능한가?”

“정확한 건 저도 알 수 없어요. 사실 가주님께 사용한 술법은 제가 개발한 게 아니니까요.”

“그럼 누가 개발한 거지?”

“제 어머니가요.”

“당신 어머니는…….”

“신녀(神女)였어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그래서 이런 괴이한 술법을 알고 있었던 건가?

적비연은 잠깐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환생할 때 대상은 어떻게 정해지는 거지?”

“기본적으로 몇 가지 조건이 있어요. 첫째, 유체가 이탈된 자일 것. 둘째, 거리가 가까울수록 확률이 높지만 큰 상관은 없어요. 셋째, 가주님과 상성이 잘 맞을 것.”

“상성이라는 건……?”

“설명하기 힘들어요. 그걸 이해하시려면 가주님이 지금부터 십 년 동안 신술만 꼬박 공부하셔야 할 거예요. 그것도 재능이 없다면 더 걸릴 거고요.”

“흐음. 넘어가지.”

“잘 생각하셨어요.”

“그럼 마지막으로…… 자살을 해도 환생이 가능한가?”

은하란이 살며시 웃었다.

“역시 그런 생각을 하실 것 같았어요. 저도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어째서?”

“말씀드렸다시피 가주님께 걸어둔 술법은 신술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어요. 신술이 적용되려면 당사자의 의지가 중요하죠.”

“한마디로…… 내가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자에게 신이 환생의 기회를 불어넣을 이유가 있을까요? 술법이 약해질 수밖에 없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위험할 거라는 의견이군.”

“네, 저라면 절대 시도하지 않을 거예요.”

‘그년…… 뭐 하나 확실한 게 없다니까.’

잠깐의 상념에서 빠져나온 적비연이 혀를 찼다.

다시 생각해도 은하란에게 사활침을 놓은 건 잘한 것 같다.

뭐, 처음에는 조금 비겁했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역시 믿을 수가 없다니까.

그나저나…….

-퀴아아아아아악!

‘저놈은 어떻게 잡아 죽이지?’

저 정도 크기라면 분명 녀석이 지닌 내단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대환단을 능가하는 영단 수십 개를 제조할 수 있으리라.

그것만 해도 가문의 빚은 탕감하고도 넉넉하게 남는다.

오히려 장사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녀석을 잡았을 때의 이야기.

만대균의 검기도 통하지 않는 놈인데…….

출구를 완전히 등진 채로 틀어막아버려서 달아날 수도 없고.

그나마 한 명 있는 초절정고수는 넋이 나가 버렸고, 사평주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만대균 눈치만 살핀다.

다행히 정신이 무너지지 않은 사람은 단휘였다.

“젠장!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지 않습니까? 어떻게든 처리해서 여길 빠져나갑시다!”

옳지. 그래도 역시 저 녀석이…….

“난 여기서 죽으면 가주님께 홍월루 기녀도 소개받지 못한다고요!”

저놈이 그럼 그렇지.

어쨌거나 그 기세라도 꺾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단휘가 검기를 풀풀 휘날리며 말을 이었다.

“제가 정면을 치겠습니다. 녀석이 저에게 이목이 집중됐을 때, 만 당주님과 사 대주님이 좌우에서 동시에 치고 들어가 주십시오!”

그의 호기에 느낀바가 있었던 것일까?

만대균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흥! 정면은 내가 맡는다. 자네가 오른쪽을 맡아.”

단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만 당주님께 맡기겠습니다.”

단휘가 얼른 만대균과 위치를 바꿨다.

만대균이 마른침을 삼켰다.

전략이라기에는 너무나 단순한 방식.

하지만 적은 인간이 아니라 영물이다.

오히려 이럴 땐 차라리 단순한 게 나을 수도 있다.

“간다앗!”

마침내 만대균이 기합성처럼 고함을 내지르며 경공을 펼쳤다.

타다닷!

-키캬아아아악!

아니나 다를까 인면지주는 몸을 일으키면서 수백 개의 입에서 거미줄을 뿜어냈다.

촤촤촤아아악!

수백 가닥의 거미줄이 만대균을 향해 쏟아졌다.

“어림없다!”

만대균이 일갈을 터뜨리며 어지럽게 검을 휘둘렀다.

슈슈가가가강!

검기에 의해 수많은 거미줄이 속수무책으로 잘려 나갔다.

단휘가 바닥을 차며 소리쳤다.

“사 대주님! 지금입니다!”

“알겠소!”

사평주가 동시에 쏘아져 나갔다.

쒸아앙! 쒸아아앙!

두 사람이 양측에서 검기를 일으키며 쇄도하자, 거미가 양다리를 들어 올리면서 거칠게 찍어 내렸다.

쾅! 콰콰앙! 콰앙!

팟! 파바밧!

단휘와 사평주는 이리저리 종횡무진하며 인면지주의 다리를 피해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마침내 지척에 다다랐을 때,

“받아랏!”

“하아앗!”

두 사람이 곧장 검을 내질렀다.

베기가 통하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파괴력이 더 강한 찌르기로 대응했다.

하지만,

쉬까앙! 까앙!

“크읏!”

두 사람이 신음을 터뜨리며 물러났다.

검을 쥔 손을 따라 어깨까지 저릿하게 울렸다.

‘뭔 피부가 만년한철(萬年寒鐵)처럼……!’

그때,

“노오옴! 진짜는 여기다!”

만대균이 기다렸다는 듯이 정면에서 검기를 휘둘러 왔다.

쒸이이잉!

뚜까아앙!

불꽃이 튀면서 만대균의 몸이 그대로 튕겼다.

‘젠장! 역시 안 먹히잖아!’

-퀴카아아악!

잔뜩 화난 인면지주가 몸을 세우더니 다시 수백 가닥의 거미줄을 난사했다.

촤촤촤촤촤아악!

이번에는 모든 무인을 향해 덮쳐왔다.

“다들 정신 차리고 막아라!”

적비연이 몸을 날렸다.

쉬카카카카칵!

그가 어지럽게 단검을 휘두르자, 그물처럼 덮쳐오던 거미줄이 조각조각 잘려 나가며 바닥에 떨어졌다.

치치치이익……!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으으…… 어지러워!”

“콜럭! 콜록! 머리가…….”

무인들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독무……!’

정말 엿 같은 상황이다.

잘라낸 거미줄이 녹으면서 자욱한 독무를 형성했다.

아마도 먼저 쏘아내던 거미줄과는 또 다른 종류이리라.

“최대한 숨을 참아라! 독무다!”

적비연의 외침에 무인들이 저마다 공력을 끌어올리고는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잠시의 소강상태.

적비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녀석도 한꺼번에 많은 거미줄을 쏘아내느라 기운을 소비했을 터.’

하지만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검기도 통하지 않는다.

그 말은…….

‘어딘가에 약점이 따로 있다는 건데.’

단휘를 비롯한 세 사람이 차륜술을 펼쳐 싸우는 동안 적비연은 인면지주를 가만히 살피기만 했다.

그 결과 약점으로 짐작되는 곳이 보이긴 했다.

바로 아랫배 한가운데에 위치한 얼굴.

다른 얼굴과 달리 한가운데에 박힌 얼굴만 유독 짙은 녹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워낙 많은 얼굴이 빼곡하게 박혀 있어서 면밀히 살피지 않으면 찾기도 어렵다.

하지만 전투를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던 적비연은 다행히 알아볼 수 있었다.

“아랫배 복판의 얼굴이 약점일 수도 있다.”

적비연이 중얼거린 말에 단휘가 흠칫거리고는 돌아보았다.

“과연! 약점이 있다면 죽일 방법이 있겠군요!”

무인들의 표정에 희망이 깃들기 시작했다.

단휘가 소리쳤다.

“이번엔 합격술로 갑시다! 제가 약점을 노려보겠습니다!”

“서두르지 마라. 약점이 아닐 수도 있다.”

“어르신,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일리 있는 말이다.

독무가 차오르는 상황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한 건 인간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중독되고 있을 터.

만대균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측으로 이동했다.

“이번엔 내가 우측을 맡겠네.”

적비연이 내심 코웃음을 쳤다.

‘흥! 저럴 땐 절대 안 나서는군.’

그도 그럴 것이 만약 이번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면, 가장 위험한 사람은 약점을 노리고 제일 깊이 파고든 사람이 될 것이다.

그땐 십중팔구 죽는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만대균도 은근 슬쩍 몸을 사린 것이다.

‘재수 없는 만검세가 놈들.’

단휘가 심호흡을 하고는 말했다.

“그럼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그 순간, 적비연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

“잠깐!”

막 치고 나가려던 단휘가 움찔거리고는 돌아보았다.

적비연이 심각한 표정으로 인면지주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 단 대주와 사 대주가 양측에서 동시에 공격할 때 녀석은 어느 한쪽으로도 몸을 돌리지 않았다. 제자리에서 발로 내려찍기만 했지. 그러고 보면 지독하리만치 돌아설 생각을 하지 않아. 혹시…… 녀석이 출구 쪽을 등진 이유가 탈출을 막으려는 속셈도 있지만 또 다른 게 있다면?’

어쩌면 녀석의 후미가 약점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단휘는 그야말로 개죽음을 당한다.

‘젠장! 둘 중에서 어느 쪽이지?’

아랫배냐? 후미냐?

만약 정말로 후미가 약점이라면?

절대로 돌아서지 않는 놈의 뒤로 어떻게 돌아갈 수 있지?

‘아……!’

다시 한 번 뒤통수를 치는 생각!

그 방법이라면……!

생각을 마친 적비연이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단 대주는 사 대주와 함께 좌측면을 쳐라.”

“예? 그럼 급소를 치기가…….”

“내가 맡겠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듣고만 있던 만대균도 만류했다.

“어르신! 그건 위험한 생각입니다! 어르신의 무위가 고강한 건 보았습니다만, 너무 무모하십니다!”

“아니, 내가 직접 할 거요. 아무도 날 말릴 수 없소.”

“하지만……!”

“시간 없소! 긴말 않겠소!”

버럭 고함을 내지른 적비연이 기다릴 새도 없이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어엇! 쳐, 쳐라!”

깜짝 놀란 만대균이 소리쳤고, 일시에 모든 무인들이 인면지주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무림맹 신의를 절대 잃어서는 안 된다는 일념이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우아아앗!”

“뒈져라! 이 괴물아!”

-퀴캬아아악!

다시 인면지주가 몸을 일으키며 거미줄을 난사했다.

촤촤촤촤아악!

그물처럼 넓게 뻗어오는 거미줄을 보며 적비연이 입매를 말아 올렸다.

‘오히려 이러면 쉽지!’

촤촤아악!

검기로 거미줄을 끊어낸 적비연이 바람처럼 아랫배 중앙까지 파고들었다.

마침내 그가 한가운데에 위치한 녹색 얼굴에 단검을 찔렀다.

“죽어엇!”

콰직!

단검의 검기가 얼굴에 박히면서 녹색 액체가 쏟아져 내렸다.

츄아아아!

-쿠와아아아악!

수백 개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급소인가……? 아니면 그저 독주머니……?’

몸을 마구 뒤틀던 인면지주가 어느 순간 발을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적비연의 등을 내려찍었다.

푸욱!

“크헉!”

적비연은 자신의 가슴을 뚫고 튀어나온 인면지주의 송곳 같은 발톱을 보았다.

“앗! 어르신!”

“천, 천기당주님!”

“안 돼엣!”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적비연은 그 자리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

녹색 얼굴에 박힌 단검이 뽑혀 나오면서 독액이 그대로 적비연의 머리 위를 덮쳤다.

촤아아악!

‘니미럴…… 이번엔 헛짚었군. 아상의 신분이 아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부디…… 헛된 죽음은 아니기를……!’

쿠우웅!

인면지주가 그대로 아랫배를 깔고 앉자 적비연의 전신이 터져 즉사하고 말았다.

마침내 무림맹 신의가 목숨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 * *

“크흡!”

적비연은 눈을 부릅떴다.

잠깐 어둑한 천장을 바라보던 그가 화들짝 놀라면서 일어났다.

‘여긴……!’

얼른 몸을 더듬어 살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운귀!

틀림없다.

운귀의 몸으로 들어온 거다.

됐어! 여기까지는 계산대로다!

고개를 돌려보니 통로 끝을 막고 선 인면지주의 후미가 보인다.

적비연의 입매가 차갑게 말려 올라갔다.

‘역시 거기였구나, 네놈의 약점이.’

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워 들었다.

그의 눈빛이 시린 빛을 뿜었다.

다음 순간,

타앗!

적비연의 신형이 인면지주를 향해 날아갔다.

‘똥침의 무서움을 제대로 가르쳐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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