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타올라라, 호가여!
강호 최대의 경매장 금룡장!
오늘도 금룡장은 언제나처럼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강호명가에 속한 만대균은 아래층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위층 특별석에 자리했다.
마침 지금은 만검세가에서 가져온 영단인 만강단(萬剛丹)을 판매하는 시간이었다.
만검세가의 명성 때문인지 경쟁은 제법 치열했고 결국 만강단 열 개 모두 꽤나 비싼 가격에 낙찰됐다.
‘좋아. 이걸로 수수료를 제외해도 총 삼십만 냥을 벌었군.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다.’
거기에다가 어제 천상단 탈취도 성공했으니 완벽한 셈.
그런데…… 왠지 모를 이 불안감은 뭘까?
그가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가 마침 저만치 떨어진 특별석에서 벽력적가 무인들을 보았다.
단휘와 예홍이었다.
묵검은 보이지 않았다.
‘벽력적가가 특별석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의 벽력적가는 내세울 게 없지 않나?
천상단이라도 가져왔다면 모를까?
하지만 천상단은 어제 자신이 훔치지 않았나?
‘천하단이라도 가져와서 파는 건가?’
그런 정보는 없었는데…….
뭐, 일단은 두고 볼 수밖에.
그때였다.
“만 당주!”
하천웅이 씨근거리면서 특별석으로 들어섰다.
“늦으셨군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오!”
“무슨 말씀이신지?”
“대체 어제 뭘 가지고 온 거요?”
하천웅이 대뜸 만대균에게 단약을 집어 던졌다.
만대균이 자신의 가슴에 맞고 떨어진 단약을 바라보다가 다시 하천웅을 보았다.
그의 뺨이 씰룩였다.
‘아무리 소가주를 노리는 이 공자라지만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하다니.’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이 철부지를 한 대 패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고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 천상단을 왜 이렇게…….”
“천상단? 하! 피로회복제라고 하더이다!”
“뭐라고요?”
“자양강장제! 피로회복제 말이오! 먹으면 막 잠 안 오고 그러는 거!”
“그, 그럴 리가……!”
“한 군데에서만 확인한 게 아니오! 나도 믿을 수 없어서 여러 군데에서 확인했소. 감정가만 서른 냥이나 썼소! 한데 하나같이 자양강장제라고 했소!”
“그런……!”
만대균이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한 시선으로 단약을 내려다보았다.
어쩐지…… 향이 좀 그렇더니…….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괜히 흥분해서 길길이 날뛰어봐야 눈앞의 철부지 망나니와 다를 게 무엇이겠나?
그가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군요.”
“뭐가 말이오?”
“벽력적가에서 내부에 간자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이중 덫을 쳐놓았거나 아니면…….”
“아니면?”
“우리 쪽에 간자가 있거나.”
“우리 쪽에?”
하천웅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한편 뒤에 서 있던 적비연은 가만히 만대균의 표정만 살폈다.
‘확실히 노회함이 묻어 있군. 경험의 차이라는 건가?’
어쩌면 만대균은 자신을 의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결정적 단서는 없을 테니.
하천웅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겠소?”
“우선 당황하실 건 없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놈들을 습격한 걸 들키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원래 목적대로 경매에서 천상단을 낙찰받으면 그만이지요.”
“제길! 돈 한 푼 쓰지 않고 천상단을 가져갈 속셈이었건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심려 마시지요. 그리 비싼 값에 낙찰되진 않을 겁니다.”
“어찌 그리 장담하시오?”
“겨우 한 알입니다. 천상단의 효능이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누가 검증도 되지 않은 단약을 비싸게 사겠습니까? 게다가…… 이미 어느 정도 손을 써둔 부분도 있지 않습니까?”
“하긴…….”
그제야 하천웅이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상단이 만들어졌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그와 동시에 그 효능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었다.
후자는 바로 만검세가에서 직접 퍼트린 소문이었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된 이상 천상단을 헐값에 낙찰받자.’
마침 경매 진행자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자, 다음 물건은 벽력적가에서 가문의 비전으로 야심차게 만들어낸 천상단입니다! 특별히 천상원주께서 직접 이 영단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자, 은하란이 단상 한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압도적인 미모 때문인지 지켜보던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잠시 장내를 훑어본 은하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천상원주 은하란입니다. 한 번쯤은 이 천상단에 대해 들어보셨을 겁니다. 고인이 되신 아상 어르신이 직접 참여하기로 했던…….”
은하란의 연설이 이어지는 동안 적비연은 가만히 하천웅의 반응을 살폈다.
하천웅은 은하란에게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술법에 걸렸군.’
적비연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은하란은 연설하면서도 이따금씩 하천웅과 시선을 맞추곤 했다.
그녀의 몸짓, 시선 처리, 음성 이 모든 것이 술법에 해당했다.
물론 이 술법은 하천웅을 노린 것이다.
어젯밤 부적을 태운 것도 이 술법을 위해서였다.
마침내 연설이 끝나자, 진행자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자, 이게 바로 천상단입니다! 삼등품이지만 향이 아주 진하군요! 자소단보다 뛰어나며 대환단보다는 아주 조금 못 미친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천상단 삼등품 한 개. 입찰을 시작합니다! 우선 천 냥부터, 단위는 백 냥씩 올리겠습니다!”
“…….”
장내가 조용했다.
은하란이 장황한 연설을 했지만, 역시나 검증되지 않은 영단에 섣불리 돈을 지불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만약 아상이 살아 있었더라면 그 위상은 달라졌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당연한 현상이다.
만대균이 희미하게 웃음을 머금었다.
“역시 예상대로군요. 이대로 시간만 흐르면 천 냥에도 가져갈 수 있겠습니다.”
“후후. 그렇겠군.”
하천웅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제법 긴 시간이 흘렀다.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할 무렵 진행자가 입을 열었다.
“으음. 아무도 없습니까? 천상원에서 제조한 천상단! 아무도 없습니까? 그렇군요. 그럼 이대로 유찰…….”
그때였다.
“천 냥.”
일 층 한쪽 구석에서 누군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평범하게 생긴 중년인.
진행자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 천 냥! 시작가로 입찰자가 나왔습니다. 더 없습니까? 천 냥? 천 냥? 천…….”
“천오백 냥이오.”
다시 누군가 손을 들었다.
이번엔 특별석에서 들린 소리.
놀랍게도 무림맹 취선관주 초관응이었다.
“취선관주가 입찰을?”
“뭐야? 그럼 저게 진짜 효능이 있는 것 아닌가?”
“소문에 의하면 맹에서도 천상단 제조법을 안다고 하던데 어째서……?”
사람들이 술렁거리는 사이 진행자가 상기된 목소리로 외쳤다.
“천오백! 천오백 나왔습니다! 단숨에 오백 냥 올랐습니다! 취선관에서 천오백을 불렀습니다! 그만큼 귀하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진행자의 목소리에 초관응이 슬며시 이맛살을 찌푸렸다.
‘쓸데없는 소리를…….’
그로서는 쓸데없는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진행자의 그 한마디가 다른 사람들의 구매욕을 자극한 것만은 분명했다.
“천육백!”
“네, 천육백 냥 나왔습……!”
“천칠백!”
“이천!”
“이천오백!”
“삼천!”
불이 붙기 시작하자 호가가 순식간에 오르기 시작했다.
적비연은 흐뭇한 표정으로 이 과정을 지켜보았다.
‘뜻밖에 도움이 된 셈이군.’
적비연의 시선이 저만치 떨어진 초관응에게 향했다.
그로서도 취선관에서 입찰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처음 입찰가를 부른 사람은 바로 인피면구를 쓴 묵검이었다.
그는 오늘 하천웅을 낚을 바람잡이 역할이었다.
한데 난데없이 취선관주가 나설 줄이야.
‘결국 취선관이 천상단을 만드는 데 실패한 모양이군.’
하긴.
천상단 제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도 아상의 기억과 경험을 흡수하지 못했다면 분명 실패했으리라.
한편 뜻밖에도 호가에 불이 붙자 만대균의 안색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호가가 계속 오르는군요. 이대로 불이 붙으면 위험합니다. 일단 눌러야겠습니다.”
하천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호가는 일만 냥을 넘어가고 있었다.
치솟는 호가를 누를 방법은 하나뿐.
하천웅이 손을 들었다.
“오만 냥.”
순간 장내가 조용해졌다.
진행자가 호들갑을 떨었다.
“우아앗! 오만! 무려 오만 냥 나왔습니다! 어마어마한 액수! 자, 오만 냥! 더 없습니까? 단위를 이제 천 냥 단위로 올리겠습니다! 자, 다른 분 없습니까? 오만! 오만! 아아, 그럼 천상단은 오만에 낙……!”
“육만 냥.”
하천웅이 뜨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처음 입찰자였다.
바로 묵검이었다.
하천웅이 주먹을 꽉 쥐고 바들바들 떨었다.
‘도대체 웬 놈이……!’
반면 진행자는 신이 나서 소리쳤다.
“육만! 단숨에 육만! 육만 나왔습니다! 자, 더 가실 분 계십니까? 안 계시면…….”
“십만 냥.”
“헉!”
순간 장내가 술렁거렸다.
모두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취선관주 초관응이 손을 들고 있었다.
‘이걸로 끝내자.’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십만 냥은 자신에게 허용된 최고 액수였다.
아마 그 이상은 감히 부르는 자가 없으리라.
천상단 삼등품.
비록 대환단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자소단보다는 우월하다.
어디 그런 영단이 흔한가?
대환단과 자소단은 그 소속이 아닌 자들은 냄새도 맡기 힘든 귀한 물건들이다.
비록 삼등품이지만 천상단은 그 효능 이상의 연구 가치가 있다.
한편 하천웅의 표정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십만 냥이라니!
고작 천 냥으로 시작한 영단이 십만 냥이라니!
만강단도 그렇게 받지 못했다.
물론, 천상단이 정말 대환단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의 효력을 지녔다면 만강단은 비교도 되지 않을 터다.
아무리 그래도 검증도 되지 않은 것을 십만 냥이라니!
‘어쩌지? 저것마저 가져가지 못하면 아버지가 대노하실 텐데!’
방법이 없다.
우선 지를 수밖에.
“자, 십만 냥! 십만 냥 나왔습니다! 이제 없습니까? 십만 냥! 십만 냥! 네, 그럼 천상단 삼등품 십만 냥에 낙……!”
“십일만 냥.”
하천웅이 손을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십오만 정도를 부르고 싶었지만, 또 누군가 나올 것 같은 두려움에 지르지 못했다.
만대균은 고개를 저었다.
‘틀렸다. 불이 다시 붙는다. 차라리 질렀어야 했다.’
그의 예상대로 누군가 손을 들었다.
“십오만 냥.”
아니, 또 저 새끼가!
하천웅은 눈이 뒤집어지기 직전이었다.
호가를 부른 사람은 묵검.
적비연이 내심 조소를 지었다.
‘묵검이 바람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는군.’
뿐만 아니라 묵검은 슬쩍 돌아서더니 하천웅을 보고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 저, 저 때려죽일……! 처웃어?’
하천웅이 뒷목을 잡으며 적비연에게 물었다.
“방금 저 새끼. 날 비웃은 거 맞지? 그런 거지?”
“고정하십시오. 주군.”
“맞냐고! 날 비웃는 것 너도 봤어?”
“예, 봤습니다. 확실히 비웃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진행자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렸다.
“십오만! 십오만! 그럼 십오만 냥에…….”
“염병할! 이십만 냥!”
하천웅이 욕설과 함께 호가를 불렀다.
모두가 하천웅을 보았다.
만대균이 날카롭게 전음을 날렸다.
[공자님! 너무 갔습니다!]
[어쩔 수 없잖소!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갈 수도 없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시끄럽소! 이게 다 만 당주 때문 아니오! 애초에 천상단을 탈취하는 데 성공했으면 이런 일이 없잖소!]
만 당주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맙소사! 이십만 냥! 어마어마한 호가! 이십만 냥! 더 없습니까?”
“이십일만.”
“아, 이십일만 나왔습니다!”
하천웅이 내심 비웃었다.
됐다. 고작 일만을 올리다니. 저 새끼 쫄았어!
하천웅이 손을 들었다.
“이십오만.”
“이십육만.”
“삼십만!”
“삼십일만.”
보다 못한 만대균이 다시 전음을 보냈다.
[공자님! 진정하십시오! 지나칩니다! 아무리 그래도 삼십만은 과합니다! 이제 그만……]
[닥치시오! 이게 다 당신 때문이라니까!]
만대균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하천웅을 보았다.
틀렸다.
하천웅은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철부지 망나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막돼먹은 녀석이었던가?
‘미친……!’
줄을 잘못 섰다는 후회가 뼛속 깊이 밀려드는 순간이다.
그러는 사이에도 호가는 춤을 추듯 올라갔다.
“삼십오만!”
“삼십오만천.”
“삼십육만!”
“삼십육만천.”
적비연이 희미하게 웃고는 전음을 보냈다.
[보십시오. 또 비웃습니다. 저자는 확실히 주군을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 분명히 날 무시하고 있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
“삼십칠만!”
목청껏 부르짖는 하천웅을 보며 적비연이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타올라라, 호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