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이번 생은 망했어
‘거의 다…… 됐다……! 조, 조금만……! 조금만 더……!’
적비연의 안면이 온통 벌겋게 물들었다.
그의 몸이 절반 정도 돌아가 있었다.
아기의 몸에 들어온 지 나흘째.
아기는 아직 뒤집기를 시도할 시기가 아니었지만, 마음 급한 적비연은 뭐라도 해야만 했다.
최대한 빠른 성장을 이루어서 뭔가를 시도해야 어떤 변화라도 생기지 않겠나?
나흘 동안 끊임없이 운기행공을 했지만 몸을 뒤집는 것만큼은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하긴. 그건 공력보다 근력이 필요한 일이니까.
그래도 보통 아기들에 비하면 빠른 편이었다.
원래 최소 생후 사 개월은 지나야 뒤집기를 시도해 볼 만하지만, 적비연은 지금 생후 이 개월을 갓 지난 상태였다.
한마디로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기가 낑낑거리며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으니 누군가 보았다면 경악할 일.
‘아직이다! 조금만 더! 여기서 조금만 더 뒤집으면 가능해! 제발…… 뒤집혀라……! 뒤집혀……! 돈다, 돈다, 돈다……! 제발 좀 가즈아아!’
적비연의 이 처절한 노력을 예홍이 보았다면 근력에 도움이 못 되는 점을 목숨으로 사죄하겠다고 난리를 쳤으리라.
마침내 적비연의 얼굴이 터져 버릴 듯 달아올랐을 때,
‘아…… 제길……!’
털썩!
결국 오늘도 실패였다.
“헉, 헉, 헉……!”
적비연이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어찌나 안간힘을 썼는지 천장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전신에서 식은땀이 좍좍 흘렀다.
뒤집기라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던가?
이걸로 또 하나 깨달았다.
뒤집기에 성공한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벌써 몇 번째 실패한 건지 셀 수도 없다.
더 환장하겠는 건 금방이라도 될 것 같은데 안 된다는 거다.
하긴. 아직 목도 제대로 가누질 못하는 상황이니…….
“하아.”
적비연이 한숨을 탁 내쉬었다.
그때 방 안으로 들어온 유모가 요람을 들여다보고는 소리 질렀다.
“어머! 아기씨! 얼굴이 왜 이래요? 무슨 일이지?”
아니나 다를까, 유모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계속 비실거리던 아기가 의식을 차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젠 얼굴이 시뻘개져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마침내 진서국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
“그, 그것이…… 제가 잠깐 아기씨 옷감을 개고 왔더니 이런 상태가…….”
“맙소사! 이 땀 좀 봐!”
진서국이 깜짝 놀라며 아기의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냈다.
“내 아내는 어디에 있느냐?”
“급한 볼일이 있으셔서 나가셨습니다.”
진서국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아기를 아내가 보았더라면 더 크게 걱정했을 테니.
“이 아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숨이 가빴던 것이냐?”
“요즘 의식이 돌아온 후로는 거의 항상 숨이 가쁜 상태입니다.”
“잠도 잘 자지 않는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내내 뒤척이십니다.”
“아직도 몸이 허약한 탓인가?”
응, 아니야. 그런 거.
하지만 말을 할 수 없는 적비연이었다.
뭐, 말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뒤집기 하느라 그랬다고 말하긴 좀 그렇지.’
진서국이 급히 방을 나섰다.
“내가 의원을 불러오겠다.”
하아, 그럴 필요는 없는데.
‘이게 다 너 때문이다!’
적비연이 매서운 눈초리로 유모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유모는 그저 안쓰러운 표정으로 적비연을 볼 뿐이었다.
한참 후 진서국이 만강원주를 데리고 돌아왔다.
만강원주는 생각보다 젊었는데, 적비연의 맥을 짚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 아이는 건강합니다. 선천지기가 이상할 정도로 강하군요. 다만…….”
“다만 무엇인가?”
“수면이 부족합니다.”
진서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도통 잠을 자지 않는다더군.”
“아기들은 원래 잠을 푹 자는 게 가장 중요한데…… 그건 좀 문제군요. 잠을 안 자면 웁니까?”
“희한하게도 이 녀석은 거의 울지를 않네. 단지…….”
“단지?”
“그렇게 몸을 뒤틀고 난리를 친다더군.”
“몸을 뒤튼다고요?”
“그렇네.”
만강원주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혹시 배앓이? 아니면 성장통인가?’
하지만 그럴 경우 보통의 아기들은 집이 떠나가라 울 것이다.
그런데 울지는 않고 몸만 비튼다?
‘도저히 모르겠군.’
어쨌거나 중요한 건 잠을 자는 일이다.
만강원주가 가지고 온 약통을 뒤적거리며 말했다.
“아기는 아무 약이나 함부로 먹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몽현초(夢現草)라면 사용할 수 있지요. 구하기가 어렵긴 합니다만…….”
“설마 몽현초가 있는 건가?”
“예, 혹시 몰라 만강원에서 챙겨왔습니다.”
만강원주가 약통에서 가느다란 약초 줄기를 꺼냈다.
풀잎 대여섯 개가 달려 있는 몽현초였다.
만강원주가 말을 이었다.
“몽현초는 달이거나 삶지 않고 생으로 먹이시는 게 가장 좋습니다. 복용하고 나면 길어야 반 시진 이내에는 잠이 들 것입니다.”
“제발 이걸 먹고 푹 잠이나 잤으면 좋겠군. 무슨 아기가 이렇게 잠을 안 자는지 원.”
걱정 가득한 얼굴로 혀를 차던 진서국이 몽현초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한데 이 약초를 어찌 이도 나지 않은 아이가 생으로 먹는단 말인가?”
순간 적비연의 눈길이 만강원주에게 향했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지?’
불길한 예감이 강하게 든다.
적비연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 된다. 그것만은 절대 안 된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다.
지금처럼.
“약초는 아주 잘게 짓이겨서 먹이시면 됩니다. 이왕이면 걸쭉하게 만들어 먹이는 게 좋으니, 총관께서 이로 잘게 씹으신 다음 그걸 삼키게 하면 좋습니다. 특히 침이 많이 섞일수록 쓴맛이 중화되지요.”
안 돼!
“우애애애애애앵!”
적비연이 강렬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이 반응을 두 사람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역시 아기가 많이 힘든가 보군요.”
“그러게 말일세. 어서 몽현초를 먹여야겠군. 아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면 안 되겠어.”
“예, 이미 자야 할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으니 빨리 재우시는 게 좋습니다.”
“그럼 이리 주게. 내가 씹어서 먹이겠네.”
“그럼, 여기.”
안 돼애애애! 제발!
하지만 적비연이 심하게 울수록 진서국은 더욱 결의를 다진 표정으로 몽현초를 열심히 씹었다.
우물우물…… 우물우물…….
“우애애애앵! 응애응애!”
우물우물…….
당장 그 입을 멈춰라!
우리 할머니도 내게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고!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쨌든 나는 그걸 절대로 먹지 않겠다! 절대로!
그리고 마침내,
“다 됐네.”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 진서국이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만강원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기가 입을 벌리도록 붙들겠습니다.”
만강원주가 손으로 양 뺨을 눌러 아기의 입을 강제로 벌리게 했다.
‘아아악! 놔! 이것 안 놔? 만강원주, 이 개색……! 죽여 버린다아아아! 놓으란 말이다아아!’
마침내 진서국의 얼굴이 점점 다가왔다.
“우애애애애애앵!”
적비연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어른의 힘을 당하기란 한참 역부족이었다.
제발, 저리 가! 제발……! 으윽!
결국 적비연은 입과 목을 타고 넘어가는 이물감을 느끼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만강원주……! 내 너를 평생 저주하겠다.
‘우우웁!’
아기가 토하려고 하자, 만강원주가 얼른 입을 다물게 하고는 손으로 막았다.
‘읍…… 읍……!’
꿀꺽…… 꿀꺽……!
마침내 걸쭉하게 짓이겨진 몽현초를 다 삼키고 나자 만강원주가 손을 놓았다.
만강원주……! 두고 보자……!
“우애애애애애앵!”
적비연이 더욱 세차게 울었다.
그제야 조금 불안해진 진서국이 물었다.
“혹시 뭐가 잘못된 것 아닌가?”
“아마 약초가 써서 그럴 겁니다. 그래도 총관님의 침이 섞여서 쓴맛이 많이 중화됐을 겁니다. 이제 반 시진 내에 잠들 테니 안락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런 아기는 주변에 사람이 있으면 오히려 구경하느라 잠을 못 자니 모두 밖으로 물리도록 하시지요.”
“그, 그러세. 고맙네. 자네도 고생했네.”
“별말씀을요. 아이는 잠만 푹 자면 무탈하게 잘 자랄 겁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진서국이 껄껄 웃으며 만강원주와 함께 방을 빠져나갔다.
유모도 속싸개로 아기를 최대한 꽁꽁 감싸고 고이 눕혀두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드디어…….
‘혼자 남았다.’
내가 이 치욕을 겪어야 하다니.
어떻게든 여기서 벗어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통 아기들보다도 훨씬 빠른 성장을 이뤄야 한다.
적비연은 온 힘을 다해 몸부림쳤다.
그 결과 대략 한 식경이 지나자 속싸개가 느슨해지면서 팔다리가 자유롭게 움직였다.
이제는 뒤집기다!
‘후우, 후우! 하나…… 둘…… 셋!’
끄응……!
적비연이 최대한 온 힘을 다해 뒤집기를 시도했다.
몸의 삼분지 일이 넘어간다.
그래, 조금만 더! 조금만……!
악착같이 힘을 더하니 거의 절반가량 몸이 돌아갔다.
‘오오오! 가능성이 보인다! 여기까지 뒤집은 건 처음이다!’
이제 하체는 거의 돌아간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상체다.
몸은 거의 삼분지 이 정도가 돌아갔는데, 머리가 너무 무겁다.
세상에, 머리가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정말 머리를 가눌 줄 아는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야 한다.
여기서 머리만 제대로 들어 올려도 곧바로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너무 힘들다!
하체가 거의 다 돌아갔건만, 머리 때문에 엎드릴 수가 없다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졸음까지 몰려오기 시작했다.
몽현초를 먹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아니, 지금까지 버틴 것만도 용하다.
보통의 아기였다면 진작 곯아떨어졌을 거다.
이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기답지 않은 정신력과 강화된 선천지기 때문이리라.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다.
엎드리기라도 하면 곧 기어 다닐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어디든 기어 다니다가 하다못해 마차에 치어 죽을 수도 있지 않겠나?
뭐, 개에 물려 죽는다거나.
어쨌거나 그건 자살은 아니니까. 아니, 자살 맞나?
모르겠다.
어쨌든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조금만…… 더……! 힘을……! 끄으응……!’
정말이지 적비연은 오늘 아침 젖 빨던 힘까지 다해서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휙, 푹!
돼, 됐다! 뒤집었다!
고개를 들어 올린 그의 몸이 휙 돌아가면서 엎어졌다.
생후 두 달 남짓에 최초의 뒤집기를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심각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뭐, 뭐야? 제길! 머리를 들 수가 없다!’
배게에 푹 파묻힌 적비연은 모든 힘을 다 쏟은 탓에 더 이상 머리를 들 힘이 없었다.
정말이지 머리가 천근만근처럼 무겁게만 느껴졌다.
문제는 코가 파묻혀서 숨을 쉴 수가 없다는 것!
‘으읍……! 숨이 막혀……! 제길!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자살이 되는 건가? 그럴 수는 없어! 안 돼! 내세를 기약할 수 없어진다! 어떻게든 머리를 들어야 한다!’
적비연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들어 올렸다.
제발……! 제발……!
‘끄으으으응……!’
하지만 역부족.
생후 이 개월 남짓한 아기가 일시적으로 머리를 들어 올려 몸을 뒤집은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까운 일.
숨이 점점 차올랐다.
‘끄으읍!’
적비연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들었다.
하지만 바위 같은 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끄읍……! 젠장……! 이대로…… 숨이…… 막히면……! 호흡이……!’
산소가 부족해지자 몽현초의 효과가 더욱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길…… 머리를 가누기 전에 뒤집기를 못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구나…….’
마침내 아기의 눈이 허옇게 뒤집히기 시작했다.
‘끄윽……! 너무 괴로워……! 누가…… 좀……!’
머리를 들 수 없어서 죽게 될 줄이야.
제길. 내가 이렇게 죽으면 이 아기도 죽는 건가?
그건 좀 미안한데.
아직 세상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아기가 아니던가?
‘내가…… 죽더라도 어떻게든…… 이 아기만은…… 살려보고 싶은데…….’
마침내 버둥거리던 몸이 한차례 경련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축 늘어졌다.
그렇게 이번 생을 마감한 적비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