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56화 (57/301)

56. 한 번 잡숴봐

뭐, 이런…… 미친…….

매소약은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그녀는 어째서 묘청운이 저렇게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급소라도 맞았나?

아니다.

그런 타격은 보지 못했다.

그럼 점혈?

역시 보지 못했다.

하면 왜?

도대체 왜 병신처럼 저렇게 서서 꼼짝도 하지 않는 걸까?

물론 낮에 봤던 모습과 달리 지금 적비연은 어딘지 날카로운 기도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게 어때서?

묘청운 정도면 이런 녀석을 실컷 두드려 팰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두드려 패기는커녕 우두커니 서서 돌아보지도 않고 있다.

짓밟혀진 양갈비 따위나 내밀고 있는 녀석을 모른 척하고 있단 말이다!

까득!

매소약이 어금니를 갈고는 적비연을 노려보았다.

만약 그녀가 조금만 더 냉철하게 이 상황을 분석했더라면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아니, 처음부터 상식적으로 그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짜고짜 야밤에 나타나서 바닥에 구르던 양갈비를 먹으라는 놈이 보통 미친 건가?

스르릉.

매소약이 검을 뽑아 들고는 적비연을 노려보았다.

“다가오지 마. 이 미친놈아.”

“하아, 다들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먹을 걸 주는데 왜 다들 칼을 내밀고 지랄이지?”

“미친……!”

“그렇게 욕하는 것도 당신이 이 양갈비를 안 먹어봐서 그래. 한번 먹어나 보란 말이야.”

저벅저벅.

적비연이 거침없이 다가가자 순간 매소약이 내공을 끌어올렸다.

눈앞의 미친놈은 미형선공이 통하지 않는 상대.

아마 제정신이 안 박힌 놈이어서 그렇겠지만.

어쨌거나 그렇다면 불문곡직(不問曲直) 힘으로 제압할 수밖에!

타닷!

쉬이이잇!

그녀의 신형이 빛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는 묘청운이 왜 지금껏 가만히 있는지 깨달았다.

자신을 노려보는 적비연의 두 눈동자.

마치 맹수의 샛노란 눈빛처럼 심장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살기.

그 시선을 마주하자 매소약은 전신의 힘이 거짓말처럼 쭉 빠져나갔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팔이 떨려왔다.

두어 걸음 내디뎠던 그녀는 그렇게 검을 들어 올린 자세로 돌처럼 굳어버렸다.

‘이, 이 남자……! 무슨 살기가……!’

차원이 다르다.

자신 따위가 감히 덤벼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오줌을 지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저벅…… 저벅…….

‘움, 움직여야 해! 놈을 베어야 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매소약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본능이 외치는 또 다른 소리.

‘움직이면 죽는다. 베려고 했다간 내 목이 베이고 만다!’

자존심보다 공포가 스멀스멀 치밀어 올랐다.

맹수 앞에 선 초식동물이 이런 기분일까?

마침내 적비연이 매소약에게 다가와 양갈비를 쑥 내밀었다.

“먹어라.”

“……미친놈.”

“먹어.”

“……!”

매소약이 어금니를 까득 가는데,

짜악!

순간 뺨이 화끈거리더니 몸 전체가 휘청거렸다.

그대로 쓰러질 뻔한 매소약이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그녀의 두 눈이 퀭해졌다.

“매 소저……!”

그제야 뒤로 돌아선 묘청운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맙소사, 귀주일봉의 뺨을 때리다니.

누구보다 충격을 받은 사람은 매소약이었다.

감히 얼굴을 때려?

우리 아버지도 때린 적 없는 내 얼굴을?

“이 미친 새끼……!”

“먹으라고.”

“……!”

“안 먹어?”

적비연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마치 물속에 가라앉은 바위 같다고나 할까?

반면 매소약의 표정은 풍랑이 휘몰아치는 파도 같았다.

오히려 한 대 얻어맞고 나니 공포가 조금은 가시는 듯했다.

‘죽여 버리겠어!’

분노가 치민 그녀가 그대로 검을 휘두르려는데,

짜아악!

“악!”

휘청!

“매, 매 소저!”

묘청운이 한 걸음 내디디며 크게 소리쳤다.

매소약은 다시 겨우 중심을 잡고는 적비연을 노려보았다.

적비연은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양갈비를 내밀었다.

“먹어보라니까.”

“그만…….”

“뭘 그만해? 먹으라고.”

“싫다니까!”

짜악!

“꺅!”

짜악! 짜악!

적비연이 연이어 뺨을 올려붙이자 매소약의 몸이 끈 떨어진 연처럼 이리저리 마구 휘청거렸다.

“매, 매소저! 이노오옴! 아무리 그래도……!”

“넌 가만있어. 이년 먹인 후에 맛보여줄 테니까.”

적비연이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묘청운을 노려보았다.

막 걸음을 떼려던 묘청운은 다시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꿀꺽.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정말이지 제대로 미친놈을 건드린 것 같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검 한 번 섞어보지 못하고 이렇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잖아!’

분한 감정이 본능의 경고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을 세게 움켜잡았다.

적비연이 다시 매소약에게 양갈비를 들이밀려고 할 때,

타앗!

묘청운이 몸을 날렸다.

이번에는 정말로 끝내 버린다!

죽여도 상관없다.

만검세가 이 공자면 대수인가?

아버지에게 잘 말씀드리면 이 정도 사고는 수습해 주실 거다.

무엇보다 이 미친놈이 한 행동을 말씀드리면 오히려 더욱 분개하실지도 모른다.

그래, 저딴 녀석은 죽여 버리자!

쒸에에엑!

묘청운이 휘두른 검신이 적비연의 뒤통수로 떨어져 내렸다.

‘끝이다, 이 미친 새끼야!’

그런데…….

’휙, 콰앙!

묘청운은 보지도 못했다.

적비연이 꿈틀 움직이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자신은 안면이 얻어터져 날아가고 있었다.

콰당탕탕!

한참을 굴러간 묘청운이 벽에 처박히면서 처참하게 구겨졌다.

“끄으……!”

“내가 기다리라고 했지? 객잔에서나 여기서나 줄 서서 기다릴 줄을 모르네.”

적비연이 싸늘하게 말을 뱉고는 시선을 돌렸다.

단 일권에 묘청운이 날아가는 걸 본 매소약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틀렸다.

이자는 차원이 다르다.

자신들이 힘을 합한다고 해도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처음으로 아버지 말을 듣지 않은 게 후회가 됐다.

적비연이 입매를 비틀며 다시 양갈비를 들어 올렸다.

‘우읍……!’

순간 구토가 치밀었다.

하지만 이 미친놈 앞에서 구토를 했다간 또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애써 참고 있자, 묘청운이 비척거리며 일어나더니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이제 그만…… 그녀를 보내주시오.”

이번 일격으로 그도 깨우쳤다.

자신의 적수가 아니라는 것을.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일단은 살고 봐야 할 일이 아닌가?

적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보내줄 거야. 이거 다 먹으면.”

“제발 그만…… 내가 잘못했소. 미안하오.”

적비연이 묘청운을 힐끔 돌아보았다.

“그게 아니지. 고맙다고 해야지. 맛있는 걸 나눠주니까.”

“…….”

이쯤 되자 매소약이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뭐, 뭘 원하죠? 돈인가요? 아니면 제…… 몸인가요?”

적비연이 피식 웃었다.

“네놈들은 어째서 대가리 속에 그런 것만 들어찬 거지? 돈이라면 나도 많아. 차고 넘칠 정도지.”

“그럼 역시 제…….”

“아니. 너보다 예쁜 여자를 계속 봐와서 그런지 별로 관심도 없어.”

빈말이 아니다.

실제로 천상원주 은하란이 매소약보다 아름다웠기에.

자존심을 구긴 매소약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럼…… 대체 뭘 원하시는…….”

“말귀를 못 알아들어? 아까부터 말했잖아. 먹. 으. 라. 고.”

매소약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왈칵 쏟을 것만 같았다.

분노와 공포가 뒤섞여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역시 말로 해서는 안 듣는군.”

적비연이 다시 손바닥을 들어 올리자,

“먹, 먹어요!”

양 뺨이 퉁퉁 부어오른 그녀가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그녀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양갈비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적비연이 활짝 웃었다.

“옳지. 꼭꼭 씹어 먹으라고.”

마침내 매소약이 양갈비를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적비연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거 봐.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잖아.”

그렇게 매소약이 절반 정도 먹고 나자, 적비연이 몸을 돌려 묘청운에게 다가갔다.

적비연이 묘청운 머리 위로 양갈비를 쏟아부었다.

“자, 나머지는 네가 먹는다.”

“그런……!”

“먹기 싫어?”

“아…… 아닙니다. 먹겠습니다.”

묘청운이 무릎을 꿇은 채 바닥에 떨어진 양갈비를 허겁지겁 주워 먹기 시작했다.

적비연이 그 모습을 보며 나름 흡족한 듯 웃었다.

한편 매소약은 그런 적비연을 보며 몸서리를 쳤다.

‘저자는 악마야! 언젠간 이 치욕을 반드시 갚아주겠어!’

마침내 묘청운이 양갈비를 전부 씹어 삼키고 나자 적비연이 물었다.

“어때? 맛이?”

“맛, 맛있었습니다.”

“그래, 그렇게 맛있는 걸 함부로 대하면 되겠어? 안 되겠어?”

“안 됩니다.”

“이제야 잘 아네. 앞으로 날 보면 오늘 낮에 했던 것처럼 대해라.”

“아닙니다!”

“아니,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너희들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면 내가 곤란해지거든. 그러니 반드시 오늘 낮에 했던 것처럼 안하무인하게 행동하길 바란다.”

“…….”

묘청운이 뭐라 답할지를 몰라 눈치만 살피자, 적비연이 이맛살을 구겼다.

“사람이 말을 하면 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라. 혼자 대가리 굴리지 말고.”

“알, 알겠습니다.”

“태도 바뀌면 죽는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뭐, 오늘 일이 분하면 다시 덤벼도 좋고.”

당연히 그럴 거다, 이 미친 새끼야!

하지만 속에서 치미는 대답을 꿀꺽 삼킨 묘청운은 가만히 고개만 숙여 보였다.

적비연이 두 사람을 슬쩍 둘러보고는 말했다.

“그럼 하던 일, 마저 하라고. 난 모른 척해줄 테니까. 아까 보니 분위기 좋더라.”

* * *

숙소로 돌아온 적비연은 마선접비록을 펼쳐놓고는 그 앞에 정좌했다.

‘이제야 제대로 읽어보는군.’

온통 붉은색으로 새겨진 글귀.

슬쩍 보기만 해도 어딘지 오싹하다.

마선접비록 옆에는 고대어를 번역한 별책이 있었다.

일전에 적비연의 부탁으로 은하란이 만들어준 것이었다.

책머리에 주의사항까지 번역해 놓았는데 대충 내용은 이랬다.

마선의공(魔仙依功)을 익히면 놀라운 힘을 얻을 수 있으나, 매우 사악하며 위험한 수단이니 신중한 결정을 요한다.

흐음. 역시 더 호기심이 생긴다.

“그럼 한 번 익혀볼까?”

망설임은 없다.

어차피 위험해진다고 해도 하천웅의 몸이다.

죽으면 계획이 좀 어긋나겠지만, 미운 놈 하나 제거한 셈이라고 치면 된다.

기감을 펼쳐 보니 감시하는 자는 없다.

낮에 용호객잔에서 발끈하지 않고 참길 잘했다.

덕분에 하기룡의 감시도 느슨해진 것일 테니.

‘그럼 시작해 보자.’

적비연이 눈을 지그시 감고 알아듣기 힘든 고대어를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알부타귀척마한(頞浮陀鬼慽魔恨) 율탈치성괴찰나(律脫熾盛怪刹羅) 파천확확파탈(破天臛臛婆脫) 입등활지(入等活地)…….”

운기 방식도 번역이 되어 있었기에 적비연은 그대로 따라했다.

그렇게 입에 붙지 않는 심결을 얼마나 외웠을까?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읊은 적비연은 그대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되뇌었다.

운기 방식도 반복됐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의 몸에서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천상단을 처음 복용했을 때처럼 주변의 공기가 꽁꽁 얼어붙었다가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길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꽈앙!

기의 폭음이 들리는 것과 동시에 적비연 앞에 거대한 존재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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