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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적-58화 (59/301)

58. 누구냐, 넌

주변에 있던 무인들이 흠칫거리고는 적비연을 보았다.

“들었나? 만검세가의 하천웅이라는군.”

“하천웅이라면 만검세가 소가주인가?”

“아닐 걸? 아마 이 공자일 걸세.”

“이 공자라면…… 가주도 내놓은 자식이라는 망나니가 아닌가?”

“그렇지. 얼핏 들린 소문에 의하면 어제 용호객잔에서 남해상단 소단주를 잘못 건드려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더군.”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맞장구를 쳤다.

“아, 나도 그 소리 들었네. 아주 그냥 술을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쓰고 목욕을 했다지?”

“그뿐인가? 그냥 거지 취급을 당했다던데.”

“쯧쯧. 안됐군. 보나마나 처음부터 떨어지겠어.”

“뭐, 만검세가 소가주는 무위가 대단하다지만, 저자는 어렵겠어.”

이 새끼들아, 다 들린다.

하지만 적비연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하천웅에게 쏟아지는 말들이었으니까.

그래도 역시…….

‘면전에서 듣고 있으니 기분은 안 좋네.’

심사관이 호패를 확인하더니 몸을 돌려 앞장 섰다.

“따라오시오.”

심사관은 곧 커다란 바위 앞에 멈춰 섰다.

바위는 대략 일 장이 넘을 것 같은 높이에 두께 또한 반 장은 됨직했다.

이렇게 큰 바위를 언제 또 옮겼을까?

비단 여기뿐만 아니라 대연무장 곳곳에 이런 커다란 바위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심사관이 턱짓을 했다.

“때려보시오. 주먹 자국이 바위에 일 촌 이상의 깊이를 만들어내면 통과요.”

“이게 일차 시험이오?”

“아니오. 이걸 통과해야 정식 대회를 치를 수 있소. 한마디로 참가 자격을 보는 거요. 해마다 사망자가 너무 많이 나와서 올해부터 신설된 등록 절차요.”

“그렇군.”

적비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위 앞에 섰다.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작하려나 봐.”

“설마 주먹이 깨지는 건 아니겠지?”

“어허, 들리겠네. 이 사람아.”

아니, 아까부터 다 들었다고. 이것들아.

적비연이 얕게 한숨을 내쉬고는 바위 앞으로 다가갔다.

뭐, 마음만 먹는다면 이딴 바위쯤은 구멍도 낼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랬다간 단숨에 주목할 만한 강자로 떠오를 테지.

대회 초반부터 여러모로 귀찮은 일을 만들 필요는 없을 터.

특히 하기룡의 귀에 들어가는 건 사양이다.

그래, 그냥 가볍게 가자.

* * *

“다음!”

심사관이 소리치자 죽립을 깊이 눌러 쓴 사내가 걸어왔다.

“어디에서 온 누구요?”

“귀주 백룡문에서 온 매삼랑(梅三琅)이오.”

대답과 함께 사내가 죽립을 벗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와아…….”

“아름답다.”

“과연 천도미룡(天刀美龍)이라 불릴 만 하구나.”

“어쩌면 남자가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지?”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 매삼랑의 수려한 외모에 빠져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중 누군가 흠칫거리더니 시선을 돌렸다.

“잠깐, 그럼 조금 전에 먼저 시험을 치른 여자가 귀주일봉이었나?”

“어디어디? 아, 그런 것 같군! 줄곧 죽립을 벗지 않아서 몰라봤어.”

사람들이 다시 수군거리며 먼저 시험을 치르고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여인을 보았다.

그들의 추측대로 그녀는 귀주일봉 매소약이었다.

다만 오늘은 죽립을 푹 눌러쓴 채 한 번도 벗지 않아서 그녀를 주목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매소약은 바로 앞에서 참가 시험을 치렀는데 일 촌 깊이의 주먹 자국을 만들어 정식 등록을 마친 참이었다.

심사관이 매삼랑의 호패를 확인하고는 바위 앞으로 안내했다.

“쳐보시오. 바위를 때려 일 촌…….”

심사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매삼랑이 다가가더니 바위에 손바닥을 스윽 가져다 댔다.

잠시 후,

쑤욱!

마치 그의 손이 두부에 파묻히듯 바위 속으로 움푹 들어가는 게 아닌가?

“오오! 엄청나다!”

“저 정도면 초절정의 경지를 바라보겠는데?”

“천도미룡이 강력한 십이용봉 후보라는 말이 헛소문은 아니었군!”

하지만 개중에는 질투심을 드러내는 자들도 있었다.

“흥, 내공으로만 무공을 겨루는가? 결국 중요한 건 실전이지.”

“그렇지. 이건 겨우 참가 자격을 알아보는 수준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매삼랑은 손을 툭툭 털고는 물러나서 심사관을 보았다.

“됐소?”

“통, 통과요.”

매삼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매소약에게 다가갔다.

매소약은 여전히 죽립을 푹 눌러쓴 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피고 있었다.

어딘지 불안한 듯 떨고 있는 모습.

동생이 이런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하긴, 지난밤에 그 지경이 되어서 돌아왔으니.

불현듯 지난밤의 기억이 떠오르자 뱃속에서 열불이 끓는 듯했다.

이틀 전 밤늦게 숙소로 돌아온 매소약은 자신을 보자마자 달려들어 안기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깜짝 놀라서 얼굴을 살펴보니 양 뺨이 퉁퉁 부어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함께 온 묘청운이 한 짓인 줄 알았다.

그런데 묘청운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그는 어이가 없었다.

남해상단의 소단주를 건드리는 놈이 있다고?

미쳐 돌지 않고서야.

다만 그게 만검세가의 망나니라는 사실에는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만검세가 이 공자가 그리 강하다는 이야기는 또 금시초문이었다.

‘놈도 용봉대회에 참가했다면 언젠간 만나게 될 터.’

서두를 건 없다.

매삼랑이 얕게 한숨을 내쉬고는 매소약의 어깨를 두드렸다.

매소약이 화들짝 놀라면서 돌아보았다.

“나다. 뭘 그리 놀라느냐?”

“오, 오라버니.”

“아직도 그놈 때문에 불안한 것이냐?”

매소약이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런 자신이 한심하게 비칠 거라는 건 안다.

하지만 무서운 걸 어쩌나?

그 어두운 밤에 귀신처럼 웃던 남자.

바닥에 떨어져 짓이겨진 양갈비를 억지로 집어 삼키게 한 남자.

다시 생각해도 치가 떨릴 정도로 분하고 괘씸하지만, 그보다 더 큰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던 그 눈동자가 뇌리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매삼랑이 다시 한숨을 내쉬고는 어깨를 다독였다.

“걱정 말거라. 이 오라비가 같이 있지 않느냐? 네가 받은 치욕은 내 반드시 갚아주겠다.”

“네, 오라버니. 이런 모습 보여서 죄송해요.”

매소약이 고개를 푹 숙였다.

매삼랑은 마음이 쓰렸다.

이런 동생의 모습은 처음이다.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고 매사에 당찬 아이였다.

한데 갑자기 소심해지고 무기력해졌다.

‘만검세가의 하천웅……! 내 반드시 네놈을 작살내겠다!’

매삼랑이 무서운 표정으로 이를 까득 갈았다.

그때,

꽈아아아앙!

지축을 뒤흔드는 요란한 소리가 대연무장에 쩌렁쩌렁 울리는 게 아닌가?

모두의 시선이 대연무장 한쪽으로 돌아갔다.

자욱한 먼지가 뿌옇게 흩어지고 있었다.

“뭐, 뭐지?”

“폭발?”

“설마 사파 놈들이 이번 행사를 노리고 폭약을……?”

마침 누군가 소리쳤다.

“그게 아냐! 누군가 바위를 아예 산산조각 내서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는군!”

“뭐라고? 그 정도면 초절정 수준 아냐?”

웅성거리는 사람들.

매삼랑이 매소약의 손목을 낚아채고는 달렸다.

“가보자.”

“네, 오라버니.”

두 사람이 경공을 펼쳐 소리가 난 진원지로 빠르게 달렸다.

마침내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곳에 다다른 두 사람은 인파들을 비집고 다가갔다.

그 순간 매소약의 두 다리가 돌처럼 딱 굳어버렸다.

“약아……?”

힐끔 돌아본 매삼랑은 자신의 동생이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매소약이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한 남자를 가리켰다.

“저, 저, 저자예요. 그날…… 절 때린……!”

매삼랑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돌아보았다.

구경꾼들에게 둘러싸인 한 사람.

바로 적비연이었다.

‘저놈이……?’

그때 마침 저만치 익숙한 얼굴도 눈에 띄었다.

남해상단 소단주인 묘청운이었다.

그 역시 난데없는 소란에 달려와 본 듯했다.

그가 매삼랑을 발견하고는 얼른 전음을 보내왔다.

[형, 형님! 저놈입니다! 저놈이 저와 매 소저를 그날 밤……!]

[알고 있네.]

매삼랑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적비연을 빤히 노려보았다.

바위가 없다.

대신 먼지가 자욱하고 부서진 자갈만 바닥에 굴러다닌다.

바위를 산산조각 낸 것이다.

‘정말 바위를 박살 낸 건가?’

그렇다면 내공 하나만큼은 자신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봐야 한다.

단순히 바위를 부순 것과는 별개다.

한 지점을 쳐서 바위 전체를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는 건 어마어마한 무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믿을 수가 없군…….’

한편 바위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던 적비연은 자신의 주먹을 보며 눈을 멀뚱멀뚱 떴다.

‘이게 아닌데…….’

망했다.

최대한 가볍게.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는데.

만인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되다니!

적비연이 옆에 선 마선을 노려보았다.

물론 그 마선은 오직 적비연에게만 보이는 존재였다.

극마지존(極魔至尊).

그것이 마선의 살아생전 별호였다.

하지만 적비연은 앞의 두 글자만 따서 ‘극마’라고만 불렀다.

-흐흐흐. 어떠냐? 이 몸이 도와주니 훨씬 수월하지 않느냐? 나참, 이런 것도 시험이라고 치르고 있다니. 후세 놈들은 한심하군.

극마가 적비연을 슬쩍 돌아보았다.

-자, 이 몸에게 무공을 전수받고 싶지 않느냐? 어서 사부로 모셔라.

하지만 적비연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차갑기 짝이 없었다.

‘한 번만 더 나서면 소멸시켜 버린다. 분명히 경고했다.’

-이, 이런 오만한……! 내가 도와주는 바람에 이 하찮은 시험을 무사히…….

‘그딴 도움 없어도 충분해. 오히려 네가 다 망쳤어.’

-쳇! 말도 안 통하는 꼴통 같으니!

극마가 잔뜩 화난 표정으로 휙 돌아섰다.

적비연이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이지 난감하게 됐다.

초반부터 이렇게 주목을 받아 버리면 모든 이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하기룡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올 것이고.

만에 하나 또 죽기라도 하면 생각해둔 계획이 전부 일그러진다.

진짜 딱 일 촌 정도만 주먹 자국을 만들려고 했건만!

주먹을 뻗는 순간 극마가 함께 손을 내지르는 걸 느꼈다.

완전한 빙의가 아니라 마치 적비연 근처에서 모종의 기운으로 변해 힘을 더하는 느낌이랄까?

어쨌거나 그 바람에 바위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물론 한계는 있어 보인다.

완벽한 빙의 상태가 아니다 보니 그 한 번으로 극마는 힘을 거의 소진한 듯했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지만 지친 모습이 역력하다.

‘그나저나 골치 아프네.’

하필 몰려든 사람 중에는 하기룡도 있었다.

적비연을 보고 무시했던 무인들도 웅성거리며 서로 눈치를 살핀다.

심사관은 멍한 표정으로 부스러기가 된 바위만 바라보고 있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서 심사관에게 속삭였다.

복장을 보니 그 역시 심사관이다.

이야기를 들은 심사관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적비연을 보고 말했다.

“흐음. 아무래도 바위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소. 꽤 많은 무인들이 때리다 보니 내구력이 약해졌을 수도 있고. 그래서 저기 옆으로 가서 다시 한번 시험을 쳤으면 하는데, 괜찮겠소?”

괜찮고말고.

오히려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니 감사해서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걸.

적비연이 멋쩍게 웃었다.

“어쩐지 바위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소. 역시 내구력이 문제였군. 뭐, 시험은 공정해야 하니 나는 상관없소.”

심사관이 양해를 구하고는 적비연을 옆에 있는 바위로 데려갔다.

“해보시오.”

“그럼.”

적비연이 다시 바위 앞에 섰다.

심호흡을 한 적비연이 극마를 노려보았다.

‘또 나서면 진짜 소멸이다.’

-흥!

뭐, 그럴 힘도 없는 것 같지만.

아닌 게 아니라, 극마는 지금 기운이 쏙 빠져나가서 드러눕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대로 빙의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이 정도도 힘이 들 줄이야.

적비연이 정권 찌르기 자세를 취하며 일부러 우렁찬 기합성을 터뜨렸다.

“흐아아아압!”

모여든 사람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중에서도 매삼랑과 하기룡의 눈이 유독 빛났다.

‘어디 보자. 네놈의 진짜 실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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