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63화 (64/301)

63. 나도 좀 쉬자

경공을 펼쳐 숲으로 들어온 적비연은 제일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차관문을 오래 끌 생각은 없었다.

누구라도 금속패를 찾은 무인이 나타나면 곧바로 습격해서 빼앗는다.

그리고 곧장 돌아가 금속패를 제출하고 시험을 마칠 것이다.

‘이왕이면 매삼랑이나 매소약이 가진 걸 뺏고 싶지만.’

아오, 다시 생각해도 이가 갈린다.

겨우 그깟 일로 자신을 죽이려고 백이십 명씩이나 보내다니.

어디 사파 새끼들이나 하는 짓거리를!

만약 자신이 초절정 수준이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그 자리에서 죽었으리라.

물론 그랬다면 또 그중 누군가의 몸으로 되살아났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 남매들은 용서가 안 된다.

그렇다고 일부러 매삼랑이나 매소약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

그들이라면 이 대회가 끝나기 전에 한 번은 만날 테니까.

‘일단 아무나 걸려라.’

적비연은 다시 나뭇가지를 차고 바람처럼 달렸다.

확실히 운귀의 경신술을 흡수하고 나서는 달릴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마주치는 바람을 만끽하고, 코끝을 스치는 숲 내음을 즐기고, 귓가로 들리는 방울 소리도 흥겹…….

딸랑딸랑……!

‘방울 소리다! 근처에 있어!’

적비연이 얼른 고개를 돌리고 방울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어느 정도 가니 저만치 암벽 아래에 시끄러운 금속성 방울 소리가 울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예닐곱 명의 남자들이 한 여인을 거침없이 공격하고 있었다.

금속패에 들어 있는 방울이 좀 특별하게 제작된 것인지, 무기가 서로 부딪쳐 울리는 마찰음보다도 금속패의 방울 소리가 더 컸다.

“더 이상 버티지 말고 금속패를 내놔라!”

“흥! 누구 맘대로!”

남자 무인이 요혈을 공격하자, 여인이 부드럽게 허리를 젖히고는 그대로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촤아악!

“크으윽!”

옆구리가 베인 남자가 쓰러지자 또 다른 남자가 기합성을 터뜨리며 여인에게 달려들었다.

“이년이!”

주먹이 붉게 물드는 것으로 보아서는 권사(拳士)인 듯했다.

따앙!

주먹과 검이 부딪쳤는데 금속성이 울렸다.

여인이 남자의 팔뚝을 발로 걷어차고는 나비처럼 날아올랐다.

“어딜!”

이번엔 또 다른 남자가 기다란 창을 내질러 왔다.

까강!

다시 한번 금속성이 울리면서 여인이 팽이처럼 몸을 돌리더니 바닥에 떨어졌다.

그 틈을 타서 권사가 다시 여인을 향해 일권을 내질렀다.

“받아랏!”

꽈앙!

권사가 내지른 주먹이 여인의 단전에 그대로 꽂히자 응축된 기가 폭발하면서 큰 소리가 울렸다.

“아악!”

여인이 비명을 내지르며 튕겨 날아갔다.

콰당탕!

바닥을 구른 여인이 암벽을 등지고 앉은 채 숨을 헐떡였다.

입가에서 주르륵 피가 흘러내렸다.

“그만 발버둥 치고 이제 내놓으시지.”

권사가 목을 우두둑 꺾으며 여인에게 다가갔다.

그 뒤로 도검창을 각각 쥐고 있는 여섯 무인들이 부채꼴로 펼쳐져서 여차하면 공격할 자세를 취했다.

보아하니 권사를 중심으로 모두 한통속인 듯했다.

아마도 저 권사가 소가주나 소문주쯤 되리라.

“비열한 놈들……!”

여인이 앙칼지게 말하자 권사가 이죽거리며 대꾸했다.

“비열하긴. 우린 그저 규칙에 따를 뿐이라고. 정 그 단어를 말하고 싶다면 이런 대회를 주최한 무림맹에 해야지.”

“흥! 한 문파에서 여러 무인들을 참가시켜서 한 명에게 몰아주는 게 그리 떳떳하다는 거냐?”

여인의 일침에도 권사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우린 전부 우연히 만난 사이일 뿐이야. 그렇지 않나? 친구들?”

“그렇습니다. 이 대회에서 형님을 처음 뵙고 나서부터 모시고 싶어졌습니다.”

한 무인이 포권하며 대답하자, 다른 무인들이 킬킬거리며 웃어댔다.

누가 봐도 눈에 드러나는 거짓말이다.

여인은 이들의 뻔뻔함에 그저 어금니만 꾹 씹을 뿐이었다.

권사가 손을 내밀었다.

“자, 그러니 그만 그 패를 내놓으시지. 어차피 가망이 없어.”

“가망이 없긴…… 큭!”

여인이 비척거리며 일어서려다가 이내 한쪽 무릎을 꿇고는 피를 울컥 토해냈다.

권사가 비소를 지었다.

“그것 보라고. 가망이 없다니까. 포기하면 편해진다고.”

말을 마친 권사가 여인에게 걸어가려고 할 때였다.

“그럼 너희들도 편해지는 게 어때?”

불쑥 들려온 목소리에 권사를 비롯한 무인들이 흠칫거리며 돌아보았다.

“네놈은……?”

“저놈…… 아까 그 문 닫히기 직전에 나타났던 그놈 아닙니까?”

“그러게요. 거의 반시체가 되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꽤 생생하네요.”

무인들이 적비연을 보며 두런거렸다.

권사가 눈썹을 성큼 치켜올리고는 물었다.

“뭐냐? 보아하니 금속패도 없는 것 같은데 그냥 가던 길 가시지?”

“싫다면?”

“죽고 싶나?”

권사가 원색적인 위협을 가하며 손가락을 우두둑 꺾었다.

후우우웅!

그가 내공을 끌어올리자 순간적으로 장삼 자락이 부풀어 올랐다.

그러는 사이 여인이 천천히 검을 그러쥐고는 기회를 엿보았다.

적비연이 그녀를 보고는 얼른 전음을 날렸다.

[무리한 행동 하지 마시오. 그냥…….]

하지만 전음이 끝맺어지기도 전에,

“이 비열한 놈!”

팟, 쉬이이잇!

여인이 잽싸게 일어나며 온 힘을 실어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권사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팔을 젖히듯 주먹을 휘둘렀다.

꽈앙!

“커억!”

슈우우욱, 꽈다앙!

그대로 안면이 얻어터진 여인이 암벽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후두둑.

진동을 이기지 못한 암벽 일부가 부서지면서 돌가루가 흘러내렸다.

털썩!

그 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은 여인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적비연이 눈살을 잔뜩 구겼다.

거참, 무리하지 말라니까.

적비연이 저벅저벅 걸어가서 여인을 부축해서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본 권사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보니 이거 완전 미친놈이구만? 어이, 넌 우리가 허수아비로 보이냐?”

그러거나 말거나 적비연이 여인에게 물었다.

“괜찮소?”

여인이 입술을 씹고는 고개를 저었다.

단전에 균열이 생겼다.

최소 한 달 정도는 요양을 해야 하리라.

적비연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물었다.

“그럼 이건 어떻소? 내가 저들을 처리할 테니 그 금속패를 내게 양도해 주시오. 어차피 삼차관문은 무리일 테니.”

“당신 혼자서 저들을 다 상대하겠다는 건가요?”

여인이 미간을 모으며 물었다.

혼자 당당히 나설 때부터 어느 정도 믿는 구석이 있나 보다 짐작했지만, 이렇게 자신만만할 줄은 몰랐다.

적어도 자신이 싸워본 결과 저 권사는 절정 이상의 수준이었다.

한데 수하들까지 있으니 혼자서는 당하기 어려우리라.

하지만 적비연은 태연했다.

“혼자하면 안 될 이유가 있소?”

“하지만 저들은 모두 한통속이에요.”

“알고 있소.”

“그럼 대체 어떻게…….”

“거래할 거요? 말 거요?”

여인이 멍하니 적비연을 보았다.

대체 무슨 자신감일까?

일차관문도 반죽음이 되어서 통과한 주제에.

그런데 이 남자, 이상하게 믿고 싶어진다.

사실 망설일 필요도 없다.

어차피 거래를 하지 않는다면 저 비열한 놈들에게 금속패를 빼앗기고 말 테니.

이 상황에서는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다.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저들을 모두 물리친다면 제가 가진 패를 드리죠.”

“……라는데?”

적비연이 씩 웃으며 권사를 보았다.

권사가 헛웃음을 지었다.

뭐 이런 덜떨어진 인간이 다 있을까?

일차관문도 겨우 통과한 주제에 뭐가 어쩌고 어째?

권사가 뺨을 씰룩이는데 적비연이 말했다.

“남의 것을 탐하려면 적어도 이 정도 예의는 갖춰야지. 안 그런가?”

“별 미친놈이…… 여봐라, 저놈에게 예의를 다시 가르쳐 줘라.”

“예, 형님!”

대답과 동시에 수하들이 일제히 적비연을 향해 몸을 날렸다.

타앗!

제일 먼저 달려든 자는 검사였다.

그가 그대로 적비연의 단전을 향해 일검을 내질렀다.

그 순간 적비연이 섬전보를 밟으면서 달려들었다.

순간 검사의 눈동자가 커졌다.

‘피하지 않고 마주쳐 온다고?’

검봉이 단전에 닿을 것만 같은 순간, 적비연의 신형이 그림자처럼 비틀리더니 검사의 옆을 지나치는 게 아닌가?

툭!

“커억!”

적비연이 수도로 목을 치자, 검사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대로 몸을 뒤집으며 쓰러졌다.

곧이어 창사(槍士)가 장창을 뻗어왔다.

쉬이이잇!

창을 뻗어내는 속도가 빛살처럼 빠르다.

적비연은 그대로 다리를 한일자로 찢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창봉이 머리 위를 스치듯 지나가자, 적비연이 그대로 돌풍처럼 다리를 회전하며 거꾸로 치솟았다.

파파팟!

퍽!

창을 뻗으며 지나치던 창사가 적비연의 각법(脚法)에 턱을 얻어맞더니 비틀거리다가 이내 픽 쓰러졌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이번엔 도를 든 두 사내가 동시에 좌우에서 달려든다.

쒸쒸이이잉!

두 사람의 속도가 거의 비슷하다.

한 명은 정강이를, 다른 한 명은 가슴을 베어온다.

적비연이 바닥을 툭 찍어 차면서 몸을 옆으로 눕혀 회전했다.

휘리리릭!

샤샷!

두 자루의 시퍼런 도신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친 적비연이 그대로 돌아서면서 쌍장을 날렸다.

퍼펑!

“크아악!”

“아악!”

등이 터져 나간 두 명의 무인이 그대로 비명과 함께 나가떨어졌다.

“노오옴!”

다시 좌우에서 두 명의 검사가 일갈을 터뜨리며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검신에 새파란 검기가 맺혔다.

짙은 살기마저 느껴진다.

좌측 검사는 횡으로 베어오고, 우측 검사는 세로로 내려찍는다.

적비연의 손이 그제야 허리춤의 검으로 향한다.

일순 검파에 공력이 집중되면서 몸이 미끄러지는 것과 동시에 발검!

짜르르릉!

스까앙!

벽력적가의 독문절초 중 하나인 운파뇌전(雲派雷電)이다.

적비연에게 달려들던 두 검사는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뇌전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온몸이 저릿한 것이 내력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다.

동시에 그들은 깔끔하게 잘려 나간 검신의 단면을 보고는 몸을 가늘게 떨었다.

한편 두 자루의 검신을 두부 썰 듯 잘라낸 적비연이 그대로 화살처럼 날아가 권사의 목에 검봉을 겨눴다.

쉬이잇, 척!

“헛……!”

권사가 헛바람을 삼키고는 적비연을 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이, 이게 무슨……! 이놈이 아슬아슬하게 일차관문을 통과한 그놈 맞나?’

정말이지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신위였다.

적비연이 여섯 명의 무인을 상대하는 동안 권사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신위를 구경하는 사람처럼 아무것도 못했다.

적비연이 서늘한 웃음을 지었다.

“잘 배웠다. 네놈들이 가르쳐 준 예의.”

다음 순간 적비연이 지풍을 날려 쓰러진 수하들과 권사의 요혈을 차례로 점했다.

푹푹푹!

“크윽! 무슨 짓을……!”

마혈을 제압당한 권사가 이를 갈자, 적비연이 여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건 덤으로 얹어드리는 거요. 분이 풀릴 때까지 이자들을 마음대로 하시오.”

“감, 감사합니다. 여기…….”

여인이 멍한 표정으로 품에서 금속패를 꺼내 적비연에게 건네주었다.

적비연이 포권했다.

“그럼 실컷 분풀이하시길. 어차피 이곳에서 생긴 은원은 이곳에서만 풀 수 있으니.”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말을 마친 적비연이 이내 경공을 펼쳐 그 자리를 벗어났다.

등 뒤로 권사를 비롯한 무인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이걸로 이차관문도 통과인가?’

그나저나 이 방울 소리는 정말 더럽게 시끄럽네.

딸랑딸랑! 딸랑딸랑!

이래서야 금방 들…….

‘……켰네.’

빠르게 달려가던 적비연이 어느 순간 우뚝 멈춰 섰다.

눈앞에 익숙한 얼굴들이 서 있었다.

매삼랑과 매소약, 그리고 묘청운이었다.

적비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딜 가나 두드려 맞고도 정신 못 차리는 것들이 꼭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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