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67화 (68/301)

67. 풍비박산(風飛雹散)

지난밤.

“벽력적가에서 왜 날 찾아온 거요?”

매삼랑은 자신을 묵검이라고 소개한 사내를 빤히 바라보았다.

벽력적가와 교분이 전혀 없었기에 내심 의아했다.

묵검이 입을 열었다.

“본가와 만검가가 서로 원수지간이라는 건 잘 알고 계실 거요.”

“으음.”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있다.

벽력적가와 만검세가가 서로 힘겨루기 중이라는 것을.

그리고 최근 그 갈등의 골이 꽤나 깊어졌다는 것도.

“소문주께서는 만검가의 이 공자를 이길 자신이 있소?”

묵검의 질문에 매삼랑이 진심으로 기분 나쁜 듯 쏘아붙였다.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만검가의 소가주인 하기룡도 아니고, 하천웅과 나를 비교하다니. 지금 내게 시비를 거는 거요?”

“오해는 마시오. 만검가의 이 공자가 망나니라고는 하나 그래도 호랑이 새끼니 한 말이오.”

“호랑이 새끼든 지렁이 새끼든 나는 놈을 밟을 거요.”

“하면 이러면 어떻소?”

“뭘 말이오?”

“지금 만검가의 이 공자는 경매장에서 있었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소. 그래서 더욱 허세를 부리는 거요. 그러니 그걸 역이용하는 거요.”

“어떻게 말이오?”

“내기. 모두가 공증인이 될 수 있도록 비무 결과에 따라 막대한 자금을 거는 거요.”

매삼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솔깃한 제안이다.

이번에 백룡문은 한 개의 조직을 잃었다.

막대한 손실이다.

그걸 내기를 통해 회복할 수 있다면?

다만…….

“왜 내가 그렇게까지 해야 하오? 사실 나는 그 하 씨 놈을 죽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데.”

비무대회에서 하천웅을 아예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동생을 능멸하고 흑풍대를 섬멸한 죄.

죽음으로 갚도록 할 작정이었다.

어차피 대회에서 일어난 일은 따로 은원을 묻지 않는 것이 원칙이니까.

물론 묵검의 말대로 하면 하천웅을 죽일 수도 있고, 막대한 자금을 빼앗을 수도 있다.

만약 하천웅이 그 내기에 응하기만 한다면 만검세가의 몰락을 초래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하천웅이 미운 것이지 만검세가에 악감정은 없다.

게다가 벽력적가가 가만히 앉아서 떡을 주워 먹는 것도 싫다.

고작 정보 하나 던져주고 자신을 칼처럼 부리는 게 마음에 안 든다.

그런 속내를 짐작한 묵검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앞으로 내밀었다.

이게 뭐냐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묵검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가에서 만든 천상단이오. 삼등품이라 대환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태청단이나 자소단보다는 월등한 효능이 있소. 이제 강호에 몇 개 남지 않은 단환인 만큼 그 가치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잘 알 거요.”

“호오.”

매삼랑이 눈을 반짝이고는 작은 상자의 덮개를 열어보았다.

향긋한 약향이 실내에 가득 풍겼다.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맑아지는 듯했다.

‘과연, 이게 바로 그 천상단이로구나.’

이 정도의 성의라면 못 이기는 척 받아들여 볼까?

어차피 하천웅을 죽일 생각이었으니까.

내기를 해서 돈도 벌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덤으로 천상단도 챙기고.

“만약 내가 제안해도 그놈이 내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찌 되는 거요?”

“그럼 어쩔 수 없지요. 천상단은 본가에서 건네는 선물이라 생각하시오.”

매삼랑이 입매를 틀어 올리며 포권했다.

“알겠소. 귀 가문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내일 놈에게 내기를 제안하겠소!”

* * *

“아아악! 크아아아!”

비무대 바닥에 쓰러진 매삼랑이 연신 몸을 비틀어대며 비명을 내질렀다.

지켜보는 군중들은 환호성도 지르지 못했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적비연이 매삼랑을 급습했고, 매삼랑은 오른팔을 잃었다.

순간 귀빈석에서 관전하던 매홍립이 주먹으로 탁자를 부수며 벌떡 일어났다.

콰장!

“이런 비겁한!”

화가 잔뜩 난 그가 적비연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저놈이 비열한 방법을 사용했다!”

시종 점잖게 행동하던 그가 격분하여 외치자 장내가 술렁거렸다.

이에 하불범이 인상을 팍 찡그리고는 소리쳤다.

“매 문주! 정당한 비무에서 패배를 시인하진 못할망정 어찌 그런 막말을 하시오!”

“패배를 시인해? 하 가주께서는 보지 못하셨소? 저 망나니 녀석이 비열한 수법으로 내 아들의 팔을 잘라내는 것을!”

“망나니라니! 말이 지나치시오! 그리고 무엇이 비열하단 말이오?”

“허! 비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다짜고짜 암기를 뿌리고 달려드는 게 비열하지 않단 말이오?”

“비무는 진즉 시작했지. 단지 매 문주의 아들이 방심해서 기습을 당한 것일 뿐이잖소!”

“무슨 말 같지도 않는 소리를……!”

말을 쏟아내던 매홍립은 주변의 시선을 느끼고는 심호흡을 했다.

따지고 보면 정식 비무는 이미 시작된 상황.

정확히 북소리를 두 번 울렸으니 할 말은 없다.

게다가 포권을 취하던 중에 기습을 한 것도 아니다.

단지 선공이 조금 빨랐을 뿐.

매삼랑이 방심하다가 미쳐 대비를 하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난 이 비무를 인정할 수 없소! 의원은 무엇 하는가? 어서 내 아들을 치료하지 않고!”

그가 고함을 내지르자 비무대에 있던 적비연이 싸늘하게 말했다.

“누구도 이 비무대에 올라올 수는 없습니다.”

“뭐, 뭣이?”

매홍립이 눈에 불을 켜고는 적비연을 노려보았다.

“네 이놈! 비열한 수단으로 이겨놓고서는 눈에 뵈는 게 없나 보구나!”

파밧!

급기야 매홍립이 경공을 펼치며 비무대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 뒤를 곧장 하불범이 쫓았다.

“어딜!”

파바박!

단숨에 날아간 하불범이 매홍립의 어깨를 찍어 누르며 붙들었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이 돌개바람처럼 회전하면서 귀빈석 바로 앞에 내려섰다.

콰장창!

두 사람의 기풍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자 근처에 마련되어 있던 의자와 탁자가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며 부서졌다.

후우우웅!

두 사람이 동시에 내공을 끌어올리자 뜨끈한 기운이 주변으로 퍼졌다.

당장에라도 서로에게 살수를 뻗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

관전하던 무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두 사람에 향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백룡문주와 만검세가주가 싸우는 건가?”

“이거 자칫하면 큰일이 벌어지겠는데?”

매홍립이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감히 날 방해할 셈인가! 하 가주!”

“진정하시오, 매 문주.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소.”

“지나쳐? 네 아들놈이 비열한 수법으로 내 아들을 불구로 만들었는데 흥분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의원을 오르지도 못하게 막고 있으니…….”

“아직 비무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적비연이 불쑥 말을 가로질렀다.

꿈틀.

매홍립이 다시 적비연을 쏘아보았다.

“네 이놈! 내 너를 용서하지……!”

매홍립이 다시 경공을 펼치려고 하자 순식간에 그의 주변을 무림맹 무인들이 에워쌌다.

차차차앙!

그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자 매홍립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째서 내게 검을 겨누는 것인가!”

“진정하십시오. 하 공자의 말대로 아직 비무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응급처치는 비무가 끝난 후에 가능합니다.”

“이익……!”

매홍립이 발끈하는데, 적비연이 공력을 실은 음성으로 외쳤다.

“비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절대 은원을 따지지 않는다. 만약 이를 어길 시에는 맹의 율법에 따라 엄벌에 처할 것이며, 이마저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무림공적으로 분류한다!”

“……!”

매홍립이 흠칫거리고는 적비연을 노려보았다.

“너 이놈…… 설마……?”

적비연이 희미한 웃음을 짓더니 매삼랑에게 저벅저벅 걸어갔다.

매홍립이 불안한 눈길로 적비연을 바라보았다.

“멈춰라, 이놈!”

매홍립이 다시 소리치며 몸을 날리려고 하자,

“가만있으시오!”

무림맹 무인들이 일제히 투기를 드러내며 소리쳤다.

거기에 하불범까지 기도를 드러내며 검파에 손을 가져갔다.

“매 문주, 어리석은 짓 하지 마시오.”

여차하면 검을 뽑을 기세.

매홍립의 뺨이 파르르 떨렸다.

만약 이 자리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간 무림공적이 되고 말리라.

아니, 그 이전에 이들을 모두 감당할 수도 없다.

한편 적비연은 매삼랑에게 다가가서는 검을 겨눴다.

“패배를 시인하시겠소?”

매삼랑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적비연을 노려보았다.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는 매삼랑을 보았다.

만약 매삼랑이 패배를 시인한다면 그야말로 대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십이용봉의 후보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였다.

한데 예선에서 탈락하다니!

적비연이 미간을 좁히고는 다시 물었다.

“패배를 시인하시겠소?”

“……!”

매삼랑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는 적비연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 모습을 본 하불범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더니 차갑게 말을 뱉어냈다.

“과연 누구와 다르게 심지가 굳어 자존심에 목숨을 거는구려.”

“무슨……!”

마침 적비연이 매홍립을 돌아보며 말했다.

“심지가 굳은 건 존경스러우나 굳이 살생하고 싶진 않습니다. 아드님을 설득시켜 주시겠습니까?”

“노옴……!”

매홍립이 어금니를 빠득 갈자, 적비연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검을 들어 올렸다.

“매 대협의 드높은 긍지를 존중하겠소. 이 상황에서 내가 손속에 사정을 두는 건 오히려 무인으로서 무례한 짓. 마지막까지 예를 다하겠소!”

“안 돼! 멈춰라!”

적비연의 검이 떨어지기 직전 매홍립이 소리쳤다.

그가 매삼랑을 향해 외쳤다.

“랑아, 분하더라도 지금은 인정해야 한다! 어리석은 생각 하지 마라! 여기서 자존심을 내세우는 건 명예도 자존심도 아니다! 개죽음일 뿐이다!”

하지만 매삼랑은 대꾸하지 않았다.

적비연이 내심 웃었다.

‘대답할 리가 없지. 마혈과 아혈을 점했으니.’

앞서 매홍립이 비무대로 달려들었던 순간, 모든 이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그때 적비연이 지풍을 날려 매삼랑의 마혈과 아혈을 점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매삼랑이 자존심 때문에 목숨을 건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너도 참 정파 놈 같지가 않다.

극마의 말에 적비연이 내심 피식 웃었다.

‘내 안에는 사파 놈의 기억도 같이 있거든.’

무엇보다 자신을 죽이고자 마음먹은 악질을 왜 봐줘야 한단 말인가?

비겁한 놈들에게는 진짜 비열한 게 뭔지 보여줄 생각이다.

적비연이 마침내 손에 힘을 실었다.

“안타깝구려.”

쉬이이잇!

“아앗!”

적비연의 검이 떨어지는 순간 모든 이들이 비명처럼 소리쳤다.

찰나지간,

“노오오옴!”

매홍립이 고함을 내지르며 경공을 펼쳐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파바바밧!

“엇!”

무림맹 무인들이 뒤늦게 소리치며 따라붙었다.

하지만 매홍립이 훨씬 빨랐다.

그가 그대로 적비연에게 도를 내리쳤다.

“그만두지 못할까!”

쩌어엉!

“크읏!”

가까스로 도신을 막아낸 적비연이 신음을 터뜨리며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이에 하불범이 노호성을 터뜨리며 단숨에 비무대 위로 날아올랐다.

“매 문주! 기어코 맹의 율법을 어기는가!”

그가 곧장 매홍립에게 검을 내질렀다.

따앙! 쩌엉!

두 사람의 도검이 부딪치니 고막을 찢어발길 듯 시끄러운 소리가 울렸다.

그 기파를 이기지 못해 주변의 기와가 다르르 떠는 소리를 낼 정도였다.

모든 이의 시선이 두 사람의 싸움에 집중된 사이 적비연은 기다렸다는 듯 지풍을 날려 매삼랑의 마혈과 아혈을 풀어주었다.

순간 몸이 자유로워진 매삼랑은 흠칫거리고는 옆에 떨어진 자신의 팔과 칼을 보았다.

반면 적비연은 짐짓 하불범과 매홍립의 싸움에 시선을 뺏긴 척 매삼랑을 등지고 섰다.

다음 순간,

‘이 비열한 새끼, 죽여 버린다!’

매삼랑이 바닥에 떨어진 도를 왼손으로 주워 들고는 벌떡 일어나며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웅아!”

적비연을 돌아본 하불범이 벼락처럼 소리치며 그대로 검을 내던졌다.

쒸에에에엑!

푹!

“커어억!”

화살처럼 날아간 검이 그대로 매삼랑의 가슴에 박히면서 비무대 밖까지 날아갔다.

콰당탕탕!

가슴에 검이 꽂힌 매삼랑이 바닥에 한참이나 미끄러지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매홍립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랑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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