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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적-70화 (71/301)

70. 타인은 악이다

쩌어엉!

콰콰콰콰콱!

허공을 찢는 금속성에 이어 두 사람이 거리를 벌리며 멀어졌다.

두 사람 모두 어찌나 세게 발을 디뎠는지 커다란 바위를 깎아 만든 비무대 일부가 깊게 파였다.

“헉, 헉, 헉……!”

하기룡이 어깨를 들먹이면서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동생을 보았다.

동생 하천웅은 시종 차분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게…… 정말 내 동생이라고?

말도 안 된다.

아무리 사람이 죽다 살아나면 변한다지만 어찌 저렇게 하루아침에 고수가 된단 말인가?

성격이야 바뀔 수 있다 치자.

한데 무공 실력도 그럴 수가 있나?

비무가 시작된 지 일각 남짓.

경악스럽게도 자신이 밀리고 있다.

처음에는 방심해서 그런 줄 알았다.

아니다.

지금 그는 동생을 보면서 그 어떤 빈틈도 찾을 수 없었다.

‘젠장, 어떻게 된 거지?’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

동생이 어릴 적에는 무공 수련이라는 명목하에 심한 매질을 일삼았다.

하루는 동생을 숲으로 끌고 가서 검법을 보여주는 척하며 옷가지를 전부 찢어발겼다.

그렇게 발가벗은 하천웅을 숲에 던져두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동생은 엉엉 울면서 귀가했다.

그때의 정신적 충격 때문일까?

하천웅은 자신이 검만 뽑아 들어도 옷깃부터 한 번 여미는 습관이 있었다.

하기룡은 그 부분을 다시 건드려 보고 싶었다.

이 비무대 위에서.

만인이 보는 가운데에 옷이 벗겨져 망신당하는 꼴을!

그 정도는 해둬야 다시는 기어오르지 않을 테지.

아버지도 동생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테고.

감히 소가주 자리를 노려?

너 따위가 소가주 자리를!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고 하면 되는가?

굴러온 돌이면 굴러온 돌답게 튕겨져 나가야 할 것이 아닌가!

타앗!

생각을 마친 하기룡이 이를 빠득 갈고는 화살처럼 날아갔다.

옷을 찢어발기려는 계획은 그만두었다.

대신 확실히 짓밟는다.

숨만 겨우 붙어 있을 정도로!

쉬이이잇!

검봉이 적비연의 명치를 노리며 빠르게 날아든다.

검기가 검신을 에워싸며 피어오른다.

하기룡의 머릿속에 다음 수가 그려진다.

지금까지 동생의 전투 방식으로 보자면 분명 반보 정도 왼쪽으로 물러날 것이다.

그때 변초를 써서 옆구리를 벨 것이다.

그런데…….

‘피하지 않아?’

적비연은 제자리에 선 채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주 잠깐 호흡이 흐트러졌다.

의외의 반응에 이대로 내질러야 할지 계획대로 변초를 그려야 할지 망설인 탓이다.

그야말로 눈 깜빡일 시간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작은 틈이 적비연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하기룡의 검봉이 명치를 찌르려는 찰나,

슈까앙!

시퍼런 검기가 터져 나오면서 적비연이 그대로 검을 올려쳤다.

검신이 정확히 검봉을 때렸다.

그 번개 같은 움직임에 하기룡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부릅떠졌다.

‘어떻게 이 거리에서……!’

경악도 잠시,

탓!

적비연이 몸을 날리더니 그대로 검을 직선으로 내질러 온다.

천검합일 초식이다.

‘크읍!’

이미 팔이 벌려진 상황에서 심장을 향해 내질러 오는 검봉을 튕겨낼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도 검파로 막아낸다면!

하기룡이 이를 꽉 다물고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가슴 쪽으로 검파를 끌어당겼다.

따앙!

촤아악!

가슴 언저리까지 도달했던 검봉이 그대로 검두(劍頭: 검 손잡이 밑 부분)에 맞고 튕기듯 아래로 떨어지면서 장삼 자락이 세로로 찢어졌다.

펄럭!

벌어진 상의 사이로 탄탄한 근육질 신체가 드러났다.

카차앙!

검봉이 바닥에 꽂히자 적비연이 비틀거리는 틈을 타서 하기룡의 눈빛이 불길을 뿜었다.

‘노오옴!’

이번에는 하기룡에게 기회가 넘어왔다.

그가 그대로 검을 거꾸로 쥐고는 적비연의 등을 노렸다.

쒸에에에엑!

“우와앗!”

“위험!”

지켜보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비명처럼 소리쳤다.

하마터면 하불범도 그 자리에서 일어날 뻔했다.

까딱하다간 둘째 아들이 장남의 칼에 찔려 죽을 위기!

‘룡아! 이성을 놓지 마라!’

하불범이 의자 손잡이를 꽉 쥐었다.

그 순간 놀랍게도 적비연이 진각을 쿵 밟더니,

휘리릭!

팽이처럼 몸을 회전하면서 그대로 검을 올려쳤다.

슈따다다다당!

순식간에 수십 줄기의 검기가 우후죽순으로 치솟는다.

마치 바닥에서 빛이 터져 나와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듯하다.

“와아아!”

지켜보는 관중들이 그 현란한 검술에 넋을 놓았다.

만검세가주가 포기한 망나니 자식?

그런 건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다.

지금 비무대에서 장사소룡과 당당하게 대적하고 있는 자는 어느 이름 없는 무림 고수일 뿐.

“크읏!”

저릿저릿.

순식간에 수십 줄기의 검기에 맞고 튕기듯 물러난 하기룡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다.

‘이놈이 언제 이렇게까지……!’

조금 전 적비연이 사용한 검초는 만초무검(萬草茂劍)이었다.

만검세가의 절초 중에서도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것인데 최소한 절정 후단이 되어야 흉내를 낼 수 있는 수준이다.

한데…….

‘네놈이 그걸 해?’

수십 줄기의 검기를 막아낸 검이 아직도 가늘게 떨리고 있다.

마치 검이 겁을 집어먹고 오들오들 떠는 것만 같다.

‘치잇!’

혀를 찬 하기룡이 손아귀에 힘을 팍 주면서 어금니를 씹었다.

처음에는 스무 합에 이르기 전에 망신을 주고자 했다.

어제 자신에게 망신을 운운한 대가였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일각이 더 지나기 전에 짓밟아 주기로 마음먹었다.

한데 지금은…….

긴장이 된다.

과연…… 이길 수는 있을까?

그때였다.

[하나 물어나 봅시다.]

불쑥 들린 전음.

하기룡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적비연을 보았다.

싸움 도중에 전음을?

물론 안 될 건 없다.

하지만 전음도 어디까지나 공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그래서 일대일의 긴박한 전투 중에는 전음할 공력조차 아끼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태연히 말을 건다는 건 날 만만하게 본다는 건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기가 찼지만, 이어진 적비연의 전음에 생각은 끊어졌다.

[도대체 날 왜 그리도 미워했소?]

[……새삼스러운 걸 묻는구나.]

[아니, 늘 궁금했소.]

사실이다.

적비연 본인의 기억은 아니지만 하천웅의 기억을 타아로 지켜보면서 묘하게 가슴 한구석이 답답했으니까.

[형님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날 증오하지 않았소?]

[그야 당연한 일.]

[그 당연한 이유가 뭐요?]

[정녕 몰라서 묻는 것이냐? 네놈이 후처의 자식이라는 것을!]

[그게 전부요?]

[그렇다! 네 어미 때문에 내 어머니가 속병을 앓다가 돌아가셨다. 한데 네가 어찌 곱게 보이겠느냐!]

[그건 안 된 일이나, 내 잘못은 아니지 않소?]

하기룡이 순간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 웃음 이면에는 어딘지 모를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가 씹어뱉듯이 전음을 흘렸다.

[네놈은…… 존재 자체가…… 잘못이다.]

[꽤 심한 말을 하는군.]

[흥! 정말 심한 말이 뭔지 알려줄까!]

타앗!

순간 하기룡이 바닥을 차며 빛살처럼 나아갔다.

쉬이이익!

따앙!

묵직한 충격이 적비연의 검신을 타고 전해졌다.

천검합일이다.

과연 장사소룡이라는 별호답게 작정하고 내지른 중검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쉬이이잇!

그대로 튕기듯 날아오른 하기룡이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린다.

천 개의 검이 한 곳에 집중적으로 떨어져 내리는 듯한 검초.

유성천검!

타다다다당!

연이은 충격에 적비연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난다.

손목을 타고 어깨까지 저릿하게 울린다.

확실히 만만하기만 한 상대는 아니다.

절정의 끝자락이라는 게 여실히 느껴진다.

하지만 절정 구단과 초절정은 큰 차이다.

적비연이 더 이상은 밀려나지 않자, 검을 맞댄 하기룡이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는 으르렁거리듯 전음을 흘렸다.

[내 어머니가 매일같이 괴로움에 시달리다가 돌아가셨을 때, 네 어미가 장례식 중 날 찾아와서 말하더군. 그 원수 같은 년이…… 앞으로는 자신을 어머니로 여겨도 좋다고!]

[그건 괴로워하는 형님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랬겠지! 하지만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하나? 하물며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한 원흉을 어머니로 생각하라고? 돌아가신 내 어머니가 그 소리를 들으면 천지가 뒤집힐 노릇일 테지!]

까아앙!

하기룡이 몸을 휘돌리며 그대로 검을 후려치자 금속성과 함께 불꽃이 튀어올랐다.

곧이어 하기룡의 검세가 매서워지는가 싶더니 수백, 아니, 수천 가닥의 검기를 뿜어냈다.

타타타타타타앙!

그야말로 손과 검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오오오! 과연 장사소룡이다!”

“검이 보이지 않을 정도야!”

사람들이 연신 탄성을 터뜨렸다.

검기는 이제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는데, 점점 짙어지더니 불꽃마저 휘날렸다.

따다다다당!

정말이지 수천 개의 검기가 적비연에게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듯했다.

‘천검화린(千劍火焛)…….’

이 아니라 만검화린인가?

검을 쏟아내는 하기룡의 속도는 점점 상승하고 있었다.

지켜보던 하불범도 눈을 크게 부릅떴다.

‘만검화린!’

만검세가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화룡만검법(火龍萬劍法)의 초식 중 하나다.

‘룡아가 어느새 저 경지까지 올라왔구나!’

만검화린은 최소 절정 구단이 넘어야 펼칠 수 있다.

하기룡은 무아지경 상태였다.

이제는 감정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지금껏 철저하게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왔던 그였다.

본심을 숨기고 언제나 든든한 장남 행세를 해왔다.

하지만 가슴속에 숨겨둔 질투와 원망이 온몸으로 표현되자, 몸은 그가 가진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있었다.

[알고 있느냐? 너와 그년이 처음 우리 집에 나타났을 때, 나는 철없이 반겼다. 하지만 내 어머니가 그토록 괴로움에 시달리고 미쳐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불효했는지 깨달았지! 왜 내가 너를 증오하냐고? 그건 내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운명처럼 정해진 거였다!]

[그래도 어머니는 형님을 안쓰럽게 생각하고 품으려고 했소!]

적비연이 이런 대화를 이어가는 이유는 하나였다.

어젯밤 은하란이 해준 말 때문이다.

타아를 지켜보는 것.

그러다 보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넓어질 것이고 거기에서 어떤 깨달음과 진리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건 곧 무공 상승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 터였다.

또한 자신이 어디까지 몰입이 되어 자아를 지켜 나가는지도 궁금했고.

쩌엉!

검과 검이 맞부딪치면서 다시 한번 금속성이 크게 울렸다.

검을 맞댄 하기룡이 입매를 이죽거리며 말했다.

[알지. 너무나 잘 알지. 한데 그것 아느냐?]

[뭘 말이오?]

[그년이 괴한들에게 당해 죽던 날. 사실 나는 그날 그 괴한들을 목격했었다.]

[……!]

적비연의 눈이 커졌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비록 타아라고는 하지만 타인 이상으로 공감하는 상태.

[계속해 보시오.]

[마침 그년이 날 쳐다보더군. 그런데 내게 살려달라고 소리치지 않았지. 나는 아혈을 당해서 말을 못하는 건가, 생각했다.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알았지. 그년은 멍청하게도 날 자식처럼 여긴 거였다. 내게 도움을 구했다간 나까지 피해를 입을까 봐 끝내 혼자 죽어갔던 거다. 후후. 한심하지 않나? 나는 서서히 죽어가는 그년을 그저 차갑게 바라보았어. 아주 무관심하게.]

적비연은 가슴속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지류에서 일어난 강한 파도가 본류에 휩쓸리듯 들이닥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하기룡의 불의가 분노를 유발했지만 이성을 잃게 하지는 않았다.

‘타아가 영향을 미치는 건 이 정도인가 보군.’

생각을 마친 적비연이 하기룡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나직이 뇌까렸다.

“이제 보니 이거 완전 쓰레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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