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73화 (74/301)

73. 악을 만드는 짐승

푸욱!

“끄으읍!”

난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가 눈알을 내리깔고는 가슴을 뚫고 튀어나온 칼날을 바라보았다.

등에서 파고든 칼날이 심장을 정확히 관통했다.

그는 다시 잔뜩 충혈된 눈으로 적비연을 노려보았다.

‘이 정도…… 였나?’

이렇게까지 실력 차가 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만검세가의 애송이 망나니가 언제 이런 괴물이 됐단 말인가?

국이 일검에 죽고 매가 십 합을 견디지 못할 때만 해도 걱정하지 않았다.

죽의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갈 때도 그가 방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이건…….

‘차원이 다르잖아……! 쓰벌……!’

하천웅이 자신의 머리를 움켜잡을 때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검에 베인 것도 아니고, 암기에 당한 것도 아니다.

손아귀에 머리채를 잡히다니!

이런 굴욕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오히려 자신의 가슴을 뚫은 검은 하기룡의 것이었다.

그래도 적의 손에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한편 난의 등을 꿰뚫어 버린 하기룡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난, 난!”

“주군…… 죄송…….”

난이 힘겹게 말을 뱉어냈다.

난의 피가 칼날을 타고 미끄러졌다.

하기룡은 믿을 수가 없었다.

난이 자신의 동생을 공격할 때, 동생의 빈틈을 노려서 기습을 가했다.

분명 하천웅의 심장을 노린 일검이었다.

한데 눈 깜빡할 사이에 하천웅은 난의 머리채를 움켜쥐더니 방패처럼 써먹었다.

결국 자신의 검은 난의 등을 찌르고 말았다.

검신을 타고 흐르던 피가 바닥에 뚝 떨어졌다.

치이익.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녹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난이 익힌 독공 때문이다.

“헛!”

하기룡이 얼른 손을 놓고 물러났다.

털썩!

난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이미 그는 눈을 부릅뜬 채 절명한 상태였다.

적비연이 난의 머리를 옆으로 치우자, 쿵 소리와 함께 몸이 넘어갔다.

하기룡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어째서…… 어째서 네놈은……!”

“죽은 운귀의 복수다.”

“운귀……?”

하기룡이 이맛살을 잔뜩 찌푸렸다.

확실히 이놈은 괴물이다.

지금까지 제 어미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운귀의 복수라고?

어미에 대한 복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건가?

하지만 적비연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그가 운귀의 몸으로 지낸 시절, 이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던가?

결국 자신의 복수이기도 했다.

적비연이 검을 앞세워 하기룡을 가리켰다.

“너는 선을 넘었어.”

주춤주춤 물러나던 하기룡이 이를 뿌득 갈았다.

“선을 넘어? 그래,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선을 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그래도 그 선을 지키는 게 인간인 거야. 그걸 넘는 순간 짐승이 되는 거고.”

하기룡은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처음으로 자신의 동생에게서 공포심을 느끼고 있었다.

어째서 이렇게 냉정할 수가 있나?

자신의 친모를 죽인 자들을 앞두고도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다니.

당연히 미쳐서 설쳐댈 줄 알았다.

한데 이래서야 마치 다른 사람 같지 않은가?

게다가 압도적인 실력 차.

비무대가 아니면 손쉽게 동생을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비무에서는 주변 눈을 의식해서 손속에 사정을 두었으니.

한데 손속에 사정을 둔 것은 오히려 하천웅이었단 말인가?

‘그럴 리가……!’

뒷걸음질을 치던 하기룡은 뭔가 발에 걸리는 것을 느끼고는 멈춰 섰다.

내려다보니 죽의 시체였다.

그 옆에는 목이 절반이나 찢어진 국의 시체도 보였다.

언제나 든든하게 자신을 지켜주던 심복들이 이젠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하기룡이 우뚝 멈추고는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네놈을 악으로 만든 게 우리라고 했나? 내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라고? 그 짐승을 만든 게 바로 너희 모자라는 걸 모른다는 거냐!”

타앗!

순간 하기룡이 몸을 날리더니 바닥에 떨어진 죽의 창을 발로 걷어찼다.

팡, 쒸에에엑!

따앙!

츠츠츠츳!

얼른 검을 휘둘러 기습을 막아낸 적비연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그 틈을 탄 하기룡이 몸을 날리면서 바닥에 떨어진 난의 검을 주워 들고는 그대로 적비연에게 쇄도했다.

쉬까아앙!

두 자루의 검이 부딪치면서 불꽃이 터져 나왔다.

검을 맞댄 하기룡이 울분에 찬 표정으로 외쳤다.

“네 어미는 내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았고, 너는 이제 내 자리를 탐내고 있다. 한데 어찌…… 내가! 내가 짐승이 되지 않고 버틸 수 있냔 말이다!”

스카앙!

기운을 폭발적으로 이끌어낸 하기룡이 매섭게 몰아붙여갔다.

“이여어어업!”

따다다당! 깡깡!

두 사람 사이에서 연신 금속성이 터져 나오고 불꽃이 일어났다.

하기룡은 이제 필살의 각오로 덤비고 있었다.

설사 자신이 죽게 되는 한이 있어도 동생을 이 자리에 묻겠다는 심정이었다.

터져 나오는 불꽃을 보며 하기룡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래, 이제는 이 비극을 끝낼 때가 됐다.

너의 존재는 언제나 내게 비극이었다.

일렁이는 하기룡의 시야에 시린 불꽃이 각인되어 갔다.

* * *

퍼펑!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불꽃을 보며 어린 하천웅은 연신 박수를 쳤다.

“와아아.”

옆에선 하기룡이 그런 동생을 마냥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진짜 동생이 생기다니.

매번 부모님에게 동생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며칠 전 정말 동생이 생긴 거다.

그때 불발된 폭죽 하나가 하천웅 근처에서 터졌다.

팡!

“아앗!”

어린 하천웅이 놀라며 비명을 지르자, 하기룡은 반사적으로 하천웅을 안으며 돌아섰다.

“형아……?”

하천웅이 하기룡을 올려다보았다.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얼굴이 귀엽기만 했다.

“괜찮으냐?”

“응. 형아는?”

“나도 괜찮다.”

“폭죽 무서워.”

“걱정 마. 이제 내가 널 지켜줄 테니까. 넌 내 동생이니까.”

“응!”

하천웅이 다시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날 마을 축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하기룡을 냉랭한 눈길로 쏘아보았다.

어머니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하기룡과 하천웅이 맞잡은 손으로 향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게 문제라고 판단한 하기룡이 하천웅의 손을 슬며시 놓았다.

하천웅이 별채로 쪼르르 달려가자, 어머니가 다가와 하기룡의 뺨을 올려붙였다.

짜악!

“어, 어머니……?”

“못난 놈! 저 악녀의 자식을 동생처럼 여기다니!”

“죄, 죄송합니다.”

“악녀가 낳은 자식은 악마다! 네 어미를 죽이고, 널 죽이게 될 악마라는 걸 잊지 마라!”

“어머니…… 하지만 저 아이는…….”

“내가 죽어야 네가 내 말을 믿겠느냐!”

“아닙니다…….”

“명심해라. 저 아이와 너! 두 사람이 같은 하늘 아래에 함께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저 아이는 애초에 부정한 존재라는 것을!”

* * *

샤샤샥!

수풀을 헤치며 달리는 하기룡은 자신의 몸을 점혈해서 얼른 지혈했다.

검에 찔린 왼쪽 어깨가 욱신거렸다.

허벅지에서도 피가 흘러내렸다.

‘어머니. 어머니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제가 물렀습니다.’

뒤늦은 후회에 가슴이 아려온다.

공력이 차츰차츰 소실되어 숨이 차오르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고 나자 낭떠러지가 나타났다.

“훅, 훅, 훅……!”

겨우 멈춰 선 하기룡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잠시 후 적비연이 그곳에 나타났다.

고른 숨결.

땀방울 하나 흘리지 않는 적비연은 시종 여유가 넘쳤다.

이걸로 확실히 알았다.

동생이 달라졌다는 것을.

어떻게 이렇게 다른 사람이 된 것일까?

‘혹시 그 체내의 폭기가 터지면서 체질을 바꾸기라도 한 것일까?’

하기룡이 숨을 고르고는 적비연을 노려보았다.

“너와 끝을 낼 때가 온 것 같구나.”

“남길 말은?”

적비연이 검을 내밀며 차분하게 물었다.

“너는 어째서 내 자리를 탐낸 것이더냐?”

“질문 자체가 틀렸어. 어째서 나를 괴롭혔는지 자문해야지.”

“만약 내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우리 관계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을까?”

문득 하기룡의 눈빛이 처연해졌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적비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적어도 최악은 아니었겠지.”

“웃긴 소리!”

하기룡이 버럭 소리쳤다.

지금도 그렇다.

자신의 동생은 마치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말하고 있지 않은가?

마치 제삼자가 되어서 지켜보는 듯한 시선.

그런 시선으로 어찌 자신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단 건가?

몸서리쳐지도록 무책임한 표정이 아닌가?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자신은 아무 책임도 없다는 듯.

물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하천웅의 몸에 깃든 혼은 적비연이었기에.

하지만 그런 내막을 알 리 없는 하기룡은 은근한 분노마저 느끼며 내공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렸다.

후우우웅!

장삼 자락이 부풀면서 긴장감도 고조되었다.

“끝내자!”

타앗!

기합소리 같은 외침과 함께 하기룡이 바닥을 차고 튀어나갔다.

적비연이 마주쳐 가며 검을 휘둘렀다.

따앙!

두 사람의 검이 부딪치자 주변으로 기풍이 후웅! 불어나갔다.

따당! 땅!

연이어 검식이 부딪쳤고, 적비연이 회전하면서 그대로 일검을 내질렀다.

짜르르르릉!

순간 번쩍이는 빛과 함께 천둥소리가 울리면서 뇌전이 흘렀다.

“이건……!”

하기룡의 두 눈이 커졌다.

낙뢰휘검.

분명 이건 벽력적가의 검법이 아니던가?

게다가 이 검법은 운귀가 사용하기도 했다.

타앙!

“크악!”

낙뢰휘검을 막아내지 못한 검이 튕겨 날아갔다.

곧이어,

푸욱!

적비연의 검봉이 그대로 하기룡의 왼쪽 가슴을 관통했다.

“커억!”

하기룡이 입을 쩍 벌리고는 적비연을 보았다.

아직도 온몸에 뇌전이 흐르는 듯 전신이 저릿저릿하다.

“네놈이 어찌 적가의 검법을……!”

“그게 중요한가?”

적비연이 차갑게 식은 눈동자로 하기룡을 응시했다.

하기룡이 천천히 물러나면서 검신에서 몸을 빼냈다.

츄아아아!

검이 뽑혀 나온 상처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졌다.

“크읍!”

비틀거리며 물러나던 하기룡이 적비연을 향해 손을 들었다.

“너 이놈……! 적가와 내통하고 있었던…… 것이냐?”

“마지막 순간까지 궁금한 게 과하군.”

적비연이 마지막 일격을 위해 공력을 끌어올리자 하기룡이 낭떠러지 끝에 서서 피식 웃었다.

“죽어도…… 네놈 손에 죽진 않겠다.”

말을 마친 하기룡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적비연이 얼른 달려왔지만, 이미 하기룡은 까마득한 허공 속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하기룡은 동생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머니의 장례를 마친 그날, 동생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형아, 울지 마.”

“형이라고 부르지 마라.”

“왜? 형아?”

“너와 나는 이제 같은 하늘 아래에 설 수 없으니까.”

-끝났군.

지켜만 보던 극마가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무심히 중얼거렸다.

어차피 심장을 관통한 순간 하기룡은 끝난 목숨이었다.

한데 이 높이의 낭떠러지에서 추락했으니 생존은 불가능했다.

적비연이 착잡한 마음으로 돌아서는데 극마가 불쑥 물었다.

-저기 있는 놈은 계속 내버려 둘 거냐?

‘저기 있는 놈?’

-몰랐냐? 아까부터 널 지켜보던 놈이 있는데.

‘……!’

몰랐다.

싸움에 집중한 탓도 있지만, 상대의 은신술이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다.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게 되니 겨우 눈치챌 수 있을 정도다.

지켜보는 자가 있었다니.

그게 누가 됐든…….

타앗!

‘목격자를 내버려 둘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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