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76화 (77/301)

76. 다 계획이 있어

이자는…… 누구지?

장문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묵검을 보았다.

까앙!

묵검이 힘을 주어 밀어내자 장문탁이 일순 균형을 잃으며 튕겨 나갔다.

그 틈을 타서 묵검이 쏜살같이 날아갔다.

쉬이이잇! 쩡!

다시 한번 두 자루의 검이 부딪치면서 불꽃이 튀었다.

파파팟!

츠츠츳!

묵검이 얼른 거리를 벌렸고, 밀려 나간 장문탁은 가까스로 멈춰 섰다.

‘강하다!’

하천웅이 이런 자의 호위를 받고 있었던가?

그럴 리가.

오늘 거사를 치르기 위해서 십이용봉에 오른 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뒷조사를 했다.

특히 연속으로 이변을 일으킨 하천웅에 대해서도 면밀히 살폈다.

하지만 하천웅에게 호신위는 없었다.

운귀라는 자가 있었지만 얼마 전에 벽력적가의 간자라는 게 밝혀지면서 참수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데 이자는 누구란 말인가?

어리둥절하기는 귀빈석의 하불범과 만검세가 수뇌부들도 마찬가지였다.

“가, 가주님, 저자는……?”

철검당주 만대균이 미간을 좁히고는 하불범을 돌아보았다.

하불범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고 있네. 적가장의 묵검이군.”

“아무래도 이상하군요. 어째서 묵검이 소가주님을 호위하는 건지…….”

만대균의 반응에 하불범이 내심 실소를 금치 못했다.

분명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기룡을 지지하고 있었다.

무한에서 하천웅이 큰 실수를 범하자 곧바로 하기룡에게 줄을 댄 것이다.

한데 어제 하기룡이 비무에서 패하자마자 곧바로 둘째 아들을 소가주라고 칭했다.

이걸 기민한 처세술이라고 해야 하나, 약아빠진 간사함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거나 그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진 않는다.

‘룡아가 들었다간 가만히 있지 않겠군. 그나저나 룡아는 어딜 간 건지.’

첫째 아들은 어제의 패배로 상심이 큰 모양인지 내내 보이지 않았다.

하긴 당분간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동생에게 패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

그나저나 만대균의 말대로 어째서 묵검은 자신의 둘째 아들을 보호하는 걸까?

벽력적가와는 원수처럼 지내고 있는 실정이기에 저 모습이 마냥 달갑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그래도 자신이 아끼는 둘째 아들이다.

괜한 의심을 사는 걸 두고만 볼 수는 없는 일.

“만 당주는 섣부른 추측을 삼가시오. 아직 속사정을 알 수 없으니. 일단 지켜봅시다. 지금은 돌발 상황이오. 여차하면 우리가 맹주님을 지켜 드려야 하오.”

“마음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단순히 의문이 들어서…….”

‘흥! 의문은 무슨. 의심이었을 테지. 어떻게든 웅아를 깎아내려 룡아를 다시 소가주로 앉혀보겠다는 생각이었을 터.’

이미 줄을 한 번 갈아탄 만대균으로서는 하천웅이 소가주가 된 게 영 못마땅했을 테니까.

이제 와서 다시 하천웅에게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웅아,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이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할 게다.’

생각을 마친 하불범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웅아! 방금 그게 무슨 소리냐? 그럼 장문탁 대협이 사파의 첩자라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아버지! 장문탁을 키운 신풍문 역시 흑도 무리입니다. 놈들은 오래전부터 오늘을 계획하고 있었던 겁니다!”

적비연이 내공을 담아 소리치자 장내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장문탁을 쳐다보았다.

“뭐야? 진짜 사파였단 말이야?”

“사파의 첩자다! 저놈을 잡아라!”

무인들이 저마다 공력을 끌어올리며 분개하자 장문탁이 외쳤다.

“당치도 않는 모략이오! 본 문은 광주에 터를 닦은 지 십삼 년이나 됐소! 내가 본 문에 들어간 게 십 년 전이오! 어찌 내가 사파의…….”

“네놈들이 십삼 년 동안 계획한 것일 테니까.”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모함을……!”

“하면 왜 나를 공격했느냐! 발뺌해도 소용없어!”

적비연이 다시 소리치자, 사람들은 점점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기 시작했다.

장문탁은 어쩔 줄을 몰랐다.

이대로는 빼도 박도 못한다.

영락없이 흑상귀와 함께 이 자리에 뼈를 묻어야 할 판.

도대체 저놈은 자신의 정체를 어떻게 알아챈 걸까?

그때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 난감한 상황을 헤쳐 나가는 것과 동시에 역으로 하천웅을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는 방법이었다.

“흥! 내가 당신을 공격한 건 당신이 바로 마공을 익혔기 때문이오!”

난데없는 발언에 사람들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적비연을 보았다.

적비연 역시 장문탁이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저게 갑자기 곤경에 몰리니까 막말 대잔치라도 할 작정인가?

“뭔 개소리를…….”

하지만 장문탁으로서는 나름 논리를 갖추고 있었다.

“당신이 마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어찌 그리 단시간에 무공이 상승했단 말이오? 당신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고작 절정 초단에 불과했을 터. 한데 지금은 초절정을 바라볼 정도가 아니오?”

“뭐야? 내 뒷조사라도 한 건가?”

“그저 내 비무 상대에 대해서 알아봤을 뿐이외다! 그러다가 당신이 마공을 익히지 않고선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경지에 달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뿐!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사파의 첩자가 아니면 마교가 심어놓은 첩자라고 생각했던 거요! 어디 내 말을 부정할 수 있겠소?”

구구절절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볼 만했기에 사람들은 이제 섣불리 나서지도 못한 채 술렁거리며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하긴 이상하긴 했어.”

“그러게. 만검세가의 망나니가 장사소룡을 이길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확실히 이변의 연속이었지. 만약 그게 마공 때문이라면…….”

꿀꺽.

사람들이 긴장을 다지며 적비연으로부터 슬금슬금 물러났다.

이것 봐라? 이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적비연은 장문탁의 임기응변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내심 감탄도 했다.

보통은 이렇게 몰아붙이면 당황해서 더 실수를 했을 터다.

하지만 한순간에 상황을 역전시킨 것이다.

과연 사파에서 오랫동안 키운 살수답다. 아니, 첩자답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단지 의심만으로 날 공격했다고? 만약 그 추측이 틀렸으면 어쩌려고? 사람 죽여 놓고 아님 말고?”

“손만 섞어도 알 수 있는 법. 굳이 죽일 필요는 없지 않겠소?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당신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호신위도 있군.”

장문탁이 턱짓으로 묵검을 가리켰다.

적비연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 짧은 시간에 묵검을 저런 식으로 이용해먹다니.

[묵검, 내가 나서지 말라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가주님. 위험해보 여서 저도 모르게 그만…….]

[일단 네 정체를 밝혀라.]

[예? 그럼 만검세가에서…….]

[어차피 만검세가는 널 알고 있을 터.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해결하마.]

이에 묵검이 묵직한 소리로 말을 뱉었다.

“나는 벽력적가주님의 호신위요.”

“흐음? 벽력적가주의 호신위? 그런 당신이 왜 만검세가의 소가주를 호위하고 있소? 갈수록 미궁이군?”

그때 적비연이 불쑥 말했다.

“벽력적가는 그동안 너희들의 뒤를 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보를 내게 알려주었지.”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도 안 된다면 내가 네놈이 사파 나부랭이라는 걸 어찌 알았을까?”

“헛소리! 나는 사파가 아니라……!”

“너야말로 개소리지. 벽력적가는 강동칠괴의 습격을 받은 후부터 지금껏 그 배후를 조사했다. 그리고 마침내 혈조야귀(血爪夜鬼)가 사주했다는 것을 알아냈지!”

“그런……!”

장문탁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당황했을 거다.

혈조야귀의 별호까지 나왔으니.

혈조야귀는 교패의 심복이었다.

적비연은 칠괴의 기억이 있었기에 그 별호를 이런 식으로 써먹을 수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혈조야귀를 모르지만, 총군사를 비롯한 무림맹 수뇌부들 몇몇은 혈조야귀를 알고 있었다.

죽은 아상을 포함해서.

‘뭐, 사실은 혈조야귀가 아니라 하천웅이 사주한 것이었지만.’

어차피 강동칠괴가 죽은 마당에 사실 여부를 따질 수도 없는 일.

게다가 혈조야귀는 최근 모습을 아예 드러내지 않고 있으니 누명을 씌우기에도 좋은 상대였다.

“허! 좋소, 천 번, 만 번 양보해서 그게 사실이라고 쳐도 벽력적가가 왜 하필 당신에게 알렸단 말이오?”

“그야 네 비무 상대가 나니까. 네놈이 오늘 맹주님을 노릴지도 모를 일이고. 지금처럼.”

이때 묵검이 적절하게 나서서 방점을 찍었다.

“본가가 만검가와 원수지간이라더라도 더 큰 원수 앞에서는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법. 애초에 본가와 만검세가 모두 강동칠괴 사건에 연루되어 그 정보만큼은 공유하고 있었다.”

됐다. 이걸로 묵검이 나선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워졌다.

이제는 다시 상황이 역전됐다.

다만 이 과정을 지켜보는 만대균만은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강동칠괴에게 직접 의뢰한 건 나인데.’

그렇다고 여기서 자신이 강동칠괴에게 사주했다고 나설 수도 없는 일.

그가 묵묵히 지켜보는 동안 사람들은 다시 장문탁을 쳐다보았다.

양쪽에서 내세우는 주장이 전부 일리가 있어 보였기에 쉽게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러는 사이 비무대의 격투는 점차 정리되고 있었다.

흑상귀는 허벅지와 어깨, 허리춤에 세 대의 화살을 박아 놓고 있었다.

전신에 베인 상처가 수두룩해서 옷이 전부 핏빛으로 물든 상태.

비틀거리는 그를 호룡대주(護龍隊主) 임창기(林昌氣)가 금나술을 펼쳐 사로잡았다.

그러자 다른 호룡대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마혈을 점하고 강제로 무릎을 꿇게 한 다음 거칠게 포박했다.

쾅!

그대로 바닥에 엎어진 흑상귀는 피가 고인 이를 드러내고는 이죽거렸다.

“내 비록…… 거사에 실패했지만, 흑천련은 반드시 천하를 장악할……!”

퍽!

호룡대원 중 하나가 발길질로 그의 턱을 날려 버리자 더 이상 목소리는 이어지지 않았다.

입이 뭉개진 흑상귀는 귀신같은 얼굴로 발길질한 무인을 노려보더니 순간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흑도천하(黑道天下) 만세!”

“엇, 아혈을 점햇!”

호룡대주가 다급하게 외쳤지만 흑상귀가 더 빨랐다.

그가 입안에 든 무언가를 까득 깨물자,

꽈아아아앙!

그의 얼굴은 물론 반경 삼 장 정도가 폭발에 휩싸이고 말았다.

“크아악!”

“커억!”

“으악!”

근거리에 있던 호룡대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반사적으로 쌍장을 내밀며 맞선 호룡대주를 비롯한 몇몇 무인들은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꽤 심한 화상을 입고 말았다.

귀빈석 앞에서는 갈색 무복의 비천대(庇天隊)가 역시 쌍장을 터뜨리면서 밀려드는 폭기를 막아냈다.

한 차례 폭발로 인해 비무대는 초토화됐고, 주변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폭발이 일어나던 그 순간, 장문탁은 잠깐 갈등했다.

이 난리를 이용해서 맹주를 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방해하는 적비연을 쳐서 후일을 도모할 것인가?

결국 그는 후자를 택했다.

맹주를 치기에는 거리가 제법 멀었다.

게다가 지금은 맹주가 자신도 의심하고 있을 터.

지금 공격해 봐야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역시……!

타앗!

장문탁이 바닥을 차며 소리쳤다.

“아앗! 하천웅이 맹주님을 노린닷!”

희뿌연 연기를 헤치고 날아간 장문탁이 그대로 적비연을 향해 일검을 날렸다.

쩌엉!

후우우웅!

검신이 부딪치면서 사방으로 기운이 퍼져 나가니 자욱했던 연무가 다시 흩어졌다.

이번에도 적비연을 막아선 사람은 다름 아닌 묵검이었다.

묵검이 귀신처럼 찢어진 눈으로 으르렁거렸다.

“죽고 싶어서 발악을 하는구나.”

까앙!

쉭쉭쉭쉭쉭!

“헛!”

묵검이 정신없이 검을 내질러 갔다.

정말이지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검격이었다.

짜자자자장!

마치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연신 울렸다.

벽력적가의 절초인 뇌우비검(雷雨飛劍)이었다.

‘제길! 무슨 검초가 이리도 정신없는……!’

피츗피츗!

이를 악물고 막아냈지만 검기 몇 줄기가 장문탁의 양쪽 어깨를 베며 스쳤다.

그렇게 십 보 정도를 물러났을 때, 비로소 묵검의 검속이 느슨해졌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비켜!”

등 뒤에서 들린 소리에 묵검이 반사적으로 옆으로 물러났다.

그 순간 장문탁이 두 눈을 부릅떴다.

물러난 묵검 뒤로 적비연이 질풍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이건 막아야 한다!’

장문탁이 기운을 최대한 끌어내며 검을 앞세웠다.

쩌어어엉!

후우우웅!

또 한 번 금속성과 함께 기풍이 불어나갔다.

이제 폭발로 인한 연기는 완전히 밀려난 상태.

그 덕에 두 사람의 싸움이 다른 사람에게도 훤히 보였다.

몇몇 이들은 연기에 가려졌던 탓에 두 사람이 언제부터 저렇게 사투를 벌였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검을 맞댄 장문탁은 양손이 저릿저릿 저며오는 것을 느끼며 으르렁거렸다.

“크읍……! 이제 솔직해지는 게 어떻소? 당신이 마공을 익혔다는 걸 인정하시오!”

“끝까지 날 몰아갈 속셈이군. 하지만 네놈이 흑천사왕 교패가 키운 살수라는 걸 모를 줄 아느냐!”

적비연의 입에서 흑천사왕이라는 말이 나오자 사람들이 흠칫거리며 놀랐다.

뿐만 아니라 장문탁 역시 눈에 띄게 동요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놈이 그분을……?’

하지만 순순히 인정할 수야 없지.

장문탁이 지지 않고 소리쳤다.

“흥! 끝까지 오리발이군! 이 마교의 앞잡이 같으니라고! 마공을 익혔다고 이실직고하라!”

두 사람의 기운이 팽팽하게 맞섰다.

마침 적비연이 입매를 비틀며 웃었다.

[아까부터 계속 마공, 마공 하는데…… 진짜 마기가 어떤지 한 번 보여줘?]

“뭐요?”

적비연이 극마에게 일렀다.

‘극마, 이놈에게 마기가 뭔지 알려줘라.’

-뭐? 그럼 네가 곤란해지는 것 아니냐?

‘나한테 다 생각이 있어.’

-흥! 이건 네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저놈이 마공을 너무 얕잡아보는 것 같아서 나서는 것일 뿐이다.

‘아무렴.’

극마가 씨근거리더니 적비연의 몸으로 흡수되듯 들어갔다.

다음 순간,

“음……?”

장문탁은 적비연의 눈동자가 유난히 붉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이게 바로 마기다, 애송아!

화아아악!

극마가 기운을 발산하자 검신을 타고 마기가 흘러들어 가 장문탁의 전신을 훑어갔다.

마침내 장문탁의 머리카락마저 거칠게 휘날렸다.

“허억!”

온몸을 소름 끼치게 만드는 사특한 기운에 장문탁은 저도 모르게 검을 놓으면서 물러났다.

뎅그렁……!

마치 뭔가에 홀린 듯 물러난 장문탁이 턱을 달달 떨었다.

그는 일순간 죽음을 느꼈다.

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정, 정말…… 마공을 익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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