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81화 (82/301)

81. 호랑이 굴에서 뭘 하라고요?

잠깐 침묵이 내려앉았다.

적비연도 이 상황을 선뜻 이해하지 못해서 총군사를 빤히 바라보았다.

총군사 가후가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도 직접 겪었다시피 이번 사건은 그냥 넘어갈 만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번 사건이라면 만소걸과 장문탁의 일을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그러자 지금껏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던 임송화가 곧 이해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럼 우리가 무림맹을 대표해서 흑천련에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가는 거군요?”

그녀의 말에 옆에 선 현청도 고개를 끄덕이며 곧 납득했다.

하지만 적비연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 그렇게 단순한 이유라면 지금처럼 은밀하게 부르지 않았겠지.

오히려 만인이 알 수 있도록 공표했을 거다.

그래야 흑천련도 함부로 나올 수 없을 테니.

아무리 막돼먹은 흑도인들이라도 최소한의 강호 예절은 지킬 수밖에 없을 테니.

한데 이렇게 은밀하게 불렀다는 것은…….

“외부로 공개하지 않을 비밀 작전이 있나 보군요.”

적비연의 말에 총군사가 눈에 이채를 띠고는 돌아보았다.

‘과연 눈치가 빠르군. 만검세가 이 공자가 망나니라는 소문은 대체 어떻게 난 건지…….’

아니, 그건 단순히 소문이 아니었다.

자신이 총괄하는 금목원(禽木院)에서 입수한 정보도 그랬다.

금목원의 정보 분석력은 강호인들 누구나가 인정할 수준이었다.

물론 개방이나 하오문처럼 다양하고 많은 정보를 다루지는 못했지만, 웬만큼 중요하다 싶은 정보는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정보의 사대성지 중 한 곳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특히 금목원의 장점은 정보에 대한 신뢰성이었다.

아주 많은 정보를 수집하지는 못하더라도, 들어온 정보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는 능력만큼은 탁월하단 뜻이다.

그런 곳에서 만검세가 이 공자는 망나니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하천웅은 망나니가 맞다.

그래야 했다.

한데 눈앞에 서 있는 하천웅은 정도 무림을 위기에서 구한 영웅일 뿐만 아니라, 눈치까지 빠른 무인이 아닌가?

그에 반해 임송화는 눈치가 없는 듯했다.

아니, 어쩌면 그녀도 짐작하면서 애써 부인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에이, 하 대협은 무슨 그런 섬뜩한 말씀을 하세요. 이제 겨우 십이용봉에 든 우리에게 그런 막중한 임무를 맡기시겠어요? 그럴 일은 절대…….”

“하 대협 말씀이 맞습니다. 지금부터 여러분께 비밀 임무를 내릴 생각입니다.”

“……농담하시는 거죠?”

가후의 말에 임송화가 입꼬리를 씰룩이며 되물었다.

가후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죄송합니다. 그간의 빡빡한 대회일정으로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할 여러분에게 곧바로 이런 임무를 내리게 되는군요.”

“맙소사, 정말인가 보네.”

“그 비밀 임무가 무엇인지요?”

현청이 차분한 표정으로 물었다.

가후가 진중한 표정이 되어서는 말했다.

“그 전에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 임무는 대단히 위험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꿀꺽.

단휘가 마른침을 삼켰다.

가후의 표정에서 괜히 겁주려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선택권을 드릴까 합니다. 여기 계신 누구라도 임무를 맡지 않겠다면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그러자 임송화가 손을 들었다.

“나는 듣지 않겠어요.”

임송화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을 본 단휘가 입을 척 벌렸다가 적비연에게 전음을 보냈다.

[와아, 저 여자. 시원시원한데요?]

[왜? 너도 가고 싶어?]

[가주님은요? 아주 위험한 임무라는데…….]

[글쎄…… 그만큼 보상도 충분하지 않을까?]

[아…….]

그러는 사이 가후가 남은 세 사람을 둘러보며 말했다.

“또 빠지실 분 안 계십니까?”

“흑천련이 무림맹 안마당까지 와서 설쳤는데 어찌 개인의 안위를 생각하고 머뭇거릴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그 어떤 임무라도 해야지요.”

현청이 주먹을 불끈 쥐고는 말했다.

확실히 현청은 앞뒤 꽉 막힌 말코도사다웠다.

뭔가 지나치게 정직한 느낌이랄까?

‘하긴 그러니 그 비무에서도 졌겠지만.’

가후가 이번에는 적비연과 단휘에게 시선을 두었다.

“두 분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적비연의 말에 가후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말씀하시지요.”

“만약 이번 임무를 맡지 않으면 십이용봉에 든 것도 취소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무림맹 소속원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성큼성큼 걸어가던 임송화가 멈칫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코웃음을 쳤다.

‘흥! 십이용봉이 뭔 대수라고. 명예가 목숨보다 소중한가? 어리석은 사람들.’

다시 그녀가 걸음을 내디딜 때였다.

“그럼 당연히 포상에서도 제외되겠군요?”

“물론입니다.”

흠칫.

포상?

그러고 보니 포상이 있었지.

아서라. 포상이 다 무슨 소용인가?

그것도 살아야 득이 되는 것 아닌가?

임송화가 다시 걸으려고 할 때, 적비연이 또 물었다.

“일단 포상 내용부터 자세히 말씀해주시죠. 죄송하지만 전 그게 제일 궁금합니다.”

“아, 네. 올해는 특별히 포상이 큰 편입니다. 우선 십이용봉에 오른 전원에게 기본적으로 소정단(小正丹)이 제공됩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네 분…… 아니, 세 분께는 특별히 대정단(大正丹)을 드립니다.”

“오, 대정단!”

단휘가 놀라서 소리쳤다.

대정단은 무림맹에서 만든 영단이었는데, 대략 만년설삼과 천년설삼 사이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무인이라면 평생 돈을 벌어도 대정단 하나 살 정도의 자금을 마련하기가 어려웠다.

이쯤 되니 무심히 걸음을 옮기던 임송화도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었다.

“또 있습니까?”

적비연의 물음에 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원래 일룡이나 일봉이 되신 분에게 귀수갑(鬼手鉀)을 드릴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회를 끝까지 치르지 못한 관계로 세 분이 논의하셔서 누가 가질지 정하시면 되겠습니다.”

“귀, 귀수갑까지!”

단휘가 입을 딱 벌렸다.

귀수갑은 만년은잠사의 실로 만든 장갑이었는데 매우 얇아서 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웬만한 도검은 맨손으로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다.

그야말로 신물(神物)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임송화는 걸음을 완전히 멈추고 귀를 세웠다.

그때 다시 그녀의 귀가 움찔 움직였다.

“또 있습니다.”

“뭡니까?”

적비연이 묻자 가후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이번 작전에 참여하시는 세 분께는 무림맹 특급병기고에서 원하는 물건을 무엇이든 고를 수 있는 특혜가 있습니다.”

“오오.”

“뿐만 아니라 작전 수행에 필요한 경비를 전액 지원합니다. 그리고 임무를 완수한 후에는 각각 이십만 냥을 사례금으로 드립니다.”

“그래서 맡기실 임무는 무엇입니까? 하명만 하십시오.”

생뚱맞게도 불쑥 말을 뱉은 사람은 다름 아닌 임송화였다.

어느새 그녀는 적비연과 현청, 단휘 사이에 얼굴을 내밀고는 진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적비연이 눈살을 슬쩍 찌푸렸다.

“아직 안 갔소?”

“호호, 장난이었어요, 장난. 요즘 유행하는 농담인데. 잘 모르시나 보네.”

헤실헤실 웃던 임송화가 돌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흑천련이 본 맹 안마당까지 와서 설쳐대는 상황에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어요? 안 그래요? 여러분!”

“뭐, 그렇긴 한데…….”

“자, 군사님. 계속 말씀해 주세요. 그래서 임무는? 아 참, 그 전에 제가 현청 대협을 이겼으니 그 귀수갑은 정확히 말하면 제가 가지는 것이겠죠?”

“으음…… 글쎄요…….”

“글쎄가 아니죠. 여기 계신 단 대협은 비무를 하다 말았고, 하 가주님은 아예 비무를 하지도 않았잖아요? 저만 비무를 치르고 이겼으니, 규정상 당연히 제가 가지는 거죠.”

임송화가 생긋 웃었다.

“그건 차차 얘기하죠.”

적비연이 끼어들었다.

사실 적비연으로서는 귀수갑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물론, 있으면 좋긴 하겠지만 만약 또 죽기라도 하면 몸이 바뀔 테니 괜히 애먼 사람의 손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었다.

다만 임송화를 끌어들이려면 미끼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왕이면 임무 수행자가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유리할 테니.

임송화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치. 일단 그럼 그 임무가 뭔가요?”

“들으면 반드시 해야 합니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맹이 내리는 명령이니까요.”

“알겠어요. 이제 농담은 안 할게요. 도대체 그 거창한 비밀 임무가 뭐예요?”

그제야 가후가 빙그레 웃었다.

그는 적비연을 돌아보았다.

“그 전에…… 하 가주님은 사군자를 잘 아시지요?”

적비연이 눈살을 슬쩍 구겼다.

‘갑자기 사군자를? 설마 내가 하기룡과 싸운 게 들킨 건가?’

일단 적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만. 형님의 심복들이었습니다.”

“네, 그 사군자들의 시체가 발견됐습니다. 짐작되는 바가 없는지요?”

“글쎄요.”

적비연은 가후가 자신을 떠보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순수하게 묻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모른 척하니 가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하기룡 대협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듯합니다.”

“형님에게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적비연이 짐짓 놀란 척 물었다.

혹시 하기룡의 시체라도 발견한 걸까?

그럴 가능성도 충분하다.

여산이 그리 험산은 아닌 데다 절벽 아래로 급류가 흐르는 계곡도 아니었으니.

한데 이번에도 가후는 침통한 표정으로 뜻밖의 대답을 했다.

“예, 아무래도 납치를 당하신 것 같습니다.”

음? 납치?

적비연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가후가 말을 이었다.

“사군자의 시체가 여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여산…….”

적비연이 탄식을 하자, 극마가 이죽거렸다.

-네가 저지른 짓이잖아? 진짜 이러다가 네놈은 극단 차려도 되겠다. 연기가 아주 끝내준다.

‘시끄러워.’

가후가 말을 이었다.

“금목원에서 만소걸과 장문탁을 집중 조사한 결과 비무 대회 전일 두 사람이 여산에서 만났던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군자의 시체가 발견됐지요. 아무래도 사군자가 그들에게 당한 듯합니다.”

“이런 때려죽일 놈들이……! 형님은, 형님은 어떻게 됐습니까?”

적비연이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캬아, 이 처절한 감정 연기!

극마가 빈정대는 걸 무시한 채 적비연은 최대한 일그러진 표정을 유지했다.

“아무래도 그 두 사람에게 납치된 후 조력자에 의해 흑천련 영역으로 넘어간 듯합니다.”

“아…….”

그럼 시체를 못 찾았단 말인가?

설마 살아 있다는 건가?

그럴 리가.

분명 정확히 심장을 찔렀다.

하면 흑천련이 하기룡의 시체를 가져갔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적비연이 다그치듯 물었다.

“확실합니까? 형님이 살아계신 게?”

“신뢰도는 팔 할 이상입니다. 흑천련이 시체를 운반한 것이 아닌 이상, 하기룡 대협을 납치한 게 분명합니다.”

적비연이 멍한 표정을 짓자, 극마도 덩달아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냐?

‘나도 모르겠다.’

가후가 표정을 굳히고는 말했다.

“그런 이유로 원래 목적에서 하나가 추가됐습니다. 흑천련에 납치당한 하기룡 대협을 구출해 주십시오.”

“우리가요?”

임송화의 질문에 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공식 사절단으로 흑천련을 방문하되 하기룡 대협을 찾아서 구출해 와야 합니다. 그리고 애초에 목적이었던 또 하나는…….”

“또 하나는?”

“이건 시간이 좀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얼마나요?”

“짧아도 몇 개월, 길면 몇 년도…….”

“몇, 몇 년이라니…… 공식 사절단이 그렇게 오래 머물 수 있어요?”

“아뇨, 자세한 계책은 차차 설명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그 또 하나의 임무가 뭐죠?”

가후가 세 사람을 빤히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흑천사왕 중 한 명인 교패의 조직에 잠입해서 정보를 최대한 모은 후 그를 암살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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