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82화 (83/301)

82. 호랑이 굴에서 뭘 하라고요?

“불가! 절대 불가! 이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예요!”

가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임송화가 손사래를 쳤다.

가후가 말을 덧붙이려고 하자, 임송화가 두 손을 들어 막으며 다급히 말을 이었다.

“잠깐. 잠깐! 전 이제 그만 들을게요. 약속드리죠. 이 이야기는 절대 어디에서도 발설하지 않겠다고요! 맹세합니다! 그러니 저는 이만! 아, 귀수갑은 세 분이 알아서 나눠 가지셔도 돼요. 뭐, 일이 이렇게 되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처음부터 양보할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럼 진짜 이만.”

말을 마친 임송화가 미련도 없이 몸을 휙 돌리고는 성큼성큼 걸었다.

하지만 그녀가 출구로 다가서기도 전에,

슈슉!

허공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뚝 떨어지더니 그녀 앞을 막아섰다.

움찔 물러난 임송화가 싸늘한 표정으로 가후를 돌아보았다.

“이게 무슨 짓이죠?”

“죄송합니다. 이미 임무에 대해 들어 버린 이상 그냥 보내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 그 말도 안 되는 임무를 거절했다가는 이 자리에 뼈라도 묻어야 한다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임송화가 쏘아보았지만 가후는 담담히 그 시선을 받아들일 뿐이었다.

임송화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맙소사. 진심이에요?”

“언제나 진심이죠.”

“지금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얼굴도 다 알려진 우리가 교패의 조직에 잠입하는 게 가능하다고요? 그것도 모자라 교패를 암살하기까지? 교패는 초절정을 넘어선 절대고수라고요!”

“얼굴은 인피면구를 사용해서 바꿀 수 있지요.”

“그렇다고 위험이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처음부터 목숨을 걸어야 할 임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교패라고요! 흑천사왕! 그럼 맹에서도 무림오절 정도는 보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본 맹이 흑천사왕을 예의주시하듯, 흑천련 또한 무림오절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움직이게 되면 틀림없이 정보가 들어갈 겁니다. 그에 반해 여러분은…….”

“써먹고 버리기에 딱 좋다? 후기지수는 어차피 이 년 뒤에 또 뽑으면 되니까? 우리가 장기 말인가요?”

“정말 죄송하지만 군사인 제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자 지켜만 보던 극마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 인간은 지나치게 솔직한데? 원래 정파 놈들은 이렇게 앞뒤가 꽉 막힌 거냐?

‘다 그렇진 않아.’

-하긴 널 보면 꼼수의 제왕이니.

그러는 사이 임송화의 저항은 더 심해졌다.

“이것 봐, 이것 봐! 안타깝지만 난 장기 말이 될 생각이 없어요.”

“그럼 선택하시죠. 정말 이 자리에서 뼈를 묻으실 건지, 아니면 모든 임무가 완료될 때까지 본 맹 뇌옥에 갇혀 계셔도 됩니다.”

“와아. 생사람 잡는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임송화의 낯빛이 새파랗게 질렸다.

가후는 시종 진중한 표정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는지 임송화가 사정하듯 말했다.

“군사님. 제발 제 사정 좀 봐주세요. 아! 이건 우리 문주님도 반대할 거예요. 우린 가문을 대표하는 후기지수란 말이에요. 제가 만약 그런 말도 안 되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죽기라도 하면 우리 문주님은 분명…….”

“이미 허락하셨습니다.”

“……네?”

임송화가 멍하니 되묻자 가후가 빙그레 웃었다.

“낙양문주님께 이미 말씀을 드렸고 허락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번 임무는 비밀리에 진행되는 거라고…….”

“물론 자세한 내용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임무가 될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문주님이 허락하셨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혹시 제가 임무에 참여하지 않으면 무림맹 소속에서 제외시키겠다고 협박하셨나요?”

“그럴 리가요. 아, 만약 임무 참여에 반대한다면 십이용봉에 발탁된 것은 취소되고 십이용봉을 배출한 문파에 지급되는 포상금 십만 냥은 취소된다는 말씀은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흔쾌히 승낙하시더군요.”

“거짓말…….”

“진짭니다.”

“그런…….”

“모든 결정은 이제 소저에게 달려 있습니다.”

고개를 푹 숙인 임송화가 부들부들 떨었다.

잠시 후 그녀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씨근거렸다.

“이 영감탱이가 날 십만 냥에 팔아먹었어? 아오! 진짜! 언제는 친조부라 생각하고 따르라더니! 친손녀였으면 십만 냥에 팔아먹었겠냐!”

임송화가 혼자서 버럭버럭 화를 내더니 이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적비연, 단휘, 현청을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다른 분들도 팔린 건가요?”

“하하. 팔렸다는 표현은 좀…….”

단휘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대꾸하자 가후가 끼어들며 말했다.

“우선 화산파 장문인께서는 현청 대협이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것에 오히려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벽력적가주님은 연락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고, 만검세가는 이제 가주가 되셨으니 따로 알릴 필요가 없겠지요.”

단휘가 그래도 눈치 빠르게 대응했다.

“적 가주님이 이곳에 계셨다면 분명 작전을 받아들이라고 하셨을 겁니다. 저는 맹의 명에 충실히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가후가 적비연을 보았다.

적비연이 입을 열었다.

“저도 임무에 참여하겠습니다. 어차피 이제 와서 뺄 수도 없으니.”

마지막으로 가후의 시선이 임송화에게 향했다.

임송화가 마지못한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어요. 할게요. 하면 되잖아요. 대신 귀수갑은 규정대로 제가 가지겠어요.”

“하지만 아까는 애초에 다른 사람을 주려고 했다고…….”

단휘가 불쑥 끼어들자, 임송화가 눈썹을 성큼 치켜 올렸다.

“아까는 아까고. 지금은 지금이죠. 제가 좀 기분파라서요.”

“아…… 예…….”

단휘는 왠지 예홍만큼이나 까다롭다고 느끼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적비연이 가후에게 물었다.

“한 가지 제안해도 되겠습니까?”

“제안이라면……?”

“말씀하신 대로 이번 작전은 꽤나 위험하고 막중해 보입니다. 그러니 작전에 투입될 인원을 보충하고 싶군요.”

“추천 인물이라도 있으십니까?”

가후의 말에 뭔가 낌새를 챈 단휘가 휙 돌아보았다.

그가 적비연을 향해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안 됩니다, 가주님! 저 여자 한 명도 벅찹니다! 그것만은……!’

하지만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린 법이 없는 법.

적비연의 입에서 듣고 싶지 않았던 이름이 튀어나왔다.

“벽력적가의 예홍 대주를 추천합니다.”

“아, 예홍이라면…… 이번 비무 대회에서 기권한 여협을 말씀하시는군요?”

“그렇습니다.”

“그건 의외군요. 하 가주께서 벽력적가의 무인을 추천하실 줄이야.”

“일전에 예 소저가 비무하는 걸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그녀라면 전력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십이용봉에는 아쉽게 들지 못했지만, 십이용봉이 되었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가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단휘를 돌아보았다.

대략의 뜻을 짐작한 단휘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제가 한 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아마 임무에 참여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벽력적가에는 정말 인재가 많군요. 벽력적가주도 이미 흑천련으로 건너간 상황인데. 본 맹이 귀가에 큰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별말씀을요. 그런데 이번 임무를 통솔할 책임자를 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예홍까지 포함하면 인원이 다섯 명이다.

누군가는 이들을 이끌어야 했다.

가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렇습니다. 혹시 단 대협께서 생각이 있으십니까?”

“아, 저는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대신 하천웅 가주님이 사절단 대표를 맡으면서 총괄해 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저도 찬성입니다. 하 가주님이 아니었다면 이번 대회의 비극은 더 커졌을 겁니다. 하 가주님이 세운 공도 있으니 우리를 이끌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청이 포권하며 동의를 표했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받은 임송화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다들 그렇다면 따르죠.”

사실 그녀는 대표를 맡을 생각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그저 이 작전에서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을까 궁리 중이었다.

“그럼 만장일치로 하 가주님께서 이번 사절단의 대표를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비밀 작전도 총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한 가지만 더.”

“말씀하시죠.”

“흑천련으로 건너가기 전에 본가에 들르고 싶습니다. 좀 정리할 게 있어서 말이죠.”

* * *

이튿날 맹주전 지붕 위.

뒷짐을 진 허위청이 저만치 외원을 벗어나는 적비연 일행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의 곁으로 총군사 가후가 사뿐히 내려섰다.

주로 머리를 쓰는 일을 하지만 무공 수위 역시 절정 후단에 이른 그였다.

“많이 어리군.”

“그만큼 흑천련에서도 예측하지 못할 겁니다.”

“저들이 정말 교패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절대 불가능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교패를 죽이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투군.”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가후가 허위청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교패를 암살하는 것은 쉽게 말해 되면 좋고, 실패해도 그만이다.

적어도 흑천련을 향한 경고다.

허위청이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는 정말 알면 알수록 무서운 자야.”

“군사가 냉정할 수 없다면 맹이 위험에 빠질 수 있지요.”

“그래, 저들에게 포상은 내렸는가?”

“예, 저마다 특급병기고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하나씩 가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만 만검세가주인 하 대협은 일회용 무기를 고집해서 몇 가지 더 내어주었습니다.”

“일회용 무기를?”

“예, 가령 암기 발사 장치라거나, 피독주(避毒珠) 같은 것을 선택했지요.”

“흐음. 뜻밖이군.”

“이제 저들은 만검세가장에 들렀다가 곧바로 흑천련으로 넘어갈 것입니다. 표면적인 임무는 흑천련주의 공식 사과를 받고 이번 일을 기획한 자의 수급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흐음. 기대해 보지. 과연 저들이 어떤 식으로 이번 임무를 풀어나갈지.”

허위청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멀어져가는 다섯 사람을 묵묵히 보았다.

* * *

장사로 돌아온 적비연은 먼저 현청과 임송화를 만검세가 지객당에 머물도록 했다.

한편 장사에서 적비연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극적으로 돌아섰던 박효양을 비롯한 세 사람은 확실히 기반을 잘 다져둔 상태였다.

적비연이 귀환했을 때, 그 누구도 새로운 가주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만대균의 잘린 머리가 효과를 발휘한 것인지 오히려 모두들 적비연에게 어떻게 잘 보일지 궁리하는 듯했다.

적비연은 대략의 사정을 총관 진서국에게 알려주고는 자신이 없더라도 벽력적가와 협조하여 모든 일을 무리 없이 진행하도록 했다.

또한 묵검과 은하란을 불러서 자신이 없는 동안 벽력적가를 이끌어가도록 지시했다.

뿐만 아니라 다면선사에게서 다량의 인피면구를 받아와서 사절단에게 골고루 나눠주었다.

가문 안팎으로 정비를 끝낸 적비연은 마지막으로 가주전에서 통하는 비동을 찾아갔다.

하불범이 알려준 대로 가주전의 벽면에 숨겨진 기관장치를 작동시키자 지하 통로가 드러났고, 그 길을 따라 가니 금은보화를 쌓아둔 비동이 드러났다.

몇몇 무공서도 있었는데, 딱히 흥미를 끌만한 책은 아니었다.

‘어디 보자…… 이쯤 어디라고 한 것 같은데…….’

적비연이 벽을 따라 걷다가 난이 그려진 커다란 액자를 더듬었다.

액자를 떼어내고 나니 뒤편에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낡은 서책이 한 권 놓여 있었다.

구천혈마검(九天血魔劍).

이름부터 무시무시하네.

적비연이 대충 책장을 훑어 넘겼다.

마지막 장까지 훑어본 적비연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마디로 어마무시한 마공서인 건 틀림없는데…… 문제는 이걸 제대로 써먹으려면 구천혈마공(九天血魔功)을 익혀야 한다는 거군.”

하지만 구천혈마공에 관한 비급서는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하불범이 마공서가 두 권이라고도 하지 않았고.

결국 무용지물이라는 건가?

‘뭐, 어차피 익힐 수 없다면 누구도 익히지 못하게 태워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마음을 내려놓은 적비연이 서책에 화기를 주입하려는 순간, 극마가 대경실색하며 외쳤다.

-안 돼! 그걸 태우려고 하다니! 미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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