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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적-89화 (90/301)

89. 수귀(水鬼) 내려온다

쩌엉!

도검이 부딪치면서 갑판 바닥이 다르르 떨렸다.

동시에 포탄처럼 튕겨 나간 적비연이 그대로 선실을 부수며 나뒹굴었다.

콰당탕탕!

“크읏!”

얼른 몸을 일으킨 적비연은 요혈 몇 군데를 점해서 통증을 완화했다.

말 그대로 진통 효과만 있는 점혈 법이었다.

그마저도 아상의 기억이 없었다면 하지 못했으리라.

“후기지수라고 얕보았다간 안 되겠군. 어린 나이에 이룬 경지만큼은 인정해주마.”

한쪽 눈에 검은 안대를 찬 동추추가 저벅저벅 부서진 선실 안으로 들어왔다.

적비연은 어금니를 꾹 씹고는 그를 빤히 노려보았다.

‘어렵군. 어려워.’

초절정 삼 단이 이 정도였나?

아니, 이 정도는 아니다.

다만 이곳이 선상이기 때문에 더욱 강해 보이는 거다.

고수들의 싸움일수록 아주 작은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데 연신 흔들리는 선상에서의 싸움이라면 역시나 그 경험치를 무시할 수 없다.

‘쳇!’

이길 방법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도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고 있다.

만약 동추추가 작정하고 살수를 뻗어왔다면 진작 죽었을 것이다.

다만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자신이 잃은 눈알 하나에 대한 대가, 수로채의 원수를 갚을 기회라는 희열.

이러한 이유로 적비연을 쉽게 죽이지 않았다.

그로서는 상대가 처절하게 좌절을 느껴가며 서서히 죽기를 바랐기에.

물론, 그것이 적비연에게는 기회이기도 했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은 잘 버티면서 싸워주고 있었다.

일단은 나만 생각하자.

적비연이 어금니를 꾹 다물고는 기수식을 취했다.

“호오, 아직도 더 덤벼볼 생각인가?”

“물론!”

타앗!

적비연이 대답과 동시에 쏜살같이 날아갔다.

쩌엉!

“크읏!”

뭔 힘이 이렇게나!

적비연은 이를 악물었다.

분명 공격을 퍼부은 것은 자신이었는데, 돌아오는 충격은 오히려 더 큰 듯했다.

뒤로 물러나는 적비연을 향해 동추추가 달려들며 발을 내질렀다.

“선상에서는 물의 흐름에 따라 몸을 맡겨야 하는 법! 네놈은 죽었다 깨어나도 본좌를 이길 수 없다!”

콰장!

“크윽!”

다시 선실 벽을 부수며 갑판으로 날아간 적비연이 한참이나 미끄러졌다.

-쯧쯧. 꼴이 말이 아니군.

보다 못한 극마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시끄러워. 쉬운 상대가 아냐.’

-그 육체를 내게 넘기면 어떤가? 그럼 간단히 해결될 것 같은데.

‘글쎄, 그 방법을 모른다니까!’

-흐음. 정말인가 보군.

‘그럼 지금까지 내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한 거냐?’

적비연이 어이가 없어서 묻자 극마가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원체 의심이 많아서 말이지.

‘의심할 시간에 주인을 도울 방도나 궁리해 보는 게 어때?’

-무리다. 주인과 저놈의 실력 차가 너무 크다.

‘새삼스럽게 알려줘서 고마워 죽겠군.’

-별말을.

극마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는 사이 동추추가 선실의 부서진 벽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별로 재미도 없군. 좀 더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겨우 그 수준으로?”

적비연이 맞받아치자 동추추가 입매를 비틀었다.

“그럼 수준 좀 올려야겠군!”

타앗!

이번엔 동추추가 먼저 움직였다.

쉬이이이잉!

타타타타타앙!

시퍼런 도기가 뿌려지면서 쏟아져 내리는 빗방울이 마구 터져 나갔다.

마치 철판에 콩이 볶이는 듯한 소리.

빗방울이 부서지니 주변으로 자욱한 물안개가 피었다.

시야가 가려지면서 자연히 동추추의 신형도 사라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기감이라도 느껴 질만 한데, 동추추는 마치 물과 한 몸이라도 된 듯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과연 장강의 수귀라는 건가?

적비연이 내심 긴장을 다지면서 주변을 살폈다.

찰나,

-뒤다!

극마의 말에 적비연이 재빨리 돌아서며 검을 사선으로 베었다.

쉬따앙!

횡으로 날아들던 도신이 검신과 부딪치면서 튕겨 나갔다.

촤아아악!

하지만 도신에 튕겨 나간 물방울들이 날카로운 예기를 품고 적비연의 옆구리를 찢었다.

주르륵.

옆구리를 타고 핏물이 흘러내렸다.

‘물에 베이다니…….’

정말이지 기가 찰 노릇이다.

장강에서만큼은 수로채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는 게 헛말은 아닌 거다.

탁탁.

적비연이 점혈로 지혈한 다음 다시 주의를 기울였다.

물안개는 좀처럼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전의 일합으로 더 많은 물안개가 생긴 느낌이었다.

그때 사방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도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인가?]

적비연이 흠칫거리고는 두리번거렸다.

‘설마 육합전성(六合傳聲)?’

그럴 리가.

여섯 곳에서 동시에 소리를 울리게 함으로서 신변을 감출 수 있는 육합전성은 최소한 초절정 중단 이상에 이르러야 사용할 수 있다고 들었다.

한데 어찌…….

-물이다.

‘뭐?’

-저놈이 물의 파동을 이용해서 전음을 보낸 거다. 마치 육합전성처럼.

‘아…… 그럼 땅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건가?’

-당연하지. 놀랍군. 물의 파동을 이렇게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내가 잠든 동안 수적들의 무공도 많이 발전했군.

‘그나저나 생각은 해봤어?’

-뭘 말이냐?

‘여기서 내가 살아나갈 방법.’

-일말의 가능성은 있지.

‘어떻게?’

적비연이 반가운 마음에 얼른 되물었다.

극마가 망설임 없이 대꾸했다.

-마공을 사용하는 거다.

‘아…… 역시 그건가?’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구천혈마공을 사용해서 싸우면 승산이 있지도 않을까 떠올려 보긴 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마공을 사용했다간 수로채 무인은 물론, 함께 온 동료들도 혼란에 빠질 거다.

무림 사절단 대표가 마공을 사용하다니.

그렇잖아도 장문탁이 넘겨짚은 소리 때문에 한 번 의심을 받았던 몸이지 않나?

만약 여기서 정말 마공을 사용하면 사절단 임무고 나발이고 다 끝난다.

단휘와 예홍은 변함없이 자신을 따르겠지만, 현청과 임송화는 다르다.

소문도 금방 날 테고.

무림공적이 된 만검세가는 멸문을 피할 수 없을 거고, 자칫 벽력적가도 위험해질 수 있다.

역시 마공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사용하는 건 시기상조다.

-그렇다고 여기서 죽을 건가?

‘그렇게 일을 그르치느니 죽는 것도 상관없지.’

-나참, 죽으면 다 끝인 것을 무슨 말도…… 아…….

말을 꺼내던 극마가 뒤늦게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잊고 있었다.

적비연의 상태가 특수하다는 것을.

-그랬지. 네놈, 아니, 주인은 무한 환생이 가능했었군.

‘하지만 죽기는 싫어.’

-왜냐?

‘일단 죽는 순간의 그 감각은 절대 겪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하거든. 그리고…… 이 몸으로 좀 더 이뤄야 할 일도 많고.’

적비연이 검을 꾹 말아 쥐었다.

의외로 하천웅의 몸으로 이뤄낸 게 많다.

처음에는 원수의 몸이라는 생각에 자결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최대한 이 몸을 이용하고 싶다.

죽는 건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그렇다고 여기서 마공을 쓰면 죽느니만 못하고.

‘환장하겠네.’

그때,

“어딜 넋을 놓고 있느냐!”

다시 한번 여러 군데에서 동시에 소리가 울렸다.

-숙여라!

극마의 말에 적비연이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쒸이이잇!

우측에서 튀어나온 시퍼런 도기가 적비연의 등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파바밧!

적비연이 몸을 회전하면서 그대로 검을 마구 내질렀다.

따다다당!

만검세가의 절초인 선풍만엽이었다.

하지만 동추추는 이마저도 가뿐히 막아내더니 순간 발끝으로 갑판을 툭 찍었다.

콰직!

지렛대처럼 일어난 갑판이 적비연의 턱을 때렸다.

따악!

“컥!”

적비연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오르자, 동추추가 그대로 도를 횡으로 베어왔다.

“뱃가죽이 갈라져도 허세를 부리는지 보자!”

-이런!

꼼짝없이 배가 찢어질 상황!

찰나지간 극마가 적비연의 몸에 흡수되듯 들어가더니,

휘리릭!

순식간에 몸을 회전하며 그대로 검을 내려치는 것이 아닌가?

콰장!

“큿!”

갑자기 일어난 반격에 동추추가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는 그대로 바닥에 도를 꽂아넣었다.

대신 그가 그 반동을 이용해서 허공에서 제비를 돌더니 뒤꿈치로 적비연의 어깨를 내려찍었다.

콰악!

“크윽!”

적비연이 비명을 내지르며 한쪽 무릎을 털썩 꿇었다.

급한 대로 극마가 힘을 보태 치명상은 피했지만, 그 이상 도움을 주는 건 무리였다.

-헉, 헉. 제길 내 육신이 없다는 건 역시 짜증 나는 일이군!

극마가 적비연의 몸에 일시적으로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은 하루에 한 번 정도가 지금으로선 최선이었다.

한데 이젠 그 기회마저 사라진 것이다.

한편 동추추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그대로 도를 위로 올려치며 외쳤다.

“먼저 팔 하나 가져가마!”

쒸이이잇!

-끝났군.

극마는 적비연이 팔을 잃을 것이라 직감했다.

한데 그 순간,

쒸이잉!

적비연이 들고 있던 검을 냅다 집어던졌다.

스까앙!

올려친 도신에 검이 튕겨 날아갔다.

팟!

곧이어 적비연이 동추추를 향해 몸을 날렸다.

‘미친 건가?’

검을 튕겨낸 동추추가 미간을 구겼다.

팔을 잃기 싫다고 목숨을 던져?

아니,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아예 포기한 건가?

동귀어진?

‘어이가 없군.’

동추추의 입가에 가소로움이 스쳤다.

맨손으로 달려들어 동귀어진을 한다고 해도 가능할 리가 없지 않나?

“죽기를 원한다면 그대로 이뤄주마!”

차갑게 일갈한 동추추가 그대로 도를 내리그었다.

쒸아아앙!

빗방울을 매섭게 가르며 도신이 떨어져 내렸다.

마침내 도신이 적비연의 머리를 갈라 버리기 직전,

파밧!

적비연이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손으로?’

동추추는 어이가 없었다.

떨어지는 칼을 막겠다고 손을 드는 건 그야말로 어린아이나 할 짓이 아닌가?

그런데…….

콰각!

쿠궁……!

놀랍게도 적비연의 두 손이 시퍼런 도신을 움켜잡고 있었다.

그의 두 다리는 갑판에 정강이까지 파묻혔다.

‘뭐지? 베이질…… 않아?’

동추추가 두 눈을 부릅뜬 순간, 적비연이 싸늘하게 웃었다.

“눈이 하나라서 잘 보이지 않나 본데…… 귀수갑이라는 거다!”

말을 마친 적비연이 금나술을 펼쳐 동추추의 팔을 얽어맸다.

동시에 배 난간 밖으로 집어 던졌다.

“어딜!”

하지만 동추추도 적비연을 놓치지 않았다.

그 역시 금나술을 펼치면서 적비연의 손목을 잡고 끌어당겼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이 난간을 넘어가 강물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

파밧! 파박!

두 사람은 물속에서도 손을 섞었다.

동추추는 가소로움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어리석은……! 장강의 수귀를 상대로 수중 싸움이라니!’

제아무리 귀수갑을 끼고 있다고 한들 그게 어쨌다는 건가?

선상에서도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는데, 수중에서는 말할 것도 없으리라.

‘멍청하긴! 너는 여기서 물귀신이 되는…… 음?’

파밧!

손을 뻗던 동추추가 흠칫거리고는 물러났다.

‘방금 그 기운은……?’

그가 차갑게 식은 적비연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기운이 달라졌다.

방금 그건 설마…… 마공?

지금은 수중이라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 전 수중에서 살을 맞댔을 때 분명 그 기운을 느꼈다.

말도 안 돼.

무림맹 사절단이 마공이라니?

‘도대체 저놈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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