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91화 (92/301)

91. 이게 바로 진짜!

전신 요혈에 세침이 박힌 동추추는 온몸이 찢어져 나갈 듯한 고통을 느끼고는 미친 듯이 몸을 뒤틀어댔다.

비명이 절로 터졌고 그때마다 물을 삼키는 바람에 폐에 물이 차고 있었다.

세침에 독이 발라져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나마 물에 좀 희석되었을 테지만 독기가 아예 씻겨 나간 것은 아니었다.

고통에 겨워 비명을 지르면 어김없이 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 고통은 다시 배가 되었다.

-끝난 것 같군. 생존을 축하한다, 주인.

극마가 무뚝뚝하게 말했지만, 내심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싸움이 시작될 때만 해도 적비연은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몸으로 환생할 거라고 봤다.

솔직히 은근히 바란 점도 없지 않았다.

만약 적비연이 하천웅의 몸에서 빠져나가면 혹시나 자신에게도 육신을 차지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에.

하지만 적비연은 거의 기적처럼 동추추를 제압했다.

적비연이 사용한 암기 발사 장치는 쇄혼백침(碎魂百針)이라는 것이었다.

무림맹 창정각(創正閣)에서 제작한 것으로 강호에 딱 열 개만 존재하는 일회용 암기 발사 장치다.

손목에 보호구처럼 착용하면서 단 한 번 세침을 발사할 수 있는데, 이때 백 개의 침이 한꺼번에 발사된다.

이런 암기 발사 장치의 효율이 가장 좋은 장소가 어디겠는가?

그렇다. 바로 수중이다.

운신은 자유롭지 않지만, 기관 작동으로 발사되는 세침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니 제아무리 장강의 수귀라도 당할 수밖에.

-애초에 구천혈마공은 미끼였던 셈이군.

맞다.

동추추는 자신이 구천혈마공만 믿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 설마 강바닥으로 내려온 것도…….

‘수압이 강할수록 놈의 운신이 자유롭지 못할 테니까.’

-하여튼 그놈의 잔머리는…….

‘흐음. 역시 소멸 방법을 찾는 게…….’

-정말…… 배우고 싶구나.

극마가 얼른 말을 바꾸자 적비연이 피식 웃고는 동추추에게 다가갔다.

팍팍팍!

동추추의 마혈을 점한 적비연이 이어서 진통효과가 있는 혈도를 몇 군데 점했다.

그제야 동추추가 숨을 멈추고는 안정을 되찾았다.

그것만 해도 정말 대단한 것이다.

이미 물을 다량 마셨을 테고, 폐에도 물이 찼을 텐데 기침도 하지 않는다.

‘역시 괜히 장강의 수귀가 아니야.’

동추추를 뒤에서 끌어안은 적비연이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기 시작하자 극마가 탐탁찮은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이놈 살려주려는 거냐?

‘일단은.’

-적을 살려주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정파 놈들이 되도 않은 위선을 떨다가 그렇게 뒤통수 맞고 뒈지는 거지.

‘그거……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냐?’

-아니, 뭐 그렇다는 거지. 정파 놈들이.

‘나도 정파야.’

-주인은…… 무늬만 정파지.

적비연은 다시 피식 웃고 말았다.

어쩐지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동추추를 지금 죽일 수는 없다.

위선을 떨려고 하는 건 아니다.

동추추가 예뻐서 살려주는 건 더더욱 아니다.

일단 동릉항까지 가려면 그를 최대한 이용해야만 했다.

‘그나저나 안 되겠다. 일단 나부터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야겠다.’

동추추의 상태를 살펴보니 물을 좀 마시긴 했지만 아직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버텨야지. 장강의 수귀라면 버텨라.’

적비연이 동추추를 내버려 두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수면으로 솟구쳐 올라갔다.

“프하!”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터뜨린 적비연이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선체에 불이 붙어 난리도 아니었다.

고함 소리와 욕설, 비명과 금속성이 마구잡이로 섞였다.

‘아직 잘 버티고 있나 보군!’

누가 한 짓인지 모르겠지만 선체에 불을 지른 건 탁월한 선택인 듯했다.

-아마 그 임송화인지 뭔지 하는 년이 그랬을 거다. 그년도 가만 보면 너만큼 얍삽해 보였으니까.

‘어쨌거나 살 가능성을 높인 건 칭찬할 만하군. 서둘러야겠어.’

적비연이 다시 숨을 들이마셨다.

“후읍!”

풍덩!

물속으로 가라앉은 적비연이 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음? 어디 간 거지?’

동추추가 사라졌다.

분명 마혈을 점했다.

아무리 장강의 수귀라지만 스스로 마혈을 풀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구천혈마공을 이용해서 점한 것이니 더욱 풀기 어려웠을 거다.

그런데 어디 간 거지?

그때 극마가 소리쳤다.

-주인! 저쪽이다!

‘아, 강류에 떠내려가고 있었구나!’

그랬지.

여긴 호수 바닥이 아니다.

흐르는 강물이었다.

적비연이 얼른 유영을 펼쳐서 떠내려가는 동추추를 다시 사로잡았다.

동추추도 결국 사람인지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부상을 당한 데다 마혈까지 점혈됐으니 그로서도 더 이상은 버티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래도 죽으면 안 돼!’

적비연이 동추추의 목을 끌어안고는 다시 빠른 속도로 수면 위로 상승했다.

* * *

동릉항 부두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물론 부둣가는 언제나 북적거렸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많은 사람들로 득실 거렸다.

그들 모두 먼발치 장강 복판에서 일어나는 일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래? 요 근래에는 별 탈 없이 잠잠하더만.”

“어허, 자네 듣지 못했나? 무림맹 사절단이 이쪽으로 온다더구먼.”

“그래? 그럼 수로채가 저 난리를 부릴 만도 하네. 그나저나 자넨 그걸 어찌 알고?”

그러자 봇짐을 멘 중년인이 목소리를 한껏 낮춰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저자들이 흑천련에서 마중을 나온 무인이라더군.”

“음?”

사내가 시선을 돌리자 과연 부둣가에 흑립을 눌러 쓴 무인 두 명이 무표정한 얼굴로 장강에 뜬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흑립인 중 한 명이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마중 나올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림맹 사절단이 동릉항까지 도착하지 못할 거라는 걸 짐작하고서 한 말이다.

그러자 옆에 선 사내가 덤덤하게 대꾸했다.

“지레짐작 말고 기다려라. 만에 하나 저들이 물고기 밥이 된다고 하더라도 확실히 확인해야 돌아간다.”

“알겠습니다.”

먼저 말을 꺼낸 흑립인이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두 사람은 흑천련에서 파견한 흑룡대(黑龍隊)의 대주와 부대주였다.

흑룡대의 임무는 동릉항으로 마중을 나가 무림맹 사절단을 흑천련 본단까지 안내하는 것이었다.

흑룡대주 반철룡(班鐵龍)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만에 하나 저들이 동릉항을 밟는다면 비호할 준비를 해야 한다.”

“뭐,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래야지요.”

부대주 여추백(呂楸柏)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하지만 그는 내심 생각했다.

‘설마 동릉항까지 오진 못할 테지.’

장강의 미친 물고기가 직접 나섰다.

첩보에 의하면 그 미친 물고기가 눈알까지 파 버렸다고 한다.

아마 무림맹 사절단은 동릉항을 밟지 못할 것이다.

먼 길을 마중 나왔지만 바람이나 쐬었다고 생각하는 게 나으리라.

그런데 그때,

“엇! 저게 뭐야? 배 한 척이 따로 이쪽으로 오고 있어!”

“어디 봐! 그러게? 진짜다! 뭐지? 어떻게 된 거지?”

“시체를 옮기는 건가?”

“이 사람아, 수로채가 시체를 뭍으로 가져올 일이 뭐가 있나?”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들으면서 여추백이 눈살을 구기고는 바라보았다.

“대주님…… 저건……?”

반철룡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나직이 혀를 찼다.

“쯧. 준비하라.”

* * *

“저 모퉁이만 돌면 동릉항에 보일 겁니다.”

선귀부단주 장무령(張戊寧)의 말에 동소유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대꾸했다.

“서둘러.”

“많이 위험한 상황입니까?”

동소유가 미간을 곱게 찡그리며 돌아보았다.

“무슨 소리야?”

“단주님께서 이렇게 서두르시는 걸 보니, 혹시 수혼단주님이 많이 위태로운 상황이 아닌가 싶어서 여쭈었습니다.”

“하!”

동소유가 가소롭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오라버니가 위태로워? 이 장강에서 그런 일이 있을 것 같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럼 왜 헛소리를 하는 거야? 상상력도 별로 풍부하지 않으면서.”

“하면 어째서 이리 서두르시는지?”

“오라버니가 놈들을 일격에 죽일까 봐.”

“네?”

“내 손으로 아주 처절하고 고통스럽게 죽일 생각이거든. 그리고 특히 건장한 후기지수라면…….”

말끝을 흐린 동소유가 혀로 붉은 입술을 뇌쇄적으로 핥았다.

그제야 장무령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순한 기운을 가득 품은 후기지수들을 장강의 거머리가 놓칠 리가 없지.

“부디 오라버니가 아직 그 녀석들을 살려두었길 바라야지.”

경쾌하게 말한 동소유가 뱃머리에 올라섰다.

마침내 배가 천천히 암벽 모퉁이를 끼고 돌았다.

그 순간 수십 척의 배가 나타났고, 몇 척의 배는 이미 화마가 집어 삼켜져 침몰하고 있었다.

동소유가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아주 난리법석이었네.”

이때까지만 해도 동소유는 여유가 있었다.

뭐, 상대는 무림맹 사절단이 아닌가?

저 정도의 저항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봤다.

한데 조금 이상한 낌새를 챈 것은 수십 척의 배가 지척에 다다랐을 때였다.

고함 소리나 병장기 소리, 기합성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만약 벌써 무림맹 사절단이 사로잡혔거나 전멸한 거라면 웃고 떠드는 소리라도 들렸어야 했다.

한데 수십 척의 배에서 느껴지는 건 극도의 긴장감.

그제야 동소유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속도를 올려.”

“네, 단주님!”

부단주가 대답과 동시에 수하들에게 명을 내렸다.

그들이 탄 배가 더욱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마침 저쪽에서도 동소유를 발견하고는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배가 완전히 가까워졌을 때, 동소유가 경공을 펼쳐 건너 배로 옮겨 탔다.

“무슨 일이냐?”

“선귀단주님! 그게…… 저어…….”

“어서 말하지 못해!”

“단주님이 인질로 잡히셨습니다!”

“뭐?”

“죄송합니다!”

“다시 말해봐. 뭐라고 했어?”

“단주님이 인질로 잡…….”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버럭 고함을 내지른 동소유가 얼른 몸을 날렸다.

동릉항에서 가장 가까운 배로 달려가자 저만치 멀어져 가는 나룻배 한 척이 보였다.

나룻배에는 여섯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조금 전 무인의 말대로 동추추가 적비연의 손에 사로잡혀 있었다.

“저, 개 같은 것들이……!”

입술을 피가 나도록 씹은 동소유가 앙칼지게 외쳤다.

“뭐 하고 자빠진 거야? 어서 배를 가져 와!”

“진정하십시오! 저놈들이 삼십 장 이내로 접근하면 단주님을 베겠다고…….”

“시끄러워! 배를 내려라!”

“하지만…….”

촤아아악!

순간 동소유의 손아귀에서 채찍이 날아가더니 말리던 수하의 목이 단숨에 잘려나갔다.

그녀가 눈에 불을 켜고는 씹어뱉듯이 말했다.

“배를. 준비. 해.”

“존, 존명!”

남은 수하들이 얼른 작은 나룻배를 내리자 동소유가 훌쩍 뛰어내렸다.

그녀가 공력만으로 적비연의 배를 쫓기 시작했다.

그 뒤를 선귀단원들이 따랐다.

그래도 아직 이성은 남았기에 삼십 장 이내로 접근하진 않았다.

“이 찢어죽일 놈들……!”

한편 적비연이 탄 배에서 단휘가 동소유를 보고는 말했다.

“따라붙는데요?”

“동소유군.”

“동소유? 그게 누구죠?”

임송화의 질문에 적비연이 대꾸했다.

“이자의 여동생이오. 무공은 동소유가 좀 더 세지.”

“아아. 그래도 다행히 서른 장 이내로 접근하진 않네요.”

“그랬다간 이자가 죽을 테니까.”

“그런데 하 대협은 어떻게 그리 잘 아세요? 누가 보면 온 중원을 다 헤집고 다닌 줄 알겠어요.”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적비연이 속으로만 생각하며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동릉항에 거의 다다르고 있었다.

노를 젓던 현청이 말했다.

“이제 다 왔습니다. 무사히 도착했군요.”

“수고하셨소.”

적비연의 대답에 현청이 조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한데…… 그자는 어쩌실 겁니까? 설마 여기서 죽이시지는 않…….”

쉬컥!

말을 꺼내던 현청이 눈을 부릅떴다.

적비연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동추추의 목을 베어 버린 것이다.

목이 날아간 동추추가 그대로 물속에 풍덩 빠졌다.

“오라버니잇!”

저만치 떨어진 나룻배에서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적비연이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섰다.

“후환은 하나라도 제거하는 게 낫소.”

게다가 자신이 마공을 익혔다는 걸 눈치챈 자다.

절대 살려둘 수 없다.

“하, 하지만…….”

“어서 내립시다.”

적비연이 충격으로 굳은 현청을 재촉하며 부둣가로 내려섰다.

그러자 저만치 나룻배에서 찢어질 듯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이 개 같은 놈들! 전부 찢어 죽이겠다악!”

파파파파팟!

놀랍게도 동소유는 수상비(水上飛)를 펼치며 달려오고 있었다.

정말이지 혀를 내두를 정도의 경공술이었다.

파밧!

순간 부둣가 근처까지 다다른 동소유가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채찍을 휘둘러왔다.

취리리리릿!

다음 순간!

타타타타탕!

사방에서 날아든 흑립 무인들이 검을 뻗어 채찍을 쳐냈다.

촤촤촤아아앗!

수십 명의 무인들이 일제히 사절단을 둘러싸며 비호 태세를 갖췄다.

“뭐야? 비키지 못햇!”

날카롭게 외치는 동소유를 향해 흑립을 눌러 쓴 반철룡이 한 걸음 나섰다.

그가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동 단주. 이제부터는 본 련의 권역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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