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100화 (101/301)

100. 선을 막 넘네?

강물에 떠내려가는 동소유와 미계수를 본 현청이 얼른 달려왔다.

“하 대협, 괜찮으십니까?”

적비연이 손을 들어 보였다.

“괜찮소.”

“한데 그 물에 빠뜨린 남자는 누구였습니까?”

현청은 미계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물론 그뿐만 아니라 선상의 모든 무인들이 물에 빠진 미계수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지금껏 쓰고 있던 인피면구를 벗어던졌으니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유화상단 소단주였소. 정확히 말하자면 왕지극이라는 가상의 인물로 행세를 한 녹림미검 미계수지만.”

“아……! 녹림미검!”

현청이 깜짝 놀란 듯 소리쳤다.

물론 선상의 모든 무인들이 현청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유화상단 소단주가 실은 녹림미검이었다니!

현청이 다시 한번 감탄한 표정으로 적비연을 바라보았다.

“하면 하 대협께서는 그자의 정체를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겁니까?”

“아니, 몰랐소.”

적비연이 거짓말을 했다.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셈이지만, 그랬다간 전후사정을 설명하기가 까다로워진다.

적비연의 대답에 역시나 예상했던 질문이 뒤를 이었다.

“그럼 어떻게 그자가 녹림미검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거예요?”

임송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물었다.

적비연이 준비해 둔 대답을 꺼냈다.

“실은 이곳으로 오는 동안 여러분 몰래 서신을 하나 받았소.”

“서신? 누구에게서요? 혹시 무림맹에서 보낸 건가요?”

“아니오. 벽력적가주로부터 받은 거요.”

“벽력적가주님이요?”

“그렇소. 그분은 녹림미검이 우리에게 접근할 것이라는 걸 진작 알고 계셨소. 어떻게 정보를 입수한 것인지는 나도 알 수 없으나, 그분이 그리 말씀하신다면 틀림없을 거라 짐작했소.”

“그래서요?”

“그분이 보내준 서신에는 녹림미검의 신체 특이점에 대해 상세히 적혀 있었소. 나는 왕지극의 부상을 치료하면서 그 특이점을 보았으니 바로 알 수 있었소. 그가 바로 녹림미검이라는 것을.”

“하면 녹림미검이 왜 본 사절단에 접근한 겁니까?”

현청의 질문에 적비연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녹림미검과 장강의 거머리는 연인 관계요.”

“뭐라고요? 그걸 대체 어떻게…….”

“그 역시 벽력적가주께서 일러주신 내용이오. 나도 반신반의했지만 보시다시피 사실인 듯하오.”

그러자 듣고만 있던 반철룡이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나섰다.

“잠깐. 그럼 하 대협의 말씀은…… 그러니까 이곳 흑천련 권역에 벽력적가주가 돌아다닌단 뜻이오?”

그제야 현청과 임송화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괜히 벽력적가주의 이름이 나와서 그가 곤란하게 될까 봐 염려된 것이다.

하지만 적비연은 오히려 노린 것이기도 했다.

‘이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나를 찾아 헤맨다면 오히려 교란책이 될 테니 좋은 일이지.’

-하여튼 주인의 잔머리는 얄밉구나.

‘칭송으로 들으마.’

-흥!

임송화가 어두운 표정으로 적비연을 보며 나직이 말했다.

“죄송해요. 눈치 없게 제가 질문을 던져서 그분의 행적이 드러나 버렸네요.”

하지만 적비연은 고개를 저으며 오히려 큰 소리로 대꾸했다.

“벽력적가주께서는 행적이 드러나도 전혀 상관없다고 하셨소. 어차피 무공이 출중하셔서 충분히 타인의 눈에 띄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분이오. 여러분도 모를 정도로 내게 접근하셨던 분이오. 그야말로 신출귀몰한 분이시지. 그러니 신경 쓰실 건 없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걱정 마시오. 벽력적가주님에 비하면 나는 그분의 발가락에 낀 때 같은 수준이오.”

“허어, 그 정도로…….”

이쯤 되니 현청과 임송화는 벽력적가주가 대체 어떤 인물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하천웅의 말만 들으면 마치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고수 같지 않은가?

한편 반철룡은 새로운 정보를 입수했다고 판단했다.

‘벽력적가주라…….’

장사의 벽력적가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었다.

과거에는 무림 전역에 고강한 무위를 자랑했다는 가문.

하지만 현재는 만검세가에 다소 밀려서 기를 펴지 못한다는 걸로 알았는데…….

오늘 보니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저 만검세가주가 벽력적가주를 마치 직속상관이라도 되는 듯 깍듯하게 예를 갖추지 않는가?

게다가 무공도 무척 고강한 것처럼 표현하고 있고.

‘본 련의 정보력을 더 보강해야겠다고 군사님께 말씀드려야겠구나.’

생각을 마친 반철룡이 예의상 말을 건넸다.

“그분의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으나, 본 련의 권역을 돌아다니고 계신다면 각별히 주의하라고 일러주시오. 강동지역에서는 정파라면 무조건 눈알부터 뽑고 본다는 말이 있으니. 물론 본 련의 지침과 상관없이 말이오.”

적비연이 빙그레 웃었다.

“알겠소. 내가 원한다고 해서 그분을 다시 뵐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분이 다시 접근해 오는 순간이 있다면 반 대주의 우려를 꼭 전해 드리겠소.”

임송화가 강물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그 왕지극, 아니, 녹림미검에게 십만 냥이나 뜯긴 건 안타깝게 됐네요.”

“돌려받을 거요.”

적비연의 말에 임송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물었다.

“어떻게요?”

“소저는 진짜와 가짜의 가치가 얼마나 차이난다고 보시오?”

“네?”

난데없는 질문에 임송화가 눈살을 찌푸리고는 잠깐 생각하더니 답했다.

“진짜와 가짜의 가치 차이라니…… 글쎄요. 두 배? 세 배? 아니지. 가짜는 결국 가짜일 뿐이니 열 배 이상 차이가 나겠죠.”

“내 생각도 그렇소.”

“대체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가짜 왕지극의 목숨을 십만 냥으로 구해주었으니, 진짜 녹림미검의 목숨은 그 열 배 이상을 받을 생각이오.”

“어떻게…….”

“내가 그에게 사활침을 놓았소.”

“사활침?”

“아상 어르신에게 직접 배운 것이오. 한 달 간격으로 내게 침을 맞지 않는 이상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게 될 거요. 아상 어르신이 돌아가신 이상 그 사활침의 해법을 아는 사람은 나와 벽력적가주님 정도요.”

뭐, 그게 결국 같은 사람이지만.

그제야 임송화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새삼 달라진 시선으로 적비연을 보았다.

“정말 대단하군요! 그렇다면 그 장강의 거머리 년도 고분고분해질 수밖에 없겠는걸요?”

“아마도.”

적비연의 대답에 임송화는 한결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아, 어쩜 하 대협은 이리도 심계가 깊으신지…… 소녀가 한 수 배우고 싶은데 시간이 되신다면…….”

쿠웅!

순간 임송화와 적비연 사이로 한 인영이 거친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내렸다.

임송화는 물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화들짝 놀라서 바라보았다.

갑자기 떨어져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예홍이었다.

“사절단 호위를 자청하고서도 가주님을 지켜드리지 못한 죄, 목숨으로 사죄드리겠…….”

팍!

휘리리릭, 푹!

순간 단휘가 나타나 예홍의 검을 걷어찼다.

튕겨 나간 검이 선실 외벽에 꽂혔다.

하지만 예홍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럼 동소유처럼 팔 하나를 잘라서라도…….”

팍!

휘리릭, 푹!

이번에도 단휘의 발차기에 튕겨 날아간 단검이 선실 외벽에 박혔다.

예홍이 손가락을 들었다.

“보고도 지키지 못한 두 눈을 뽑아……!”

말을 꺼내던 예홍이 흠칫거리고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새 적비연이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고 있었던 것이다.

“가, 가주님……?”

예홍의 얼굴이 홍시처럼 발갛게 달아올랐다.

적비연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날 지키려면 그 두 눈이 멀쩡해야 하지 않겠나?”

“가주님…….”

“사절단 대표인 나를 호위하려는 이상 그 몸은 소중히 다루도록.”

“제,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쿵! 쿵! 쿵!

예홍이 연신 이마를 갑판에 찧으며 소리쳤다.

적비연이 말릴 수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물러났다.

한편 그 모습을 본 임송화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저년…… 좋아하네. 좋아해.”

* * *

서호(西湖)를 보지 않는다면 항주에 갈 이유가 없다는 말이 있다.

서호란 항주 서쪽에 위치한 호수인데 그 빼어난 절경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 번 보면 눈을 떼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특히 북송의 대문장가 소동파(蘇東坡)가 서호를 보면서 그 아름다움을 노래해 더욱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때문에 단휘는 항주에 온 이상 서호를 반드시 보러 가고 싶었다.

한데 그는 흑천련에 도착하면서 서호를 일부러 찾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흑천련의 본단 자체가 서호의 절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탓이었다.

그 언덕도 인공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하였다.

서호는 정말 아름다웠다.

이토록 아름다운 절경에 그 이름도 어울리지 않는 흑천련이라니.

뒤를 돌아보면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절경이 펼쳐져 있는데, 앞으로 돌아서면 또 다른 의미로 숨이 멎을 만큼 웅장한 전각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흑천련의 규모는 무림맹보다도 컸다.

단휘의 심정을 대변하듯 현청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어느 쪽으로 보나 대단하단 말밖에 나오지 않는군요. 흑천련의 규모가 이리도 클 줄 몰랐습니다. 서호 또한 이리도 아름다운 줄 몰랐습니다.”

그러자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낀 여추백이 어깨를 펴고는 말했다.

“본 련은 이원(二院) 삼궁(三宮) 오전(五殿) 팔당(八堂) 십육각(十六閣) 체제로 이루어져 있소. 그 아래에 삼십이관(三十二館)이 있고, 장원은 심원(深園)과 내원(內園) 그리고 외원(外園)으로 이루어져 있소. 아마 귀맹보다는 규모가 좀 더 클 거요.”

사실 좀 더 큰 수준이 아니었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수준이라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물이 귀한 섬서와 달리 항주는 바닷가인 데다 서호까지 있으니 뭔가 풍요롭고 여유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연신 감탄을 뱉어내며 외원을 한참이나 걸었다.

사방의 전각들이 모두 웅장하고 장엄해 보였다.

마침내 내원으로 들어설 때는 백여덟 개의 계단을 올라야 했는데, 계단 끝에 다다르니 서호의 절경이 더욱 한눈에 잘 들어왔다.

내원을 또 한참을 걸어서 다시 칠십이 개의 계단을 오르면 심원이 나타난다.

이곳까지 가는 동안 사절단원들은 전부 주변의 전각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물론,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곤.

‘여기도 오랜만이군.’

강동칠괴 시절 내원까지는 들어와 본적이 있었다.

흑천련은 강동칠괴의 단골이었으니까.

다만 심원은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드디어 심원을 구경해 보는 건가?’

심원은 들어가 본 적이 없지만, 그 구조는 간단하다고 들은 적이 있다.

흑천련주가 기거하는 심천원(深天院) 한 채가 있고, 중앙에는 모든 대소사를 논의하며 결정하는 흑천궁(黑天宮)이 있다고.

마침내 칠십이 계단을 오르고 심원 정문에 다다랐을 때였다.

웅장한 정문 안쪽에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인상의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본 반철룡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삼, 삼 공자님!”

반철룡이 그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으며 포권했다.

삼 공자라 불린 사내가 히죽 웃었다.

“수고하셨소. 반 대주. 여기서부터는 내가 안내하리다.”

“하지만 흑천궁으로 저희가 곧장…….”

“반 대주. 그만 가보셔도 좋소.”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던 반철룡은 삼 공자라 불린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곧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그럼 이만 본대는 물러가겠습니다.”

반철룡이 돌아가자 단휘가 적비연에게 전음을 보내왔다.

[가주님, 누굽니까? 혹시 아십니까?]

적비연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이자도 강동칠괴에게 의뢰한 적이 있으니까.]

[누구죠?]

[흑천련주의 삼제자, 수라혈검(修羅血劍) 종권악(棕權岳).]

[아, 이자가…… 종권악……!]

단휘가 흠칫거리고는 종권악을 바라보았다.

종권악은 정파인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했다.

물론 흑천련주의 다섯 제자는 모두 유명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종권악은 흑천련주도 손 놓을 정도로 제멋대로인 성격으로 유명했다.

흑천궁 쪽으로 걸어가던 종권악이 어느 순간 멈춰 서더니 휙 돌아섰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소. 자, 그럼 용무를 들어봅시다.”

갑작스러운 말에 사절단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적비연이 포권하며 말을 꺼냈다.

“귀공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소만.”

“말 그대로요. 본 련에 온 이유가 있을 것 아니오? 어디 들어봅시다.”

이것 봐라.

제멋대로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나?

하긴 강동칠괴 때는 단순히 의뢰만 받는 수준이었으니 이자의 성격을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본 사절단은 무림맹을 대표해서 귀련을 방문한 것이오. 예를 갖춰주시기 바라오.”

“흐음. 예라…….”

침음을 흘리던 종권악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사방에서 붉은 무복을 차려입은 무인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더니 사절단을 포위하는 것이 아닌가?

차차차차앙!

그들이 일시에 도검을 뽑아 들더니 사절단을 겨눴다.

종권악이 히죽 입매를 말아 올렸다.

“자, 이 정도면 예를 차린 걸로 봐주시겠소?”

당황한 사절단이 사방을 경계했다.

적비연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종권악을 노려보았다.

‘이 새끼가…… 선을 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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