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109화 (110/301)

109. 사실 일심동체야

단휘가 뺨을 씰룩였다.

“기녀를 불렀다고 말했을 텐데?”

사예린이 눈웃음을 지었다.

“알아. 들었어. 그래서 그 기녀를 부른 배짱 두둑한 남자 얼굴 좀 보고 싶다니까?”

“그러니까…… 그놈이 그 짓 하는 걸 보고 싶다는 건가?”

“글쎄. 그 짓을 하는지 어떤지는 보기 전엔 모르는 거니까.”

하, 이렇게나 말이 안 통하다니!

아니면 벌써 눈치챈 건가?

마른침이 꼴깍 넘어간다.

단휘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데 사예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하고 있어? 난 그 남자 얼굴이 궁금하다니까.”

“평범하게 생긴 얼굴이다. 볼 것도 없는 얼굴이지.”

사실은 굉장히 잘생겼지만. 흠흠.

사예린이 애매모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볼 것도 없는 얼굴이 궁금하네. 안내하기 싫으면 방이 어딘지만 말해. 내 발로 찾아가지.”

제길, 미치겠다.

뭔 여자가 이렇게 말이 안 통할까?

사예린이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됐어. 직접 찾아보지.”

“잠깐.”

단휘의 부름에 그녀가 멈칫거리고는 돌아보았다.

단휘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안내해 주지.”

“잘 생각했어.”

사예린이 살포시 미소 짓는다.

단휘는 최대한 느린 걸음으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마침 현청이 단휘에게 전음을 보내왔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으으. 모르겠어요. 어쩌죠? 지금 제 방에는 아무도 없죠?]

[아까 부른 기녀가 도착해서 혼자 대기 중입니다. 혹시라도 바깥에서 기척이 들리면 연기를 좀 해달라 부탁했습니다.]

[후우. 그게 통해야 할 텐데요.]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만약 이 여자가 방안에 혼자 남아 있는 기녀를 보면 분명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리라.

‘차라리 기녀를 부르지 말 걸 그랬나?’

혹시 몰라서 기녀를 불러두었는데 오히려 그게 발목을 잡을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아무도 없다면 어디 바람이라도 쐬러 나갔나 보다 하고 둘러대면 그만일 텐데.

아니지, 이 여자라면 그렇게 둘러댄다고 그냥 넘어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 상황은 낭패다.

마침내 삼 층 객실까지 올라온 단휘가 문 앞에서 헛기침을 했다.

“커흠!”

그러자 방 안에서 기녀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앙, 하아앙!”

약속대로 기녀가 연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단휘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하하하, 아무래도 이 녀석이 뜨거운 밤을 보내고 있는 것 같군. 이쯤에서 돌아가는 게 어떨까?”

“뜨거운 밤이라. 그 밤…… 나도 같이 불타오르고 싶은데?”

“뭐, 뭐라고?”

만약 입에 물이라도 머금고 있었다면 그대로 뿜어냈으리라.

단휘가 슬쩍 문 앞을 가로막듯이 서서 말했다.

“아무래도 저 녀석이 몹시 기분 좋은 상태인 것 같으니 그냥 돌아가도록 하지.”

단휘의 대응을 보면서 예홍을 비롯한 사절단원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틀렸어. 그나마 잘 유지되고 있던 연기력이 바닥나고 있다.’

특히 예홍은 단휘가 얼마나 연기력이 형편없는지 잘 알고 있었다.

‘끝났군. 저 부자연스러운 억양. 말투. 글러먹었어. 여기서 시체가 될 일만 남았어.’

그녀가 넌지시 검파에 손을 가져갔다.

사예린이 단휘를 빤히 바라보았다.

“비켜. 얼굴만 보고 갈 테니.”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 녀석이 절정을 향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 순간을 깨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 내가 몹시 부끄러워진다고!”

사절단원 머릿속에 하나같이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망했다.’

이제 단휘는 자타마저 헷갈리고 있었다.

겨우 유지하고 있던 연기력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예린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물었다.

“네가 부끄럽다고? 어째서?”

“아, 그러니까 그게…… 내가 나라고 했나?”

“…….”

“하하핫! 난 그 녀석과 일심동체 같은 사이랄까? 그러니까 그게 마음이 동하면 몸도 하나가 되어…….”

젠장,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잖아!

사예린도 더 이상은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엇!”

단휘가 얼른 그 앞을 막아서려는데, 사예린이 현묘한 보법을 밟으면서 순식간에 단휘의 등 뒤로 돌아갔다.

사절단원 모두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엄청난 보법이다!’

매우 단순한 동작처럼 보였지만 그 한 걸음 한 걸음에도 상승의 무리가 섞여 있었다.

마침내 사예린이 방문 손잡이를 잡았다.

꿀꺽.

모두가 마른침을 삼킨 채 돌처럼 굳었다.

그때, 갑자기 검은 바람이 휙 부는가 싶더니 그녀 곁으로 시커먼 그림자가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어둠의 사신 같은 남자가 무뚝뚝한 목소리를 뱉었다.

“주군.”

“뭐야?”

멈칫 거린 사예린이 사내를 돌아보았다.

“련 내에 일이 생겼습니다.”

“일? 그 아이가 각주라도 죽였나?”

“그것이…….”

“상관없잖아. 곧 잡힐 테니까.”

다시 문을 열려던 사예린은 이어진 남자의 목소리에 결국 다시 멈췄다.

“그게 탈출했습니다.”

“그거라면……?”

사예린이 이맛살을 곱게 찡그리고는 돌아보았다.

사내가 사절단을 힐끔 보더니 곧 고개를 숙였다.

“예, 그겁니다.”

“확실해?”

“확실합니다. 련주님께서 오전팔당의 주인들에게 소집령을 내리셨습니다.”

결국 사예린이 손을 거두고는 돌아섰다.

“앞장서.”

“예, 주군!”

사내가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사예린이 단휘를 돌아보고는 싱긋 웃었다.

“아쉽네. 다음에 또 봐.”

응, 절대 안 봐.

뻣뻣하게 굳은 단휘를 두고는 사예린이 계단을 내려갔다.

“프하아.”

그제야 단휘가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마침 예홍이 다가와 단휘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따악!

“아얏! 뭐냐? 왜 때려!”

“연기가 왜 그 모양이냐? 다 죽을 뻔했다.”

“내 연기가 어때서? 완벽했는데!”

“다음에는 현청진인께 맡겨.”

“쳇!”

단휘가 혀를 차며 고개를 휙 돌리자 현청이 부드럽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나저나 정말 아슬아슬했습니다. 천만다행입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그런데 ‘그게’ 뭘까요?”

임송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현청과 단휘, 예홍도 서로를 번갈아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우리를 구한 건 틀림없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한편 서호객점을 빠져나온 서예린은 본단을 향해 걸어가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만검세가주라.”

상상하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역시 찜찜한 기분.

한참을 걷던 그녀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월혼(月魂).”

“예, 주군.”

앞서 걷던 월혼이 걸음을 멈추고는 돌아보았다.

“역시 안 되겠어. 다시 보고 올게.”

“기다리겠습니다.”

“아니, 먼저 돌아가. 어디로 가면 되지?”

“흑천궁입니다.”

“알았어.”

사예린이 휙 돌아서서는 서호객점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이고, 어서 옵……!”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반색하며 달려오던 점소이가 말을 꿀꺽 삼켰다.

서호 인근에 살면서 이 공녀인 사예린을 모르면 첩자다.

점소이가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는 사이, 그녀는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서 삼 층에 다다랐다.

‘여기였지? 아마.’

조금 전 문을 열려고 했던 곳에 멈춘 그녀가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

벌컥!

활짝 열린 문을 통해 그녀가 들어가자,

“아앙, 아이, 몰라요.”

“흐흐흐. 야들야들하네.”

잔뜩 콧소리를 내며 애교를 부리는 기녀와 침을 흘릴 듯 웃어대는 사내가 보였다.

둘은 완전히 벌거벗은 몸으로 뒤엉켜 있었다.

마침 사예린을 먼저 발견한 기녀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우앗! 매우 깜짝 놀랐다!”

단휘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사예린을 바라보았다.

인피면구를 벗은 진짜 단휘였다.

사예린이 미간을 살짝 좁히고는 벌거벗은 단휘에게 물었다.

“네가…… 밝히는 그놈?”

“그, 그렇소만. 내가 바로 그 밝히는…… 아니! 무, 무슨 소리요? 나는 맹세코 처음 보는 당신이 갑자기 나타나서 몹시 놀랐단다!”

“…….”

단휘가 이불을 가슴께까지 끌어올리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사예린이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보더니 이내 방을 휙 나갔다.

그녀는 곧이어 옆방의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마침 창밖을 바라보는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만검세가주.”

사예린의 목소리에 창가에 서 있던 남자가 천천히 돌아섰다.

그는 틀림없는 만검세가주, 하천웅이었다.

“남의 방에 기척도 없이 불쑥 들어오다니. 이게 흑천련의 예법인가?”

분위기가 달라졌어. 기분 탓인가?

사예린은 대답 대신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 방 안을 살폈다.

예홍과 현청, 임송화가 함께 있었다.

그녀가 다시 싸늘하게 웃으며 창가에 선 만검세가주를 보았다.

희미하게 들먹이는 가슴, 조금 빠른 박자로 들숨과 날숨이 교차한다.

“호흡이 가쁘네?”

이런 귀신같은.

하천웅의 외모를 한 적비연이 어금니를 꾹 씹었다.

최대한 호흡을 조절했는데도 그걸 눈치채다니.

정말이지 귀신같은 여자다.

뭐라고 변명해야 할까?

체술 연마?

아니다. 이런 좁은 방에서 체술 연마를 하고 있었다면 더 이상하게 볼 것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은 호흡이 정상이지 않은가?

내공 수련?

내공 수련하는데 호흡이 이렇게 가빠질 이유도 없지.

결국 적비연의 입에서 나온 변명은 이 상황에서 그나마 가장 타당한 핑계였다.

“음…… 옆방에서 저 녀석이 붕가붕가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되는군.”

“의외로 변태 기질까지. 정말 일심동체인가 봐.”

일심동체?

그건 또 무슨 말이지?

다소 어리둥절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사예린이 재미있다는 듯 웃고는 돌아섰다.

“그럼 만나서 반가웠어. 또 봐.”

그렇게 걸어가려던 사예린이 다시 멈칫하고는 적비연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안 궁금해?”

“무슨?”

“본 련에서 일어난 일. 지금 북을 치고 난리가 났잖아. 별로 궁금하지 않은 가봐? 아무도 무슨 일이냐고 묻질 않네.”

확실히 보통이 아니다.

예리한 여자다.

적비연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대꾸했다.

“글쎄. 나와 상관없으니까.”

“성격 시원하네. 마음에 들어.”

네 마음에 들고 싶은 생각 없다.

물론 그 생각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럼 진짜 이만.”

손을 흔든 사예린이 이번에야말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창밖으로 그녀가 객점에서 멀어지는 것까지 확인한 적비연이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갔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하 대협의 형님은 찾으셨습니까?”

현청이 얼른 달려와 물었다.

적비연이 고개를 저었다.

“뇌옥에는 보이지 않았소. 대신 엄청나게 강한 백발 광인을 만났소.”

“백발 광인?”

세 사람이 서로를 번갈아 보았다.

적비연이 련 내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알려주었다.

현청이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대체 그 백발 광인은 누구였을까요? 사로잡힌 정파 무인은 아니었을까요?”

“모르겠소. 그가 내뿜는 기운은 정사마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소. 몹시 이질적인 기운이었소.”

“정사마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라. 설마 초절정의 극을 넘어선 자인가?”

초절정의 극을 넘어서게 되면 내공의 질을 구분하기 어려워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무튼 이 일은 본 맹에 돌아가는 대로 보고할 필요가 있겠군요.”

“그래야 할 것 같소.”

적비연의 말을 끝으로 현청과 임송화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적비연이 예홍을 돌아보았다.

“홍.”

“예, 가주님.”

“단휘에게 가서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해. 저 앙앙대는 소리 듣기 거슬려.”

“알겠습니다.”

예홍이 기다렸다는 듯이 옆방으로 건너갔다.

잠시 후 단휘가 말을 더듬으며 변명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난, 난 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 그냥 그 여자가 아직도 거기 있을까 봐 연기만 한 거라고! 진, 진짜야. 나는 그 말랑말랑하고 탱글탱글한 감촉을 저언혀 느끼지 못했어! 그 촉촉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몸에 닿아서 살살 녹을 것만 같은 감각조차 하나도 느끼지 못…… 우아악!”

조금 있으니 온몸에 입술 자국이 덕지덕지 묻은 단휘가 잔뜩 풀 죽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가주님. 잠시 본분을 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순결을 지켰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요. 단지 그 기녀가 무턱대고 엉겨 붙는 바람에…… 흑. 전 정말 순결을 지켰다고요.”

적비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안 물어봤다,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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